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제임스 엘로이는 이언 랜킨을 〈타탄 누아르의 제왕 The King of Tartan Noir〉이라 칭했다. 타탄은 하이랜더들이 입던 킬트의 체크무늬 천으로, 타탄 누아르는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범죄 소설을 가리킨다. 이언 랜킨의 《매듭과 십자가》는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타탄 누아르는 제임스 호그의 《사면된 죄인의 사적 일기와 고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양면성, 선과 악, 구원과 징벌 등을 다룬다. 미국의 하드보일드(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스타일을 흡수해 주로 냉소적인 세계를 그리며 주인공은 대개 공명심이 부족한 안티히어로이다. (아무런 죄책감없이 모닝롤과 우유를 훔쳐먹는 존 리버스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이 겪는 개인적 위기들이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된다.

 

존 리버스 시리즈는 영국 범죄 소설 판매량의 10%를 차지하며, 보통 출간 후 3개월 이내에 50만부가 판매된다.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ITV 계열 제작사에서 5개 시리즈(총 14개 에피소드)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방영된 에피소드인 《매듭과 십자가》에서 주인공은 켄 스텃이 연기했다. 이 배우는 영화 《호빗》에 드워프 발린으로 출연했다.

 

1편인 《매듭과 십자가》는 1987년에 출간되었으며, 가장 최근작인 19편은 2013년에 출간되었다. 범죄 수사과 형사의 은퇴 연령을 볼 때, 17번째 소설 《Exit Music》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리라 예상됐지만 이후로 2권이 더 출간되었다.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형사로 근무중인 41세의 존 리버스. 그는 특수부대 SAS의 훈련을 마쳤으나 모종의 이유로 그만두고 경찰이 되었다. 

 

사설이 긴 이유는, 이 소설이 250쪽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얘기해도 미리니름을 피할 수 없어!! 작가는 범죄소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주인공에게 복잡한 이력을 안겨주었다 한다. 수수께끼(Rebus)라는 이름처럼 존은 복잡한 인물인데 자신의 지적능력을 뻐기는 편이다. 하늘이 〈바그너의 오페라만큼이나 음산하다〉라거나, 이어지는 사건들이 〈히드라〉 같다거나-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모습들은 존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이 소설에서 느슨하게 변주되고 있다. 짧지만 흡입력이 상당했다.

 

《매듭과 십자가》는 1985년을 배경으로 한다. 디스코텍, 카세트덱, 그리고 전자문서화 같은 얘기들에선 세월의 흐름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내 에든버러의 분위기와 맞물려 아련한 복고풍이 느껴진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날씨 아래 중세 분위기를 잘 간직한 에든버러, 〈정신분열증적인〉 이 도시를 배경으로 곁들여지는 맥주와 블랙커피. 리버스 시리즈에는 스타일이 있다.

 

스코틀랜드 동부의 파이프(Fife)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찾은 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면술사가 된 동생 마이클의 집에 들르지만 형제의 관계는 데면데면하다. 마이클은 일과 가정생활 모두 성공적인 반면 존은 이혼했고, 특수부대에서 받은 훈련의 트라우마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에든버러로 돌아온 존을 기다리는 것은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 사건이다. 존에게 익명으로 전해지는 봉투에는 알 수 없는 메시지-〈단서는 사방에 널려 있다〉, 〈시간의 틈을 읽으라〉-와 매듭, 십자가가 들어 있다. 한편 마이클이 마약운반책이라는 증거를 찾아낸 기자는 존의 알 수 없는 과거와 맞물려 이 형제가 범죄에 연루되어있음을 직감하는데...

 

리버스 시리즈를 꾸준히 소개하겠다는 버티고Vertigo는 다음 작품으로 2편 《숨바꼭질》을 목록에 올려놓았다. 좋은 기획이다. 이언 랜킨은 가족과 함께 에든버러-작가 JK 롤링,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케이트 앳킨슨과 가까운 곳-에 산다고 한다. 네 작가 모두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16쪽에서 존과 마이클의 대화를 보면 〈런던에서 온 독실한 신교도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 팬〉일거라 단정하는데, 이 클럽은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곳이 아니던가?! 찾아보니 레인저스의 성향이 신교도 혹은 (북아일랜드와 영국) 통합주의자*로 여겨지는데 클럽팬끼리 이 문제를 좀 따지는 모양이다.

