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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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학이란 과목이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수학을 싫어하고 내가 죽어라! 싫어하는 역사과목을 좋아하는겁니다. --- 그때.로부터 하 세월이 흘러 아빠가 된 이제, 역사라는 것에 적잖은 흥미를 가지게되었더만 이번엔 제 아들녀석의 한국사가 대부분인듯 보이는 5학년 사회과목의 성적이 제일루 좋지 않더군요. : 중고딩 시절에 왜 역사과목들을 싫어했었던지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연도를 외워야하고, 한두 끗 차이로 비슷비슷한 이름들의 온갖 전쟁이나 혁명의 이름들, 혹은 책들의 제목들을 깔끔하게 구분해 외워야하는 게 싫어서였었겠지요. (그 창대!한 방점.은 고등학교때 교련 선생님이 찍어주셨었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교련 시험문제들 : '이순신 장군은 몇 살때 돌아가셨나','OO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격침시켰던 일본 전함의 숫자는?' --- 농담 아닙니다. 진짜에요. 선생님께서 주관식 문제는 무조건 숫자로 답쓰는 거니까 시험범위에 나오는 숫자란 숫자는 다 외우라 하셨었지만 설마... 이런 게 나오리라고는. --;;)

 

수학과목을 좋아하는 데에 굳이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명확하고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하는 건 아닙니다. 역사를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뭐 그냥.'이란 간단한 세 글자도 충분히 합당한 이유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이걸... 다른 곳에도 한번 적용시켜 볼까?로 가게되면 그 세 글자만으로 대답하기엔 참... --;;

 

 

기대에 많이 못미쳤던 「나는 아버지입니다」를 읽고 나서 이제는 '모성애'에 관한 소설을 읽어보려 했었습니다...만, 마침 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의 표지를 가지고 있던 「소울케이지」에 대한 이웃분의 감상문이 올라와 읽어보니... 이 책도 '부성애'에 관한 책이라더군요. 그래... 서 한번 더!

 

 

………………… 

  

처음 읽어본, 저와 동갑인, 게다가 대학에서의 전공도 경제학으로 똑같은 혼다 테쓰야의 작품은 아... 초반엔 적응하기 꽤나 어렵더군요. 등장 인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다다가 그 이름들도 어찌나 일본스럽던지요. 암튼! 복잡한 스토리이긴한데 이게 또... 간단하게 요약하려한다면 또 무지하게 간단하게 표현될 수도 있는 줄거리이기도 한겁니다. 간단하게 말해 '세상 모든 짐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가겠다. 그러니 남아있는 자여, 부디/꼭 잘 살아다오!'쯤 된다고나 할까요?

 

수사 스타일이 매우 상반된, 직감을 중시하는 레이코라는 경찰과 오로지 증거에만 기초한 수사를 고집하는 쿠사카라는 경찰이 각자의 방법대로 한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나가고, 그러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결론에 도달하여 결국엔 진짜 범인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제까지 읽어본 추리소설들과 비교해 뭐 등장인물들이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이 그리 새롭다거나 대단하다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소설에서 정작 주목해서 보아야할 점은 바로!!! 범인의 범죄수법, 그리고 그보다는 그가 왜 그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가하는 그 '이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상황을...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었다면 과연?'의 의문으로 가져가보면,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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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살의를 품고 사는 죄를 짓고 있다. 자신을 범한 남자를 직접 죽이고 싶다, 자신의 부하를 죽인 남자를 없애버리고 싶다. 그러한 살의가 마음속 어딘가에 늘 존재했다."

 

시리즈의 소설을 그 첫번째부터 읽지 않았다는 단점(?)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졌었습니다만, 그러하기에 그 자세한 전후 사정까지는 알지 못한다하더라도... 주인공격인 레이코 형사의 위 독백은 한참동안을 위 문장 다음에서 저를 멈춰있게 해주었었습니다. 중간 연한 색 부분만 각자의 사정에 맞춰 바꿔버린다면, '살의'까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향한 '아. 정말 미워 죽겠어!' 혹은 '그 사람만 없었더라면!!!'같은 감정은 조금씩이나마 다들 한때/지금도 가지고 있었을테니까요. 

 

