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니
배영익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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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두 주인공을 따라가며 교대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기담" 이라는 인물로 은행에서 퇴직한 후 현재는 다 망해가는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이다. 두 번째는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전직 프로파일러 "류피디" 로 그는 현재 살인마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듯 보이지만 기담을 노리는 자와 류피디가 쫓는 자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두 인물 간의 접점이 서서히 드러난다.


기담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한 가지는 귀신이 보인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도깨비 감투"라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물건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도깨비 감투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기담은 이내 감투의 능력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인물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감투를 이용해 자신을 쫓는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반격을 시작한다.


류피디는 전직 프로파일러이자 현재는 다큐멘터리 피디로 일하면서 우연히 탈북주민을 태운 배가 난파되는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그러나 난파선을 취재하러간 곳에서 뜻밖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4구가 발견되고 이 사건이 한 인물에 의한 연쇄살인일 것이라고 직감한다. 

류피디는 남들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범인에게 일반적인 범죄자와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살인마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범인은 기담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담과 류피디는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가독성과 흡입력이 엄청나다. 이야기는 마치 류피디가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일부인 것처럼 전문가나 주변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실감을 높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이 이야기가 허구의 소설이 아니라 실제 범죄현장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이런 전개방식은 도깨비 감투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도록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도깨비 감투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신비한 아이템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끌어당기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되어 모든 사건과 인물들을 한 곳에 모이게 만든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런 식으로 소재의 전형성을 파괴하는 방식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범인에게도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피해자들을 죽이는 행위 그 자체에서 쾌감이나 희열을 느끼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범인은 단순히 쾌락에 미쳐 날뛰는 사이코가 아니라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살인의 목적이 살인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로 도달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모든 방해물들, 그게 사람이 됐건 돈이 됐건 뭐든지간에 걸리적거린다 싶으면 무조건 치워버리는 것이다그 방해물이 사람일 때는 죽여 없애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인데, 범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살인이라는 방법은 흔적을 남길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더 철저하고 교묘하게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범인은 자신이 지닌 지적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이처럼 범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부적응자에 학력이 낮은 전형적인 범죄자가 아니라 지성을 무기로 성공한 엘리트의 이미지로 포장한채 자신의 본능을 감추고 주변에 숨어지낸다. 만일 이런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알아 차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범죄자가 단순히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기존에 본 적이 없는 독특한 형태의 범죄자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범인에 대한 독특한 설정이 희석됐다는 것이다.

어차피 타고나기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유복하고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쇄살인범이 됐다는 설정이 더 설득력 있지 않나 싶다. ​

그리고 중간 중간 기담이 귀신을 보거나 장승이 등장하는 장면 등은 이야기의 흐름을 흐트러 뜨릴 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바로 뒤도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한참 질주하는 이야기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


어쨌거나 소재의 특이성이나 빠른 전개에 가독성이 좋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이 돋보이는 책이니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강력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겨우 두 번째 작품에서 이 정도 필력이라면 앞으로 나올 세번째, 네 번째 작품은 보지 않아도 무조건 위시리스트에 올려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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