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짓기
정재민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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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간되는 대부분의 책에는 띠지가 둘러져 있다. 띠지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홍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눈에 띄거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문구를 쓰는게 대부분이라 지금까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띠지에 적힌 문구가 절실히 와 닿았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야기는 시작된다!"

말 그대로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오히려 이야기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만일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맨 앞 장부터 다시 읽게 된다면 분명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갈래이며, 시대 또한 2010년대와 1960년대로 나뉘어 있다.

2010년대의 주인공인 나의 이름은 '이재영'이다. 스릴러 작가로 네 편 정도 책을 냈지만 첫 작품이 흥행한 이후로 계속해서 부진했다.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내 책의 문제는 사건만 있을 뿐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러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히 들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뺨부터 귀까지 엉겨 붙은 화상에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공터만 남아있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 사람의 사연이라면 내 작품의 소재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남자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남자의 이름은 '김정인'으로 직업은 사회복지사였다. 3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약속받고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자는 갑자기 돌변해 테이블에 내 머리를 쳐박고는 떠나버린다. 그 후 나는 그에 대한 복수심과 알 수 없는 호기심에 뒤를 캐기 시작하고, 드디어 한 복지관에서 일하는 그를 찾아낸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는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노인들에게 다정하고 책임감 강한 복지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저 성실해 보이는 복지사의 얼굴 뒤에 그 때 내가 봤던 폭력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뒤를 집요하게 쫓기 시작한다.

1960년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탄광촌에 '서희연'이라는 여자 아이가 살고 있었다. 엄마를 닮아 유난히 희고 예뻤던 아이는 만취해 엄마를 때리는 아빠와 사람들을 피해 집에서만 지내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외지로 나와 간호대를 다니며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사채놀이를 하는 어머니 덕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 남자와 미래를 꿈꾸지만 고향인 도계로 돌아간 어느 밤, 그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 그녀는 남자와 예정된 결혼을 해 아들을 낳고 평온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씻을 수 없는 그 날의 상처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며 망령처럼 주위를 맴돈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던 그녀는 결국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처음에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수상한 남자와 그 남자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사건보다는 인물의 세밀한 감정 묘사에 충실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초반 도입부에 풍겼던 위험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와는 달리 개인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어찌보면 기대보다 밍숭맹숭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하지만 특별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고해서 절대 이야기가 재미없거나 심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롭게 묘사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밍숭맹숭하다고 한 것은 이 소설에서 어떤 이야기를 예상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만일 나처럼 범죄에 얽힌 사건 위주의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그것과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야기는 두 시대를 걸쳐 진행된다. 2010년대 이재영이란 인물의 이야기에서는 미스터리한 복지사 김정인의 실체를 추적하는데 대부분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지만 1960년대 이야기에서는 서희연이란 소녀의 일대기를 그려내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야기는 희연의 유년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이후의 삶까지 상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 소녀가 다른 이야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실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긴 페이지를 할애할 리는 없지만 어떤 연결관계가 있는지는 중반이 훨씬 지나서야 슬슬 가닥이 잡힌다. 희연이란 인물에 대한 이런 구체적인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녀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곧 그녀와 관련된 어떤 인물에 대한 이해로 번진다.

결정적으로 소녀의 이야기에 몰입해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독자들이 머리속으로 예상하는 결말이 떠오르는데, 실제 결말이 그런 독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부수기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한동안 멍해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두 주인공 중 이재영이란 작가의 이야기보다는 희연의 사연이 더 몰입감 있게 읽혔다. 희연의 일대기를 마치 영화처럼 상세히 묘사해 놓은 이유도 있지만 그녀의 삶이 그 시대를 살아왔던 여성의 아픔과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이재영의 이야기는 쉽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김정인에 대한 취재가 복수나 호기심이라는 감정으로 설명하기에에는 지나치게 집요해 오히려 김정인이라는 인물보다는 이재영이란 인물이 더 수상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억지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맨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재영이 왜 그렇게 김정인에게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맨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쉽사리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사실 알고보면 작가는 친절하게 처음부터 힌트를 주고 있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맨 앞 장에 있는 이 한 문장이 500 페이지 전체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세지이자 결말에 대한 실마리이다. 

 


" 소설의 소임은 거짓의 거미줄 사이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다. "

_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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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이니
배영익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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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두 주인공을 따라가며 교대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기담" 이라는 인물로 은행에서 퇴직한 후 현재는 다 망해가는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이다. 두 번째는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전직 프로파일러 "류피디" 로 그는 현재 살인마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듯 보이지만 기담을 노리는 자와 류피디가 쫓는 자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두 인물 간의 접점이 서서히 드러난다.