자세한 내용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주 오래전에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No Way Out>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관객이 보기에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는 그야말로 'No way out'의 상황에 쳐해지게 됩니다만,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문자 그대로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보다 훨씬 더 강력(?)한 'No way out'의 상황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 안쪽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었음을 말해주지죠. ------ "나는 A가 진짜 밉다. 도대체 그 A는 뭔 이유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건지 모르겠어. 그 A만 없다면!!! 내 생활은 훨씬 더 찬란해질 수 있을텐데." 아무리 친한 친구, 심지어는 내 가족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해서 곧바로 저까지 그 A를 미워하게되지는 않을겁니다. 일단 말하는 상대가 도대체 왜 A를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그 A가 이전에 어떠한 짓들을 했었었는지... 등등을 먼저 들어보고난 후에라야 그의 말에 동의를 하던 반박을 하던 하는게 순서이겠죠. 근데 말입니다... 사람이란게, 막상/정작 그 상황에 진짜.로 처해보지 않는 한에는 말만 들어서는 말하는 사람과 똑같은 감정이 생기지는 않는다.라는 거... 그걸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난 정말 미칠 것만 같아서 A를 경찰에 신고했는데, 정작 경찰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경찰서에까지 오느냐라며 되돌려 보냅니다. 이렇게 소위 '최후의 보루'라 불리우는 공권력에마저도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시킬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뭐 그냥'이라는 이유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 될 뿐인, 그런 'No way out' 의 상황에 직면하게되었을 때 그렇다면 과연 나의 선택은 어찌되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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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옮긴이는 이 책을 <서툰 부성이 빚은 슬픈 이야기>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 전 <타인에게 이해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없이 이런 식으로밖엔 해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만의 마무리>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의 입장이 실제로 되어보지 않고서는 내가 당췌 왜 A를 그토록 미워하는 건지를, '뭐 그냥'은 아닌거지만 또한 '뭐 그냥'으로 밖엔 표현해낼 수 없는 미움을, 내가 왜 A와의 문제를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수 밖엔 없는지를... 이제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남은 여지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걸까요?  

 

 

………………… 

 

  

범인을 검거한 후... 레이코 형사가 쿠사카 형사에게 묻습니다. '아들이 있는 동년배의 아버지'로서 범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자신의 감정을 수사에 개입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쿠사카 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동정도 하고 이해도 하지만 공감은 안 간다고 말해야겠지. …… (어떤 점이 공감할 수 없는거냐 묻는 레이코의 다음 질문에) ……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는 법이지. 자식은 보지 않는 듯해도 은근히 부모의 모습을 보는 법이야. 따라서 자식에게 해명하지 못하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 행동은 자식이 옆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지 말아야겠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면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자식에게 자립하는 생활 태도를 갖게 하려면 우선 자신이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

 

 

………………… 

 

 

동정도 하고 이해도 되고, 그리고! 공감도 됩니다. 저는 말이죠. (이걸 실제 행동에 옮길 수도 있느냐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구요.) --- 왜.였을까요?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손의 주인공... 그가 정말 코스케,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키미에 (그리고 소설의 내용상 밝힐 수 없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인물)등을 위해 죽었던 것일까요? 제 생각엔... 그는 자신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에서 '부성애'라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쩌면 겉으로만 드러난 것일 뿐, 살인이라는 결과로 얻어지게 될 부수적인 것일뿐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밖엔 없었었지요. 살인의 가장 주된 원인은 'A가 너무 미웠기 때문'이었던 것이고, 'A를 죽임'으로써 나도 그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일종의) 선물을 줄 수도 있다는 부수적 산물까지도 얻어지게 된다는 살인범의 심정... 그것을 격하게 동정하게도, 이해하게도 그러하기에 공감까지도 되었던... 그런 좀 복잡한 이야기였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 「제7일」, 「인생」 속의 아버지들. 그리고 「소금」속의 아버지들. 또한 「나는 아버지입니다」의 아버지. --- 그 아버지들의 '희생'과 이 소설 속 범인의 '희생'이 과연 결국에는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은 '희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라 말해도 되는 것일지... 소설의 재미를 떠나 꽤나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참 무거운 생각을 해보게 된 책이었네요. 과연... 저는 제 아들을 위해 '희생'이라는 단어로 어떤 수준까지 상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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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입니다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물고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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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특별한 계기가 있어 그때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고 그렇게 이후의 생활이 (물론 더 나은 방향으로)바뀌게 된다라는 건 분명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거꾸로 보면 그 이전까지 흘러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또한 진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거겠지요. 종원군이 태어나 자라가면서 내 아이가 몰고 다니는 전동자동차를 꼭 하나 사주고 싶었습니다만, 유치원에 다닐 때 즈음엔 그에게 마음놓고 자전거를 타게해주고도 싶었습니다만... 그때 살고 있었던 아파트에는 딱히 마음놓고 아이에게 전동자동차를 몰게 하거나 자전거를 타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질 않더군요.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아! 그때 만일 여기같은 곳에 살 수만 있었었다면 그렇게 사주고 싶었던 전동자동차를 사주어도 되었을텐데, 막 자전거를 배웠을 때 더 많이 타게해줄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겁니다. '어쩌겠어. 이미 지난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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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들에 의해 만들어지다'쯤으로 요약될 수 있을 「도키오」, '아버지의 부재를 겪어야했던 소년의 성장기'였던 「네 번째 빙하기」... 에 이어지는 꼬무책으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듯 보이던) 이 책 「나는 아버지입니다」를 골랐습니다. 아버지 딕 호이트와 그의 아들 릭 호이트가 살아온 지난했을 삶의 굴곡에 비해 책의 내용 자체는 매우 간단하더군요. 출산 당시 탯줄이 목을 감고 있었던 탓에 뇌에 산소공급이 원활치않아 결국 뇌성마비가 된 릭, 모든 의사들이 그를 포기하라 했지만 반드시 릭을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겠다는 아버지 딕과 어머니 주디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어느 날 우연한 계기를 통해 "아빠, 달리기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 전 아빠와 달리고 싶어요."라는 메세지를 아버지 딕에게 전한 릭. 아빠와 함께 달리고 싶다는 아들의 그 소망을 결국 이루어주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 그리고 철인3종경기, 마지막으로 미국 대륙 횡단까지를 함께 한 아버지와 아들의 (진부한 표현이지만 웬지 이렇게만 써야할 듯한)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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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거나 거부되는 수많은 기회를 릭은 쟁취했다. 우리는 거부와 저항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실망하기는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결책이 나오는 법이다. …… 릭의 웃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은 우리의 앞길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단지 인생이라는 도로에 놓인 과속 방지턱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은 우리의 앞길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단지 인생이라는 도로에 놓인 과속 방지턱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제가 참!으로 좋아하지 않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표현이긴합니다만, 이 문구가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첫 아이인 릭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 부부는 '하필이면 왜 우리인가? 우리는 전혀 잘못한 게 없는데'라 탄식합니다만 이내 곧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이런 다짐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부모라면 그 누구든 할, 저 또한 매일매일 반복하며 하고있는 다짐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데...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는 제 아이를 보며, 이 책의 아버지는 그러한 다짐을 실제의 행동으로 옮겨 살아왔지만 전... 그저 내 아이가 태어난 이후 12년간을 그저 내내 다짐.만 하며 살아왔었구나라 고백할 수밖엔 없더군요.

