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다시 태어나지 않기로 했다 - 붓다를 만난 여인들
조민기 지음, 견동한 그림 / 조계종출판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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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신선하다! 게다가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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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십대제자 - 경전 속 꽃미남 찾기
조민기 지음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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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기다려온 책입니다.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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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여 모두 사리불이나 목건련, 마하가섭처럼 세세생생의 인연과 훌륭한 자질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특히 6군 비구라 불리는 일련의 비구들은 서로 모여 수행과는 어긋난 일을 골라하곤 했다. 이들의 행동과 그에 대한 결과로 인하여 ‘비구로써 해서는 안 될 일’들이 ‘계율’로 정해지게 되었다.

아난으로부터 발우 공양을 받다
이 6군 비구들이 어느 날 탁발에 필요한 발우를 수집하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발우는 크게 쇠로 만든 것과 옹기로 만든 것 두 종류가 있었고, 모양이며 색깔 등이 각각 조금씩 달랐다. 이 6군 비구들이 날마다 이 발우를 종류별로 모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출가자에게 사유재산이란 있을 수 없었고, 탁발과 걸식으로만 생활하는 교단에서 취미삼아 발우를 모으는 것은 수행자의 정신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비롯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을 금하는 계율을 정하셨고, 이를 어길 시에는 교단에서 내쫓도록 했다.

바로 이 시기에 아난은 지극히 귀한 소마국 발우를 구하게 되었다. 그는 이 발우를 받자 마하가섭에게 선물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마하가섭을 불러 아난이 선물한 귀한 발우를 ‘발우가 없는’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분부하셨다. 소마국 발우처럼 귀하지는 않지만 마하가섭에게는 이미 쓰고 있는 발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난으로써는 부처님의 뒤를 이을 마하가섭에게 그에 마땅한 좋은, 존귀한 발우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발우를 계기로 부처님께서는 계율의 엄격함을 공고히 알리는데 활용하셨다. 마하가섭은 두말없이 부처님의 분부에 따랐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평생 두타수행을 하며 고행과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였으니 실로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과 마하가섭의 미친 존재감
마하가섭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재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기도 하고, 부처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주지 소임을 맡기도 했지만 주로 홀로 수행하기를 좋아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을 살뜰하게 모시며 교단을 지도했고, 부처님은 몸소 많은 일들을 직접 결정하시며 교단의 화합과 계율을 만들며 기틀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마하가섭은 등장하지 않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는 베르바나(죽림정사)나 아나타핀디카(기원정사) 같이 많은 이들이 머무는 곳에 있지 않고 홀로 숲이나 무덤 사이, 나무 아래 등에서 수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가섭에 대한 부처님의 신임은 두터웠고, 사리불과 목건련은 아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부처님을 대신하여 교단을 이끌어 갈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은 부처님과 마하가섭 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리불과 목건련 역시 말하지 않아도 부처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그것을 헤아려 실천했던 것이다. 부처님이 직접 교단을 지도하시는 한, 자잘한 일에는 일체 상관을 하지 않았기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마하가섭의 말은 천금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마하가섭이 대중들이 많은 곳에 함께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감이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미친 존재감을 증명하는 일화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염화미소(拈華微笑)이다. 부처님이 설법을 듣기 위해 구름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영축산에서 모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부처님은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시니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저 뒷줄에 있던 마하가섭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미소 지으며 드디어 입을 열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이로부터 말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지극히 우아하고 신비로우며 철학적인 ‘텔레파시’를 이르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한 번의 미소로 마하가섭의 존재감은 영원불멸의 것이 되었고 이 미소로 말미암아 그는 선종(禪宗)의 시조(始祖)로도 자리매김하였다. 마하가섭의 미친 존재감을 전하는 것은 이 뿐이 아니다.


마하가섭을 향한 부처님의 사랑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교단 내에서 마하가섭의 권위를 확실하게 세워놓기 위해 하신 일들을 살펴보면 독재자가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기반을 닦아놓은 것만큼이나 효과적이다. 공공연하게 마하가섭을 편애하는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은 자애롭기 그지없으나 그만큼 절대적이다. 두타수행과 무기한 잠적이라는 마하가섭의 특기는 때로 그의 존재감을 화려하게 부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가장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으니 바로 부처님이시다.

