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만나서 예배를 드렸을 때 마하가섭이 했던 말이 다소 과장이라고 느낀 사람은 부처님의 대답에 더욱 놀랄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마하가섭보다 훨씬 강하다.

“아는 척 하거나 본 척 하는 거짓된 사람이 그대처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예배를 받는다면 그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깨어질 것이다. 나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보지 못했으면서 본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아라, 그대의 예배를 받고도 터럭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았기에 알고 본다고 말하는 나는 그대의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다.”

부처님의 말씀에 마하가섭이 얼마나 기뻐했을 지를 생각하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남자라고 하더라도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부처님과의 은밀한 만남과 8일간의 시간 그리고 깨달음
부처님은 마하가섭과의 만나서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에도 다른 수많은 제자들이 기다리는 교단으로 곧바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마치 평생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만나 둘만의 밀월여행을 떠난 것처럼 부처님은 마하가섭은 8일 동안 오로지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냈다. 마하가섭과 만나기 전, 부처님은 몰래 교단을 빠져나오셨기 때문에 아무도 부처님이 계신 곳을 몰랐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목건련이 신통력을 발휘했다면 알아낼 수 있었겠지만 아마 알았더라고 그는 질투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을 믿음직한 제자였다. 그렇게 천명이 넘는 제자들은 알지 못하는, 의발제자와 부처님 사이의 ‘신비주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부처님은 깨달은 자였고 마하가섭은 곧 깨달을 자였다. 부처님은 철저하게 1:1 개인지도로 마하가섭에게 사성제와 12연기법을 가르쳤다. 마하가섭은 가르치는 족족 마른 논에 비가 스며들 듯이 흡수했다. 진리의 가르침에 목이 말랐던 마하가섭의 성취는 빨랐다. 부처님은 압도적으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마하가섭에게 그가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교만을 하나하나 말씀하시며 그것을 남김없이 버리도록 섬세하게 이끌어주셨고, 출중한 외모와 몸매에 대한 자신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낱낱의 신체부위를 각각 관찰하며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실상을 파악하도록 가르쳐주셨다.
두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완전히 달랐다. 어제의 마하가섭은 오늘의 마하가섭이 아니었고, 오늘의 마하가섭은 내일의 마하가섭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섭은 부처님과 만난 지 8일 만에 번뇌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과 가사를 교환하다
그렇게 행복한 8일간의 시간을 마친 후, 두 아라한은 함께 라자가하(왕사성)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따가운 햇살을 피해 들어간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에 앉기 전, 마하가섭은 얼른 가사를 벗어 네 겹으로 접은 뒤 부처님이 그 위에 앉으시도록 했다. 지긋한 미소를 지으며 마하가섭을 바라보던 부처님께서는 자리에 앉아 그의 가사를 만지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가사가 참으로 부드럽구나.”

부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마하가섭은 가사를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입고 계시던 분소의(묘지에서 버려진 헝겊들을 기워서 만든 옷) 가사를 청했다.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셨다. ‘부처님이 직접 입으셨던 가사’를 받음으로써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뒤를 이을 존재라는 확실한 물증을 얻었다. 이것이 최초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가사’는 스님들 사이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를 증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부부에게 있어 결혼반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스님들에게 ‘가사’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상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만남은 그 어떤 뜨거운 사랑을 가진 연인과 부부보다 훨씬 극적인 부분이 많다. 한창 나이의 젊고 잘 생긴 두 남자의 첫 만남부터 둘만이 함께한 8일 동안의 시간 그리고 서로의 가사를 교환하기까지 출가한 수행자이자 아라한이 아니라면 오해를 사기도 쉬울 것이다. 하지만 꿈결 같고 달콤한 만남 이후, 마하가섭은 다른 제자들처럼 항상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지 않고 홀로 수행을 하는 것을 즐겼다. 마하가섭은 기약 없이 수행을 위해 떠났다가 부처님께 돌아왔고, 그때마다 부처님은 그가 어떤 몰골을 하고 있어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실 정도로 환영을 하셨다.


아름다워서 슬픈 여인, 마하가섭의 아내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지 1년, 부처님이 성도하신지 3년째 되던 해 부처님은 속세의 부친인 숫도다나왕(정반왕)의 간곡한 뜻에 따라 고향 카필라성으로 향했다. 부처님은 속세에 많은 가족들이 있었던 반면, 외동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자식도 없고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 출가를 한 마하가섭에게는 단 한 명의 가족, 아내밖에 없었다. 부부의 인연은 시작도 끝도 없었지만, ‘결혼’이라는 공동의 방해물 앞에서 수행이라는 같은 꿈을 바라보며 공부했던 두 사람에게는 ‘도반’으로써의 강한 정이 있었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속세의 가족을 만나는 것을 보자 문득 출가 전, 좋은 스승을 만나면 데리러 올 테니 그때 함께 수행자가 되기로 했던 아내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집안을 돌보고 있을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마하가섭은 재산도 처분하고 함께 수행자가 되길 약속했던 아내의 사는 모습도 보고 오겠다고 부처님께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은 뒤 고향으로 향했다. 부처님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하시며 빨리 돌아오라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함께 있어도 참으로 애틋한 스승과 제자이다.

고향에 도착한 마하가섭은 몇 년 동안이나 그의 소식이 없자 아내가 기다리다 못해 재산을 처분하여 친척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출가를 했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좋은 스승을 만나서 큰 성취를 이룬 마하가섭은 그 동안 수행자가 되기를 꿈꾸던 아내를 찾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내가 출가 후 자신처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하가섭은 물어물어 그녀가 제자로 있는 한 외도의 무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가는 길에 들어보니 아내가 있는 곳은 발가벗고 사는 외도의 무리로써 그녀는 젊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온갖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가서 보니 겉모습만 수행자인 그들은 수행을 핑계 삼아 젊고 아름다운 마하가섭의 아내에게 온갖 수모를 안겨주고 있었고, 아내는 ‘수행’이라는 꿈을 위해 수치와 괴로움을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하가섭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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