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창고문 사이로 아마라를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꼼짝마라!”
나는 박달나무를 휘두르며 창고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로 호통을 쳤다.
아수라와 향귀 돈노는 내가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자 모두 놀란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미 오른 쪽이 완전히 타버린 아마라는 나를 힘없이 쳐다보다가 흠칫 놀란다.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려 하자 향귀가 황급히 제지를 했다.
“너희들 여기서 무슨 짓들을 하는 것이냐?”
살기등등한 눈빛이 한창 서려있는 그들을 초기에 제압하기 위해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호통을 쳤다.그러나 아수라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내뱉는다.
“이 년이 간첩질을 해서 손좀 보고있습니다.”
“간첩질이라니!”
“이것이 아마라의 지령을 받고 잠입한 것을 우리가 잡아 지금 취조중입니다.그런데 워낙 독종이라서 그런지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군요.”
“그만둬. 그 사람은 내 손님이다.”
나는 아수라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때 아마라는 향귀를 몸으로 밀치고 내 앞으로 달려왔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지독하게 고문을 했는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조차 없었다.그녀는 고통스런 신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인님, 명심하세...... 억!”
아마라가 뭔가 더 이야기 하려할 때 향귀가 서둘러 달려와 아마라의 입을 틀어막았다.그런 그녀를 아수라는 노려보며 호통을 친다.
“이게 무슨 짓이냐?”
“등신같이! 우리가 모진 고문을 다했는데도 입을 꾹 닫고 있던 이년이 주인이 나타나자마자 입을 여는 것은 무슨 뜻이겠어?”
“주인도 들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라는 말이냐?”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아수라는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고는 재빨리 돈노의 칼을 뽑아들어 아마라를 찌르려고 하였다.
“이런 잔인무도한 놈들이, 감히 내 손님을 해치려고 들어?”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나는 박달 몽둥이를 휘두르며 아수라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치열한 싸움이 벌었으나 원래 싸움의 신인 아수라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아수라는 차마 나를 죽이지는 못하고 나를 멀찌감치 내동댕이 쳐버렸다. 내가 격심에 고통에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아수라는 칼을 들어 사정없이 아마라를 내리쳤다.
“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아마라가 쓰러졌다.그리고 확인이라도 하듯 돈노가 달려들어 다시 한번 가슴을 칼로 찔러버렸다. 그렇게 내게 아무 말도 못하고 아마라는 가엾게 죽어갔다.
“이런 잔인한 놈들,”
나는 황급히 달려가 축 처진 아마라를 부둥켜 안았다. 아수라와 돈노는 아마라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는 지 더 이상 칼질은 안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때 완전히 죽은 줄만 알았던 아마라가 미약하나마 입술을 움직였다.나는 본능적으로 아수라와 등지고 앉아 아마라를 켜안고는 흐느끼는 척 했다.아마라는 나의 팔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주인님, 저는 아마라가 아닙니다.”
“그래.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전 아마라의 시녀 화, 화타입니다,. “
“하여간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흑,”
그 순간에는 정말 더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수라와 돈노가 우리들의 왕이 된다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저들을 제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아마라뿐입니다.”
“나도 그렇고 싶다만 이미 내가 아수라를 너무 많이 불렀어.”
“아닙니다. 이제 회수를 따져서 왕을 뽑는 그런 소극적인 방법은 필요가 없어요. 이제 새로운 방법으로 왕을 뽑아야 할 때입니다.”
“도대체 그게 뭐냐?”
“주인님의 일념대로 왕을 뽑으세요.”
“내 일념으로? ”
“생각대로 정하고 저것을 꾹 누르세요.”
“뭘 누르라는 거야?”
아마라는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아수라는 심상치않은 얼굴로 우리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번개처럼 달려왔다.
“이런, 아직 이것이 안죽었잖아!”
그리고는 화타의 가냘픈 목을 사정없이 조르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나는 아수라를 무쇠 같은 팔푹을 물어뜯으며 제지했으나 이미 화타는 버둥거리다가 그만 완전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화타가 완전히 절명한 것을 확인한 나는 미친 듯이 벌떡 일어났다.
“이놈들, 너희들이 그토록 좋아죽는 왕을 불러내겠다!”