제자와 신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경우 짝사랑하듯 부처님‘을’ 애틋하게 존경하고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마하가섭은 이 관계를 반대로 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그리하여 이런 배경이 탄생한다. 어느 때에 부처님이 못 본 지 오래 된 마하가섭이 너무나 그리워 마음으로 그를 불렀다. 이미 영축산에서도 텔레파시가 통했던 두 분이 아니던가. 마하가섭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당장에 부처님의 부름을 알아차리고는 그대로 스승을 향해 달려간다. 스승과 제자라는 사실을 빼고 보면 이런 러브스토리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그를 보고 싶어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부터가 벌써 교단에서 그의 위상이 얼마나 특별한지, 부처님이 그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부름을 받은 마하가섭은 자신의 남루한 차림새도, 길게 자란 머리와 수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부처님을 향해 달려온다. 규율에 맞춰 교단에서 단정하게 수행을 하며 규칙적으로 생활을 하던 ‘정상적인’ 비구들은 웬 걸인이 부처님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길을 막는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걸인을 향해 손짓을 하고는 그가 다가오자 앉아 계시던 자리의 반을 내준다. 마치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듯,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걸인을 맞이하는 부처님을 보면서 그때서야 비구들은 그가 ‘두타제일(頭陀第一)’로 이름 높은 마하가섭임을 깨닫는다. 얼마나 효과적인 컴백인가. 비구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는 이미 성공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더해진다.

“마하가섭은 광대무변한 위엄과 덕을 갖추었으며 나와 비슷한 수도의 과정을 거쳐 혼자서라도 충분히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느니라.”

마하가섭이 어떤 존재인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2500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이다. 이처럼 마하가섭과 부처님은 죽이 잘 맞았다. 마하가섭은 결코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서두르지 않았고 침묵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그것이 어떠한 말보다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축산에서도 미소 한 번으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마하가섭이 침묵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침묵해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침묵의 힘이 있었기에 훗날 마하가섭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말은 천금의 효과를 지닐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마하가섭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실로 사자의 포효처럼 커다란 울림이 되어 교단을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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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가섭은 아내를 데리고 돌아왔다. 하지만 교단 안에서 그녀와 함께 머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허락을 구해 근처에서 머물도록 하였다. 아직 비구니 교단이 정식으로 생기기 전이었기에 그녀는 홀로 수행을 하면서 살아갔다.


속세의 아내에게 의리를 지키다
진리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바람은 그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여전히 너무나 뛰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는 교단의 비구들은 물론 사람들로부터 갖은 모략과 중상을 받았고 탁발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마하가섭은 부처님께 말씀을 드린 뒤, 매일 자신이 탁발한 음식의 반을 그녀에게 가져다주었고, 홀로 수행을 함에 있어서 몸이 쇠약해지거나 억울한 불편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주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여인으로써 뛰어난 아름다움과 수행에 대한 곧은 심지를 지녔음에도 마하가섭의 부인이 왜 이토록이나 힘겨운 길을 걸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만약 그녀가 같은 조건을 지니되 남자의 ‘몸’을 하고 있었다면, 그토록 힘겹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10년이 넘도록 그녀와 순결한 부부이자 도반으로 살아왔던 마하가섭은 오히려 ‘출가’ 후에 발생하는 이런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세속의 잣대와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교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속가의 아내를 머무르게 하고, 매일 같이 탁발한 음식을 나눠주며 보살피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써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마하가섭은 비구들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으며 조용하면서도 당당했다. 부부로 살면서도 여인의 육체에 대한 욕망에 초탈했던 그는 지극한 마음으로 가련한 중생을 보살피거나 같은 수행자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도반을 돕는 것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마하가섭의 이런 면이야말로 출가 후 몰래 아내를 만나 관계를 갖거나, 아내를 잊지 못해 제대로 수행을 하지 못했던 다른 비구들과 확실하게 비교가 된다.

마하가섭의 아내는 부처님의 양어머니인 마하파제파티를 위시하여 석가족 여인들이 단체로 출가하여 정식으로 비구니 교단이 만들어졌을 때 곧바로 출가하였다. 비록 마하가섭은 여인의 출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비구니 교단이 만들어짐으로써 속가의 아내는 마침내 수행을 할 최고의 장소를 찾았다. 부처님은 비구니가 된 마하가섭의 아내를 위해 묘현경(妙賢經)을 설해 주시며 수행 정진할 것을 격려하셨다. 그 후 그녀는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자신의 과거 생을 모두 기억해내었고, 이로 말미암아 5백 비구니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으며 마침내는 부처님께 칭찬을 받았다.


거지 노파에게 가난을 사다
마하가섭은 누구보다 여성에 대하여 엄격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부처님께 여인의 출가를 허락받아 비구니 교단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난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는데, 경전을 보면 대립이라기보다는 거의 일방적으로 아난의 잘못을 지적한 일화들이다. 그래서 여인들과 비구니들은 마하가섭을 싫어하고 아난을 좋아하였다.

하지만 마하가섭이 모든 여인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마하가섭이 먼저 여인에게 다가간 적도 있었다. 마침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코살라국에 가서 자리를 비우시고 그에게 베르바나(죽림정사)의 주지 소임을 맡기셨을 때였다. 그때 마하가섭은 라자가하(왕사성)을 출입하면서 탁발을 할 때 가난한 집만을 골라서 다녔다. 가난한 사람들은 전생에 복을 짓지 못해 기본적인 즐거움조차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사는데, 이번 생에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복을 짓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이다. 그는 어떤 거친 음식도 가리지 않고 기꺼이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보시를 하여 복을 짓도록 도왔다.

