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상쩍은 머뭇거림에 향귀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져 갔다.
“너도 알다싶이 선택의 횟수를 세는 것은 항상 밤 12시 까지이지. 그런데 돈노가 저녁 11시에 할 일을 미리 예약해놨어. 자 봐라!”
내가 향귀에게 내민 휴대폰의 액정에는 정말 돈노가 밤 11시에 K재벌의 금고를 터는 일이 예약되어 있었다.
“이런, 젠장,”
향귀는 돈노의 예약을 보자 불같이 화를 뛰며 발광을 했다.그렇지만 내 말에는 틑린 데가 없기에 나한테 눈을 한번 흘기고는 올때처럼 바람같이 사라져 갔다.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안도를 하고 희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이후 차례로 나는 돈노와 아수라의 방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똑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지배자 선정 요구를 교묘히 물리쳤다. 역시 이승의 조언은 상상이외로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예전처럼 향귀 돈노 아수라를 교묘히 조정해서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그들도 나에 대해 불만은 있었지만 서로를 의식해 잘보이기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단지 나는 절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극도로 조심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무난하게 넘어가던 어느 날 오후 , 커튼 사이로 창밖을 내려다보던 나는 갑자기 나의 두 눈을 의심했다.그리고 가슴속에 커다란 불길이 솟아서 심하게 데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넓은 정원의 바위앞에서 아마라가 이승과 뭔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이야기 도중 아마라는 뭔가 초조한 표정으로 내 창문쪽을 자주 바라보곤 했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승이 자꾸 도리질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한걸음에 뛰쳐나가려 했으나 잠시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 있다 이승이 아마라를 내쪽으로 데리고 올 테니까.
나는 완전히 잊고 산 줄만 알았는데 다시 아마라를 보자 그리움과 반가움이 이토록 강하게 살아날 줄은 정말 몰랐다. 새삼스런 감정에 나는 적잖이 당황해하면서도 잠시후 이승이 그녀를 데리고 오면 어찌 맞이할까 마음속으로 분주히 궁리했다.
“……!”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현관문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아직도 정원에 있나 싶어 창밖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아마라를 처음 발견했을 때 즉시로 뛰어나가 맞이하지 않은 내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며 나는 그녀를 찾아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마라!”
나는 체면가리지 않고 목청컷 아마라를 불렀으나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왔다.
이윽고 뒷산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마악 올라가고 있을 때 나는 이승을 먼 발치에서 발견했다. 그런데 그뒤에는 아수라 향귀 그리고 돈노가 씩씩거리며 쫓아가고 있었다.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오솔길 끝무렵에 있는 허름한 창고였다.
이승은 아수라에게 손가락으로 창고를 조용히 가리켰다. 그러자 아수라와 향귀 돈노가 황급히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다.그 와 동시에 이승은 부리나게 창고앞을 떠났다.
“뭔가 수상한테.”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정신없이 오솔길을 내려가는 이승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손에는 큼직한 박달나무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주,주인님,”
이승은 난데없는 나의 출현에 기겁을 했다.
“오늘 나를 찾는 손님이 없었더냐?”
“없,없었 는데요.”
이승은 금방 냉정을 되찾아 태연히 둘러댔다.
“그럼 저 창고에는 누가 있는 것이냐?”
“창고요?”
내가 사나운 눈빛으로 창고에 관해 묻자 이승은 정말 사색이 되고 말았다.그는 교활하기는 했어도 한편 소심한 겁쟁이었다.나는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이승을 윽박질렀다.
“혹시 나를 찾아온 손님을 그곳에 가둔 것이 아니냐?”
“가둔 것은 아니고 잠시 그곳에서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뭣 때문에 그런 무례한 짓을 했느냐?”
‘”아, 아수라가 먼저 보고 싶어해서요.”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 숨김없이 모두 말해. 안그러면 너를 여기서 아주 요절을 내버릴 것이다!”
“아수라는 그 손님이 지배자가 되는 비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법을?”
나는 비로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아마라가 지배자가 되기 위한 비법을 들고 나를 찾아오다가 그만 꾀임에 빠져 아수라에게 넘겨져 버린 것이었다. 그때 나의 불길한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창고쪽에서 애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기적인 놈, 내 나중에 너를 반드시 처벌발 것이다.”
나는 이를 갈며 이승에게 내뱉고는 급히 창고쪽으로 달려갔다.
“위험해요. 주인님,가지마요!”
나는 정말 전광석화처럼 창고에 도착해서는 힘차게 박달나무로 창고문을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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