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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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디 사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스퉁 민체이'라는 아름다운 강변에 산다고 대답한다.

스퉁 민체이는 '승리의 강'이라는 뜻이지만

막상 그 이름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게 되면

사람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좋아 '강'이지, 실제로 스퉁 민체이는 프놈펜에서,

아니 캄보디아 전체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장이다.   (16p)


예전에 이런 아파트 광고가 있었어요.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가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내가 사는 곳이 곧 나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자본주의 발상.

<렌트 콜렉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어요.

"어디에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죠."   (346p)


주인공 상 리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고 있는 스물아홉 살 여성이에요.

상 리에게는 남편 기 림과 생후 16개월 된 아들 니사이가 있어요. 매일 쓰레기를 주우며 살고 있어요.

매월 첫째 날은 어김없이 암소가 찾아와요. 암소의 진짜 이름은 소피프 신인데, 우리는 그녀를 '암소' 또는 '집세 수금원(Rent Collector)'이라고 불러요. 그녀는 몇몇 땅 주인들을 대신해 스퉁 민체이에 사는 가난한 이들의 집세를 걷으러 다녀요. 소피프는 퉁명스럽고 냉혹하며 화를 잘 내는 여자예요. 대부분의 시간은 잠을 자거나 욕설을 지껄이거나 싸구려 술을 마시며 빈둥거려요. 오직 단 하루, 집세 걷는 날만 술에 취해 있지 않아요.

쓰레기 줍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퍼요. 프놈펜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곳 사람들은 남들이 내다 버린 것들에서 삶을 일구며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상 리는 요즘 계속 할아버지 꿈을 꿔요. 할아버지는 어린 상 리에게 늘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셨어요.


"인생이 늘 그렇게 힘들고 잔혹한 것만은 아니란다. 우리의 고난은 순간에 지나지 않아." (11p)

"상 리."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 같았다.

"오늘부터 시작이야. 오늘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 될 거야."  (12p)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산다는 건 '좋은 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요. 그래도 상 리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덕분에 잘 버텨내고 있어요. 단지 니사이가 매일 설사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프다는 것, 매달 집세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빼면. 아니, 이젠 버티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남편 기 림이 집세 낼 돈을 강도들에게 뺏긴 데다가 심하게 얻어맞아 죽을 뻔 했거든요. 이런 딱한 사정을 듣고도 소피프 신은 꿈쩍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기 림이 주워온 그림책을 본 소피프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더니 풀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요.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고통스럽고 슬픔에 가득 찬 탄식으로 변했어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상 리는 무엇이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던 여자의 감정을 흔들었는지 생각했어요. 뭘까...

그림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살짝 들썩이던 입술, 그건 소피프 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다음 날 상 리는 소피프를 찾아가 부탁했어요. 

"제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나요?"  (58p)

스퉁 민체이 사는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몰라요. 상 리가 소피프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그건 이 소설을 읽는 저한테도 일어났어요. 문학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또한 소피프의 가르침을 상 리와 함께 배웠어요. 


"좋든 싫든 희망은 우리 가슴 속에 아주 깊이 새겨져 있어서 내칠 수가 없고,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다시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우리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우리 자신이 사란이고 태터코트이고 신데렐라이기 때문이야."  (3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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