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그런데 절대위기의 순간에 지수가 뜻밖으로 다급하게 소리쳤다.그의 절규을 기다렸다는 듯 카운트다운도 즉시 멈췄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한순간 죽음을 각오했던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독한 것, 내가 졌다.”
고통스럽게 내뱉는 지수의 얼굴에 진땀이 흘러내렸다.반면 황박사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가득 피어올라왔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매우 핼쑥해진 소유천이 지수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너도 죽기는 싫었나보군.”
소유천의 핀잔에 지수는 이를 악물며 소유천을 노려본다.
“나 혼자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무고한 시민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수 백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치킨 게임을 하다니……사악한 놈!”
“결국 숭리하는 자가 정의라는 것을 몰랐느냐! 잔소리 말고 어서 나를 풀어줘!”
소유천은 한 시라도 빨리 그물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했다.지수는 한숨을 내쉬며 공노인을 돌아다보았다.곤혹스런 스런 표정을 짓던 공노인도 결국은 고개를 끄떡였다.공노인의 최종적인 결정에 소유천을 풀어줘야 할 채연은 내키지 않는 듯 울먹였다.
“그래도……이 것을 풀어주면……더 큰 일이……생길……”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공노인은 채연의 어깨를 다둑이며 달랬다.
“사부님,”
채연이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지수가 다가가서 그물을 대신 쥐었다.그리고는 소유천을 단단히 묶어놓았던 봉인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그때 중앙통제실 벽에 있던 엘리베이터 1호기가 열리면서 한 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와 그를 막아섰다.맞은 편에 있는 2호기의 문도 열리면서 거기에서도 한 떼의 사람들이 밀물처럼 달려나왔다. 오랫동안 햇볕을 못보았는지 얼굴색이 매우 파리하고 노랗게 뜬 그들은 각각 총 혹은 칼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그들의 걸음걸이는 모두 환자처럼 비척거렸다. 그들은 지수에게 곧장 달려와 에워싸더니 총을 겨누었다. 무리들의 앞에서 서있던 한 중년남자가 사납게 소리쳤다.
“소유천을 풀어주지 마라!”
뜻밖의 요구에 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는 타화자재천국(他化自在天國)에서 온 사람들이요.”
“타화자재천국?”
타화자재천국이라는 것이 황박사가 만든 가상의 감옥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지수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중년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정화 역시 크게 놀란다.
“아빠!”
전혀 예상치않은 상황에서 아버지를 만난 것에 대해서 매우 놀란 듯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유동인도 곧바로 정화를 발견하고는 어색한 반응을 보인다.
“아빠, 무사하셨군요.그런데 여기서 뭐하시는 거죠?”
“우리는 타화자재천국을 지키러왔다.”
유동인은 딸을 만난 반가움은 금방 삼켜버린듯 결연하게 대꾸했다.
“타화자재천국을 지킨다고요?”
정화는 유동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그러자 유동인은 매우 초조한 듯이 다시 지수를 향해 무섭게 고함을 쳤다.
“혹시라도 소유천을 풀어주면 네 머리통은 날아갈 줄 알아!”
그의 총은 여차하면 발포할 기세였다.기겁을 한 지수가 그물을 내려놓고 두 손을 번쩍 든 채 뒤로 물러섰다.
“너희들은 왜 거기서 소란이야?”
황박사는 난데없이 나타나 이상한 요구를 하는 무리들을 향해 대뜸 목소리를 높혔다. 한동인은 스크린의 황박사를 향해 가법게 목례를 했다.그러나 표정만큼은 그리 순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제국을 지키러 왔소.”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야!”
황박사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진하게 스쳐갔다.
“타화자재천국을 세운 우리 1%위원회는 타화자재천국을 온 세상에 세우려는 황박사의 계획에 결사반대하오.”
“결사반대?”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황박사의 얼굴이 곧 심하게 이그러졌다.
“그렇소.”
“나의 계획은 온 세상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려는 것이다.”
“그것은 허울좋은 핑계일 뿐 진짜 목적은 소유천의 지배욕망을 채워주려는 것이 아닙니까?”
유동인의 느닷없는 폭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술렁거렸다.그리고 그것은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자기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으로 변해갔다.그러나 황박사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되받아쳤다.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처럼 지껄이구는구나.하지만 너희들도 네 놈의 욕심을 지키기위해서 그러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황박사의 호통에 한동인을 비롯한 무리들이 한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곧 유동인은 반격에 나섰다.
“맞소.우리1%위원회는 우리들의 제국을 다른 사람들하고 나누어가질 수 없다고 수없이 주장해왔건만 당신은 그것을 무시했소. 그래서 마침내 우리가 일어난 것이요!”
