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
이다빈 지음 / 아트로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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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은 이다빈 작가님의 산문집이에요. 

내밀하게 묻어두었던 상실의 아픔, 그 솔직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스스로 묻게 됐어요.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저자는 '잃어버린 나'를 깨닫고, 나를 찾아 떠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잃어버린 것들, 한때는 소중했던 것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랑이 어느 순간 미움과 질투심으로 바뀌는 걸 보면.

그러나 어떤 사랑은, 그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것만으로 살아갈 이유를 상실하게 돼요.


"그와 나는 갈림길에 놓였다.

부모를 등지고도 그토록 당당했던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 자식을 잃었을 때 붙잡고 있던 마음을 놓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나를 덮치고 있었다.

...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 

내 마음에서 떠나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었다."  (24-25p)


12년 전 금강에 딸의 유골을 뿌리고 난 후 딸이 좋아할 만한 절을 우연히 알게 되어, 

그 절에서 2주 가량 머물면서 매일 아침 토함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떠나간 아이를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해요.

다시 그 절로 향하는 길에 어둠 속에서 이정표는 보이지 않고, 유턴하기 싫어서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고 해요.

그때 한하운 시인의 '가도 가도 황톳길'이라는 시가 떠올라, 마치 자신의 처치 같았다고.


가도 가도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104p)


삶을 부여잡는 일,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놓지 않아야 다시 살아낼 수 있어요.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여행과 사진이었어요.


"성북동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尋牛莊'(심우장)이라는 문패가 발목을 잡았다.

'소'는 불가에서 잃어버린 본래 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심우장은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심우도'에서 따온 말이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니 만해 한용운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보였다.

마당에 서니 텅빈 포만감이 느껴졌다."   (132p)


살면서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고, 속상했고, 슬펐고 괴로웠어요.

하지만 마냥 잃어버리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잃어버린 본래 자리가 어디인가?

오직 내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상실의 아픔이 더욱 컸던 것인지도.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와 아이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어요. 

삶에서 하나의 문이 닫히면 언제나 다른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누구나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고통과 죄의식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니까...


이 책 속에는 여러 장의 사진들이 실려 있어요.

우리 주변 일상의 풍경 속에 덩그라니 놓인 '어떤 것'을 찍은 사진이에요.

장갑 한짝, 쓰레기 더미 속 곰인형, 곱게 접은 종이학 하나, 길거리에 떨어진 열쇠꾸러미, 찌그러진 농구공, 찢어진 우산...

버려진 어떤 것들의 존재가 너무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자기자신까지 잃어버려선 안 돼요. 

어차피 빈 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단 한 가지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있어요.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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