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여, 그대의 삶과 자존심과 사랑도 나와 똑같이 박동하네.

그리하여 그대를 위하여 다음의 노래들을 선사하리니." 

      -  월트 휘트먼   (243p)


<독서의 역사>는 순수한 독자를 위한 책이에요.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 책의 저자인 동시에 열렬한 독서가예요.

당연하게도 이 책은 수많은 독서가들을 기쁘게 할 내용들로 가득차 있어요. 그렇다고 평범한 독자들을 외면하진 않아요.

첫 페이지부터 흥미로워요. '마지막 페이지'라고 적혀 있거든요. 연대기적 순서를 뒤엎는 『독서의 역사』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독서가들이라면 독서란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독서의 역사』를 읽는다는 건 일반적인 독서 행위 그 자체이면서 '책과 독서'라는 주제로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 페이지'라고 적힌 첫 페이지에서는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가로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네 살 때 처음으로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열여섯 살 되던 1964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던 서점 '피그말리온'에서 방과후에 일했어요. 그가 맡은 일은 서점에 꽂힌 책을 날마다 일일이 뽑아내 먼지를 닦는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책장을 넘기고 몰래 읽다가 몇 번은 유혹에 못 이겨 책을 훔치기도 했어요. 서점 주인은 아마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줬던 모양이에요. 그 서점에서 일하던 어느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여든여덟 살 된 노모의 손을 잡고 찾아왔고 - 당시 보르헤스는 유명한 작가였고 시력을 잃어서 거의 맹인인데도 지팡이 사용을 거부했다 - 마치 손가락으로도 제목을 볼 수 있다는 듯이 손으로 서가를 훑곤 했어요. 보르헤스는 서점을 떠날 때쯤 망구엘에게 일자리를 제안했어요. 자기에게 글을 읽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망구엘은 바로 수락했어요. 그 후 2년 동안,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었어요. 보르헤스가 선택한 책들은 거의 대부분 처음 읽어보는 책들이었지만 보르헤스의 논평 덕분에 망구엘에게는 문학 수업처럼 텍스트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1년 전인 1966년에는 웅가니아 장군이 이끄는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특정 책과 저자가 블랙 리스트에 오르는 걸 목격했어요. 전체주의 통치 집단은 국민들이 사고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책을 금지시키고, 위협하고, 검열하고... 그런 상황에서 독서가들은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몰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현재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투쟁의 역사 -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를 알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자유를 누리다 보면 그 소중함을 종종 잊는 것 같아요.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가졌어요. 스스로 일개 독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책을 읽는 순간 누구나 독서가라는 사실. <독서의 역사>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책과 독서가들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독서가로 만드는 것 같아요. 첫 페이지가 마지막 페이지인 이유는 각자 자신의 삶이 출발점이기 때문이에요. 

미국의 위대한 시인 월트 휘트먼은 이 세상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펼쳐져 있는 책이라고 보았어요. 알베르토 망구엘은 그 연장선상에서 "독자는 작가를 반영하고(그와 나는 하나다), 세상은 한 권의 책(신의 책, 대자연의 책)을 반영하고, 책은 곧 피와 살이며(작가 자신의 살과 피이지만 문학적 변형을 통해 나의 것이 된다), 이 세계는 판독해 내야 할 책이 된다(작가의 시는 나의 세상 읽기가 된다)." (247p)라고 보았어요.

독서가들이란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책과 독서가가 하나가 된다고.

우리는 세상이든 책이든 읽은 만큼 성장해요. 

따라서 독서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행위 그 이상을 의미해요.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텍스트를 섭취하여 갇혀 있던 무언가를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야 해요. 휘트먼이 자신의 시를 거듭 손질하고 다시 펴내면서 믿었던 것처럼, 카프카가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가 미완성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어떠한 책 읽기도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망구엘은 설명하고 있어요.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요. 그 처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짐작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독서의 역사>는 독서의 가치를 다시금 재확인시켜줬어요. 이제는 독서가로서의 삶을 새롭게 써가야 할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