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기담집 - 아름답고 기이하고 슬픈 옛이야기 스무 편
고이즈미 야쿠모 지음, 김영배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골동기담집>은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 버린, 아름답고 기이하고 슬픈 일본의 옛이야기 스무 편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무섭기도 한 이야기...

첫 이야기 <유령폭포의 전설>은 짧고 강렬한 공포를 주기 때문에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츄고로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에 나왔을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옛날 옛적에 에도의 코이시카와 근처에 스즈키라는 하타모토(에도시대 쇼군 직속의 고위급 무사)가 있었다.

그의 저택은 에도가와 강변에 있는 나카노하시라는 다리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스즈키의 부하 중에 아시가루(사무라이 가문에 고용된 하급 보병)인 츄고로가 있었다.

츄고로는 상당한 미남에 영리하고 붙임성도 좋아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 그런 츄고로가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마당에 가로질러 저택을 빠져나가서 동트기 조금 전에야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은 이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 모두 츄고로가 연애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자 츄고로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몸이 허약해지기 시작했다."  (76-77p)

과연 츄고로는 밤마다 누구를 만나고 온 것일까요?

그 정체를 알고나면, '헉!' 하게 되는 결말이지만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각 이야기마다 일본 민화가 곁들여져서 옛 이야기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 고유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하이쿠는 언어적 유희와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즐거운 일도

깨보면 덧없어라

봄의 꿈이여!          (130p)


 이 하이쿠는 "Having awakened, all joy flees and fades ; - it was only a dream of Spring"

"눈을 떠보니 모든 기쁨은 덧없이 사라진다. 그저 봄 꿈이었다"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깨다'는 동사는 '자각하다', '바래다(퇴색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덧없다'라는 말도 상황에 따라 '덧없이 사라져간다', 또는 '희망도 없고 비참하다'는 이중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267p)


이 책은 고이즈미 야쿠모(1850~1904)의 대표작 『골동 (骨董 , Kotto)』을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신기한 건 이러한 이야기를 쓴 고이즈미 야쿠모라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특이하게도 1896년 일본인으로 귀화한 서양인입니다.

원래 이름은 패트리키오스 레프카디오스(패트릭 라프카디오)라고 합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그의 인생이야말로 골동기담집에 실릴 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 이오니아 제도의 레프카다에서 아일랜드인 영국 육군 군의인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나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열아홉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 보이, 야간 경비, 행상 등을 거쳐 저널리스트로 인정 받고, 뉴올리언즈 시대에 엑스포에서 일본 문화를 접한 뒤 그 영향으로 1890년 4월 일본 땅을 밟았고, 일본 여성 고이즈미 세츠와 정식으로 결혼하면서 일본에 귀화했습니다.

이렇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작가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비롭고도 슬픈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고이즈미 야쿠모의 가정생활」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고도 마음의 향수를 달래지 못한 나그네 고이즈미 야쿠모는

마지막으로 또다시 꿈 속을 방랑하며 낯선 나라를 여행했다.

지금 이 슬픈 시인의 영혼은, 조시가야 계곡의 풀이 우거진 묘지 속에,

한 조각 뼈가 되어 묻혀 있다."  (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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