나는 굵은 눈물을 쏟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높이 치켜들었다.
“너희 왕이 너희들을 처단하리라!”
나의 선언은 아수라를 처단하는 왕을 불러낸다는 뜻이었지만 가장 많이 나의 선택을 받았던 아수라는 자신이 왕으로 선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지 환희용약했다. 그러나 나의 행위가 깊은 분노라는 눈치챈 돈노와 향귀는 공포에 질린 듯 슬금 슬금 뒤로 물러났다.
마침내 나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휴대폰의 렌즈를 노려보았다. 은테위로 나의 마음을 복사하고 있는 듯 붉은 불빛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왕을 부르는 나의 일념에 이끌려 그동안 잠깐 씩이라도 나를 스쳐갔던 나머지 자들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모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러나 그때에도 아마라는 나타나지 않았다.그 때 자만심이 가득찬 아수라는 화염을 내게 날리며 위협했다.
“당신이 나를 왕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모가지를 꺽어버리겠어!”
아수라의 무서운 협박이었다.
“나를 배신하면 당신를 당신의 밤을 저주할테야!”
향귀도 질세라 협박공세에 가담했다.
“이 돈을 모두 가져라!”
돈노는 만원짜리 지폐로 하늘에서 비로 내리게 하여 내 눈을 한없이 현란시켰다.그러나 나는 정신없이 돌던 불빛을 엄지손가락으로 딱 눌러 정지시켰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살짝 들어 불빛이 멈추어진 숫자를 바라보았다. 주위에 있던 10쌍의 눈동자가 살짝 들춰어진 숫자로 향했다. 잠시 그것을 음미하던 나는 끼릭 끼릭 소리를 내며 은테를 앞뒤로 조정했다. 그 순간 여기 저기서 아아하는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나는 이윽고 마음을 정하고는 엄지 손가락으로 불꽃이 머문 숫자를 아주 강하게 그리고 길게 눌렀다.
“꾸꾸궁!”
갑자기 이상한 소음과 함께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눈앞에서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나를 쳐다보던 아수라. 향귀, 돈노 등를 비롯한 모든 존재들을 한꺼번에 쓸어가 버렸다.그리고 눈앞이 다시 훤해졌다. 나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달처럼 떠오른다.그때 나를 향해 하얀 손 하나가 다가왔다. 그의 빛나는 얼굴에 놀람인듯 아니면 감동인 듯 나의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안녕? 내사랑,”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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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상쩍은 머뭇거림에 향귀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져 갔다.
“너도 알다싶이 선택의 횟수를 세는 것은 항상 밤 12시 까지이지. 그런데 돈노가 저녁 11시에 할 일을 미리 예약해놨어. 자 봐라!”
내가 향귀에게 내민 휴대폰의 액정에는 정말 돈노가 밤 11시에 K재벌의 금고를 터는 일이 예약되어 있었다.
“이런, 젠장,”
향귀는 돈노의 예약을 보자 불같이 화를 뛰며 발광을 했다.그렇지만 내 말에는 틑린 데가 없기에 나한테 눈을 한번 흘기고는 올때처럼 바람같이 사라져 갔다.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안도를 하고 희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이후 차례로 나는 돈노와 아수라의 방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똑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지배자 선정 요구를 교묘히 물리쳤다. 역시 이승의 조언은 상상이외로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예전처럼 향귀 돈노 아수라를 교묘히 조정해서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그들도 나에 대해 불만은 있었지만 서로를 의식해 잘보이기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단지 나는 절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극도로 조심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무난하게 넘어가던 어느 날 오후 , 커튼 사이로 창밖을 내려다보던 나는 갑자기 나의 두 눈을 의심했다.그리고 가슴속에 커다란 불길이 솟아서 심하게 데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넓은 정원의 바위앞에서 아마라가 이승과 뭔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이야기 도중 아마라는 뭔가 초조한 표정으로 내 창문쪽을 자주 바라보곤 했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승이 자꾸 도리질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한걸음에 뛰쳐나가려 했으나 잠시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 있다 이승이 아마라를 내쪽으로 데리고 올 테니까.