기담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한 가지는 귀신이 보인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도깨비 감투"라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물건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도깨비 감투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기담은 이내 감투의 능력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인물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감투를 이용해 자신을 쫓는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반격을 시작한다.


류피디는 전직 프로파일러이자 현재는 다큐멘터리 피디로 일하면서 우연히 탈북주민을 태운 배가 난파되는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그러나 난파선을 취재하러간 곳에서 뜻밖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4구가 발견되고 이 사건이 한 인물에 의한 연쇄살인일 것이라고 직감한다. 

류피디는 남들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범인에게 일반적인 범죄자와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살인마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범인은 기담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담과 류피디는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가독성과 흡입력이 엄청나다. 이야기는 마치 류피디가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일부인 것처럼 전문가나 주변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실감을 높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이 이야기가 허구의 소설이 아니라 실제 범죄현장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이런 전개방식은 도깨비 감투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도록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도깨비 감투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신비한 아이템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끌어당기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되어 모든 사건과 인물들을 한 곳에 모이게 만든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런 식으로 소재의 전형성을 파괴하는 방식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범인에게도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피해자들을 죽이는 행위 그 자체에서 쾌감이나 희열을 느끼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범인은 단순히 쾌락에 미쳐 날뛰는 사이코가 아니라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살인의 목적이 살인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로 도달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모든 방해물들, 그게 사람이 됐건 돈이 됐건 뭐든지간에 걸리적거린다 싶으면 무조건 치워버리는 것이다그 방해물이 사람일 때는 죽여 없애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인데, 범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살인이라는 방법은 흔적을 남길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더 철저하고 교묘하게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범인은 자신이 지닌 지적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이처럼 범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부적응자에 학력이 낮은 전형적인 범죄자가 아니라 지성을 무기로 성공한 엘리트의 이미지로 포장한채 자신의 본능을 감추고 주변에 숨어지낸다. 만일 이런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알아 차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범죄자가 단순히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기존에 본 적이 없는 독특한 형태의 범죄자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범인에 대한 독특한 설정이 희석됐다는 것이다.

어차피 타고나기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유복하고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쇄살인범이 됐다는 설정이 더 설득력 있지 않나 싶다. ​

그리고 중간 중간 기담이 귀신을 보거나 장승이 등장하는 장면 등은 이야기의 흐름을 흐트러 뜨릴 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바로 뒤도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한참 질주하는 이야기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


어쨌거나 소재의 특이성이나 빠른 전개에 가독성이 좋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이 돋보이는 책이니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강력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겨우 두 번째 작품에서 이 정도 필력이라면 앞으로 나올 세번째, 네 번째 작품은 보지 않아도 무조건 위시리스트에 올려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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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써야 할 때 감정을 쓰지 마라 - 인생 쿨하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차이웨이 지음, 정유희 옮김 / 유노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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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써야할 때 감정을 쓰지 마라』 라는 제목만 놓고보면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비판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 또한 슬픔과 고통, 절망 등 누구보다 다양한 감정에 휘둘려 봤기 때문에 현실과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그래서 감정에 휘둘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집필하게 됐다. 


책 표지에 "중국 자기 계발 1위" 라는 타이틀이 보이는데 중국이나 한국이나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다보니 굳이 중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유효한 조언들이었다. 그리고 저자가 여성이라 그런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공감을 얻을 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크게 6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혐오, 두 번째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의 착각, 그리고 세 번째는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감정통제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최선을 다하는 삶에 대해, 다섯 번째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나다운 삶, 마지막 여섯번 째는 성공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episode 1.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은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다."

episode 2  "백마 탄 왕자는 별 볼일 없는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

episode 3  "머리를 써야할 때 감정을 쓰지 마라."

episode "최선을 다한 다음에야 운이 없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episode 5  "세상은 처음부터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episode 6  "모든 성공은 눈물이 아니라 오직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


 

각 에피소드 별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세부적인 조언 또는 지침(?)들이 나와있는데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 같은 무한긍정과 희망의 메세지 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들이 생각해보면 좋을 이야기가 있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였다면 나부터 공주급(?) 존재가 되어야만 백마탄 왕자를 만날 기회가 주어지니 왕자를 만나고 싶으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대체 그 백마탄 왕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백마탄 왕자는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왕이라 그 밑에서 편하게 성장해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크며, 선이 고운 외모에 마음씨까지 비단결같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존재이니 얼른 꿈깨고 아버지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해서노력하는 현실속 나만의 왕자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물론 그 현실 속의 왕자님은 나이가 들면 배나온 아저씨가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도 덧붙여준다.

