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최혁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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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rand Russell은 1950년 수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권위와 개인』 ​수상했다.
러셀의 책을 몇 권 특히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행복의 정복』등을 어렵게 읽었던 기억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나 자신이 종교에 대한 회의를 가진 부분이 많아 읽었던 것이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읽고 나니 러셀의 철학적 배경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러셀이 열정적으로 살아온 이유를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의 3가지로 자신의 생을 살아왔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전적 성찰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심리적으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위험을 언급했는데 그 하나는 과거에 대한 부적절한 집착과 젊은이들에게 의존하는 희망으로 매달리는 것을 지적했다.
우리의 생각은 다가올 미래와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지향해야 하며 동물은 새끼들이 앞가림을 하자마자 그들에게 무관심해지지만 인간은 유년기가 길어서인지 이것을 힘겨워 하지만 개별적인 인간 존재는 강물같이 처음에는 미약하다가 좁은 강둑을 따라 흐르게 되고, 때가 되면 열정적으로 바위들을 지나 폭포 위로 돌진하기도 하다가 강폭이 넓어지고 제방이 멀어지면 강물은 더욱 빠르게 흐르며, 마침내 눈에 띄는 휴식도 없이 바다와 합쳐지고 나면 아무런 고통 없이 자신의 개별적인 존재를 잃어버린 삶이 아름다운 삶일 거라 희망했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자국이 있다. 나약함의 자국이, 고민의 자국이˝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한 무엇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에서는 자아도취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하면서 자부심을 나타낸다고 한 chater에서 지적하면서 근본적인 행복은 그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우호적인 반응에 달렸기에 행복에 이르는 길은 인간은 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리적인 것에 달렸기에 말이라고 소박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다음은 내가 갈등하고 있는 대목으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었으나 어려운 수학공식 같은 절도가 읽는 순간은 이해되었으나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여기에서 다시 읽으니 정리가 되어갔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에 ˝ 아버지는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고 가르쳐주셨다. 이것은 `누가 신을 만들었는가?`라는 추가적인 질문을 즉각적으로 불러오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신에 대한 오류를 알려 주었고 이 논리는 어는 인도인이 세계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이 세계는 코끼리 위에 놓여 있고 그 코끼리는 거북 위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럼 그 거북 밑에는 ?˝ 이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며 환경이 생물들에게 적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들이 환경에 적합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적응의 기본 원리이며 신의 계획에 관한 어떤 증거도 없다는 과학적 해석을 했다.
성경에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라˝ 이 말은 5-600년 전 老子와 Buddha가 가르친 것이고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마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마라.˝
˝네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성령을 거역하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 죄짓고 불법한 일을 하는 자들을 모조리 모아 불 아궁 속에 던질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버려라.˝
등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있는 결점들이고 그리스도가 다른 현자들만큼 현명하지 못 했던 것은 분명하며, 따라서 그가 인간들 가운데 최고로 현명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내용을 지적하고 하면서,

사람들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진정한 이유는 이성적인 논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정서적인 토대로 종교를 받아들이기에 오류를 범한다며 새뮤얼 버틀러의 책 『에레흔 재방문』이라는 책에서 힉스라는 사람이 먼 나라에 도착하여 쉬다가 기구를 타고 그 나라를 탈출한 뒤 20년 후 다시 간 힉스는 과거에 하늘로 올라갔던 자신을 `태양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를 목격하게 되고 사제들에게 분개하며 ˝나는 이 모든 협잡을 폭로할 것이오 그리고 에레흔 사람들에게 태양의 아들이 바로 나, 힉스라는 사람이고, 내가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것이라고 말하겠소.˝
사제들은 난감해하며 이 나라의 모든 도덕이 이 신화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면 그들은 모두 사악해질 것입니다.˝에 힉스는 그 말에 설득당해 조용히 사라졌다는 내용으로 교회라는 형태로 조직화된 기독교는 세계의 도덕적 진보에 맞서는 주적이었다는 사실 속에서 좋은 세상은 지식과 친절과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 없는 세계관과 자유로운 지성을 필요로 하는 희망으로 가야지 종교적 논리로 죽어버린 과거를 향해 시간을 거슬러 돌아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고 시행 착오이다며 그는 여타 종교관에 대해 不可知論者로서 신의 법칙을 인정하지 않고 증거가 없다면 사실의 문제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확실성의 토대인 과학적 정신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철학을 하게 된 동기는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식을 발견하고 싶은 욕망과 종교적 충동을 만족시켜줄 어떤 것을 찾고 싶은 열망에서 공포가 이성적인 행동을 고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공표가 대중이 두려워하는 바로 그 위험을 증대시키는 행동을 고무하는 경우의 수로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철학이 만들어 내야 하는 객관적인 감정이 최선의 치료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종교적 배타를 이겨내는 수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수학자인 그가 철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 사회, 정치학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뛰어난 두뇌로 수학적 적립이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아지며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시대가 앞선 모든 시대를 능가하지만 지혜라는 측면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발전이 없었던 이유로 지식의 폭은 넓지만 감정의 폭은 그대로이거나 좁아지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며 타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계몽된 이기심을 지성과 교육으로 다음 사람들이 키워나가도록 논리 있게 주장한 책이다.

나는 러셀의 책을 쉽게 읽지 않을 것 같다.
몇 날 동안 그의 머리를 따라가느라 지쳐버렸다.
위의 review는 대부분 러셀의 주장을 줄거리를 더듬어 썼지만 나는 그런 유의 후기를 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해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종교에 대한 지적은 특별한 내용보다는 흔히 할 수 있는 성경의 오류를 가지고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했던 것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난 획기적인 탈 종교적인 논리를 펼쳐주길 바랐는데 아니었다.
러셀이 나에게 행복의 조건을 제시해준 건 지성과 교육 그리고 용기로 공의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개미나 벌처럼 완전한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반사회적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계몽된 이기심이 글 전체의 주제로 정의하고 싶다.

이 밤 러셀이 다른 행성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면 어리석은 놈!
하고 호통칠지라도 나는 여기까지 밖에 당신을 읽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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