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2029 8 15.

......

운명의 아침 공노인을 비롯한 영산수호회의 모든 멤버들은 GSA에서 밖으로 끌려 나왔다. 어둡고 착잡한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8월의 뜨거운 태양이 녹이고 있는 바깥 세상은 너무나도 화창했다. 공노인 일행은 보안군의 삼엄한 감시속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갖가지 꽃무늬로 장식된 삼라정보탑의 건국식장 안으로 호송되었다.

“……!

 

중앙에 우뚝 자리잡고 있는 코브라는 오색의 색종이들로 휘황찬란하게 치장하고 있어서 건국식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코브라의 주변에는  말끔한 예복으로 갈아입은 수많은 기술요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복잡한 기계들을 부지런히 점검하고 있었다.

 

황박사는 코브라의 정면에 설치해놓은 단상에 앉아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처럼 모든 것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천재인 기술국장은 황박사의 메시지를 수시로 받아 기술요원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하곤 했다.

 

그런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를 이용하여 지수는 진작부터 보안군으로 위장하여 식장안에 침투해 있었다.무장 보안군과 감찰요원의 번뜩이는 감시의 눈빛을 피해 그는 실내의 상황을 익히며 소유천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자신의 앞을 지나쳐가는 두 명의 사내아이를 보다가는 흠칫 놀랐다.

 

“……!

 

 그들은 다름아닌 아수라 군단을 지휘하던 강태풍과 김영훈이었다.두 사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지수는 얼른 고개를 돌려 낯설어진 그들의 시선를 피했다. 지수는 혹시나 싶어서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더니 역시나 유정화의 모습도 멀찌감치 언뜻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찾는 듯 주변사람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정화와 친구들은 예전의 자기처럼 황박사의 비밀감찰요원이 되어 그의 수족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황박사가 결국 친구들의 뇌에까지 여의주를 심어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지수는 가슴이 꽉 막히며 분노가 치솟았다.하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어설프게 충돌하면 안되었기에 지수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위해  얼른 모자를 더 깊숙히 눌러 썼다.

 

“……?

 

그때 출입구쪽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보안군들에 의해 끌려나왔다. 그들은 소유천에 의해서 잡혀온 공노인과 지성, 고래밥 그리고 돈수였다. 공노인의 얼굴이 매우 초췌하게 보였다.

 

(일단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지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유정화를 비롯한 비밀감찰요원들의 번뜩이는 시선때문에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그때 황박사는 공노인을 잠시 가엾다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만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천재인 기술국장의 신호를 받고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생방송용 카메라를 향하여 돌아 앉았다. 정성들여 분장을 한 탓인지 미소를 짓는 황박사의 얼굴이 오늘따라 한결 젊어보였다.

 

“여러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란했던 건국식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되었다

 

“위대한 시민 여러분, 우리들은 그동안 우리 인류는 저 거대한 대우주를 포용하고도 남을 훌륭한 뇌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 사용하지못하고 죽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우리가 가진 이 훌륭한 보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에서 비롯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인류의 문제를 한 순간에 풀어줄 위대한 지도자가 드디어 우리 곁에 메시아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오늘 타화자재천국에 함께 현신(顯身)하실 소유천왕입니다.그분은 우리에게 우리의 뇌를 완벽하게 사용하게끔 인도해주시고 우리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주실 것입니다.

 

 황박사는 이제 노골적으로 소유천을 왕으로 부르고 있었다.

 

“소유천왕 만세!

황박사의 연설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분위기에 도취된 누군가가 선창을 하자 식장의 다른 사람들도열광적으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환호의 도가니속에서 지수는 침착하게 보안군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소유천을 기습할 기회를 노렸다.

 

“소유천왕이 다스리는 타화자재천국에서 새로운 시민으로 살아갈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모두 열심히 일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타화자재천국은소수의 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대다수의 시민들이 희생과 착취를 강요당하고 또한 그것을 합리화 시켜주던 기존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모든 시민이 대통령이 되고 부유한 재벌이 되는 절대 평등의 세계입니다.

황박사의 열변은 점점 정점을 향해 뜨거워져 갔다.

“지금 우리의 지도자 소유천왕은 지금 이 타화자재천국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그분을 자유롭게 해줄 때입니다.

황박사가 사자후하자 감동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광신도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을 했다.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곁에서 지켜보고있던 영산수호회 멤버들은 풀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혹시라도 어떤 뜻있고 용기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황박사에게 최후의 저항이라도 하지않을까 하는 한 가닥 기대를 품었던 그들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는 완전히 절망을 하고 말았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황박사의 부하로서 충실하게 행동하는 유정화와 다른 친구들을 보고는 자신들도 곧 그들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한편 지수는 황박사의 연설이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느끼고 소유천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긴장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그때 무슨 낌새를 챘는지 정화가 갑자기 지수가 서있는 곳으로 서둘러 다가오기 시작했다.그녀는 지수의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순간 숨이 꽉 막힌 지수는 정화의 날카로운 시선이 모자챙밑에 감추어진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뚫고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

그리고 한순간 정화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엿본 지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찬 권총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한창 열변을 토하던 황박사는 모든 메시지를 다 전해주었다고 생각했는지 문득 연설을 멈추고 천재인 기술국장을 향해 서서히 돌아섰다. 그리고는 위엄있는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기술국장, 이제 레이저망을 작동시켜라!

