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 김원호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 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재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눈금이 잘못 된
자일 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