나는 완전히 잊고 산 줄만 알았는데 다시 아마라를 보자 그리움과 반가움이 이토록 강하게 살아날 줄은 정말 몰랐다. 새삼스런 감정에 나는 적잖이 당황해하면서도 잠시후 이승이 그녀를 데리고 오면 어찌 맞이할까 마음속으로 분주히 궁리했다.
“……!”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현관문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아직도 정원에 있나 싶어 창밖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아마라를 처음 발견했을 때 즉시로 뛰어나가 맞이하지 않은 내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며 나는 그녀를 찾아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마라!”
나는 체면가리지 않고 목청컷 아마라를 불렀으나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왔다.
이윽고 뒷산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마악 올라가고 있을 때 나는 이승을 먼 발치에서 발견했다. 그런데 그뒤에는 아수라 향귀 그리고 돈노가 씩씩거리며 쫓아가고 있었다.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오솔길 끝무렵에 있는 허름한 창고였다.
이승은 아수라에게 손가락으로 창고를 조용히 가리켰다. 그러자 아수라와 향귀 돈노가 황급히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다.그 와 동시에 이승은 부리나게 창고앞을 떠났다.
“뭔가 수상한테.”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정신없이 오솔길을 내려가는 이승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손에는 큼직한 박달나무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주,주인님,”
이승은 난데없는 나의 출현에 기겁을 했다.
“오늘 나를 찾는 손님이 없었더냐?”
“없,없었 는데요.”
이승은 금방 냉정을 되찾아 태연히 둘러댔다.
“그럼 저 창고에는 누가 있는 것이냐?”
“창고요?”
내가 사나운 눈빛으로 창고에 관해 묻자 이승은 정말 사색이 되고 말았다.그는 교활하기는 했어도 한편 소심한 겁쟁이었다.나는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이승을 윽박질렀다.
“혹시 나를 찾아온 손님을 그곳에 가둔 것이 아니냐?”
“가둔 것은 아니고 잠시 그곳에서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뭣 때문에 그런 무례한 짓을 했느냐?”
‘”아, 아수라가 먼저 보고 싶어해서요.”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 숨김없이 모두 말해. 안그러면 너를 여기서 아주 요절을 내버릴 것이다!”
“아수라는 그 손님이 지배자가 되는 비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법을?”
나는 비로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아마라가 지배자가 되기 위한 비법을 들고 나를 찾아오다가 그만 꾀임에 빠져 아수라에게 넘겨져 버린 것이었다. 그때 나의 불길한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창고쪽에서 애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기적인 놈, 내 나중에 너를 반드시 처벌발 것이다.”
나는 이를 갈며 이승에게 내뱉고는 급히 창고쪽으로 달려갔다.
“위험해요. 주인님,가지마요!”
나는 정말 전광석화처럼 창고에 도착해서는 힘차게 박달나무로 창고문을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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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눈에 띈 것은 아마라의 고운 자태가 아니라 또다른 정복 경찰관이었다.거리 순찰을 하던 경찰은 불안한 표정으로 007 가방을 들고 있는 나를 수상히 여기고 내게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이런,”
나를 검거하기 위해 다가오는 경찰의 냄새를 맡고 아수라가 금방 사나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봐 나는 정신없이 내달려 그들과 조금 멀어졌다. 그러나 나의 염원과는 달리 또다시 아수라가 바람같이 나타나 경찰관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뿔싸!”
나는 그저 탄식만 내뱉었을 뿐 골목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현장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걱정마세요! 저놈들은 내가 처리했으니까요,”
내가 귀를 틀어막고 공포에 벌벌 떨고 있을 때 피범벅이 된 아수라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 죽였나?”
“네. 하두 반항을 심하게 해서……”
그러나 나는 아수라가 처음부터 그들을 죽일 작정이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경찰관의 머리통 하나를 들고 서있는 아수라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는 순간 감히 그를 혼 낼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향귀, 돈노 그리고 아수라는 나를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모두 열명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했는데 나머지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향귀, 돈노 아수라가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처음에는 그토록 싫고 징그럽던 그들이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겉보습과는 달리 나에 대해서만큼은 순수한 마음으로 복종을 했기 때문이었다.돈노가 은행에서 집어오는 돈으로 나는 풍족한 생확을 누릴 수 있었고 나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뒤를 밟는 형사가 있으면 아수라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버렸다.또한 향귀는 나의 요염한 여자로서 나의 객고를 달래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탈바꿈 하는 것처럼 보였다.어느덧 자만해진 나의 마음속에서는 아마라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나는 전원생활을 즐기위해서 교외에 저택을 구입하였다.그리고 새로 인수한 사업체와 집안살림을 맡기기 위해서 휴대폰에서 집사로 쓸만한 자를 불러냈다.그의 이름은 이승이었다.그의 지혜은 워낙 뛰어나서 돈주고 변호사를 따로 고용할 필요없을 정도였다.어느날 밤 나는 그를 은밀히 불렀다.
