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
김미경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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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내세울 건 나이뿐,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깔보면서 함부로 지적질하고 간섭하는 사람.

나와는 무관한 말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유독 존대법에 민감한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존대법의 가치.

어릴 때부터 너무도 당연하게 배웠던 존대법은 기본적인 예의범절이니까.


<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을 읽으면서 매우 소름돋았습니다.

한국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서열화는 전부 존대법 때문이라는 사실.

절대불변의 가치처럼 지켜왔던 존대법 속에 이런 숨은 논리가 있을 줄이야...

마치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던 친구의 배신만큼이나 충격적입니다. 존대법의 민낯!

저자는 영어학자로서 한국어의 존대법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그 본질적 문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존대법은 한국 사회를 늙게 만드는 주범이다.

한국이 젊어지려면, 그리고 지금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비약을 하려면,

존대법에 가려진 한국식 공손 문화의 턱을 넘어야 한다.

...

존대법으로부터의 해방은 단지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며,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 미래 한국의 생존의 문제이다."  (16-19p)


그렇다면 존대법이 왜 문제인지를 하나씩 살펴봐야 합니다.

일단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의 나이부터 확인합니다. 나이로 위아래를 따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다음 호칭을 정합니다. 이때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존대법에서 시작된 나이에 대한 민감성은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모든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기본조건으로 확산됩니다.

어떤 나이에는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두고 그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평가하다 보니, '나이'는 올가미가 되어버립니다.

젊은 놈이 건방지게, 어른이 나이값도 못하게, 라는 제한된 의식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점은 존대법이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관계를 위아래로 구분하는 훈련이 되어, 모든 인간관계에 위계의식을 뿌리 깊이 박아 놓는다는 점입니다. 존대법은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 구조를 굳히고 윗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해 질문이나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사회를 만듭니다. 실제 위기상황이라면 중요한 정보와 정확한 판단을 공유할 수 없게 만들며,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또한 존대법의 두 얼굴인 존댓말과 반말이 가진 폭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어는 반말이라는 하대법만으로도 그 어떤 폭력 이상으로 극심한 혐오와 모욕을 줄 수 있습니다. 근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혐오 발언과 막말뿐 아니라 반말 폭력에 대해 그 어떤 안전 장치가 없다는 것이 현재 한국어 존대법의 현주소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받기 시작하는 존대법 교육은 행동의 옳고 그름보다 먼저 위아래를 잘 구분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이없게도 정치인들이 토론을 하면서 논리가 아닌 말버릇 싸움으로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나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국 사회가 논리와 상식이 통하고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모든 국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논리를 기반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첫걸음이 토론의 매체인 '말'의 평등, 즉 '평등한 언어'가 전제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인터넷의 등장이 한국어 존대법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어 서로의 위계를 따질 필요 없는 평등한 공간이 가능합니다. 핵심은 모든 사람이 언어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삼 언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존대 문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언어 민주화를 발판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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