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마침 추적 추적 내리는 차가눈 빗방울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급히 나오느라고 미처 지갑을 챙겨나오지 못한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졸지에 빈털털이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도저히 내가 버린 집으로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당장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이엄청난 일로 다가왔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도움을 청할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은 어느새 애인찾기 로 바뀌어져 있었다.그때 내 시선이 휴대폰의 렌즈에 머물렀다. 그리고 무엇인가 작은 불빛이 번쩍였다.
“……?”
잠시후 가랑비속을 뚫고 누군가가 급히 내쪽으로 달려왔다.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비오는 날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검은 색 정장차림이었고 검은 색 중절모까지 쓰고 있었다.
몹시 깡마른 남자는 검은 색 007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주저없이 내앞으로 달려왔다.하지만 나는 낯설은 남자라 무심코 길을 비켜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 앞에 우뚝 섰다.그리고는 무작정 007 가방을 내게 내밀었다.
“늦었습니다. 이거 받으십시요!”
“당, 당신 누구요?”
당황스러우ㅓ하는 나에게 젊은 남자는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007가방을 살짝 열어 내게 보이며 조용히 말했다.
“아마라를 만나기위해서 주인님이 지금 제일 필요하신 돈입니다.”
007가방의 틈 사이로 새파란 만원 짜리 지폐 뭉치가 가득 담겨진 것을 보고 내가 다시 놀라자 젊은 남자는 자부심이 강한 미소를 짓는다.
“도대체 당, 당신은 누구요?”
“전 돈노입니다. 저곳에 살고 있죠.”
돈노는 손가락으로 餓(아)라는 한자가 쓰여진 내 휴대폰의 3번 를 가리켰다.
“그럼 너도 아마라의 형제?”
내가 매우 놀라며 돈노위의 아래를 흝어보자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007가방을 슬그머니 안겨준다.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죠.”
엉겁결에 엄청난 돈을 떠안은 나는 적지않게 당황하여 007가방을 다시 돈노에게 되돌려주려고 하였다.그러나 그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007가방을 뿌리쳤다.
그때였다.30미터 전방의 교차로에서 50대의 대머리 남자가 경찰 두 명을 대동하고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멀리서도 매우 초조하게 보이는 대머리는 나와 돈노를 발견하더니 갑자기 고함을 치며 정신없이 달려왔다.정복차림의 두 명의 경찰도 갑자기 호각을 불어대며 뛰어왔다.급기야는 권총까지 빼어들고 우리쪽을 겨냥했다.
“저 사람들이 왜그래?”
영문을 모르는 나는 주변에 무슨 강도 사건이라도 났나 하는 표정을 두리번거렸다.주변에는 나와 돈노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경찰을 돌아보는데 왠지 긴장한 듯한 돈노의 시선과 맞부딪쳤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순간 총알처럼 달려온 경찰 두 명은 우리를 향하여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꼼짝마라!”
영문을 몰라 내가 어리둥절하고 헉헉거리며 뒤따라온 대머리 남자는 007가방에 달려들었다.
“아이구, 내 돈!”
안도와 기쁨으로 눈물까지 질질 흘리는 대머리를 보고 이내 사태의 전말을 파악한 나는 옆에 있는 돈노로 시선을 돌렸다.
아쁠싸!
그런데 거기 있어야 할 돈노가 보이지 않았다.나는 크게 당황하여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자 이미 007 가방을 나꾸어챈 대머리는 성난 표정으로 다짜고짜 나의 따귀를 세게 갈겼다.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했다.
“이런, 날강도! 감히 내 돈을 훔쳐가?”
“이거 왜그래요?”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또다시 내게 따귀를 날리려는 대머리의 손목을 나꾸어채 잡아 비틀었다. 내게 손목을 잡혀버린 대머리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고래 고래 소리쳤다.
“피같은 남의 돈을 강도질한 놈은 죽어도 싸!”
“난 당신을 훔친 적이 없어!”
“그럼 네 놈이 갖고있던 이 돈가방은 도대체 뭐야!”
“그건 돈노라는 자가……”
결벽을 강력히 주장하던 나는 그만 말이 막히고 말았다. 돈가방을 들고와 내게 안겨주고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돈노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놈 짓이 아니라면 왜 이 돈가방이 네 손에 있었냐고?”
“하여간 난 그 돈가방과 상관없어!”
‘이런, 파렴치한 놈!”
간신히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 대머리는 그때까지도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을 돌아보며 쏘아부쳤다
“뭣들해요? 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지않고!”
“당신을 강도현행범으로 체포한다!”
건장한 체격의 경찰 한 명이 수갑을 꺼내들고 나에게 달려와 능숙하게 나의 양손에 수갑을 채워버리고 말았다.차갑고 단단한 수갑에 채워진 나는 길길이 날뛰며 반항했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구!”
나의 격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막무가내로 나를 경찰서로 끌고가려 했다.이대로 끌려가면 끝장이다는 생각에 나는 한 가지 꾀를 재빨리 생각해냈다.
“잠깐, 하자는 대로 할 테니 집에 잠깐 전화좀 하게 해주시요!”
내가 얌전하게 죄를 인정한다는 말에 경찰들은 혹했는지 순순히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경찰은 내 주머니에서휴대폰을 꺼내고는 나를 흘끔 쳐다본다.
“……!”
그러나 집전화 번호를 달라는 경찰관의 재촉을 무시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문 나는 휴대폰의 렌즈를 노려보았다.나를 궁지에 빠뜨린 돈노를 다시 부르고 싶었다.돈노가 나타나면 이 황당한 상황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