!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대답을 한 천재인 기술국장은 곧바로 식장를 검색하던 모든 요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모두 제 자리를 지키라는 신호였다. 마악 지수의 모자를 벗겨 얼굴을 확인하려던 정화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지수는 기슴을 쓸어내리며 위기의 순간에 때맞춰 정화를 불러들인 천재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

잠시 후 삼라정보탑에서  레이저 빛이 나오더니 시 전역으로 뻗어나갔다.그리고 지상에서 투사되는 다른 빛깔의 레이저들과 만나 서로그물처럼 연결되었다. 이윽고 상공에 거대한 레이저망이 형성되고 그속에서 전기폭풍이서로 뒤엉켜 소용돌이쳤다.

1 여우탑 작동 시작!"

마침내 기술국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첫번째 여우탑이 자기 관할구역에 살고있는 모든 시민의 눈에 여의주와 소유천을 투사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후 그것을 받아들인 시민들의 뇌속에 여의주가 성공적으로 안착이 되고 대환희성까지 세워졌다고 코브라가 선언했다. 비로소 여우탑이 쏘아대는 레이저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간파한 공노인은 같이 있던 아이들에게 황급히 소리쳤다.

“얘들아, 레이저 빛을 보면 소유천에게 순식간에 정복당한다! 모두 눈감아! “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일제히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황박사는 공노인에게 벌컥 화를 냈다.

 

“언제는 환상이라고 비아냥거리더니 이제야 무서움을 깨달은 거구나.명색이 과학자라는 작자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타화자재천국을 거부하다니!

 

그러나 공노인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우리는 끝까지 가상세계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비겁하게 눈을 내리 깔지말고 정면으로 용감하게 대항하시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황박사는 공노인에게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의 분노를 반영이라도 하듯 2여우탑은 똑같은 방식이지만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급기야는 팔달산에 설치한 마지막 2999번째의 여우탑까지 치달았다. 스크린에 비친 팔달산의 중턱을 잔뜩 긴장된 시선으로 노려보던 황박사는 다시 기술요원들을 강하게 독려했다.

 

 “자, 마지막 여우탑이다! 더 이상 실패는 절대 안돼!

절규와 다름없는 황박사의 갈라진 목소리가 식장을 울리자 더욱 긴장한  기술요원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팔달산의 여우탑을 빠르게 원격작동시켰다.

“제 3000번 여우탑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이윽고 코브라의 낭랑한 목소리가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않던 고요한 실내로 흘러나왔다.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팔달산을 비롯한 전 시내의 상공에서 일제히  갖가지의 아름다운 꽃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와아!

“성공이다!

미증유의 건국식을 위해 수많은 날들을 밤낮없이 준비해오고 막상 당일에는 애간장을 태우며 작동을 지켜보던 모든 기술요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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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정보탑을 은밀하게 기어오르는 두 사람.

“……!

 

정보탑의 용두(龍頭)에 화살을 쏘아박고 긴 밧줄을 걸어맨 지수는 황박사가 장악한 수원시를 일초라도 빨리 구해내기위해서  젖먹던힘을 다해 오르고 있었다. 그나마 용의 비늘이 황금색 철갑으로 일정하게 돌출되어 있어서 올라가는 것은 수월했다.

그의 옆에서 채연 역시  스파이더맨처럼 밧줄에 의지한 채 힘겹게 오르고 있다.정보탑 전체가 황금빛 조명으로 비추어지고 있어서 경비병이 그들을 발견하고 언제 총질을 해댈지 몰라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하며 정보탑의 중앙통제실을 향해 오른다

 

황박사를 긴급체포하려던 장시장이 마달수에  의해서 어이없이 살해되고 또한 의사당은 갑자기 밀림으로 변해버리는 기괴한 상황을 목격한 지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었다. 또한 연모의 정을 갖고 있던 정화마저 자신을 배신자로 여기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을 알고는 맥이 풀려 모든 것을 그냥 접고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정화를 그대로 포기하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소유천과 맞서 싸워 정화를 조작된 나쁜 기억에서 구해내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외부에 황박사의 만행을 폭로를 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자칫 수백 만 명의 시민을 일시에 죽게 만들 수도 있어 부득이 포기했다.

 

대신 호랑이굴로 들어가면 뭔가 소유천의 약점을 찾아낼 지도 모른다는 아주 실날 같은 희망을 품고 소유천이 주로 머무르고 있을 정보탑의 중앙통제실로 숨어든 것이었다.

