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멸치를 위한 에스키스 허 만 하

                          

 

마른멸치의 내부에는

헐리고 있는 초가집 내부에서 보는 것 비슷한 뼈대가 있지만

그보다도 더 훨씬 더 정교한 흔적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치 해부도 보다 섬세한 구도로 

멸치는 신체내부의 힘의 배분과, 균형 그리고 정확한 치수를  

선박설계도 처럼 관리한 증거를 화석처럼 가지고 있다

  

멸치의 빈 내강은 물을 치는 자세, 부드러운 몸짓 

그리고, 은백색 선으로 반짝이는 바다냄새를 슬픔처럼 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난류수역을 회유하던 멸치때가  

물장구를 치면서 살아있는 물결처럼

산란을 위하여 밤에 내 만으로 헤엄쳐 들어오던 달빛같은 신비를

사람들이 역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바다에 대한 그리움으로

응고한 육질을 최후까지 떠받치고 있는 미세한 갈비뼈는

애처롭기까지 아름답다

 

꿈처럼 쓸쓸한 좌절의 역사를 내장하고 있는 마른 멸치

마른멸치의 어린뼈대를 보면 가을바다 물빛처럼 슬퍼진다

 

내가 응시하고 있었던 것은 마른 멸치가 아니라

순결한 감수성의 소유자가 몰살되어야 했던 바로 그 이유였던 것이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