 

내 아이가 전동 자동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 맘놓고 자전거를 타도록 해 줄 공간이 없었던 게 아니었던겁니다. 차를 타고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가면 넓디넓은 공원이 있었음에도,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심지어 잔디까지 깔려있는 훌륭한 공원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전 이제까지 그저 '다짐'만 했었고, 그 다짐을 실제로 이행하지 못했었던 것에 후회했었고, 또 다시 '다짐'을 했고... 그리고 또 후회했고, 그렇게 하루, 일주, 한달의 세월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아들은 열세 살의 나이가 되어있는 겁니다. 종원군은 나름 열심히 '건강하고 착하고, 아빠와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오기위해 노력해왔고 실제로 그런 아들이 되어주었건만 이 아빠는... 여전히 반복되는 '다짐과 후회'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거죠. 

 

주말에 아빠와 야구했으면 좋겠어요!란 녀석의 소원에 이제껏 보내왔던 수많은 주말들 중 도대체 몇 번이나 같이 야구 해주었던가, 우리 가족 다 같이 영화보고 싶어요!란 소망에도 엄마와 아이만 들여보내고 이 아빠는 혼자 사람 죽이고하는 영화를 봤었던 건 또 얼마나 많았던지, 크리스마스 날에조차도 '같이 책 읽자!'라며 데려간 곳에서 좀 쑤셔 죽을라하는 아이에게 '넌 오래 앉아있는 훈련을 좀 해야해!'라는 타이밍 죽여주는 훈계를 했던 아빠였었으며, 바람쐬러 나가자 한껏 기분 들뜨게해놓고는 결국 파주에 있는 북카페로 데려가 숙제 먼저하고 그 다음엔 책 읽으라고, 그거 다하면 게임해도 된다고 말했던... 그 많고 많고, 또한 지나간 날들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얼마나 미안하게 느껴지던지요.

 

제 아이는 건강합니다. 또한 운동하는 걸 무척 좋아하기도 합니다. 딕의 아들은 건강하지는 않았으나 제 아이처럼 운동하는 걸 좋아했더군요. 딕은 자신의 아들이 건강하지 않았기에 그 아들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기꺼이 '아들에게 팔다리를 빌려 주는 존재'가 되주었습니다만, 건강한 아들 종원군의 아버지인 저는 그 아이에게 '너는 건강하니까'란 핑계로 제 팔다리를 빌려주길 꺼려하며 살아왔었던겁니다.