 

“……!

 

이윽고 용두까지 다 올라간 지수는 조심스럽게 창문의 유리창을 다이야몬드 칼로 잘라냈다.높은 고층이라고 안심을 해서 그런지 의외로 창문에는 보안시스템이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천운(天運)이라고 여기며 지수는 잘라진 유리창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땄다.

창고로 쓰이는 듯한 방에 들어선 두 사람은 곧바로 중앙통제실을  향해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였다.그들이 거의 중앙통제실로 접근했을 무렵 갑자기 주변이 어둠침침해졌다.마치 거대한 검은 커튼이 날아와 그들을 덮어버린 듯 했다.

 

 “갑자기 왜 그러지?

 

갑작스런 변화에 지수는 화들짝 놀라며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그때 20여 미터 떨어진 전방에 오렌지 색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그곳에 시선을 집중하니 불빛 너머로 회색 봉고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지수는 후방을 조심스럽게  살피고있는 채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저 차를 살펴보고 올 테니 넌 여기에 꼼짝말고 있어.

 “위험해. 그냥 지나치자!

 “아냐, 뭔가 수상해.

 

 지수는 채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색 차량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가 차량에 거의 다 접근했을 무렵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면서 그의 앞길을 막았던 어둠이 차츰 걷히기 시작했다.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있고 새소리들이 가득찬  화사한 정원이 드러났다.지수는 예상치못한 조화에 놀라음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을 떨었다.

 

되돌아갈 생각으로 뒤돌아섰지만 이상하게도 채연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여기저기 찾아헤매다가 지수는 결국 채연이 찾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정원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

 

주위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극도로 신경을 써가며 정원을 빠져나가는 그의 눈앞에 한폭의 그림처럼 아담한 초가집이 홀연히 나타났다.

초가집 뒷곁에 우거져 있는 대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하아프를 연주하는 듯한 소리가 아련하게 흘러 나왔다. 그리고 황톳빛 마당 한 구석에는 돌로 동그랗게 쌓아 만든 우물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소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곱게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를 메고 연분홍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는 우물속에서 두레박을 올리다가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

 

그런데 소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녀는 아련하게 무척 보고싶었던 정화였다.

 

 “정, 정화?

 

 지수가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을 때 그를 알아본 정화도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곧 반가운 미소를 짓고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왔다.

 

 “아니, 여기서 만나다니!

 

반색을 하는 정화의 갸름한 얼굴이 빛났다.정화의 도툼하고 붉은 입술에서 달디 단 과일을 한 입 깨물은 듯  향기가 가볍게 풍겨나왔다.

 

“난 너를 구해야 하는데……

 

지수는 너무나 뜻밖의 장소에서 정화를 만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을 맺지 못했다.그런그의 모습이 고맙다는 듯 지수를  응시하며 배시시 웃는다.그녀의 웃음을 따라 온 정원의 모든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

지수의 마음에서도  세상의 모든  걱정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소유천에 대한 분노마저도 엷어지고 나중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급기야는 지수의 마음속에서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사랑스런 정화와 정원에서 앉아 담소나 나누며 살고싶다는 이상한 열망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그런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정화는 홍조를 띠우며 지수에게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하얀 작은 손을 내밀었다.대리석같이 매끈한 정화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촉촉했다.정화는 지수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런 필요없어.난 그곳을 탈출했거든.

“정말이야?”

. 그리고 난 이곳에 살아.”

이곳에?”

그래. 골치아픈 세상 다 접어버리고 이제나 저제나 난 자기가 오기를 기다렸어.”

 

정화는 지수에게 살짝 예사롭지않은 눈빛을  흘리고는 수줍게 웃는다.자기라는정화의 호칭이 지수의 심장을 쿵꽝 쿵꽝 뛰놀게 만들었다.순식간에 격정적으로 되어버린 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를 미워하는 줄로 알았는데.”

“아니야.”

정말 고마워.”

그만 저기 우리집으로 들어가서 그동안의 이야기 좀 들려줘.

 

재촉하듯 말을 마친 정화는 그 말을 남기고는 얼른 물동이를 머리에 이었다.머리에 얹은 물동이를 양손으로 잡기위해 정화가 두 손을 올리는 바람에 정화의 깊게 파인 허리선이 더욱 뇌쇄적으로 좌우로 흔들렸다.지수는  정화가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까봐 서둘러 따라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정화는 정갈하게 꾸며진 부엌에서  머리에 이었던  물동이의 물을 커다란 항아리에 붓기 시작했다.

지수가 부엌문 앞에 엉거주춤 서서 안을 살피자 물을 다 채운 정화는 배시시 웃으며 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지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한 척 어둠침침한 부엌으로 들어섰다.

 

“배고프지?

 

정화는 정겹게 묻고는 먹을 것을 찾아 찬장속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더듬었다.