“내가 요즘 고민이 있는데 네가 도와주어야 하겠다.”
“말씀만 하시죠.”
이승은 총명함이 가득 넘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늘 날 내가 향귀 돈노 아수라의 도움을 받아 지금 이렇게 번창하고 있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그건 전부 공짜가 아니잖니?”
“그 말씀은……”
“조만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 들 중 한 명을 지배자를 뽑아주어야 한다.그런데,”
“주인님은 그들 중 아무도 지배자로 뽑기 싫으신 거죠?”
조금은 경박해보이지만 정확한 눈썰미를 가진 이승은 이미 내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쉿!”
나는 깜짝 놀란 척 하며 이승의 말을 제지했다.
“꼭 싫다기보다는 아무래도 한 쪽으로 힘이 기울면…….”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셋중 누구라도 하나를 선택하면 아무래도 나머지 둘의 영화를 포기해야겠지요.”
새삼스럽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이승의 직관력이 무서워서 차마 그의 시선을 똑바로 볼 수 없어 나는 창밖의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희들도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세계에서는 셋중 누구라도 주인님의 선택을 받아 지배자가 되면 우리들 모두를 숙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래?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나도 모르게 반색을 하며 나는 이승을 재촉했다.
“그럼 이렇게 하십시요.”
이승이 작은 입을 내귀에 갖다대며 빠르게 소곤거렸다.


다음날 오후 염려하던 대로 향귀가 약간 뿔난 표정을 짓고 내앞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그녀는 내게 다가와 가벼운 키스를 해주고는 곧바로 결론부터 꺼냈다.
“이제 지배자가 되어도 좋겠지요?”
“지, 지배자?”
“당신에게 가장 많이 선택받는자가 우리들 형제자매의 지배자가 되는 것 잊지 않으셨죠?”
“잊을 리가 없지.”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미소지었다.
“어디보자, 나에게 누가 제일 많이 봉사했는지 볼까?”
“볼것도 없죠. 밤마다 당신을 녹여준 게 누군데요?”:
향귀는 자신감과 애교를 섞여가며 대답한다.
“정말 그렇군. 향귀21회, 돈노 20회, 아수라20회 “
“그럼 이제 내가 저들의 왕이 되는 거죠?”
향귀는 너무나도 기쁜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잠깐, 아직 아냐?”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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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번호를 말해!”
나를 완전히 현행범 취급하는 듯 경찰의 말투가 완전히 반말투로 변했다.돈가방을 움켜쥐고 있는 대머리와 마찬가지로 나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내려보는 경찰관 녀석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집사람 번호는…….”
싫다고 뛰쳐나온 아내에게 꼭 전화를 해야되나 하는 난감함때문에 전화번호가 입에서 잘 안나왔다. 그때였다.
“엇?”
나를 윽박지르던 경찰관앞에 홀연히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푸른 빛의 괴물이었다.마치 도깨비의 형상을 한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과 비수와 같은 손톱을 번쩍이고 있었다.
자신 앞에 갑자기 이상한 괴물이 소리없이 나타나자 경찰관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도 혼비백산하여 본능적으로 괴물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그러나 괴물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화염이 그보다 더 빨리 경찰을 덮쳤다.엄청난 열을 내뿜는 화염은 삽시간에 그 경찰관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 화염은 곧바로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다른 경찰관에게도 번져갔다. 그 역시 순식간에 하얀 재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으악!”