 

에든버러를 담아낸 영화로는 데이비드 매켄지의 《할람 포》가 있다. 제이미 벨, 소피 마일즈, 키어런 하인즈가 출연한다. 스코틀랜드에서 결성된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가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 《트레인스포팅》도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영화이지만 글래스고에서 대부분 촬영되었다.

 

 

*는 셰필드포럼을 참고.

 

-존 리버스의 재즈 테이프 중 콜먼 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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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의 서평을 읽어보니까 리버스 시리즈는 영국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네요.

에이바 2015-07-21 19:08   좋아요 0 | URL
타탄 누아르는 처음이라 빼먹었는데.. 잉글랜드랑 스코틀랜드 범죄소설이 구별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대체물이 된 장르라.. 하드보일드, 안티히어로 요소를 추가했어요.^^

북다이제스터 2015-07-2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미드, 영드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으로 읽으면 딱 좋을 듯 싶어요^^ 좋은 책 추천 넘 고맙습니다.

에이바 2015-07-21 19:56   좋아요 1 | URL
존 리버스는 재즈를 좋아한다는군요. 영상도 하나 추가해봤습니다. 존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이 끝나 있어요ㅋㅋ 영드 좋아하시면 맞으실 듯 합니다. 같은 수사물이라도 영드는 좀 다르잖아요ㅎㅎ

AgalmA 2015-07-2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작가였다면 에든버러 음악페스티벌을 어떻게든 넣었을 겁니다ㅎ
에이바님이 그런 언급을 안 하신 거 보니 이 작가 음악마니아는 아닌 듯~
왜 하드보일드쪽은 죄다 재즈 선호인가 의문....ㅎㅎ

에이바 2015-07-21 21:26   좋아요 1 | URL
차차 나오지 않을까요? 총 19권인데 설마.. 1권엔 없어요. 책을 딱 펼치고 담배연기가 흐르는 중에 재즈.. 너무 전형적인가요? 아까 프란츠 퍼디난드 노래 걸었다가 뺐어요 너무 발랄한가 싶어서 ㅋㅋㅋ

찾아보니 이언 랜킨 롤링 스톤즈 팬인가 봐요. 조이 디비전, 밴 모리슨.. 취향 나쁘지 않네요ㅎ

AgalmA 2015-07-23 00:19   좋아요 1 | URL
오~ 조이 디비전, 밴 모리슨 정도면 적당히 대중, 적당히 마니악이네요. 대개 그렇듯 종점이 재즈인 거겠죠? 이언 랜킨에게 제 무례를 사과합니다ㅎ;;
존 리버스 탐독 Go이십니까? 저는 기다렸다가 젤 재미난 거 추천해주세요! 해야지ㅎㅎ;;

AgalmA 2015-07-21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편 중에 한 번쯤은 언급되겠죠ㅎ...설마 ˝exit music˝ 라디오헤드는 아니겠죠😁;
소설에 대사만큼이나 음악 제대로 못 쓰면 정말 아니 올시다 인데...
하루키를 대중작가로 무시하지만 책 속 음악선곡에 있어 top 레벨이죠. 클래식부터 팝, 재즈.... 평론가들은 그런 걸 몰라ㅎㅎ....

에이바 2015-07-21 21:28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라디오헤드 생각했는데...ㅋ 근데 잘 썼어요. 원래 단발성으로 썼는데 묻힌 작품을 편집부가 다시 쓰라 해서 전설의 시작이 됐대요. 이 책은 이벤트로 선물받았는데 저도 드디어 시리즈물 하나 모으는군요...! 스코틀랜드여! 하루키 취향은 최고죠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