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왕대는 시내에 나타나지 않았다. 왕대는 사라질 때에도 처음과 같이 숱한 화제를 뿌리며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튼 수 십명의 사상자를 낸 호랑이가 사라지자 도시는 외면적으로나마 활기를 되찾았다. 밤거리는 다시 밝아졌고 사람들의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곧 감지되었다. 얼핏 보아 도시는 들뜬 것 같았으나 사실은 푹 가라앉아 보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에게서조차 무엇가 빠져 있는 것처럼 활력이 없어 보였다.사람들은 카페나 호프집에서 모이기만 왕대를 안주삼아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참 사람마음이라는 게 간사해 .”
“뭐가?”
“글세, 그 놈의 호랑이가 온 시내를 휘집고 다닐 때에는 제발 그 녀석이 없어지기만을 간절히 빌었는데 막상 녀석이 사라지니까,”
“사라지니까?”
“뭐라고 할까......"
“왜 왕대가 보고싶나 ?”
“좌우지간 이상해.”
“이봐, 정신차려! 놈은 폭군이었어. ”
“그래도 왕대는 이 도시에 요상한 활기를 불어넣었잖아? ”
“자네야말로 요상하군. 폭군을 그리워하다니, ”
“난 녀석을 잡겠다고 쫓아다니던 사람들의 그 빛나는 얼굴빛을 잊을 수가 없는데......”
“하긴 나도 그건 이상했어.”
얼마 후 세호는 창백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를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필요이상으로 흥분한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긴급뉴스입니다. 열흘동안 종적이 묘연하던 호랑이가 다시 거리에 나타나 살상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
(저건.......)
카메라에 잡힌 호랑이는 다름아닌 바로 그 왕대였다. 왕대는 그날 밤 강형사가 레이저 총으로 파괴된 줄로 알았는데 저렇게 살아 다니다니 세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왜 놀랐나 ? ”
갑자기 뒷전에서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날아 왔다. 그가 돌아보니 강형사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문곁에 비딱하게 기대어 서 있다. 그는 어깨죽지에 하얀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강형사는 주머니에서 레이총을 꺼냈다.
“이 총 못 쓰겠더군. 난 이 총만 믿다가 녀석의 밥이 될 뻔 했다네. 이 친구야. ”
“그럴 리가...... ”
“간신히 살아 돌아온 친구보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쯧, ”
강형사는 걸어오더니 피곤한 듯이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그리고는 텔레비젼 뉴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역시 녀석은 불사신이야.”
“강형사, 밑도 끝도 없이 중얼거리지 말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간신히 살아난 사람에게 뭘 더 바래?”
강형사는 그답지 않게 엄살을 떨며 몸을 움츠렸다.그러나 세호는 의혹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
세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이저총을 이리 저리 들여다 본다. 그 사이 강형사는 사냥감을 찾아 어디론가 달려가는 TV속의 왕대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이 햇살처럼 찬란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