 

 

이 책 속의 아버지와 아들은 분명 저와는 다른 아버지이고, 종원군과도 다른 아들입니다만 이렇게... 저에게 아직은 늦지않았.을 수도 있는 가르침을 주더군요. 이 책 속의 아버지와 아들은 "아버지 고마워요,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는 할 수 없었어요. …… 아들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다."라는 대화를 나눕니다만, 저와 종원군은 하시라도 야구 글러브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자전거 끌고 아무곳이나 갈 수도 있는 그런 아빠와 아들임에도 '오늘만 봐줄께. 대신 딱 한 시간만 게임/TV시청하는거다.'란 일방적 지시만이 있어왔었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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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슬픔, 괴로움, 고독이 무엇인지... 웃음, 행복, 즐거움, 사랑이 무엇인지... 위로가 무엇인지, 돌아봄이 무엇인지, 돌봄이 무엇인지 알고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가난해 보아서, 상처받아 보아서, 아파 보아서 알았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속상하고, 괴롭고, 외롭고, 서럽고, 지치고, 두렵고, 피하고 싶고, 원망하고 싶은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위로를 보았고, 사랑을 보았습니다. 순간마다 다가오는 따듯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010년 11월 21일 아내의 일기 중에서

「아빠는 목사! 아들은 동자승?」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책을 읽었을 때에도 '없어지고 나서야 알게되는' 소중함에 대해 느꼈었더랬습니다만, 지금까지 예의 반복되어온 제 '다짐과 후회'를 바꾸어놓지는 못했네요. 언제까지나 내 아들이 아빠와 야구를 함께 하고싶어할른지 모르겠습니다. 또 머지않으면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기보다는 여자친구와 영화보기를 더 원하게도 되겠지요. 이젠 정말! 다시 '다짐하고 또 후회'만 하기에는,  '어쩌겠어. 이미 지난 일인데...'라는 억지위로를 하기에도  더 이상은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않아 보이기도 하네요. 오늘부터 시작하는 녀석의 봄방학.엔... 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지난 12년간 이어져왔던 '다짐과 후회'의 반복을 끊어봐야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늙었을 때 제 아들이 저와 같이 놀아줄 것.도 같고.

 

헌데... 뭔가 감동적이었다라 써야할 듯한 책을 읽고난 독서후 감상문이 제가 쓰니 뭔 반성문의 분위기가 되버렸네요. --;;

(사실 딱히 감동적.이라 쓰기도 뭣하긴하네요. 이런 류의 감동은 TV나 신문에 이미 넘쳐나지않나요?)

 

 

 

★ More "Food for Thought"  

 - 박송주 著,아빠는 목사! 아들은 동자승?: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란 표현은 이럴 때 써야 진부함을 벗어날 수도, 또한 그 진정한 가치를 말해줄 수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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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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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제가 가장 오랜 기간동안 배웠던 학문인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모든 지식은 결국 'feasiblility(실현가능성)와 affordability(획득가능성)'의 반경 이내에 국한되어 있는, 즉 우리의 삶은 그 누구에게든 이 두 가지의 범위내에서 고민되어야한다라 말하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수 천억원대의 상속재산을 내 아들에게 가급적 세금을 덜 내며 물려주는 것에 관한 고민은 (아쉽게도) 제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다행스럽게도) 그 극단적 반대의 경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쪽 모두에 대해서는 신경 꺼도된다! 이러했던 저의 생각이 헌데 말이죠... 이 세상.이란 곳에서 '마흔 여섯'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살아와보니 썰물이 조금씩 밀려들어오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 새 갯벌 모두를 덮어버리고 있는 바닷물처럼 그렇게 제 생각이... 요즈음 들어 바뀌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역사'에의 관심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뒤늦은 나이에 제게 생겨났었을 수도, '진화론'이란 것에 대한 흥미도, 소설이라는 분야의 책을 읽게 된 것도 모두 다... 그렇게 인생이라는 게 반드시 나에게 주어진 feasibility와 내가 가지고 있는 affordability의 범위 이내에서만의 고민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생겨난 새로운 자각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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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주제의 책을 한 권 더 골라봤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소문」, 그리고 「타임 슬립」이라는 작품을 통해 (아직은 이런 걸 만들 짬밥은 아닌듯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려져있는 바로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 「네 번째 빙하기」. (책의 앞이나 뒤에 적혀 있는 간단한 소개글들을 보고 책을 펼치곤 하는데, 이 책은 아마... 그런 도움이 없었더라면 딱! 진화론이나 생물학 관련 소설이라 여겼을꺼에요. ^^;;)  

 

