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 무례한 세상에 지지 않는 심리학 법칙
권순재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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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생생한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이제는 한 개인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비극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거나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단체와 유가족들이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 대구 지역을 돕기 위해 그동안 애써 왔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대구 지역은 코로나19로 인한 최대 재난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구 지역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악성 댓글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구 지역의 고통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금을 통해 물질적인 지원뿐 아니라 연대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함께 해야 되겠다, 연대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아픔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그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걸, 세월호 단체와 유가족들은 몸소 보여줬습니다. 가슴 뭉클한 교훈이었습니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의 저자는 정신과의사입니다.

그를 찾는 환자들은 어딘가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그것을 언어로 꺼내는 과정을 몹시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나요?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아도 증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마음이 아픈 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들 아픈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자의 환자 중 젊은 PTSD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환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우연히 마블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 신나게 설명하는 걸 보면서 새로운 소통의 창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지 않아도, 영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투영해낼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그 환자가 추천했던 영화 '어벤져스'를 보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험 중의 사고로 헐크가 된 불행한 남자가  "나에겐 슈트가 없어요. 노출되어 있죠. 그게 내 악몽이에요." (9p)라고 말하자, 테러로 인한 가슴의 상처를 메우기 위해 몸에 원자로를 달고 강철 갑옷을 두르게 된 불안에 찬 남자는 "매 순간 쇳조각이 내 심장으로 파고들어요. 그때 이 빛 덩어리가 날 지켜주죠. 이 빛 덩어리도 이미 내 일부에요." (9p)라고 말합니다. 완벽한 히어로의 모습 뒤에 숨겨진 내면의 상처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후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갈등들을 글로 묘사하는데 열중했고, 그 글들이 <정신의학신문>의 '영화 속 마음을 읽다'라는 코너로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엮어 한 권의 책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신과의사가 본 영화 속 마음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자 이야기 대신에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내용입니다. 혹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고나면 한 번쯤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겁니다.

정신과 상담보다는 영화 한 편의 감상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걸, 일단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현재 마음이 살짝 아픈 분들이라면 이 책 속 영화들이 적절한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물이 나면 그냥 펑펑 울어도 좋습니다. 


공감,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 걸까요?

...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를 공감에서 찾습니다.

... 영화 <그래비티> (2013, 알폰소 쿠아론)는 우주왕복선을 타고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가 우주쓰레기와의 충돌로 인해 우주 미아가 되고, 여러 고난을 거쳐 결국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는 매우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안기는 시각적 충격은 압도적입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표류하는 우주비행사의 모습은 현장감이 넘치며, 아무도 없는 거대한 공간에서 혼자가 되는 공포를 매우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우주의 광활함을 단순히 볼거리나 배경으로 소모하지 않고 모든 관계가 단절된 인간의 고독과 연결됩니다. (140-141p)


매트 "연착륙 제트엔진은 시도해봤나?"

스톤 "그건 착륙용이잖아요."

매트 "착륙이나 발사나 둘 다 시스템은 같아."

스톤 "매번 추락했다구요."

매트 "그럼, 지구로 돌아갈 거야, 아님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여기가 멋진 건 나도 알아. 여기선 자넬 해칠 사람도 아무도 없어. 안전하지.

 내 말은... 왜 사는 거야?  아니, 산다는 게 뭐지?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 해. 등 뒤에 붙이고 가는 거야. 

 땅에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이봐 라이언?"

스톤 "네?"

매트 "집에 갈 시간이야."

스톤 "착륙은..., 발사다."    (146p)


딸을 잃은 후 자신을 고독 속에 내던졌던 스톤 박사는 통신을 통해 연결의 힘을 깨닫고, 살기로 결심합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가상의 세계이지만 우리는 그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마음과 접속합니다.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이 영화에서는 선명하게 보입니다. 너와 나는 달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상처는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라고. 그러니 매트의 말처럼 땅에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라고.

산산조각 난 마음을 되돌릴 방법은 없지만 그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줄 사람들이 곁에 있는 한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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