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 눈에 띈 것은 아마라의 고운 자태가 아니라 또다른 정복 경찰관이었다.거리 순찰을 하던 경찰은 불안한 표정으로 007 가방을 들고 있는 나를 수상히 여기고 내게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이런,”
나를 검거하기 위해 다가오는 경찰의 냄새를 맡고 아수라가 금방 사나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봐 나는 정신없이 내달려 그들과 조금 멀어졌다. 그러나 나의 염원과는 달리 또다시 아수라가 바람같이 나타나 경찰관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뿔싸!”
나는 그저 탄식만 내뱉었을 뿐 골목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현장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걱정마세요! 저놈들은 내가 처리했으니까요,”
내가 귀를 틀어막고 공포에 벌벌 떨고 있을 때 피범벅이 된 아수라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 죽였나?”
“네. 하두 반항을 심하게 해서……”
그러나 나는 아수라가 처음부터 그들을 죽일 작정이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경찰관의 머리통 하나를 들고 서있는 아수라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는 순간 감히 그를 혼 낼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향귀, 돈노 그리고 아수라는 나를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모두 열명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했는데 나머지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향귀, 돈노 아수라가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처음에는 그토록 싫고 징그럽던 그들이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겉보습과는 달리 나에 대해서만큼은 순수한 마음으로 복종을 했기 때문이었다.돈노가 은행에서 집어오는 돈으로 나는 풍족한 생확을 누릴 수 있었고 나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뒤를 밟는 형사가 있으면 아수라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버렸다.또한 향귀는 나의 요염한 여자로서 나의 객고를 달래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탈바꿈 하는 것처럼 보였다.어느덧 자만해진 나의 마음속에서는 아마라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나는 전원생활을 즐기위해서 교외에 저택을 구입하였다.그리고 새로 인수한 사업체와 집안살림을 맡기기 위해서 휴대폰에서 집사로 쓸만한 자를 불러냈다.그의 이름은 이승이었다.그의 지혜은 워낙 뛰어나서 돈주고 변호사를 따로 고용할 필요없을 정도였다.어느날 밤 나는 그를 은밀히 불렀다.
“내가 요즘 고민이 있는데 네가 도와주어야 하겠다.”
“말씀만 하시죠.”
이승은 총명함이 가득 넘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늘 날 내가 향귀 돈노 아수라의 도움을 받아 지금 이렇게 번창하고 있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그건 전부 공짜가 아니잖니?”
“그 말씀은……”
“조만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 들 중 한 명을 지배자를 뽑아주어야 한다.그런데,”
“주인님은 그들 중 아무도 지배자로 뽑기 싫으신 거죠?”
조금은 경박해보이지만 정확한 눈썰미를 가진 이승은 이미 내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쉿!”
나는 깜짝 놀란 척 하며 이승의 말을 제지했다.
“꼭 싫다기보다는 아무래도 한 쪽으로 힘이 기울면…….”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셋중 누구라도 하나를 선택하면 아무래도 나머지 둘의 영화를 포기해야겠지요.”
새삼스럽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이승의 직관력이 무서워서 차마 그의 시선을 똑바로 볼 수 없어 나는 창밖의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희들도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세계에서는 셋중 누구라도 주인님의 선택을 받아 지배자가 되면 우리들 모두를 숙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래?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나도 모르게 반색을 하며 나는 이승을 재촉했다.
“그럼 이렇게 하십시요.”
이승이 작은 입을 내귀에 갖다대며 빠르게 소곤거렸다.


다음날 오후 염려하던 대로 향귀가 약간 뿔난 표정을 짓고 내앞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그녀는 내게 다가와 가벼운 키스를 해주고는 곧바로 결론부터 꺼냈다.
“이제 지배자가 되어도 좋겠지요?”
“지, 지배자?”
“당신에게 가장 많이 선택받는자가 우리들 형제자매의 지배자가 되는 것 잊지 않으셨죠?”
“잊을 리가 없지.”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미소지었다.
“어디보자, 나에게 누가 제일 많이 봉사했는지 볼까?”
“볼것도 없죠. 밤마다 당신을 녹여준 게 누군데요?”:
향귀는 자신감과 애교를 섞여가며 대답한다.
“정말 그렇군. 향귀21회, 돈노 20회, 아수라20회 “
“그럼 이제 내가 저들의 왕이 되는 거죠?”
향귀는 너무나도 기쁜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잠깐, 아직 아냐?”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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