그저 왕자를 만나고 싶으면 노력하라가 아니라 동화 속 왕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니 빨리 꿈에서 벗어나 성실하고 착한 남자를 찾아봐라. 이것이 작가의 이야기였다.

물론 저자 또한 여자들이 사랑 앞에서 쿨해지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헌신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투자하면서 본인 스스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굳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서도 독립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함이다.

​더불어 작가는 현명한 여자는 남자의 양심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할 때야 세상 모든 것을 다 내어줄 것 같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스스로에게 잔인해져야 한다. 남자의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라고, 평생 나를 책임질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은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해서 항상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니 유일하게 스스로 컨트롤 가능한 자신의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혹시모를 위험에 항상 대비해야한다.

"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몸과 마음을 던지려 한다면 장래에 그에게 버림받을 위험도 감당해야 한다. 어쩌면 여러분의 사랑이 어리석은 선택일 수도 있고, 그를 위해 쏟은 모든 노력이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듀엣으로 불렀던 사랑의 맹세는 여러분만의 독창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남자를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은 괜한 헛수고다."  (p150)

지금 이 순간에도 성공과 사랑, 직업에 대한 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이런 주제들이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출간되는 것은 이런 주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런 독자들을 타겟으로 출간된 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듣기좋은 달콤한 말이나 대책없이 긍정적인 이야기로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제 덤벼들지 모르는 불행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스스로 더 냉정하고 단단해질 것을 조언한다.

흔히 상처받지 않는 쿨한 인생, 쿨한 연애를 지향하는 요즘이다. 누구보다도 쿨하고 싶지만 현실은 미련투성이로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당신에게 앞으로 닥쳐올 인생의 풍랑에 대한 보험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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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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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계인 '만체보 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다. 사촌 타리크는 식료품 가게 길 건너 맞은편에서 구두 수선가게를 운영하고, 매일 같은 시간 만체보 씨네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9시에 문닫는 똑같은 일상을 몇 십년째 반복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날 갑작스러운 미션이 주어졌다.  "제 남편을 감시해주세요."

이런 부탁을 한 사람은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캣'이란 여자로, 작가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외도 중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주 집을 비우는 그녀가 남편을 항상 감시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그녀는 고민 끝에 식료품점 앞 의자에 앉아 항상 가게를 보고 있는 만체보 씨라면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남편을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황당할 수도 있는 그녀의 제안을 받고 만체보 씨는 간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근 큰 사건을 해결한 후 극도의 피로로 인한 우울증을 진단받은 엘레나는 어느 날 커피숍에서 처음본 남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혹시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  자신은 물론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지만 갑자기 기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는 자신이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버렸다. 그 날 이후 그녀는 프랑스 굴지의 에너지 기업 꼭대기 층에서 이메일을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된다.

원래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지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료한 일상에서 잠깐의 일탈과 충동으로 알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두 사람에겐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살인사건과 같은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주로 등장하는 미스터리에 비해 일상에서 소소하게 벌어질 수 있는 미스터리를 '코지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는 이런 코지 미스터리 장르에 가깝다.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 두 주인공에게 벌어진 사건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마지막에는 두 사람의 사건이 중첩되면서 서로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벌어질 경우 두 이야기가 서서히 오버랩되지만 이 책에서는 거의 마지막까지 상관관계를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모두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만체보 씨는 처음에는 호기심 반, 책임감 반으로 의뢰인의 남편을 감시한다. 하지만 일을 계속하면서 그 동안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비밀이 하나 둘 씩 밝혀지고, 상황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책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과 관계 속에서 가끔은 자신과 주변을 새롭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선을 아주 조금만 바꾸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도 반짝이고 설레이는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만체보 씨가 알려주는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날려버리는 방법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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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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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인 <골든 슬럼버>의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출간됐지만 '애플이 선정한 2015년 최고의 소설'이라니 일본에서 출간된 건 지금보다 몇 년 전일 것이다

 

사카 코타로는 미스터리에도 물론 일가견이 있지만 휴머니즘 가득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진가가 더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화성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닌자처럼 검은 옷을 입고 덩그러니 앉아 멍 때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화성 표류기쯤 되는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화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회비판과 블랙 코미디가 가득한 이야기였다. 거기에 본인의 장기인 미스터리까지 놓치지 않은 그야말로 버릴게 하나 없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책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남자가 부인에게 구조조정을 마녀사냥에 빗대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은 진짜로 마녀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인을 알 수 없는 재해나 재난에 대한 공포와 초조감을 풀기위해 원인을 마녀에게 있다고 단정짓고 아무나 마녀라고 붙잡아 처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마녀로 지목된 사람은 아무리 아니라고 호소해도 뽑힌 순간 끝인 것이다.