“어리석은 자들, 겨우 그딴 이유로 나에게 반기를 들어?”
“우리를 탓하지 마시요! 우리를 욕망중독자로 만든 것은 바로 당신이니까.”
한동인의 항변에 황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것들! 그렇다고 소유천을 적의 손에 죽게 놔두자는 말이냐?”
“이제는 소유천이 없어도 우리 1%위원회만으로도 타화자재천국을 움직일 수 있소.”
“허,”
다시금 황박사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그들의 말이 완전히 허언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소유천이 1%위원회가 제공한 뇌에 바탕을 두고 타화자재천국을 세웠지만, 이제는 1%위원회의 위원들이 서로 연대하면서 자체적인 능력과 힘을 키워온 것이 분명했다.그것은 이제 소유천이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비열한 놈들!소유천이 어려움에 빠지자 반기를 들다니!망할 놈들!”
황박사는 믿고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그리고는 유동인 일행을 하릴없이 무섭게 노려보더니 갑자기 썩소를 짓는다.
“그런다고 지수 저놈이 너희들의 제국을 용납해줄 것 같으냐!”
황박사가 비아냥거리자 한동인은 비장한 표정으로 지수에게 돌아섰다.
“네가 지금 소유천을 풀어주면 온 세상은 소유천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비록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며 살게 되겠지만 그대신 자신들의 인생은 몽땅 소유천에게 헌납해야되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환상의 세계를 원하지 않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잖은가?”
“……”
갑갑하고 고통스런 침묵이 이어졌다.유동인은 지수의 침묵을 깨트렸다.
“그렇다면 그런 인생은 우리들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어떤가?”
“당신들의 독점을 인정해달라는 말이요?”
“그렇지.”
“정말 대책없는 욕망의 덩어리이시군.”
“우리를 욕해도 할 수 없다.자, 어떻게 할 것이냐?모두 소유천의 노예가 되어 살것이냐 아니면 우리의 독점을 인정해주고 그나마 자유롭게 살텐가?”
말을 마친 한동인은 지수와 주변 사람들의 표정변화를 매섭게 흝어본다. 지수와 공노인이 고심하는 표정을 짓자 황박사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끼어들었다.
“한동인, 내가 세상에 타화자재천국을 세우더라도 너희들의 독점적 지위는 인정해주마!”
“우리는 개나 소나 모두 즐기는 욕망은 싫소이다.
진정한행복은 소수만이 즐길 때 생기는 법이요!”
“정말 지독한 병에 걸렸어!미친 놈들!”
자신의 제안이 한동인에 의해 단칼에 거부당하자 황박사는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지수도 한동인의 무서운 탐욕에 몸서리를 쳤으나 어찌됐든 결단을 내려야 했기에 공노인과 채연을 향해 돌아섰다.공노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수가 없구나.”
“그렇죠?”
지수가 자신의 속내도 그렇다는 듯 되묻자 채연은 그물을 움켜쥐며 대꾸했다.
“난 소유천만 잡으면 돼.”
채연의 말을 듣은 지수는 결심을 한 듯 한동인을 향해 돌아섰다.
“좋소. 서로 윈윈(Win-Win)합시다. 당신들의 독점을 인정해겠소.”
“좋아.”
“단 타화자재천국을 더 이상 확장할 생각을 마시요.”
“걱정하지마. 그건 우리가 더 원하는 바이니까.”
“그럼 당장 핵원자로를 정상으로 돌려놓아요.”
“알았다.”
한동인은 협상 타결이 매우 마음에 든 듯 자신들의 무리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자, 보시다싶이 우리들의 제국을 인정받았소. 자 빨리 핵원자로를 정상으로 돌려놓습시다!”
“알았소!”
무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그들이 곧바로 코브라의 핵원자로를 조정하기 위해서 정신집중을 하자 소유천은 발악을 하듯 소리쳤다.
“안돼!”
하지만 한동인의 무리들은 아랑곳없이 핵원자로의 카운트다운을 해제시키기 시작했다.스크린에서 카운트다운 숫자가 전히 사라지자 통제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채연은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아내며 그물속에서 발버둥치는 소유천을 바라보며 지수에게 물었다.
“자, 이제 소유천을 어떻게 처리하지?”
“글쎄,”
지수도 어떻게 해야할 지 결정을 못 내린 듯 했다. 잠시 이리 저리 궁리를 하다기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할 수 없어. 소유천을 내 아라마식에 가두어 두는 수 밖에……”
“뭐라고? 그건 위험해!”
채연은 화들짝 놀라며 만류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 수 밖에 없어.나좀 도와줘.”
“하지만 소유천이 혹시 예전처럼 너의 뇌를 다시 장악이라도 하면 어떡해?”