이 책은 아버지 없이 자란 한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제가 아이였을 때 저에게는 아버지가 계셨었고, 지금 나의 아이도 저라는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니 왜 내가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며 살아온, 내 아이가 경험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 예전에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었을겁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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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하고도 11개월을 살아온 와타루라는 소년이 되돌아본 그의 이제까지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성장 소설'이라 불리우기에 매우 전형적인 그런 에피소드들의 연속이지요. 위화의 「인생」과는 또 다른 묘사로 그려지고 있는 남자 아이의 몽정! 스토리, 그리고 첫 키스!!!... 뭐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만 무엇!보다... 이 소설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의 심정을 아시는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마치 몸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주인공 와타루의 고백, 그리고 그 뻥 뚫린 구멍을 주인공이 어떻게 결국 메꾸어 나가게되는가에 관한 기나긴 이야기라 소개하는 게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의 심정을 아시는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마치 몸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다. …… 아버지. 내 몸에 늘 뚫려 있는 구멍 하나. 이제 곧 열네 살이 되는 지금도 그 구멍은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이 동굴보다 크다. …… 고등학생이 되서부터는 중학교 때 밝혀 낸 자신의 출생비밀을 웃어 넘기려고 했다. 어린애 같은 공상이라고. 그렇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추론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진짜로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고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생각해 온 일이다. 이제 와서 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곤란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사실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내용물을 선택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고 가다가 버릴 수도 없는 짐. 때로 그것이 복주머니가 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 엄마가 죽은 뒤,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간 와타루 …… "우 미야 온 스위 - 나는 그의 아들입니다." 일본어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 자신의 아버지라 믿었었던 아이스 맨이 안치되어 있는 박물관에 간 와타루 …… 나는 오랫동안 당신을 아버지라 생각하며 살았어요. 아버지가 필요했건든요, 꼭.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를 가지고 싶었어요.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얼굴이라도 알고 싶었어요. 자신이 누군가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어요. 늘 찬바람이 통과하는, 몸에 뻥 뚫린 구멍에 끼워 넣은 퍼즐 조각이 필요했어요. 그렇지만 이젠 괜찮아요. 구멍은 메워졌거든요. 지금까지 정말 고마왔어요 

 

'도대체 이게 뭐야?'라 생각하시기를 바라며 요약해 본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해 알려드리기 보다는 이렇게 함으로써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 소설을 한번 좀 읽어봐야겠어!라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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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른 두살때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에 대해 여.전.히. 그 분이 내 곁에 계셔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제 마음 한 가운데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아이에게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아버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어린 의문 - 저의 생물학적 수명에 관한 의문뿐 아니라, 제 아이가 갖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미지가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을 수는 없지않겠나하는 의미도 포함된 - 또한 어느 새 초등학교 6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는 종원군의 성장, 그리고 그와 비례해 육체의 산화가 쉬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저를 느끼게 될 때, 그때마다마다... 그 가장자리를 메꾸어 가고 있기도 하지요.  

 

옛... 어느 드라마 속 주인공의 독백을 빌자면, 저 또한 '아버지라는 역할을 난생 처음.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기에'라는 말로써 그 역할에 대한 미숙했었음을 변명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헌데... 이 소설 「네 번째 빙하기」를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역할',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본 '아버지'라는 존재의 필요... 는 현재 '아버지'가 되어있는 제가 그러한 변명들을 감히 내뱉을 수 없는 것임을, '아버지'라는 역할은 그처럼 무겁고 무거운... 그런 것이었음을 새삼 일깨워 주더군요. 그것도 다름아닌... 분명 제 인생의 feasibility와 affordability 범위 밖에 있는 것이라 믿어왔었던 상황을 통해서 말입니다. 

 

………………………  

   

지금도... '아빠, 숙제 다 했으니까 우리 개콘 같이 봐요!'라 저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네요.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짧았기에 '좋은 시절'일 수 있는 것이다."란 작가의 말이 새삼... 두렵게 느껴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키오」에서 아버지 미야모토는 식물인간의 아들 도키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행복했는지 아니면 우리를 원망하는지.' 이 소설 「네 번째 빙하기」에서 아들 와타루가 자신의 유년 시절 내내 아버지라 믿었었던 아이스 맨에게 말하지요. "오랜 세월 동안, 고마웠어요." ------ 지나고보니... 그저 '한 순간이었다'라 말해도 괜찮을만큼 빠르게 지나가 버린 시간이었던 듯도 싶네요. 어리기만 했던 종원군이 어느덧 이렇게 커버린 그 시간말입니다. 그러했기에...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짧았기에 '좋은 시절'일 수 있는 것이다."란 작가의 말이 이리 두렵게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내용물을 선택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고 가다가 버릴 수도 없는 짐. 때로 그것이 복주머니가 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 이 짐은... 분명.히 나에게 복주머니가 되는 행운을 안겨줄 짐일 것이라, 그렇게 믿으며,,, 이 '좋은 시절'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결국 '아버지'란 역할을 맡은 이들이 이행해내고 완수해내어야 할 그런 임무.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가족'이란 주제에 관한 책을 읽어보겠다했었을 때 제가 마음 속에 어렴풋하게 그려보았던었던... 바로 그! 이야기를 이 책 「네 번째 빙하기」를 통해 만날 수 있어 너무도 즐거웠던 독서였었습니다. 이 작가... 새로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점점 더... 빠져드네요. 