그리고 마침내 마하가섭은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볼품없이 마르고 늙은 여자로 집도 없고 친척도 없어 날이 밝으면 사방으로 음식을 구걸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했고 날이 저물면 풀밭이나 길가에서 낙엽을 주워 모아 몸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한마디로 거지 노파였다. 굶주림이 생활인 노파는 구걸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부잣집 담벼락을 기웃거리다가 때가 되어 쌀 씻은 물이 흘러나오면 그것을 손으로 떠서 마시며 배고픔을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쌀뜨물을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노파에게 마하가섭이 다가갔다. 여인은 깜짝 놀라 몸 둘 바를 몰라 황망하게 말했다.

“나 같은 이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찌 사문께서 이곳을 오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이르시기를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 걸식을 하여 그 공덕으로 가난을 벗도록 복을 짓게 하라고 하셨기에 왔습니다.”

노파는 마하가섭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자신을 일부러 찾아온 고마움에 울었고, 그에게 보시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서글퍼 울었다.

“저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사문께 보시할 것이 없습니다.”

“보시할 마음이 있다면 이미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이미 그대로 훌륭한 옷입니다. 지금 당신이 먹고자 하는 쌀뜨물을 저에게 주신다면 제가 당신의 가난을 사겠습니다.”

노파는 마하가섭에게 정성을 다해 담벼락에서 흘러나온 쌀뜨물을 떠서 바쳤다. 노파에게 쌀뜨물을 받은 마하가섭은 맛있게 마셨다. 그 모습을 본 노파의 마음속에 기쁨이 차올랐다. 공양을 마친 마하가섭은 노파에게 부처님과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노파는 공손한 자세로 법문을 다 듣고 난 뒤,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지극한 신심으로 내어 날마다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렸다. 며칠 후, 노파는 지독한 가난과 고생으로 가득한 삶을 마치고 죽음을 맞았고 마하가섭에게 쌀뜨물을 보시하고 부처님께 귀의한 공덕으로 천상에서 태어나 복을 누리게 되었다.


마하가섭과 여인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보면 마하가섭이 모든 여자를 무조건 다 싫어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싫어한 것은 여인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뽐내고 이를 무기로 욕망을 부추기며 타락을 유도하여 안락을 추구하는 여인들의 보편적인 습성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해 낸 마하가섭의 아내, 밧다까삘라니 비구니는 몇 번에 걸쳐 태어났던 여인으로 천상에서 태어날 때나 지상에서 태어날 때나 항상 부처님께 공양을 하며 그 공덕으로 남보다 뛰어난 용모를 지닌 여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 모든 복을 누린 끝에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고통을 받는’ 몸으로 태어났다. 한편 가난하기 짝이 없는 노파는 처음으로 복을 지어 천상에서 여인으로 태어났다. 건강함과 젊음,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그녀는 여인으로써의 온갖 즐거움을 실컷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즐거움이 다한 뒤에, 그녀는 어떤 생을 받게 될까.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다.

마하가섭의 아내와 가난한 노파를 떠올릴 때면 결코 ‘천상’이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복의 전부가 아님을, 결코 ‘아름다움’이 여인이 지닐 수 있는 복의 전부가 아님을 새삼 느낀다. 아마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하가섭은 전생에 수행자가 되기를 서원하고 ‘두타(頭陀)’라는 수행방법을 미리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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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만나서 예배를 드렸을 때 마하가섭이 했던 말이 다소 과장이라고 느낀 사람은 부처님의 대답에 더욱 놀랄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마하가섭보다 훨씬 강하다.

“아는 척 하거나 본 척 하는 거짓된 사람이 그대처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예배를 받는다면 그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깨어질 것이다. 나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보지 못했으면서 본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아라, 그대의 예배를 받고도 터럭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았기에 알고 본다고 말하는 나는 그대의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다.”

