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운명과 선택 - 한국 근대 페미니즘 문학 작품선
백신애 외 지음 / 에오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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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新女性)이 무엇인가 했더니,

그 전까지는 여성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다가 문명이 개화되면서,

'앗, 여성도 사람이었네'라고 겨우 알아보는 것이었나 봅니다.


신여성_ 운명과 선택은 한국 근대문학을 이끌었던 여성작가 7인의 소설을 엮은 책입니다.

이들 작가 중 익숙한 한 명, 나혜석을 제외하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나혜석은 한국 미술 사상 최초의 서양화가로만 알고 있어서, 소설은 처음 읽어봅니다.

나혜석의 <경희>는 자전적 소설로 보입니다. 주인공 경희는 부모에게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나 혼인을 피할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경희도 조선 가정의 인습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인 것이 시집가서 편안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몇 푼 돈을 위해 종일 땀 흘려 일할 것이냐를 고민합니다.


아버지가 "그리로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하실 때에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벌벌 떨며 대답합니다.

"아버지, 안자의 말씀에도 일단사(一單食)와 일표음(一瓢飮)에 낙역재기중(樂亦在基中)이라는 말씀이 없습니까?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제가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집 개나 일반이지요."하였습니다. (106-107p)


다른 작품 역시 배경과 주인공은 다르지만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나도 사람이다!"


백신애의 <꺼래이> (1934)에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오열하면서도, 울지 말고 일어서야 한다고 바람결에 다짐합니다.

이선희의 <계산서> (1937)의 주인공 '나'는 다리 하나를 잃고 남편도 자신과 같이 다리 하나가 없어지길 바라지만, 진짜로 받아야 할 것은 그의 목숨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 계산서이자 모든 아내 된 자의 계산서일 것입니다. 

나혜석의 <경희> (1918)는 여자의 삶을 고민하다가 한 인간의 삶을 선택합니다.

강경애의 <어머니와 딸> (1931)는 바람핀 남편이 도리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순순히 헤어진 아내... 황당한 건 이후 남편의 행동입니다.

김명순의 <탄실과 주영이> (1924)에서는 여자가 똑똑하게 굴면 독종이라고 욕합니다. 명예심 많은 탄실이라니, 탄실이가 질투심 많고 심성 나쁜 처녀가 된 건 서울 가서 공부한 탓이랍니다. 그러나 탄실의 속내는 첩년의 딸이라 업심 받고, 나라가 약하여 강한 나라의 업심 받는 게 싫었을 뿐입니다. 남들 눈에는 명예를 좇는 것 같지만 탄실은 열심히 배워 실력을 기르려 했던 것입니다.

임순득의 <딸과 어머니와>(1949)에서 어머니는 딸 현순이 혼자 늙어죽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재혼을 권유합니다. 반면 연경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뭇 다릅니다. 해방 후 연경이는 새 세상을 만든다고 제몸 아끼지 않고 어느 남자 못지 않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현순은 대야에 냉수를 가득 떠다 드립니다.

지하련의 <산길> (1942)에서 순재는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가 연희라는 것을 어제 문주에게 듣게 되고, 뒤어 연희의 편지를 받습니다. 사랑이라며 당당한 연희 앞에서 순재는 당황하고 맙니다. 인생에 있어 이처럼 과감하다니, 순재는 도저히 연희를 당할 재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지나왔는지, 문득 넓다란 산길이 가로놓였습니다. 남편은 연희와의 일을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무심하게 사과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연희를 그저 실수였다고 말하는 남편보다 사랑했노라 고백하고 산길을 성큼성큼 올라가던 연희가 누구보다 아름답고 성실하고 정직했다고, 순재는 생각합니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나를 짐작해 봅니다. 그리하여 신여성은 운명에 맞서 당당히 자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간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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