 

왠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수의 눈이 부엌에 익숙해지면서 안에 있던 사물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

 

그중에서도 그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것이 있었다.어둠침침한 부엌을 그나마 밝혀주던 낮은 창가밑의 나무판자위에 나란히 진열되어있는 투명한 호리병들이었다.

대부분 텅 비여 있었는데 첫번째 호리병에는 뭔가 잔뜩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지수는 얼른 호리병으로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개미만큼 작아진 그들은 얼마전 대원품전에서 호리병으로 빨려들어간 지월과 그의 아마라들이었다.

 

“아니 이 자들은……

 

지수가 매우 놀라며 묻자 정화는 흘끔 뒤를 돌아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툭 내뱉는다.

 

“그건 오빠가 사냥한 아마라들이야.

 “오빠가?”

.

 “……!

 

몇 마디의 대화끝에 지수의 눈빛이 서서히 예리해졌지만 정화는 더 이상 지수에게 신경을 안쓰고 밥상을 들고는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지수는 문득 솟구치는 의구심 때문에 방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서리는데 열린 방문사이로  정화가 빼꼼히 내다본다.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지수는 그만 모든 의심을 털어버리고는 강력한 자석앞의 쇠붙이처럼 힘없이 끌려갔다.

 

“......!”

 

은은한 석양빛으로 야릇한 분위기를 달구고 있는 방의 아랫목에는 하얀 이불이 새침하게 놓여 있었다.세상의 모든 풍파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는 듯 조그만 고요한 방안에는 서로 마주보고있는 젊은 청춘 남녀의 설레이는 숨소리만이  점점 크게 차 올라왔다

 

지구상에 정화와 단 둘이만 남겨진 듯한 기분 때문에 지수의 심장은 정화의 자그만한  옷깃소리에도 다시 쿵꽝 쿵꽝 뛰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정화의 손이 지수의 손을 슬그머니 당겨잡았다.그를  치켜보는 정화의 눈이 심상치않게 빛났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자신과영원히 같이 있자는 애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순간 지수는 모든 것을 잊고 정화와 영원히 살기로 결심했다.그런 지수의 뜨거운 눈빛이 전해졌는지 정화는 서서히 자신의 상의를 벗고는 하얀 이불위에 살포시 누웠다. 지수가 나이답지않게 성숙한 정화의 몸위로 타고 올라가 봉긋하게 솟은 붉은 유두에 키스를 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앙칼진 소리가 벽력같이 들려왔다.

 

“정신차려!

 

지수가 깜짝놀라 뒤돌아보니 언제 달려왔는지 채연이 성난 표정으로 나타나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채연은 지수에게 번개같이 달려와 다짜고짜 따귀를 사정없이 올려붙였다.그 바람에 정신을 되찾은 듯 지수는 채연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채연이?

 “하여간 남자들이란……”

 

채연은 지수를 향해 눈을 흘기다가 정화를 향해 돌아서 쏘아부쳤다.

 

이제 정체를 드러내시지?”

 

채연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얼굴을 할켜버릴 듯 노려보자 당혹해하던 정화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고 미모의 낯선 여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당신 누구야?”

 

지수가 놀라움으로 두 눈이 휘둥그래지자 채연은 그의 손을 나꿔어챘다.

 

저것은 소유천이야! 빨리 튀어!”

 

따발총처럼 쏘아부친 채연은 지수의 손을 나꾸어채고는 방문밖으로 뛰쳐나갔다.채연의 손에 이끌려 황토빛 마당에 엎어지듯이 끌려나오던 지수는 싸릿문 대문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왜그래?

 “네 오빠를 구해야지!

 

그 말을 내뱉고는 지수는 말릴 틈도 없이 다시 쏜살같이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부엌으로 뛰어든 지수는 아마라들이 잡혀있는 호리병을 나꿔채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지수의 속셈을 알아채고는 부엌으로 달려온 소유천은 붉은 양산으로 사정없이 그의 손목을 내리쳤다. 비록 붉은 양산은 빗나갔지만 그의 손목에 큰 생채기를 남기고 말았다.지수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사이 소유천은 호리병을 곧바로 챙겨 자신의 허리에 달았다.그리고는 지수에게 다가가 예리한 창끝으로 돌변한 붉은 양산의 끝을 지수의 턱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다니!

 

그리고 소유천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지수의 목줄기를 사정없이  찌르려는 순간 난데없는 화살이 날아와 소유천의 왼쪽 어깨에 꽃혔다.마당에서 채연이 급하게 날린 화살이었다.소유천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어깨죽지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그틈을 타 지수는 다시 호리병을 나꾸어채려고 했으나 그 와중에도 소유천은 잽싸게 몸을 틀어 피해버렸다.

 

“그만 도망쳐!

