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그는 죽기 전까지 자유 시인이었다.자유는 그에게서 3번의 변모를 감수한다.첫째는 설움과 비애라는 소시민적 감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했고둘째는 사랑과 혁명으로 표현했고셋째는 적에 대한 증오와 연민 탄식으로 표현했다.작품 초기 그는 (바로 본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반란 성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어린 동생들과의 잡담도 마치고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이룰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괴로움도 모르고나는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그저 멀리 보고 있는 것이 타당한 것이므로나는 괴롭다.「아메리카 타임지」오늘 또 활자를 본다.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瓦斯의 정치가들을 응시한다.「이」어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수염을 바로는 보지못하였다.바로 본다는 생각은 자기가 바로 보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 주체에게 괴로움을 부여한다. 그에게 바로 본다는 행위는 언제나 괴로움과 결부된다.「바뀌어진 지평선」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아슬아슬하게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이여.돌은 자유로운, 바로 보려는 정신이며, 물결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삶이다. 거기에서 비애가 생겨나는 것이다. 김수영의 反詩論은 언어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으며 또 자유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그의 모든 시론은 폭로 주의와 재치 주의의 배격으로 초현실주의에 투철한 점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처절한 초 현실주의적으로 종교의 해탈처럼….내가 좋아하는 두 편의 시를 띄워본다.『거미』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김수영의 전집에는 시와 산문이 작성한 날짜별로 기록되어있다》『헬리콥터』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 들이었다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남의 말을 해왔으며그것도 간신히 더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1950년 7월 이후에 헬리콥터는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그래도 제트기나 카고보다는 늦게 나왔다-중략-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자유-비애더 넓은 전망이 필요 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모조리 노출 낙하시켜가면서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긍지와 선의가 있다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손을 잡고 초동물 세계 속에서 영위하던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갖고 있었으며오늘에 네가 전하는 바유의 마지막 파편에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