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 박현수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내가 읽던 이 구절은

숲의 어느 부분에 새겨져 있을까

자작나무 밑동쯤일까

잔가지 겨드랑이쯤일까

숲은, 인간의 말들을

어디쯤 철지난 현수막처럼 걸치고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밑줄 그은 이 구절,

나무의 살갗에 새긴 문신은 흐려질까

숲은, 가시철사처럼

파고드는 문장들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제 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 구절은 사라지리라

매미, 쓰름매미,

숲에서 제 이름으로 노래하느니

숲은, 탈피 껍질처럼 텅 빈

인간의 문장들을 빗방울처럼 떨쳐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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