그 처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대머리는 괴물이 자신을 돌아보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도망쳤다.그러나 그 자도 괴물의 화염 공격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그역시 등뒤로 폭포수처럼 날아간 화염속에서 한 줌의 재로 타 버리고 말았다.그 한 줌의 재마저도 마침 지나가던 트럭이 일으킨 바람에 의하여 허공으로 흝어져 버렸다.
“이,이런,”
너무나도 끔찍스런 광경에 나는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었다.그때 세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괴물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괴물은 의외로 나름대로 좋은 인상을 주려는 듯 내게 미소를 지어보냈지만 나의 등골에는 소름만 좍 돋았다.
“주인님을 괴롭게 한 녀석들을 모조리 해치웠습니다.”
“주,주인님이라고?”
하얗게 얼굴이 질려버린 내앞에 괴물은 순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아수라입니다.”
“어, 이런 낭패가……”
나도 모르게 그때 뛰어나온 그말은 나의 솔직한 심정 그대로였다. 또다시 隧(수)라는 한자가 새겨진 은테위에서 불꽃이 번쩍거렸다. 아마라의 자리에는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아마라를 만나기 위해서 가출했는데 정말 이상한 녀석들하고만 마주치고 있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걱정마십시요. 제가 항상 지켜드리겠습니다.”
아수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내 앞에 장승처럼 떡 버티고 섰다.
“그..그럴 필요 없는데……”
“필요없기는요 이 험한 세상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이 무진장 많거든요.헤헤.”
아수라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해해거렸다. 아마라하고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에 나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한 순간 아마라가 가슴 찡하게 보고 싶었다.
“난 갈 곳이 있다. 날 따라오지마라!”
“네. 어차피 그 휴대폰속에 있는데요.”
“젠장,”
나는 화난 표정을 짓고 돌아서려다 다시 돌아섰다.
“아수라, 저기에 신호등에 달려있는 CCTV 는 괜찮을까?”
나는 교통신호등밑에 매달린 채 지금껏 백주대낮에 도로 한 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을 모조리 촬영했을 CCTV를 손으로 가리켰다.
“보면 어때요?너무 완전한 범죄는 재미가 없잖아요?”
“뭐라고? 경찰이 우리를 뒤쫓을텐데.”
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자 아수라는 자기의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제가 항상 주인님을 지켜줄테니까요.”
아수라의 자신감에 오히려 나는 온 가슴이 얼음장처럼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나중에라도 CCTV를 분석한 경찰들은 분명 내 뒤를 계속 쫓을것이고 그때마다 아수라가 지금처럼 나타나 나를 지켜준다는 뜻인데도 나는 그것이 왠지 전혀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수라가 나하고 붙어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아마라가 내 애인이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는 생각에 내 가슴은 무척 답답해졌다.
(왜 아마라는 안 나타나고 엉뚱한 것들만 모여드는 것일까?)
생각과 다른 현실에 괜시리 서글픈 마음이 들면서 나는 아마라의 흔적이라도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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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마침 추적 추적 내리는 차가눈 빗방울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급히 나오느라고 미처 지갑을 챙겨나오지 못한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졸지에 빈털털이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도저히 내가 버린 집으로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당장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이엄청난 일로 다가왔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도움을 청할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은 어느새 애인찾기 로 바뀌어져 있었다.그때 내 시선이 휴대폰의 렌즈에 머물렀다. 그리고 무엇인가 작은 불빛이 번쩍였다.
“……?”
잠시후 가랑비속을 뚫고 누군가가 급히 내쪽으로 달려왔다.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비오는 날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검은 색 정장차림이었고 검은 색 중절모까지 쓰고 있었다.
몹시 깡마른 남자는 검은 색 007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주저없이 내앞으로 달려왔다.하지만 나는 낯설은 남자라 무심코 길을 비켜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 앞에 우뚝 섰다.그리고는 무작정 007 가방을 내게 내밀었다.
“늦었습니다. 이거 받으십시요!”
“당, 당신 누구요?”
당황스러우ㅓ하는 나에게 젊은 남자는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007가방을 살짝 열어 내게 보이며 조용히 말했다.
“아마라를 만나기위해서 주인님이 지금 제일 필요하신 돈입니다.”
007가방의 틈 사이로 새파란 만원 짜리 지폐 뭉치가 가득 담겨진 것을 보고 내가 다시 놀라자 젊은 남자는 자부심이 강한 미소를 짓는다.
