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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나의 규칙성 단위는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다.
운동을 먼저 얘기해보면, 일주일에 최대 3번까지 수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일주일 중에 하기 좋은 날을 꼽는다.
그리고 일년 전부터는 테니스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테니스 치는 날을 함께 고려하면, 일주일에 운동하는 날은 일주일에 최소 2일, 최대 5일로 목표로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테니스와는 달리 실내 수영은 스케줄 조정하기 쉽기 때문에 날씨 좋을 때는 테니스. 그렇지 않을 때는 수영을 선택한다. 요즘 같이 날씨 좋을 때는 테니스만 주구장창...시나리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보다는 일주일동안 총 수면 시간을 맞춘다.
먹는 것도 비슷하다.
가능하면 최대한 집에서 간단하게라도 요리해서 먹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외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집에서 먹을때는 최대한 라면..을 먹지 않으려 하는데,
안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허용하는 걸로...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단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준들이 엄격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규칙적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지키지 못했을 경우의 실패감을 느끼는 것보다...설렁설렁한 기준에 맞춰가는 만족감을 통해 이어나가는 나름 규칙성이 있는 나의 생활 패턴이다.
계속 쓰기 위해서 달리기 시작했던 하루키.
하루를 단위로 일정거리를 달리고, 목표를 설정하고, 기존의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새로운 목표를 다시 세우고...
하루키의 실천력,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의 실체를 본 것 같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27p)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그리고 한 일생에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진화되는 원천은..사실 그 공평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로 증언되었고..증언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 (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아, 힘들다 (107p)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봤을 때 모든 사람이 동일한 크기의 실천력, 집중력, 지구력을 갖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각자 사람은 모두 다양한 면에서 다양한 능력의 레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도달해야하는 객관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세워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가능성과 능력을 파악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찰나의 결심 (강속수가 배트에 맞는 소리를 듣고서)으로 시작한 소설쓰기...(물론 그는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을 꾸준히 실천하고 그리고 그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들과 노력들은 사실 수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연습들로 채워져야만 했을 것이다.
좋은 것을 즐기는 것도 물론 연습이 필요없는 일이 아니겠지만, 별다를 것 없는 삶과 일상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너무나 식상하고 지루한 테마인. 취미와 직업.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가를 말해주는 가를 이것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물론 항상 신나게 즐기는 취미생활도 있겠지만, 많은 것들이 온전한 즐거움을 위해서는 일정시간의 훈련과 지루함을 버팀의 시간은 필요한 것 같다. 직업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반복과 지루함들을 통해서 하루 시간들이 채워지고 그 시간드을 통해 나다운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어릴때 부터 귀에 피나도록 들었던 '자세(attitude) 가 중요하다' 도..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겨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257p)
변화는 찰나이고 나머지 모두는 일상의 반복이 연속되는 삶에서, 내 '자세'는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그 자세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지루한 일상에 대한 열정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환원되지 않거나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하루키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것이 하루키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그 사람의 존재의 표현양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