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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경제학자라면 - 고장 난 세상에 필요한 15가지 질문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이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개발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경제에 대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경제학이라면 거시, 미시, 국제, 화폐금융론, 재정 등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특히, 직관적인 의사결정 분야가 아닌 거시경제학은 전체적인 이해를 얻으려면 한참을 고생해야 하는 고약한 과목이다.
한동안 대중을 위한 경제학은 의사결정 중심의 미시경제학, 심리학적 접근을 중요시 하는 행동경제학을 중심으로 유행이 흘러왔다. 그런데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개인의 선택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제학만 알고 있다면, 경제학의 반만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가 글로벌화 하면서 한 지역과 국가의 경제위기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이야말로 경제적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 거시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 안에 등장한 가상 독자와 저자 자신이 분명한 경제학자의 대화로 구성된 이 책은 고전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교육 방식이 대화법을 통해 흐르듯이 질문과 답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교하게 디자인 된 질문과 대답들을 따라가다 보니 거시경제 과외수업을 받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대중을 위한 경제학의 백미는 역시 적당한 사례와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쉬운 단계까지 내려갔다 한걸음씩 올라오는 설명 방식이다. 여기에서 저자 팀 하포드는 말콤 글래드웰이나 스티븐 래빗에 뒤지지 않는 천부적 재능을 보여준다. 만약 오래돼 먹을 수 없는 초콜릿 동전을 땅에 묻은 뒤에 다른 사람을 시켜 다시 파내게 한다면 경제에 도움이 될까, 만약 수백만 파운드의 지폐를 태워버린다면 인플레이션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왜 포로수용소에서도 경기침체가 존재할까, 왜 코카콜라는 70년간 같은 가격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을까, 바다 속에 빠져버려 아예 보이지도 않는 돌 화폐 '라이'가 왜 좋은 화폐였을까, 어떻게 헨리 포드의 '일당 5달러’가 새로운 형태의 실업을 만들어냈을까, GNP와 국민행복지수가 말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등 지적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풍부한 사례와 회뜨는 듯한 설명으로 거시경제의 여러 논점을 대중적 눈높이에서 그래프 하나 없이 술술 풀어냈다.
저자는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 간 관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1970년대 미국 워싱턴 D.C.에 있었던 탁아조합 사례를 든다. 폴 크루그먼의 저작을 통해서 이미 유명해진 사례다. 이 조합은 의회 직원들끼리 아이를 돌봐주는 품앗이를 위한 것으로, 조합 가입 때 화폐 기능을 하는 40장의 증서를 받는데 증서 한 장을 내면 30분간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문제는 모두가 급할 때 쓰려고 증서를 모으려 한다는 데 있었다. 탁아 수요가 줄자 조합은 불황을 맞았다.
고전학파의 처방은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아이를 맡기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케인스학파는 뜻밖에 단순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10시간을 쓸 수 있는 증서 20장씩을 더 나눠주는 것이었다. 실제 경제라면 통화량을 50% 늘린 것이다. 조합원 간의 거래는 살아났다. 수요가 부족해 생긴 불황에 정부가 씀씀이를 늘리고 중앙은행이 돈을 더 풀어 대처하는 케인스식 처방의 미니 케이스다.
케인지안인 폴 크루그먼은 이 사례를 들며 ‘수요를 불러일으켜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라고 외쳤지만 탁아조합 스토리의 결말을 보여주진 않았다. 실제에서는 조합이 찍어낸 증서가 넘치게 되자 이제는 아무도 집 안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아이를 맡아줄 손이 부족해졌다. 통화량이 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 거시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케인스식 처방의 약발이 듣는다. 수요 부족 문제는 지혜로운 경제 운용자들이 현명하게 대응하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느 경제든 재화와 서비스 공급 능력에 따라 산출이 결정되는 것이다.
늘 어려운 얘기를 쉽게 쓰는 능력을 동경해왔다. 팀 하포드가 부럽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