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어〉, 1852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거트루드 왕비가 아들의 짝으로 점찍은 오필리어는 햄릿 왕자를 고결한 분이라며 흠모한다. 편지, 선물……,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전한 듯 느껴진다. 동생을 아끼는 레어티즈는 프랑스로 떠나기 전 타이르기를, 그 사람이 좋은 이라 하더라도 그가 앉은 자리는 너무 무거우니 흔들리지 말 것을 다짐하게 한다. 아버지 폴로니어스 역시 권력은 그런 것이니 햄릿을 멀리하라 이른다. 오필리어는 이에 순종하지만 햄릿을 향한 연정은 여전해서, 그녀를 이용하여 왕자의 광증을 캐내려는 자리에서도- 그녀를 모욕하는 왕자를 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매춘의 장소를 뜻하는 속어이기도 한 수녀원에 가라거나, 연극을 관람할 때 처녀의 무릎 속에 눕겠다거나 하는 왕자의 희롱에서도 굳건했던 오필리어. 그런 오필리어가 아비의 죽음, 그것도 사랑하는 이의 칼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에 넋을 놓은 모습은 모두의 동정을 받는다. 뒤늦게 햄릿은 그녀를 진정 사랑했음을 고백하지만……. 오필리어의 마지막 역시 너무도 비극적이다. 오필리어는 버드나무 가지,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데이지, 자란으로 화관을 만든다. 그 화관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다 가지가 부러져 시내에 빠지는데,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마치 자살처럼 익사하는 것이다.


 ▷ 토머스 프랜시스 딕시의 〈오필리어〉, 1873


오필리어의 마지막은 거트루드 왕비의 무운시로 몹시 아름답게 전달되는데, 이 비극에서 풍기는 낭만성은 화가들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라파엘 전파를 대표하는 존 밀레이 경의 〈오필리어〉이다. 밀레이는 그림의 배경이 될 셰익스피어 희곡에 일치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 런던 근교 서리(Surrey)를 수개월 답사했다. 사실적 묘사를 위한 노력, 야외에서 하는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한 글도 남아있다. 살짝 입을 벌리고 꿈을 헤매는 듯한 오필리어의 표정과 더불어 그녀를 품은 둔치에 그려진 배경의 빛과 꽃들은 환상과 사실의 경계에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필리어의 위로 향한 양팔처럼 뻗어진 버드나무 가지, 고통을 의미하는 쐐기풀과 순수를 의미하는 데이지,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와 죽음을 의미하는 양귀비, 진실된 사랑과 충실함을 의미하는 제비꽃……. 특히 제비꽃으로 만든 목걸이는 오필리어의 캐릭터 자체를 반영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캐릭터들을 자주 그렸던 토머스 프랜시스 딕시의 오필리어도 미나리아재비, 데이지, 쐐기풀로 만든 화관을 손에 들고 있다.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로 유명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또한 오필리어를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럿 그렸다. 그 중 1894년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오필리어는 마치 임신한 것처럼 배가 살짝 나와 보인다. 오필리어의 머리칼에서 보이는 양귀비, 무릎에 얹힌 데이지 화관 역시 각각 죽음과 순수를 의미한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오필리어〉, 1894



 ▷ 루미니어스의 〈오필리어〉, 2016



  ▷ 루시아(심규선)의 〈오필리어〉, 2016



  ▷ 존 에버렛 밀레이경의 〈오필리어〉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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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어의 모델이 화가의 애인입니다. 물을 채운 욕조 안에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고생했다고 합니다.

에이바 2016-09-04 15:07   좋아요 0 | URL
오필리어의 모델은 훗날 로제티의 아내가 되는 엘리자베스 시달인데요,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뮤즈이긴 했지만 밀레이와 사귄 사이인 줄은 몰랐어요. 영문으로 찾아봐도 딱히 나오지 않는데요? 밀레이와 에피 러스킨, 단테 로제티와 리지 시달 이야기가 더 강렬해서... 말씀하신대로 리지 시달이 오필리어 모델 서다가 죽을 뻔 해서 아버지가 밀레이를 고소하고 밀레이는 병원비 대주고 그런 에피소드도 있죠. 작품해설 영상에도 시달 이름이 나와요 ㅎㅎ

cyrus 2016-09-04 15:08   좋아요 0 | URL
제가 착각했어요. 오필리어 모델이 로제티의 아내였군요. ^^

에이바 2016-09-04 15:29   좋아요 0 | URL
오필리어 그릴 땐 밀레이와 에피, 로제티와 리지 두 커플이 연애하기 전인 것 같긴 해요. 엘리자베스 시달 삶이 정말 비극적이죠...ㅠㅠ

AgalmA 2016-09-04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햄릿 마니아시여, 10월에 lg 아트에서 영국 컬트밴드 타이거릴리스 밴드의 음악극 <햄릿>이 공연되는데, 오필리어 죽음 장면도 압권이라 하옵니다. 놓치지 마옵소서!

타이거릴리스 예전에 내한했을 때 본 적 있는데 정말 추천에 주저가 없습니다^^! 위 그림들의 환상을 실제 느낄 수 있게 해줌!
안 그래도 <햄릿> 공연보기 전에 책 다시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에이바님의 햄릿 퍼레이드 주간이 그걸 계속 상기시켜 주네요 ㅎㅎ

에이바 2016-09-05 13:28   좋아요 0 | URL
아갈마님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더 플레이 광고 보고 있었는데 이런 꿀정보를 주시다니요. 엘지아트센터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찾아보니 평일에 공연하네요. ㅜㅠ 타이거릴리스 기억해두겠습니다...

단발머리 2016-09-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고 못 배기리~~ <햄릿>
예뻐서 보고 또 보리~ 오필리어~~^^

에이바 2016-09-05 13:28   좋아요 0 | URL
햄릿을 읽어주시와요ㅎㅎ 정말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