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이라는 중독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
토머스 커런 지음, 김문주 옮김 / 북라이프 / 2024년 9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07/pimg_7697402534454476.jpg)
"완벽주의" 라고 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일적인 면에서 뭐든지 남들보다 빠르고 깔끔하게 잘해내고 결과물도 훌륭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뛰어난 일처리로 다른 사람들의 경외심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완벽주의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완벽주의자들의 일상은 그렇게 멋지지만은 않다.
내 책상 서랍에는 쓰다만 일기장이 한 가득이다.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올해는 꼭 매일 일기를 써야지라는 생각에 야심차게 일기장을 사지만 막상 며칠 쓰다보면 하루 이틀 빠지다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쓰게 되고 결국 일(日)기가 아니라 주기, 월기가 되기 일쑤다. 그러다 중간에 정신을 차리고 '오늘부터라도 다시 일기를 열심히 써야지.'라고 결심이라도 하는 날에는 듬성듬성 쓰다만 일기장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간에 빠진 날짜들이 있는 것이 뭔가 찜찜한데 깨끗한 새 노트에 다시 시작하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결국 새 노트를 사지만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듯이 새로 쓰기 시작한 일기장도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드문드문 쓰게 되고 또 다시 새 노트를 사러 가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뭔가 사고싶은 마음에 노트를 계속 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완벽주의의 단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매일 써진 일기가 아니라 듬성듬성 써진 일기는 내 생각에 완벽하지 않았고, 깨끗하게 처음부터 시작하면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매번 쓰다만 일기장을 서랍에 밀어두고 다시 시작했던 것이었다.
이 외에도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 완벽하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히려 보고서 작성은 미뤄두고 빨리 끝내기 쉬운 단순한 업무만 하다가 정작 보고서 작성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마감이 목구멍 끝까지 차서야 겨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자료 조사만 실컷해놓고 막상 시작은 못하는데 이것도 역시 완벽주의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 때 문제는 보고서 작성을 미루면서 머리 속에서는 보고서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라며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완벽주의는 완벽주의라는 이름과 달리 완벽하지 않은 결과와 스트레스라는 짐만 떠안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책에서 저자는 완벽주의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완벽주의를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1. 자기지향 완벽주의 2. 사회부과 완벽주의 3. 타인지향 완벽주의로 나눈다.
첫 번째 자기지향 완벽주의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향한 완벽주의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완벽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사회부과 완벽주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완벽하기를 기대한다는 신념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평가받고 있으며, 완벽하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가혹하게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타인지향 완벽주의는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혹평하며 완벽해지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에 자신이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면 이 세 가지 중에 적어도 어느 한 가지는 해당할 것이다. 더 나아가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모두 다에 해당할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완벽주의는 공통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리 완벽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완벽주의는 기본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불안감을 느끼며, 더 나아가서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수치심까지 느끼게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완벽주의의 문제점과 완벽주의가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다룬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자신이 완벽주의에 빠져있고 그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기 쉬워졌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인사들이 성공의 근원을 완벽주의로 꼽으며 완벽주의를 칭송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완벽주의를 개인의 성향, 성격으로 치부하며 성공의 한 요소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저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완벽주의가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가 만들어낸 심리적 작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각종 광고를 비롯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아름답고 날씬한 커플들의 모습, SN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완벽한 라이프 스타일의 행복한 가족들, 유투브에 나와서 강연을 펼치는 성공한 사업가들 등 어디에서도 실패하거나 서투르거나 결점 투성이인 사람들을 볼 수 없다.
흙수저로 시작했지만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보여주는 미디어에서 성공하지 못한 개인은 그저 완벽해질 때까지 노오력하지 않은 실패자들로 여겨진다.
또한 건강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지도, 너무 적게 먹지도 않으며,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도 휴식을 취하고, 적당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도 일도 열심히 하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사회생활도 잘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각종 미디어가 강요하는 완벽한 인간들의 모습과 모자란 현실의 나와의 괴리감으로 내면의 갈등이 일어나고 그 간극이 커질수록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가 불편해진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완벽한 무리에 속하고 싶다면 그들과 같아지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으니 모자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한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생활에 스며들어온 완벽주의를 향한 문화적 분위기를 지적한다는 점이 완벽주의를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만으로 보는 다른 책들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물론 개인으로서도 완벽주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완벽하지 않은 나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노력 외에도 완벽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로 잡으려는 공동체적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