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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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은 추억의 공간이죠.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따로 모아두는 장소.

가끔 꺼내볼 때 즐거워지는 것들.


<다락방 미술관>은 다락방처럼 숨은 재미가 있는 미술 에세이예요.

저자는 10년간 미술을 감상하고  미술 서적을 읽으면서 미술 및 예술 분야의 전문 기고가가 되었다고 해요.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즐기고 감상한 사람이라는 점.

저는 그 점이 마음에 들어요. 미술작품은 아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니까.

이 책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부터 19세기 근대미술과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와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요즘들어 그림 감상이 참 좋아졌어요. 음악보다 그림이 더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그림이 보여주는 것들.

그건 보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학창 시절에는 미술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들을 봐도 큰 감흥이 없었어요.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지식으로 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똑같은 작품을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바라보니 그때와는 달랐어요. 이런 게 감상이구나...

이 책은 미술작품을 좀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줘요. 화가와 작품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을 살짝 곁들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거든요.


그 중 눈에 띄는 화가는 수잔 발라동(Suzamme Valadon, 1865~1938)이에요.

와우, 수잔 발라동의 인생은 놀라운 영화 한 편이에요. 인생 이야기를 알고 그녀의 작품을 보니, 인생이 예술이고 작품이 인생이네요.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1923)은 편안하게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물고 있는 여인이 있어요.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하겠죠?  수잔 발라동의 본명은 마리 클레망틴 발라동이에요. 세탁부의 혼외자로 태어나 열 살부터 직공, 양재사, 청소부 등 온갖 일을 하다가 파리의 서커스단 무희가 되었지만 부상으로 쫓겨났어요. 그후 당대 상징주의 미술의 거장 피에르 퓌비 드 샤반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면서 남몰래 그림 연습을 했어요. 퓌비 드 샤반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화를 내자 그를 떠나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화가의 정부가 되었고, 겨우 열여덟 나이에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들을 낳았어요. 그 아들이 바로 몽마르트의 화가인 모리스 위트릴로라고 해요. 르누아르 부인에게 쫓겨난 수잔은 물랭 루주의 화가 앙리 드툴루즈 로트레크를 만났고, 그의 소개로 인상주의 거장 에드가 드가에게 미술교육을 받았어요. 수잔은 드가를 만난 그날을 '내가 날개를 단 날'이라고 회고했어요. 로틀레크는 그녀에게 '수잔 발라동'이라는 예명을 선물했고, 그녀는 평생 그 이름으로 살았어요.

수잔은 인생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여러 번 경험했어요. 수잔 발라동의 <아담과 이브>(1909)에서 아담의 모델은 아들의 친구였던 초보 화가인 앙드레 위테르였어요. 그림 속 이브는 자신을, 아담은 위테르의 얼굴로 그렸어요. 여성 누드 모델을 남성 화가가 그리던 시대에, 남성을 누드 모델로 그린 최최의 여성 화가인 거죠.

26세인 아들 위트릴로와 함께 살던 이혼녀 수잔은 44세에 23세인 위테르와 사랑에 빠졌고, 동거하다가 1914년 정식으로 그와 재혼했어요. 이 세 가족은 각자 창작을 하고 힘을 합쳐 작품 판매를 하며 먹고 살았어요. 그러나 결국 둘은 갈라섰고 수잔은 리옹의 작은 마을로 이사해 조용히 작품 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내다 1938년 영면에 들어갔어요.


"예술은 우리들이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만든다."  (136p)


불꽃 같은 사랑도 언젠가는 꺼지고 말죠. 그러나 예술작품은 남아 있어요. 수잔 발라동은 평생 사랑하듯 예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뜨겁게 사랑했다는 건 알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술가들처럼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남길 수는 없지만 그러한 작품을 통해서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는 있어요.

과거 역사를 보면 여자는 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재능이 묻히고 말았어요.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여성 화가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녀들의 존재야말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한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요.

프리다 칼로의 <인생이여 만세>처럼...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고 해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2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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