 

보다못한 채연이 마당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을 쳤다. 그러나 지수는 아마라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소유천의 호리병을 나꿔채려 했다. 그러나 소유천은 이번에도 재빨리 지수의 손길을 피해버렸다.그런데 헛손질을 한 지수의 손은 소유천의 허리에 매달려있던 또다른  호리병을 움켜쥐었다.그리고는 그것을 재빨리 뜯어내 후다닥 마당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 사이 채연은 또다른 화살을 소유천에게 날리며 지수를 엄호해주었다. 소유천은 자신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잠깐 주춤했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뛰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지수에게 호리병 하나를 빼앗긴 소유천은 집요하게 쫓아와 금방 지수와 채연의 등뒤에까지 따라 붙었다.

 

 “호호, 이 타화자재천국에서는 아무도 도망 못간다.

 

소유천의 호언대로 죽기살기로 도망쳐나온 정원에는 정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두 사람이 우왕좌왕하자 소유천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붉은 양산을 긴 창으로 바꾸어 성큼 성큼 다가왔다.하지만 채연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별로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채연은 의미있는 웃음을 짓더니 정원의 화단에 심어져있던2미터 크기의 해바라기를 잡고는 부러질 정도로 세게 당겨버렸다.그 순간 정원의 하늘에서 마른 벼락이 쳤다.그리고 동시에 기세좋게 두 사람의 목을 찌르기 위해서 붉은 창을 치켜들던 소유천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대신 채연은 그들이 처음에 보았던 회색 봉고차에 어느 새 앉아있었다. 또한 지수는 차창밖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그때 허공에서 소유천의 섬뜩한 절규가 메아리처럼 터져나왔다.

 

“이놈들! 뛰어봤자 벼룩이다. 어차피 너희들의 세상은 다 내것이니까!

 “흥, 그 벼룩의 무서움을 톡톡히 보여주마!

 

채연이 형체가 보이지않는 소유천을 향해 사납게 외치자 그때까지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못한 지수가 풀린 눈빛으로 채연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중앙통제실에 들어가기 전에 여우궁의 덫에 걸렸던거야.

 “그래? 넌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소유천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아마라의 눈을 속일수는 없거든.

 “그랬었군.

 “자,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채연은 봉고차에 뛰어내리더니 아직도 긴가민가하고 있는 지수를 재촉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처음 침투했던 창고방을 찾아 긴 복도를 부리나케 뛰어갔다. 비상벨이 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두 사람이 창고방을 겨우 찾아 들어서는 순간 문주변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에 튀었다.

 

“이크, 이건 또 뭐야?

 

두 사람이 놀란 시선으로 주위를 뒤돌아보니 복도에 한떼의 무장 보안군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개미떼처럼 밀려오는 보안군들의 모습을 보고는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지수는 채연에게 창문밖으로 내려진 밧줄을 먼저 타고내려가라고 소리쳤다.채연이 서둘러 창밖으로 사라지자 그도 곧바로 밧줄을 잡고는 창문밖으로 몸을 날렸다.

곧바로 두 사람이 사라진 유리창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쏟아지는 레이저 빔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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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걸 2014-07-0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요!짱 좋아^^
 

 

“뭐라고? 지수를 놓쳐버렸다고!

 

잠시 후 마달수 신임 보안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황박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그는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국장에게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의 비밀을 알고있는 지수가 외부와 접촉하면 큰일이야. 너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빨리 지수를 검거하거라, 알겠나!”

“네.

 

황박사로부터 크게 혼날 줄 알고 미리서 잔뜩 쫄아있던 마달수는 번개처럼 밖으로 튀어나갔다.마달수가 사라지자 황박사는 천재인 기술국장에게 돌아섰다.

 

 “아무래도 불안해. 만일을 대비해 거사를 앞당겨야겠다. 시청은 이미 우리가 장악하고 있으니 됐고 골치아픈 의원나리들을 손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기술국장의 명을 받은 기술국 요원들이 이동용 여우궁 다섯 대를 끌고 시의회 의사당으로 몰려갔다. 의사당은 시청으로부터 대략 3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황박사는 육안으로 여우궁이  그곳에 속속 도착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의사당을 순식간에 포위한 여우궁의 지붕에서 탐조등이 하나 둘씩 솟아나왔다. 탐조등은 의사당의 지붕위를 향해 특이한 레이저 불빛을 쏘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빛줄기는 허공에서 서로 만나 건물을 감싸듯이 밑으로 내려갔다. 강렬한 레이저에 완전히 싸이는 순간 의사당은 아지랑이처럼 흐물흐물거렸다.

그리고는 위에서부터 지우개로 지우듯 의사당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나무와 계곡이 울창한 광활한 밀림이 들어섰다.