 

이야기의 서두에 나온 남자가 살고 있는 곳에는 안전지구라는 순회제도를 통해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평화경찰'이 배치되고 이 때 누군가의 제보로 인해 범죄자로 의심받게되는 사람은 평화경찰에게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조사에서 범죄가 확정된 사람은 공개처형을 통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단두대에 머리가 댕강 잘리게 된다.

 

이 제도는 명목상으로는 위험인물을 미리 발견해 사전에 범죄를 예방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민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믿지 못하게 만드는 불신사회, 감시사회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밀고당한 사람이 범죄자이냐 아니냐와는 전혀 무관하다. 만일 범죄자가 아니라면 범죄자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진짜 범죄자라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것이다.

 

" 중세의 마녀사냥도 사회불안을 해소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하죠."

"마녀사냥이란 거, 정말 마녀가 있는 건 아니잖아?"

", 마녀는 웬만해선 찾을 수 없으니까요. 마녀가 틀림없다고 누명을 씌우는 것 뿐이죠. 그저 군중심리랄까, 모두 열광하는 느낌이었겠죠." (p36)

 

 

이들은 이름은 평화 경찰이지만 실제로 하는 짓은 평화와 전혀 관계없는, 오히려 가학적이기 짝이 없는 고문과 취조를 거듭한다

 

일단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당한 사람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아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가족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빌미로 나이든 노모에게 3분동안 철봉에 매달리면 아들의 죄를 감해주겠다고 거짓말을해 철봉에서 버둥대는 노모를 보며 낄낄대고, 아들은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철봉에 매달리는 노모를 보며 울부짓는다. 이 때 나타난 것이 책의 표지에도 나와있는 '정의의 편' 인 검은 복면의 사람이었다

 

정의의 편은 평화경찰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취조실에 홀연히 등장해 목검과 골프공같은 알 수 없는 무기들로 경찰을 공격한 후 노모와 아들을 구해내 사라져 버리고, 평화경찰은 정의의 편을 잡기 위해 '마카베 고이치로'라는 수사관을 불러들인다

 

이 마카베라는 수사관이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인데 경찰 소속이면서도 정작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는, 오히려 정의의 편이라는 인물에게 동조하는 듯한 애매한 말들을 하곤 한다. 그리고 외모도 경찰이라기보다는 가수나 예술가에 가까운 단발 머리를 하고선 가끔은 얼빠진 듯한 질문을 해댄다. 하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점점 '정의의 편' 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히어로의 정체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정의의 편으로 활동하게 된 동기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면서 오히려 꽤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히어로가 정의를 실천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계몽하겠다거나 혹은 악을 응징하겠다는 엄청난 대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사람들을 구하게 된 것이 상당히 개인적이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다.

 

책의 배경이 되는 시점이, 미래인지, 과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가 않다. 마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하다는 기시감이 든다.

 

치열했던 군사독재 시절, 경찰에서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다며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발표를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정원에서 인터넷 댓글을 조작하는 전담팀까지 운영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사카 고타로가 한국 정부를 모티브로 한것은 아니겠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근접한만큼 여러가지 공통점이 많고 정치적으로도 상당 부분 유사성을 띄고있다. 그렇기에 일본 작가가 창조해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 자체는 어둡고 비관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분위기가 무겁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종일관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개인이 집단이 됐을 때 드러내는 가학적인 군중심리나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정부의 속셈을 대놓고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무거운 마음보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다하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일본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있어. 약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 말라리아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있어.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p121)

 

 

평화경찰은 여기서 살기 싫으면 화성에라도 가서 살라고 말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화성에 갈 돈도 없을 뿐더러 어느 나라에 가든 결국 이 사회의 연장선상이다.

그러니 지구인들이여, 이제 분연히 일어나 목검이라도 들고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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