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번호를 말해!”
나를 완전히 현행범 취급하는 듯 경찰의 말투가 완전히 반말투로 변했다.돈가방을 움켜쥐고 있는 대머리와 마찬가지로 나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내려보는 경찰관 녀석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집사람 번호는…….”
싫다고 뛰쳐나온 아내에게 꼭 전화를 해야되나 하는 난감함때문에 전화번호가 입에서 잘 안나왔다. 그때였다.
“엇?”
나를 윽박지르던 경찰관앞에 홀연히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푸른 빛의 괴물이었다.마치 도깨비의 형상을 한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과 비수와 같은 손톱을 번쩍이고 있었다.
자신 앞에 갑자기 이상한 괴물이 소리없이 나타나자 경찰관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도 혼비백산하여 본능적으로 괴물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그러나 괴물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화염이 그보다 더 빨리 경찰을 덮쳤다.엄청난 열을 내뿜는 화염은 삽시간에 그 경찰관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 화염은 곧바로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다른 경찰관에게도 번져갔다. 그 역시 순식간에 하얀 재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으악!”
그 처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대머리는 괴물이 자신을 돌아보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도망쳤다.그러나 그 자도 괴물의 화염 공격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그역시 등뒤로 폭포수처럼 날아간 화염속에서 한 줌의 재로 타 버리고 말았다.그 한 줌의 재마저도 마침 지나가던 트럭이 일으킨 바람에 의하여 허공으로 흝어져 버렸다.
“이,이런,”
너무나도 끔찍스런 광경에 나는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었다.그때 세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괴물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괴물은 의외로 나름대로 좋은 인상을 주려는 듯 내게 미소를 지어보냈지만 나의 등골에는 소름만 좍 돋았다.
“주인님을 괴롭게 한 녀석들을 모조리 해치웠습니다.”
“주,주인님이라고?”
하얗게 얼굴이 질려버린 내앞에 괴물은 순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아수라입니다.”
“어, 이런 낭패가……”
나도 모르게 그때 뛰어나온 그말은 나의 솔직한 심정 그대로였다. 또다시 隧(수)라는 한자가 새겨진 은테위에서 불꽃이 번쩍거렸다. 아마라의 자리에는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아마라를 만나기 위해서 가출했는데 정말 이상한 녀석들하고만 마주치고 있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걱정마십시요. 제가 항상 지켜드리겠습니다.”
아수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내 앞에 장승처럼 떡 버티고 섰다.
“그..그럴 필요 없는데……”
“필요없기는요 이 험한 세상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이 무진장 많거든요.헤헤.”
아수라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해해거렸다. 아마라하고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에 나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한 순간 아마라가 가슴 찡하게 보고 싶었다.
“난 갈 곳이 있다. 날 따라오지마라!”
“네. 어차피 그 휴대폰속에 있는데요.”
“젠장,”
나는 화난 표정을 짓고 돌아서려다 다시 돌아섰다.
“아수라, 저기에 신호등에 달려있는 CCTV 는 괜찮을까?”
나는 교통신호등밑에 매달린 채 지금껏 백주대낮에 도로 한 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을 모조리 촬영했을 CCTV를 손으로 가리켰다.
“보면 어때요?너무 완전한 범죄는 재미가 없잖아요?”
“뭐라고? 경찰이 우리를 뒤쫓을텐데.”
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자 아수라는 자기의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제가 항상 주인님을 지켜줄테니까요.”
아수라의 자신감에 오히려 나는 온 가슴이 얼음장처럼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나중에라도 CCTV를 분석한 경찰들은 분명 내 뒤를 계속 쫓을것이고 그때마다 아수라가 지금처럼 나타나 나를 지켜준다는 뜻인데도 나는 그것이 왠지 전혀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수라가 나하고 붙어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아마라가 내 애인이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는 생각에 내 가슴은 무척 답답해졌다.
(왜 아마라는 안 나타나고 엉뚱한 것들만 모여드는 것일까?)
생각과 다른 현실에 괜시리 서글픈 마음이 들면서 나는 아마라의 흔적이라도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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