 “어흥,

밀림의 모습이 완전히 형성되자 사방에서 갑자기 사자의 포효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거대한 사자들이 떼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뒤를 이어 수 십 마리의 호랑이와 표범 그리고 늑대들 각종 맹수들이 달려 나왔다. 의사당에서 법안처리를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던 의원들은 갑자기 변한 환경에 어리둥절하더니 난데없이 나타난 맹수들을 보고는 기절초풍을 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이리 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사나운 맹수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의원들을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박사는 기술국장을 돌아보며 짐짓 꾸짖듯이 말했다.

“기술국장, 저들에게 왜 총을 주지 않았나?

“저들이 평소에 워낙 싸움 잘하고 투쟁적이어서 저 정도는 다 때려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소리야! 공정한 게임을 해야지. 빨리 무기를 보내주게.

“넷.

머쓱해진 기술장국은 즉각 황박사의 특별한 배려를 기술요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 늪에 빠져있던 지프차로 정신없이 피신하던 의원들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총이야!! 이제 살았어!

그들은 재빨리 각종 총기를 집어들고는 분풀이라도 하듯 달려드는 맹수들을 향해 마구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총의 힘을 맹신한 의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은 필요없다는 듯 각자 가고싶은 데로 하나 둘씩 흩어져 갔다.

 그 틈을 노려 사자와 표범은 의원들을 덮치고 그들의 연약한 다리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 와중에 잔인한 식인종들도 홀연히 나타나 그들에게 독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밀림은 맹수들의 거친 포효소리, 인간의 고기를 뜯어먹으며 환호하는 식인종들의  괴성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이 미친 듯이 쏘아대는 날카로운 총성으로 뒤흔들렸다.

그런 아비규환의 사파리를  멀리서 바라보던 천재인 기술국장은 새삼스럽게 몸서리치며  황박사에게 말했다.

“이제 저들은 죽는 순간까지 생존투쟁을 벌이느라고 황박사를 귀찮게 할 틈이 전혀 없겠군요.

“다 증강현실 덕분이야.

 

황박사가 회한에 찬 시선으로 죽음의 사파리를 바라보며 대꾸할 때 어느 의원이 사파리를 용케 탈출해서 광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나가다 아스팔트 위로 거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맹수에게 물린 듯 

오른쪽 어깨죽지가 끔찍하게 떨어져 나간 그의 몸통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그 광경을 보고 곁에 있던 어느 기술요원이 매우 걱정스런 표정으로 황박사를 돌아보았다.

 

  “박사님, 인간과 가상의 이미지가 너무 격하게 반응을 해서 너무 위험한데 그만 강도(强度)를 낮출까요? "

“안돼 위험하지 않으면 금방 싫증을 내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려고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야.

“알겠습니다.

 

기술요원은 황박사의 깊은 뜻을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었다. 황박사는 다소 그늘이 진 시선으로 천재인 기술국장을 바라본다.

 

, 이제 권력의 심장부는 모두 장악되었고 지수만 잡아들이면 되는데 말이야.”

박사님, 이제 지수녀석은 독안에 든 쥐 신세이니 너무 염려마시고 그냥 소유천을 세상에 내보내죠.

그래.모든 장애물은 완전히 치워졌으니 서두르자.”

 

황박사는 마침내 결단을 내린 듯 천재인 기술국국장에게 확신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천재인도 고개를 끄떡였다.

 

언제 시작할까요?

“815일이 어떨까?

무슨 깊은 뜻이라도?

“1945 815일은 우리 민족이 암울한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번 815일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뇌를 다 사용하지 못했던 무명(無明) 즉 암흑시대에서 벗어나는  아주 거룩한 날이다.

. 아주 좋습니다.

그럼 그날을 목표로 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거라.

. 걱정마십시요.

 

 황박사를 향해 환하게 웃는 천재인의 앞에 새로운 신세계가 활짝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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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군들이 재빨리 지수를 일으켜 호송차에 강제로 태우려고 할 때 난데없이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정문앞에 나타났다채연이었다. 지수를 발견한 그녀는 서슴없이 질풍노도처럼 오토바이를 몰고 보안군들을 향해 돌진해왔다. 보안군들이 깜짝 놀라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좌우로 흩어질 때 지수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보안군의 명치를 주먹으로 느닷없이 강하게 가격했다.

 

 “!”

 

 불의의 공격을 받은 보안군이 땅바닥에 나가떨어지자 지수는 다시 돌려차기로 자신에게 총을 쏘려는 다른 보안군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리고는 때맞춰 자기앞으로 달려온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몸을 날려서 아슬아슬하게 올라탔다.지수가 간발의 차이로  오토바이에 올라 탄 것을 확인한  채연은 곧장 정문밖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저놈들을 잡아라!”

 

 황박사가 길길이 날뛰며 고함을 지르자 정화와 태풍은 즉각 오토바이를 향해  조준사격을 퍼부었다.그러나 채연은 오토바이를 지그재그로 운전하면서 무사히 정문을 빠져나갔다. 정화는 눈앞에서 지수를 나꿔챈 간 것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화가 나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끝까지 쫓아가겠어!”