“아마라식에서는 소유천도 꼼짝 못해. 어차피 나는 소유천과 어려서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지.”
말을 마친 지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꼭 그래야겠어?”
“그 방법밖에 없어. 걱정마, 이번에는 내가 소유천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으니까.”
지수는 자신있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채연을 향해 두 손을 벌렸다.내키지않는지 잠시 주저하던 채연은 이윽고 황금그물을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지수의 양 손을 잡고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채연의 머리위에서 푸른 빛이 한 줄기 뿜어나오더니 지수의 머리위로 날아갔다.그 푸른 빛이 지수의 머리위에서 잠시 머무르자 그것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지수의 머리위에서도 푸른 빛이 슬슬 뿜어나오기 시작했다.그것은 지수의 모양을 닮은 아마라였다.
땅으로 내려선 푸른 빛의 형상은 곧장 소유천이 갇혀있는 황금그물로 날 듯이 걸어갔다.그리고는 기겁을 하는 소유천을 한 손으로 움켜 잡고는 공중으로 비상을 했다.그리고는 지수의 머리위로 다시 날아가 빠르게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안돼!”
푸른 빛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소유천은 단발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침내 소유천이 푸른 빛의 소용돌이속으로 빨려들었는가 싶은 순간에 푸른 빛은 지수의 머리속으로 번개처럼 사라져버렸다.동시에 소유천이 허리에 차고있던 호리병들만 땅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괜찮아?”
채연은 소유천을 뇌속으로 받아들인 지수가 매우 걱정된다는 듯이 묻자 지수는 고개를 약간 좌우로 흔들며 씨익 웃었다.
“응.공허했던 머리속이 꽉 찬 느낌이야.”
“다행이야.”
“이제 소유천은 내 의지로 조정할 수 있어.”
“그래도 조심해. 언제 말썽을 부릴지 모르니까.”
“걱정마,이제는 옛날의 내가 아니니까.”
“어?”
지수의 장담에도 자못 걱정된다는 빛으로 쳐다보던 채연의 얼굴빛이 갑자기 환해졌다.땅바닥에 떨어졌던 소유천의 호리병에서 빠져나온 지월이 장용사 그리고 종주 등을 이끌고 그녀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지월은 제일먼저 지수에게 다가와 덥썩 그의 손을 쥐었다.
“결국 네가 모두를 구해냈구나.”
“아닙니다.저의 생각을 믿어주고 따라준 용감한 아마라들이 해낸 일입니다.”
지월의 칭찬에 지수는 오히려 깊이 고개숙여 아마라의 왕인 지월에게 감사를 표했다.그 사이 채연도 눈물을 글썽이며 종주에게 달려가 그를 와락 껴안았다.
“오빠, 무사해서 다행이야.”
“너도 무사했구나.”
종주는 채연을 다둑거려주고는 감회에 찬 시선으로 지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동안 너의 진심을 몰라서 미안했다.”
“그럴 만 했죠.”
종주가 내민 손을 겸연쩍게 웃으며 잡아주던 지수는 영산수호회 멤버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날듯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때까지도 레이저 총을 들고 서성이고 있는 정화에게 다가가서는짓궂게 농담을 던졌다.
“다들 마법이 풀렸는데 너만 아직도 나를 적으로 여기는 거야?”
“적이라고? 내가 언제 너에게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어?”
오히려 되물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화는 아직도 자기가 왜 레이저 총을 들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냥 해본 농담이야.”
지수가 별 일 아니라며 정화를 안심시키며 웃자 공노인은 가슴 벅찬 표정으로 지수을 덥썩 안으면서 말했다
“내가 평생 하지못했던 일을 네가 해냈구나.”
지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공노인에게 대답했다.”
“사부님은 저를 아마라궁으로 보내주셨어요. 정말 큰일을 하신 거예요.”
“그렇게라도 생각해주니 고맙다. 사람들이 또다시 소유천에게 뇌를 도둑맞는 일이 없어야할텐데.”
“앞으로는 절대 그럴 일 없겠지요.참, 이제 황박사를 잡아야겠습니다.”
지수가 스크린속의 황박사를 바라보며 말하자 종주가 지수의 어깨를 툭 쳤다.
“걱정마. 군사들을 풀어 반드시 잡아낼테니까.”
“황박사는 소유천을 만든 위험한 사람입니다.또 같은 음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꼭 잡아야 합니다.”
지수는 여전히 걱정스런 빛으로 종주에게 다시 주의를 환기시켰다.
“걱정마라 꼭 잡아낼테니.”
종주는 고개를 숙여 대답하고는 군사들을 이끌고 황박사가 숨어있을 곳을 찾아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