 

  

 

(읽어본) 오기와라 히로시의 다른 작품들 :   소문」 · 타임 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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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2014,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 「인생」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80일간의 세계일주」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형제」 

 

가장 가까운, 가장 소중한, 그러나/그러하기에 가장 자주 화풀이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게 바로 '가족'이 아닐까 싶더군요. 아내에게 화를 내고, 나의 아이를 혼내고나면 곧이어 나의 일상도, 나의 처신도, 나의 판단 그리고 결국엔 나란 사람 또한... 결코 그러한 화와 그러한 혼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그보다 훨씬 관대한 기준으로 본다해도 어쩔 수 없이 그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라는 창피한 자책만이 한껏 남게됩니다. 「인생」의 주인공인 푸구이 옹의 표현을 빌자면 그 대부분이 '나 자신에게 화낼 방법'을 찾지못해 쏟아내는 배출구로서의 아내였고 아이였었다라는 걸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아이는 아빠인 저에게 잘못했다 용서를 구하며 '아빠 근데 나 아빠 정말 사랑해요'라 말을 맺고, 저는 제 아이로부터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나서야 '아빠도 너 사랑해'라 대답합니다. 정말... 못난,나쁜 아빱니다. T.T) 

 

위화의 「형제」를 읽으면서도 (물론 여러가지 면에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만) 이 '가족'이란 것의 의미, 그리고 이 '가족'이란 관계의 설정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 집에 쌓여있는 책들 중... 그렇게 '가족'에 관한 책들을 이 기회에 모두 읽어보기로 했지요. (사실 소설의 가장 흔한 주제가 다름아닌 이 '가족'이 아닐까도 싶습니다만...) 그 첫 번째의 독서로... 그리 무겁지 않아보이는 이야기일듯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키오」를 집어들었습니다. 마음도 무거운데 읽는 책까지... 그 무게를 더하게 하기는 아무래도 견뎌내기에 너무도 버거웁지 않을까 싶어서말이죠. (「형제」를 읽으면서 사실은 내내 다음의 꼬무책으로 이문열의 「영웅시대」가 가장 먼저 떠올랐더랬습니다만, 이런 이유로 인해 '가족'이라는 다소 감성적인 주제로 살짝 비켜가기로 했습니다.)

 

………………………  

 

'23살 아버지, 17살 아들 도키오를 만나다'

 

생물학적으로는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장면입니다. 만 여섯 살의 남자는 결코 아이를 가지게할 수 없으니까요. 이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연 어떻게 풀어내었을까요? 

 

미야모토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레이코의 집안에 유전적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합니다. 물론 그녀 집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그 둘은 끝내 결혼을 했고, 또한 유전적 질병때문에 절대 가지지 않으려했던 아이까지도 갖게 됩니다. 그 유전적 질병은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것이었고, 이 병은 남자아이에게 유전될 확률이 더 많으며, 열 살쯤 이후부터는 온 몸의 운동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며 결국에는 내장기관까지도 기능을 멈추게 되어 식물인간이 되어버리는 불치병이지요. (이 병명은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어낸 가상의 것이라고 합니다만, 실제 이러한 질병이 있어 제 사촌동생이 바로 이 병으로 하늘나라로 갔었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팠었네요.)

 

미야모토와 레이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역시 아들이었고, 그들은 그에게 '도키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엄친아의 거의 모든 요건을 갖춘 채 자라난 도키오는 예의 중학교 졸업 무렵,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의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소설은... 그렇게 부부가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들 도키오 앞에 서있는 장면으로 시작되지요.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라도 다시 도키오의 의식이 되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미야모토는 '내일만이 미래가 아니에요'라는 알듯말듯한 말을 하며, 아내인 레이코에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자신의 나이 스물 세살때 아들 도키오를 만났었다는 믿지못할 비밀을 털어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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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함도 덜함도 없이, 이 소설의 전체적 내용은 영화 <Back to the Future> 1편이 담고 있는 메세지와 똑같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고, 현재의 그런 상황이 나아질것이라 믿게만들어주는 그 어떤 희망적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스물 세살의 미야모토에게 어느 날, 자신을 그저 '먼 친적쯤 되는 사이'라고만 소개하는 도키오라는 열 일곱살의 남자아이가 나타납니다. 이후 그와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답지 않게 매우 단순한) 어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미야모토는 도키오에게 '깊은 애정 같기도 한 기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도키오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반갑고 친숙한 기분이 되는' 경험도, 그리고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음에도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옴을 느끼게 되며, 결국 도키오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의미? 희망의 반전? 뭐 이런 것들을 얻게된다는 내용이지요. 

 

소설의 중반부 이전 즈음의 어떤 상황에서 도키오는 미래의 아버지인 미야모토에게 "아들을 믿어주세요.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줄 사람은 아들밖에 없어요."라는 말을 하는데, 도키오와 독자는 이 말 속의 아들이 '도키오'임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만, 미야모토는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의)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되고 독자는... 작가의 이러한 암시를 통해 이 소설의 결말 - 미래에서 온 아들이 청년 시절의 아버지를 변화시킨다 - 을 대충 알아채릴 수 있게 되지요. 

 

이처럼 소설은 매우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또한 이미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Back to the Future>의 전체적 내용과 너무도 흡사합니다만 거기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감성적 요소를 더해, 그리고 어쩌면 '동양적 정서'라 표현해도 되지않을까 싶은 자신을 낳아준 친모에 대한 애증의 감정 변화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시 포장해내려 한듯 합니다만 글.쎄.요... 걸작과 졸작의 부침이 심하다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 저는 이제껏 읽어보았던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실망했었다라 쓸 수 밖엔 없네요.