 

 

 

한편 정신없이 오토바이를 몰며 도주하던  채연은 어느 정도 안전지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자 문득 오토바이를 세웠다. 채연이 운전석에서 내리자 지수는 즉각 운전석에 대신 앉았다. 마음이 급한 지수는 뒤를 흘끔거리며 즉시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채연은 뒤에서 지수의 허리를 꽉 껴안으며 큰 소리로 물었다.

 

아까 그 여자애 정화 맞지요?”

맞아. 그런데 기억을 상실한 것 같아. 예전의 나처럼…….

“황박사가 그 친구에게도 여의주를 심었군요.

그런거 같아.그런데 내가 잡히면 채연은 그냥 연방정부로 달려가라고 했잖아?

내 생명을 구해줬는데 어떻게 그냥 가? 남친을 구해야지.”

남친?”

맞잖아?”

 

 

채연은 뭐가 기분좋은지 환호성을 지르자 지수는 채연의 입을 막으려는지 일부러 오토바이를 지그재그로 몰았다.하지만 채연은 깜짝 놀라며 그의 허리를 더욱 꽉 감았다. 허리가 매우 간지러운 듯 낄낄거리던 지수는 문득 사이드미러를 흘끔 보더니 정색을 했다

 

 “이런, 꼬리가 붙었군!”

 

 지수의 말에 채연도  깜짝 놀란 듯 뒤돌아본다정말 여덟 개의 강렬한 불빛들이 도로를 장악하고는 그들을 향해 바람처럼 질주해오고 있었다.지수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이며 소리쳤다.

 

앞은 내가 맡을 테니 뒤는 네가 맡아!”

오케이!”

 

오토바이가 급격하게 속력을 내자 뒷자리에서 채연은 몸을 뒤틀어 서서히 활을 당겼다. 흔들리는 오토바이이라서 그런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은 추적자들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조금만 속력을 늦춰봐요!”

?”

가깝게 유인해놓고 동시에 해치워야겠어!”

그러다가는 우리가 당해!”

안 그러면 우리가 개죽음 당해요!"

젠장!”

 

지수가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의 속력을 확 줄이니까 갑자기 커진 헤트라이트의 불빛 사이로 험상궂은 보안군의 얼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네 명의 얼굴속에 정화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어느새 채연의 활에 날카로운 화살이 얹혀 있었다.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맨앞의 보안군이 질겁하며 먼저 발포를 했다.

 

레이저 불꽃이 채연의 윗머리카락을 살짝 태우버리는 순간 그녀의 활에서도 화살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조금 전 발포를 했던 보안군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그 바람에 주인을 잃은 오토바이는 이리 저리 흔들리더니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나머지 오토바이를  모조리 넘어뜨리고 말았다.

이제 꼬리를 다 뗐어?”

오케이,”

 

신나게 소리치던 채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당신 옛날 애인이 따라붙었네.”

뭐라고!”

어떡하지?”

 

채연은 곤란한 듯 중얼거렷지만 그녀의 손은 어느새 본능적으로 다시 화살을 활에 재기 시작했다.지수는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보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설마 정말 정화를 쏠 생각은 아니겠지?”

저 여자애의 살벌한 눈빛을 봐! 우리 모두를 죽일 기세야!”

…”

 

 채연의 항변에 지수는 얼른 반박을 못하고  사이드미러속에서 점점 커져가는 정화의 굳은 얼굴만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본다.그 사이에 채연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풍처럼 다가오는 정화를 향해 서서히 활을 겨누었다.그녀가 활을 막 놓으려는 순간 지수는 갑자기 오토바이의 속도를 더 높혀버렸다.그 바람에 휘청거린 채연은 그만 엉뚱한 곳으로 활을 날리고 말았다.

 

 “왜그래?"

 

채연이 짜증스럽게 물자 지수는 큰 소리로 대꾸했다.

 

나도 몰라! 엔진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내가 자기 애인을 쏠까봐 일부런 그런 거지?”

 

채연은 새삼 질투가 난다는 듯 지수의 허리를 세게 꼬집었다.그러나 지수는 딴소리를 한다.

 

 “신소리말고 꽉 잡아. 최고 속도로 달려서 저 얘를 떨어뜨릴테니까!”

 

 지수의 말에 채연이 짐짓 겁난다는 듯 허리를 두 손으로 꽉 휘감자 지수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최고로 높혀 팔달산으로 무섭게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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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떻게 된 거야?

 

지수가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 정화에게 뭔가 물어보려고 다가서자 황박사가 얼른 가로막고 나섰다.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만 여기서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구나!

당신 도대체 정화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수는 새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황박사를 노려본다.

 

네가 산속에서 딴짓을 하길 래 경고대로 했을 뿐이다.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황박사가 지수를 꾸짖듯이 말하자 장시장은 의구심이 가득 찬 시선으로 황박사를 바라본다.