부처님의 말씀에 마하가섭이 얼마나 기뻐했을 지를 생각하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남자라고 하더라도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부처님과의 은밀한 만남과 8일간의 시간 그리고 깨달음
부처님은 마하가섭과의 만나서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에도 다른 수많은 제자들이 기다리는 교단으로 곧바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마치 평생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만나 둘만의 밀월여행을 떠난 것처럼 부처님은 마하가섭은 8일 동안 오로지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냈다. 마하가섭과 만나기 전, 부처님은 몰래 교단을 빠져나오셨기 때문에 아무도 부처님이 계신 곳을 몰랐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목건련이 신통력을 발휘했다면 알아낼 수 있었겠지만 아마 알았더라고 그는 질투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을 믿음직한 제자였다. 그렇게 천명이 넘는 제자들은 알지 못하는, 의발제자와 부처님 사이의 ‘신비주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부처님은 깨달은 자였고 마하가섭은 곧 깨달을 자였다. 부처님은 철저하게 1:1 개인지도로 마하가섭에게 사성제와 12연기법을 가르쳤다. 마하가섭은 가르치는 족족 마른 논에 비가 스며들 듯이 흡수했다. 진리의 가르침에 목이 말랐던 마하가섭의 성취는 빨랐다. 부처님은 압도적으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마하가섭에게 그가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교만을 하나하나 말씀하시며 그것을 남김없이 버리도록 섬세하게 이끌어주셨고, 출중한 외모와 몸매에 대한 자신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낱낱의 신체부위를 각각 관찰하며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실상을 파악하도록 가르쳐주셨다.
두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완전히 달랐다. 어제의 마하가섭은 오늘의 마하가섭이 아니었고, 오늘의 마하가섭은 내일의 마하가섭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섭은 부처님과 만난 지 8일 만에 번뇌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과 가사를 교환하다
그렇게 행복한 8일간의 시간을 마친 후, 두 아라한은 함께 라자가하(왕사성)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따가운 햇살을 피해 들어간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에 앉기 전, 마하가섭은 얼른 가사를 벗어 네 겹으로 접은 뒤 부처님이 그 위에 앉으시도록 했다. 지긋한 미소를 지으며 마하가섭을 바라보던 부처님께서는 자리에 앉아 그의 가사를 만지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가사가 참으로 부드럽구나.”

부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마하가섭은 가사를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입고 계시던 분소의(묘지에서 버려진 헝겊들을 기워서 만든 옷) 가사를 청했다.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셨다. ‘부처님이 직접 입으셨던 가사’를 받음으로써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뒤를 이을 존재라는 확실한 물증을 얻었다. 이것이 최초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가사’는 스님들 사이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를 증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부부에게 있어 결혼반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스님들에게 ‘가사’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상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만남은 그 어떤 뜨거운 사랑을 가진 연인과 부부보다 훨씬 극적인 부분이 많다. 한창 나이의 젊고 잘 생긴 두 남자의 첫 만남부터 둘만이 함께한 8일 동안의 시간 그리고 서로의 가사를 교환하기까지 출가한 수행자이자 아라한이 아니라면 오해를 사기도 쉬울 것이다. 하지만 꿈결 같고 달콤한 만남 이후, 마하가섭은 다른 제자들처럼 항상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지 않고 홀로 수행을 하는 것을 즐겼다. 마하가섭은 기약 없이 수행을 위해 떠났다가 부처님께 돌아왔고, 그때마다 부처님은 그가 어떤 몰골을 하고 있어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실 정도로 환영을 하셨다.


아름다워서 슬픈 여인, 마하가섭의 아내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지 1년, 부처님이 성도하신지 3년째 되던 해 부처님은 속세의 부친인 숫도다나왕(정반왕)의 간곡한 뜻에 따라 고향 카필라성으로 향했다. 부처님은 속세에 많은 가족들이 있었던 반면, 외동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자식도 없고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 출가를 한 마하가섭에게는 단 한 명의 가족, 아내밖에 없었다. 부부의 인연은 시작도 끝도 없었지만, ‘결혼’이라는 공동의 방해물 앞에서 수행이라는 같은 꿈을 바라보며 공부했던 두 사람에게는 ‘도반’으로써의 강한 정이 있었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속세의 가족을 만나는 것을 보자 문득 출가 전, 좋은 스승을 만나면 데리러 올 테니 그때 함께 수행자가 되기로 했던 아내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집안을 돌보고 있을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마하가섭은 재산도 처분하고 함께 수행자가 되길 약속했던 아내의 사는 모습도 보고 오겠다고 부처님께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은 뒤 고향으로 향했다. 부처님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하시며 빨리 돌아오라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함께 있어도 참으로 애틋한 스승과 제자이다.

고향에 도착한 마하가섭은 몇 년 동안이나 그의 소식이 없자 아내가 기다리다 못해 재산을 처분하여 친척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출가를 했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좋은 스승을 만나서 큰 성취를 이룬 마하가섭은 그 동안 수행자가 되기를 꿈꾸던 아내를 찾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내가 출가 후 자신처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하가섭은 물어물어 그녀가 제자로 있는 한 외도의 무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가는 길에 들어보니 아내가 있는 곳은 발가벗고 사는 외도의 무리로써 그녀는 젊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온갖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가서 보니 겉모습만 수행자인 그들은 수행을 핑계 삼아 젊고 아름다운 마하가섭의 아내에게 온갖 수모를 안겨주고 있었고, 아내는 ‘수행’이라는 꿈을 위해 수치와 괴로움을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하가섭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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