 

한창 <Back to the Future>란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그 영화 속 설정들와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이냐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난무했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 영화에서 미래에서 온 아들 마티는 과거의 아빠와 엄마가 맺어지지 않자, 미래에서 가져온 사진 속의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걸 발견하게 되지요. 젊은 시절의 박사는 마티의 아빠와 엄마가 맺어지게 되는 걸 바라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과거가 미래를 바꾸면 안된다'라고 철저하게 강조합니다. (비록 자신의 죽음을 막는 것에는 미래의 도움을 사용하긴 했지요.) 물론 이 소설에서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도키오가 자신을 낳게 해주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결시켜주기도 합니다만, 이에 그치치않고 도키오가 미야모토에게 언뜻 알려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과 같은 미래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식을 통해 미야모토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얼핏 보면... 과거에 대한 미래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원인과 결과의 구분을 사뭇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주는 설정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깊게 고민해본건 아니지만 '0.9999……'라는 숫자는 분명 '1'과는 다른 숫자임에도 수학적 계산으로는 같은 값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작가는 이 미묘한 차이를 그냥 '둘은 같은 값이잖아'라 말해버린거고, 거기에 독자들은 뭔가 찜찜함에도 또한 '그건 아니야!'란 답을 하지는 못하는, 뭐 그런 어정쩡한 상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책을 덮는 순간 들기도 하더군요.  

 

뭔가... 좀 애틋한? 그런 가족 이야기를 기대했었던 저에게, 그저 읽어내는 속도가 빨라 그리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라는 (아! 중고서점에서 싼 값으로 산 거의 새책이었다는 것도 포함하여) 억지위로만 가져보게 되는 소설이었다고 말할 수밖엔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에는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빼놓지 않고 다루는 사회 구조적 병폐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 있다.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으면서 소설 안에 녹아들어 있는 작가의 균형잡힌 시회의식이 돋보인다."라는 역자의 평가는 그야말로 어설픈 작가의 포장지에 곁들여진 더 어설픈 리본이 아닐까도 싶었다는... --;;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발간순) :  「졸업」 - 「잠자는 숲」 - 「악의(惡意)」 -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 「내가 그를 죽였다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 :  용의자 X의 헌신」 · 편지」 · 마구(魔球)」 ·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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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2014,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 「인생」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80일간의 세계일주」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실망만 하고 끝내기엔 아쉬웠기에 중국 소설로 한 편 더 가보기로 맘먹는 순간 제 머리에는 당연.히 위화의 이름이 떠올랐었고, 그렇게... 이번 설 연휴는 위화를 통해 중국의 현대사 속 장면들을 보며 지냈네요. 

 

뻔한 이야기를 한다해도 누군가는 그 뻔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신시켜내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뻔한 이야기를 더 뻔하게 만들어 망쳐버리기도 하지요. 무려!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작가를 향한 지나친 모욕이겠습니다만, 모옌이 뻔한 이야기를 더 뻔한 포장지로 감싸버렸다라면 작가 위화는 뻔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 사실 위화의 작품들이 스토리 자체는 은근 비슷한 면들이 있지요 - 역시 '위화가 쓰니 이렇게 달라질 수 있고, 위화가 썼기에 여전히 신선하네' 소리를 내뱉지 않고는 못베기게 만들어줍니다. 문화대혁명과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를 거치는 동안 등장 인물들이 어떤 성공 스토리를 써내었는지, 또 누구는 어떻게 실패한 인생을 걸어가야했는지, 그리고 그들간의 사랑은 어떻게 행복했기도 했으며 쓰라리기도 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기나긴 이야기는, 제가 '위화'라는 이름만으로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작가를 좋아한다라는 사실을 빼낼 수 있다하더라도, 가끔은 제 숨을 턱턱 막히게도 만들었을만큼 엄청난 무게로 이 세 권의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을 눌러주었으며, 다 읽고 난 지금에는... 이 장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 내야 할지로 다시금 저를 난감하게 만들어주네요. --;;

 

……………………… 

 

주인공 이광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태어나던 날, 여자 엉덩이를 보려다 그만 똥통에 빠져 죽었던 아버지, 똥통에 아버지를 빠지게 만들었기도 또한 똥통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건져내 오기도 했던, 그러다 훗날 어머니 이란과 결혼해 자신의 새아버지가 된 송범평, 송범평의 아들이자 이광두의 곁을 가장 마지막에야 떠났던 한 살위의 형제 송강. 그 둘과 삼각관계를 만들어 낸 류진 최고의 미녀 임홍,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류진'이라는 마을의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작가 위화는 우리에게 중국의 현대사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류진'이라는 마을은 중국을 의미하고 있으며, 모든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그러했기에 갖은 고생과 실패를 겪고도 결국 성공해내어 거부가 된 주인공 이광두는 그 자체로 중국의 경제를 상징한다라 할 수 있을겁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위화의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과 같이 그저 한 인물의 일생 이야기로만 읽어내기에는 분명 너무 큽니다...만! 