 

 “여의주에 비소를 넣어둔 것이 사실입니까?

 

 장시장의 물음에 황박사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미소를 짓는다.

 

“인간의 진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네.”

하지만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황박사를 바라보는 장시장의 얼굴이 차츰 굳어져갔다. 그러자 황박사의 얼굴도 차가워졌다.

 

범죄행위라?”

그렇소.당신을 긴급체포하겠습니다.”

긴급체포? , 내가 먼저 선수를 치겠네.

선수?

 

장시장이 흠칫 놀라며 묻자 황박사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시장, 그동안 수고많았어.

뭐야? 지금 그 말투는 쿠데타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

눈치 한번 빠르군.”

이런,

 

 황박사의 속내를 눈치챈 장시장이 재빨리 테이블위에 달려있는 의 붉은 색 비상신호 단추를 누르려고 하자 정화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권총으로 시장의 이마를 겨누었다.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발포할 것 같은 그녀의 무서운 표정에 흠칫 놀란 장시장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 두 사람을 정중히 모셔라,

 

 황박사가 정화와 태풍에게  지시를 내리자 두 사람은 즉각 장시장과 지수를 시장실밖으로 끌어냈다.복도에 나오니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대여섯 명의 비밀감찰요원들이 이미 복도를 장악하고 있었다.

 

장시장과 지수를 겹겹이 포위한 비밀감찰요원들이 1층 로비를 거쳐 현관밖으로 나오자 마당에 호송차 한 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뒤늦게 비상사태를 감지한 이기혁 보안국장이  보안군들을 이끌고 나타나 그들을 가로막고 나섰다.이기혁은 험악한 표정으로 총을 겨누며 재빨리 안전장치를 풀었다.

 

 “황박사,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시장님을 풀어줘라!

 “……”

 

 그러나 황박사는 묘한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장시장은 벌개진 얼굴로 외쳤다.

 

 “보안국장황박사를 내란 음모죄로 당장 체포해!

 

 이기혁 보안국장은 총으로 황박사를 겨눈 채 그 앞으로 다가왔다.그러나 황박사는 여전히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이봐, 보안국장, 죽기 싫으면 그냥 물러서는 것이 좋을게다.

웃기는 소리마!

 

이기혁 보안국장이 가소롭다는 듯 빈정대자 황박사는 바지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꺼내들었다.

 

 “네놈이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차리겟군.후후,

한 마디만 더 나불대면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이기혁 보안국장은 황박사에게 으름장을 놓고는 승인을 구하는 듯 장시장을  바라본다. 장시장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황박사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전에 네 머리통이 날아갈걸?

이 양반이 입만 살아가지고!

 

 이기혁은 버럭 화를 내며 정말 황박사를 사살하려는 듯이 서서히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황박사는  전혀 두려워하는 빛없이 이기혁을 무섭게 쏘아볼 뿐이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이기혁 보안국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억?

 

 그리고 그는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면서 괴로와했다.그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져나왔다.심하게 몸을 비틀던 이기혁은 마침내 바닥에 쓰러져 두 다리를 쭉 뻗고 말았다.그의 급작스럽고 끔찍한 죽음을 지켜본 보안군들은  모두 기겁을 했다. 황박사는 술렁거리는 보안군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리모컨을 쭉 내밀었다.

 

 “잘보았지? 내가 이 리모컨을 누르면  너희들의 뇌속에 있는 여의주에서 독극물이 즉시 방출된다너희들도 모두 죽여줄까? 어때?

,아닙니다!

 

 보안군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섰다.황박사는 그들중에서 제일 앞에 서 있던  덩치도 크고 인상이 험악한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이름이 뭐냐?

마달수입니다.

좋아, 네가 오늘부터 새로운 보안국장이다.나에게 충성을 바칠 테냐?

.

 

 공포에 잔뜩 질려있던 마달수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얼른 허리를 90도로 꺽어 황박사에게 인사했다.그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 듯 장시장은 마달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정신 차려!

당신이나 입다물어!

 

 마달수는 황박사에게 충성을 과시하려는 듯 권총을 장시장에게 겨누더니 서슴없이  발포를 했다.피격을 당한 장시장은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그만 고꾸라졌다.

 

 “그놈 성질 하나 급하군.

 

 황박사는 약간 미간을 찌푸렸으나 장시장을 사살한 마달수를 그리 심하게 탓하지는 않았다.그리고는 가엾다는 표정으로 지수를 향해 돌아섰다.

 

얌전히 나를 따르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요!

 

황박사를 잡으려다 오히려 사로잡혀버린 지수는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그러자 그것이 아니꼬운지  마달수가 느닷없이 지수에게 주먹을 날렸다.그리고는 땅에 쓰러진 지수에게 발길질하려고 하자 황박사가 급히 그를 말렸다.

 

 “그만하고 지수를 빨리 압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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