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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생 수업
앨버트 엘리스 지음, 정유선 옮김 / 초록북스 / 2024년 7월
평점 :
길을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아 얘기해보자. "당신은 참 비합리적이시네요." 라고.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아마 대부분 화를 내며 본인은 지극히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비합리적이란 말은 뭔가 이성적이지 않으면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약간은 무식하다(?)라는 뉘앙스라 듣기가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 「위대한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생 수업」 에서는 일단 인간은 비합리적이란 사실을 전제로 시작한다.
저자가 말하는 비합리성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비합리성과는 약간 결이 다를 수도 있는데 "자기 패배적이거나 해로운 결과를 불러오는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길 비합리적이며, 이러한 비합리성이 인간의 생존과 행복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합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합리성이라고 하면 한 번에 잘 와닿지 않지만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나 업무에서의 자신의 역량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 한다거나 혹은 자신이 속한 학교나, 인종 , 나라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매긴다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세상에는 정의와 공정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 등이 모두 인간의 비합리성의 예이다.
이렇게 일일이 예를 들어보면 스스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도 '아, 내가 그 동안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 일반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생각이나 믿음들도 비합리성에 포함된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이런 비합리성에 대한 신념이 스스로를 괴롭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가 바로 저자가 개발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REBT)의 시작이 된다. 인간의 괴로운 감정의 원인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필터를거쳐 불안정한 생각과 감정으로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치료법의 핵심이다.
저자는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하고, 실패하지 않아야 해."라는 것과 같은 독단적이고 무조건적인 사고를 "당위적 사고"라고 지칭하며 이런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요구에서 벗어나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이나 인정, 안락함을 간절히 원해" 정도의 '소망'은 "그것이 이뤄지면 좋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고, 그게 없다고 죽지는 않아. 그래도 행복할 수는 있어." 로 끝나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을 열어둬 이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성공해야 해, 절대 결점이 없어야 해."라는 실패의 가능성은 1%도 고려하지 않는 강박적인 사고는 스스로를 신경증에 걸리게 만들고야 만다.
흔히 과학자들은 100%라는 건 없다고 말한다. 거의 100%라도 항상 99% 혹은 99.9% 라고 1%, 0.1%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곤 하는데 이렇게 과학적으로 유연한 사고방식과 대처를 우리 삶에도 적용하는 것이 정서적 건강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과학적으로 사고하면 자신이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바꿀 수 없는 성가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노력없이 쉽게 이룰 수 있을거라는 허황된 기대나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당위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불안과 우울, 분노는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초조함의 강도가 약해질 것이고 서서히 줄어들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학적인 저자는 100% 완치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ㅎㅎ)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당위적 사고에서 벗어나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거스르고 합리적인 사고와 감정으로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단계를 나눠서 설명하고 있는데 각 챕터마다 REBT연습을 통해 구체적인 예시를 들고 , 어떤 식으로 당위적 사고에 대해 반박해야하는지 설명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상담실에 가지 않고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 로 자기계발서의 일종이니 심리학을 다룬 이론서적보다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당위적', '통찰' '비합리적 신념' 등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거나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이 자주 등장해 초반에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저자의 이론에 대한 설명 뒤에 이어진 구체적인 예시들 덕분에 초반의 걱정과는 달리 쉽게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도입부에 약간의 허들만 넘는다면 '세계 3대 심리학자' 라는 앨버트 엘리스의 상담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강박과 신경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