 

 

 

같은 시각, 송강은 주불유의 간식식당에서 평생 처음으로 빨대만두를 먹으며 뜨거운 육즙에 입을 데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가 일어나 식당 문을 나서서 서쪽 철로 변을 향하고 있을 때 이광두는 게걸스럽게 저녁을 먹고 발정난 개처럼 조급하게 임홍에게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중이었다. 사람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비추는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른 두 사람은 향락을 추구하지만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노을도 사라지고, 지는 태양도 사라지고, 캄캄한 어둠만이 우리 류진을 둘러싼 가운데 송강은 미약한 달빛 아래 철로에 누워 자살했다. 그 순간 임홍은 알몸으로 이광두의 침대에 누워 이광두가 욕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에서처럼 그저 한 인간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로 본다할지라도 예의 이 이야기는 충분히 의미를 가질만큼 슬.픕니다. 이광두와 송강 둘이 함께 행복했었던 순간은 그들의 인생에서 매우 짧은 시간뿐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광두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송강의 인생은 결국 실패하게 되지요. 젊은 시절 그 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 임홍도 결혼은 송강과 했지만 마지막엔 결국! 이광두의 여자가 되었고, 그렇게 자신의 형제와 자신의 아내가 모두 자신을 버리고 함께 즐기고 있던 순간, 그는 자살을 합니다. 

.

.

 . 

 

 

 

2006년 현재 중국은 이미 세계 세 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영광스런 수치 이면에는 일인당 평균 소득이 여전히 세계 백 위 밖이라는 불편한 수치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마땅히 균형을 이루어야 할 이 두 경제지표는 오늘날의 중국에서 여전히 이렇게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오늘날의 불균형한 삶입니다. 지역 간의 불균형, 경제적 발전의 불균형, 개인 삶의 불균형 등이 심리상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꿈마저 불균형하게 됩니다. 꿈은 모든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재산이며 최후의 희망입니다. 설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꿈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꿈마저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나는 <형제>에서 거대한 간극에 대해 썼습니다. 문화대혁명 시대와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이광두와 송강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입니다. 역사적 간극은 한 중국인에게 유럽에서는 사백 년 동안 겪었을 천태만상의 경험을 단 사십 년 만에 경험하게 했고 …… 우리의 삶이 이러합니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가 중첩되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병자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극단 속에서 살고 있이 때문입니다. …… 이십여 년 전 이제 막 이야기를 하는 직업에 종사하기 시작했을 때 읽었던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이 한 "모든 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고, 그 사회의 온갖 폐해에 대해 일만의 책임이 있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내가 왜 <형제>를 쓰게 되었는지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병자이기 때문입니다.

- <한국의 독자에게> 중  

 

 

 

 

 

위화의 멋진 점 중 하나는 바로... 이처럼 그가 쓰는 작품의 소개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의 그의 멋진 소개글을 이 작품에서도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작품의 말미에 있는 해설글은 그야말로 횡설수설이더군요. --;;) 작가 스스로는 이처럼 이 작품이 사회적 메시지 - 중국의 불평등,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폐해 등등등 - 를 담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이는 그가 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에서도 또한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기도 하지요.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중국의 현대사를 조금만 안다면 금방 읽는 이에게 보여질만큼 잘 나타나있습니다만, 이와는 별도로... 이 작품을 읽는 이는 자신의 모습을 때로는 송강으로, 때로는 송범평에, 그리고 때로는 주인공 이광두에게 대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바로 제가... 그랬었지요. 또한 누구나에게 송범평과 이란같은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을 수도, 또한 송강이나 이광두같은 모습의 형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겐 어쩌면 임홍과 같은 존재가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됩니다. 작가 위화 스스로가 밝혔듯, 모든 소설은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새로이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어쩌면... 중국의 현대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 보다는 나에게 이란과 같은 어머니가, 이란과 같은 아내가, 송범평과 같은 아버지가, 그리고... 이광두가 평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임홍과 같은 존재가 있었을꺼라는 거,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는 끝내 이광두가 되지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불행한 삶의 마지막을 가야했던 송강의 모습을 이상하리만치 공감되도록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라는 거, 그러했기에 이 소설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더... 제 마음이 무거워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위화의 작품은 겉으로는 웃었으나, 결국.엔 마음 아파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게 만들어주네요. --;; 

 

 

 

 

★ (읽어본) 위화의 다른 작품들 

- 「허삼관 매혈기 : 문화대혁명... 그리고 아버지. 

- 「제7일 : 오늘의 중국... 그리고 아버지.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 위화가 말하는 그의 조국 중국의 어제와 오늘. 

- 「인생 :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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