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들
알리사 가니에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열아홉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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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가 내리는 밤, 니콜라이는 운전 중이었습니다.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어 차를 세웠는데 갑자기 비틀대며 걸어오는 남자가 태워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남자는 비싼 잠바를 걸치고 손에는 금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송아지 가죽 냄새가 나는 두툼한 가죽 지갑에서 500루블짜리 지폐 몇 장을 차 안으로 던집니다.

당황한 니콜라이는 차 뒷문의 잠금을 해제했고, 남자는 뒷자석에 탑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 우스개소리가 자신들의 운명이 될 줄은 미처 몰랐을테니.

그건 이 소설을 읽는 저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다 읽고 나서야, 처음 두 사람의 만남이 소름끼치는 우연이자 결정적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의 죽음 이후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누가 그를 죽였을까요?

니콜라이가 들려준 개미 이야기처럼, 살아있는 개미에게 뿌린 썩은 냄새나는 액체가 너무나 상징적으로 다가옵니다.

악의적인 루머, 감시와 밀고, 미행...

어쩌면 우리 사회에도 퍼져 있는 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부패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연의 연결고리가 마침내 진실에 다다를 때, 탐욕이 가져온 비극을 목격하게 됩니다.

불쌍하도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


"혹시 그거 알아요? 

얼마 전에 제 직장 동료들한테서 들은 건데요, 개미 있잖아요, 개미는 냄새로 서로를 알아본답니다.

혹시 아세요?"
"뭐라고요?"

뒷자석에 앉은 남자가 몸을 움직였다.

"개미 말입니다. 왜 그 페로몬이라는 거요. 개미 한 마리가 죽으면 페로몬이 아직 남아있거든요.

그래서 그 형제들이 일주일 동안 죽은 녀석하고 대화한다는 거예요.

생화학 물질이 사라질 때까지 그런다지 뭐예요.

그 물질이 남아있는 동안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반대로 살아있는 개미에게 썩은 냄새가 나는 액체를 뿌리잖아요.

그 즉시 개미가 해체되는 것 같아서 벌써 죽은 셈 친다는 거죠.

그래서 그 개미를 무덤에 데리고 간다는 겁니다."

니콜라이는 웃었다.      

....

"부탁하신 곳으로 왔습니다. 지금 중앙 광장을 향해 우회도로로 가고 있어요."

남자는 그제야 안심한다는 듯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그 공포 말입니다... 저도 최근 들어서 전화 받는 게 두려웠어요.

도처에 다 눈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해하시겠어요?"

니콜라아는 알 것 같다. 정신착란, 피해망상, 혹은 망상형 조현병이랄까.

이 병은 도시에 시나브로 스며들면서 사람들의 목을 어김없이 조여 왔다.

니콜라이의 지인들은 대화 도중에 엉덩이 밑에 전화기를 깔고 앉거나,

테이프로 노트북 카메라를 가리기도 하고,

컴퓨터 네트워크에 익명의 까치발로 접속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다.    


니콜라이의 머릿속에 순간 재미있는 옛날 포스터 문구가 생각났다.

'전화기 옆에서 수다 떨지 말 것. 수다쟁이는 스파이의 먹잇감이다.'

'적에게는 영악하고 잔인한 악이 도사리니 조심할 것.'   (10-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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