“도대체 당, 당신은 누구요?”
“전 돈노입니다. 저곳에 살고 있죠.”
돈노는 손가락으로 餓(아)라는 한자가 쓰여진 내 휴대폰의 3번 를 가리켰다.
“그럼 너도 아마라의 형제?”
내가 매우 놀라며 돈노위의 아래를 흝어보자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007가방을 슬그머니 안겨준다.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죠.”
엉겁결에 엄청난 돈을 떠안은 나는 적지않게 당황하여 007가방을 다시 돈노에게 되돌려주려고 하였다.그러나 그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007가방을 뿌리쳤다.
그때였다.30미터 전방의 교차로에서 50대의 대머리 남자가 경찰 두 명을 대동하고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멀리서도 매우 초조하게 보이는 대머리는 나와 돈노를 발견하더니 갑자기 고함을 치며 정신없이 달려왔다.정복차림의 두 명의 경찰도 갑자기 호각을 불어대며 뛰어왔다.급기야는 권총까지 빼어들고 우리쪽을 겨냥했다.
“저 사람들이 왜그래?”
영문을 모르는 나는 주변에 무슨 강도 사건이라도 났나 하는 표정을 두리번거렸다.주변에는 나와 돈노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경찰을 돌아보는데 왠지 긴장한 듯한 돈노의 시선과 맞부딪쳤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순간 총알처럼 달려온 경찰 두 명은 우리를 향하여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꼼짝마라!”
영문을 몰라 내가 어리둥절하고 헉헉거리며 뒤따라온 대머리 남자는 007가방에 달려들었다.
“아이구, 내 돈!”
안도와 기쁨으로 눈물까지 질질 흘리는 대머리를 보고 이내 사태의 전말을 파악한 나는 옆에 있는 돈노로 시선을 돌렸다.
아쁠싸!
그런데 거기 있어야 할 돈노가 보이지 않았다.나는 크게 당황하여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자 이미 007 가방을 나꾸어챈 대머리는 성난 표정으로 다짜고짜 나의 따귀를 세게 갈겼다.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했다.
“이런, 날강도! 감히 내 돈을 훔쳐가?”
“이거 왜그래요?”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또다시 내게 따귀를 날리려는 대머리의 손목을 나꾸어채 잡아 비틀었다. 내게 손목을 잡혀버린 대머리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고래 고래 소리쳤다.
“피같은 남의 돈을 강도질한 놈은 죽어도 싸!”
“난 당신을 훔친 적이 없어!”
“그럼 네 놈이 갖고있던 이 돈가방은 도대체 뭐야!”
“그건 돈노라는 자가……”
결벽을 강력히 주장하던 나는 그만 말이 막히고 말았다. 돈가방을 들고와 내게 안겨주고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돈노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놈 짓이 아니라면 왜 이 돈가방이 네 손에 있었냐고?”
“하여간 난 그 돈가방과 상관없어!”
‘이런, 파렴치한 놈!”
간신히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 대머리는 그때까지도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을 돌아보며 쏘아부쳤다
“뭣들해요? 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지않고!”
“당신을 강도현행범으로 체포한다!”
건장한 체격의 경찰 한 명이 수갑을 꺼내들고 나에게 달려와 능숙하게 나의 양손에 수갑을 채워버리고 말았다.차갑고 단단한 수갑에 채워진 나는 길길이 날뛰며 반항했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구!”
나의 격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막무가내로 나를 경찰서로 끌고가려 했다.이대로 끌려가면 끝장이다는 생각에 나는 한 가지 꾀를 재빨리 생각해냈다.
“잠깐, 하자는 대로 할 테니 집에 잠깐 전화좀 하게 해주시요!”
내가 얌전하게 죄를 인정한다는 말에 경찰들은 혹했는지 순순히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경찰은 내 주머니에서휴대폰을 꺼내고는 나를 흘끔 쳐다본다.
“……!”
그러나 집전화 번호를 달라는 경찰관의 재촉을 무시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문 나는 휴대폰의 렌즈를 노려보았다.나를 궁지에 빠뜨린 돈노를 다시 부르고 싶었다.돈노가 나타나면 이 황당한 상황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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