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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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는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매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는 흔치 않은 호러 미스터리 작가이다. 호러와 미스터리라는 두 장르가 섞인 경우 호러가 다소 시시한 경우도 많은데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일품이다. 그러다 보니 밤에 혼자 있을 때는 잘 읽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밤에도 거뜬히(?)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호러보다는 추리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공포스럽고 괴이한 사건이라도 사실 인간이 한 짓이라는 걸 알게되면 공포감은 훨씬 줄어들기 마련인지라 엄청난 겁쟁이이자 주인공인 덴큐 마히토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평소 호러물을 잘 읽지 못하는 독자들이라도 주인공의 논리적인 사건 풀이를 따라가다 보면 '아, 결국엔 다 사람이 문제지'라는 생각에 공포감이 훨씬 줄어든다.


책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름인 명탐정 도조 겐야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비롯한 다른 시리즈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도조 겐야의 이름만 나오기 때문에 굳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걷는 망자」에서는 총 5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건들이 전개된다. 각 지역에서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 사건에 대한 기록을 도조 겐야의 부탁을 받은 대학생 도쇼 아이가 덴큐 마히토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도쇼 아이는 영매사인 할머니로부터 능력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더 소름끼치게 다가 온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걷는 망자는 5개의 에피소드 중 가장 첫 에피소드로 덴큐 마히토에게 각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도쇼 아이가 직접 겪은 사건이다. 바다에 빠져죽은 사람이 망자가 되어 헤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씌이고 만다는 '망자길'을 걷던 도쇼 아이가 죽었지만 살아있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망자를 목격하고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로 도쇼 아이가 덴큐 마히토와 인연을 맺게 되는 사건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4번째인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으로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괴담과 비슷했다. 네 명이 방의 각 모서리에 각자 앉아 있다가 다음 모서리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서 터치를 하면 중간에 한 명이 사라진다거나 혹은 4명이 시작했는데 1명이 더 나타난다는 괴담인데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동안 유행했던 이 구석놀이라는 강령술의 기원이 아마 일본이 아닐까 싶다.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도 방의 네 구석에 한 명씩 앉아 있다가 각자 방 한복판을 향해 기어가 옆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그 때 다섯 번째 머리가 나타난다는 괴담으로, 이를 직접 시험해 보기 위해 요괴 연구회 회원들이 한 오래된 여관에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평소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이 책이 첫 작품이라면 다소 일본색이 강하다는 점을 미리 염두해 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속학과 호러의 결합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특유의 풍속과 요괴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호러를 논리적으로 풀어내긴 하지만 본격 추리를 생각한다면 결말에 이르는 추리가 약간은 뜬금없거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한 조사나 단서 없이 사건에 대한 내용만 듣고서 추리를 해내는 과정이 논리적 비약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스스한 호러의 분위기와 사건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필력은 여전히 흡입력 있고 덴큐 마히토와 도쇼 아이의 티키타카가 또한 돋보이기 때문에 평소 마쓰다 신조의 호러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충분히 기대에 부응할만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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