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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입니다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물고기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떠한
특별한 계기가 있어 그때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고 그렇게 이후의 생활이 (물론 더 나은 방향으로)바뀌게 된다라는 건 분명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거꾸로 보면 그
이전까지 흘러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또한 진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거겠지요. 종원군이 태어나
자라가면서 내 아이가 몰고 다니는 전동자동차를 꼭 하나 사주고 싶었습니다만, 유치원에 다닐 때 즈음엔 그에게 마음놓고 자전거를 타게해주고도
싶었습니다만... 그때 살고 있었던 아파트에는 딱히 마음놓고 아이에게 전동자동차를 몰게 하거나 자전거를 타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질
않더군요.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아! 그때 만일 여기같은 곳에 살 수만 있었었다면 그렇게 사주고 싶었던
전동자동차를 사주어도 되었을텐데, 막 자전거를 배웠을 때 더 많이 타게해줄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겁니다. '어쩌겠어. 이미
지난 일인데...'
………………………
'아버지!
아들에 의해 만들어지다'쯤으로 요약될 수 있을 「도키오」, '아버지의 부재를 겪어야했던 소년의 성장기'였던 「네 번째 빙하기」... 에 이어지는
꼬무책으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듯 보이던) 이 책 「나는
아버지입니다」를 골랐습니다. 아버지 딕 호이트와 그의 아들 릭 호이트가 살아온 지난했을 삶의 굴곡에 비해 책의 내용 자체는 매우 간단하더군요.
출산 당시 탯줄이 목을 감고 있었던 탓에 뇌에 산소공급이 원활치않아 결국 뇌성마비가 된 릭, 모든 의사들이 그를 포기하라 했지만 반드시 릭을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겠다는 아버지 딕과 어머니 주디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어느 날 우연한 계기를 통해
"아빠, 달리기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 전 아빠와 달리고 싶어요."라는 메세지를 아버지 딕에게 전한
릭. 아빠와 함께 달리고 싶다는 아들의 그 소망을 결국 이루어주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 그리고 철인3종경기, 마지막으로
미국 대륙 횡단까지를 함께 한 아버지와 아들의 (진부한 표현이지만 웬지 이렇게만 써야할
듯한)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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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거나 거부되는 수많은 기회를 릭은 쟁취했다. 우리는 거부와 저항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실망하기는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결책이 나오는 법이다. …… 릭의
웃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은 우리의 앞길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단지 인생이라는 도로에 놓인 과속 방지턱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은 우리의 앞길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단지 인생이라는 도로에 놓인 과속 방지턱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제가 참!으로
좋아하지 않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표현이긴합니다만, 이 문구가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첫 아이인 릭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
부부는 '하필이면 왜 우리인가? 우리는 전혀 잘못한 게 없는데'라 탄식합니다만 이내 곧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이런 다짐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부모라면 그 누구든 할, 저 또한 매일매일 반복하며 하고있는 다짐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데...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는 제 아이를 보며, 이 책의 아버지는 그러한 다짐을 실제의 행동으로 옮겨
살아왔지만 전... 그저 내 아이가 태어난 이후 12년간을 그저 내내 다짐.만 하며 살아왔었구나라 고백할 수밖엔 없더군요.
내
아이가 전동 자동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 맘놓고 자전거를 타도록 해 줄 공간이 없었던 게 아니었던겁니다. 차를 타고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가면 넓디넓은 공원이 있었음에도,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심지어 잔디까지 깔려있는 훌륭한 공원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전 이제까지 그저
'다짐'만 했었고, 그 다짐을 실제로 이행하지 못했었던 것에 후회했었고, 또 다시 '다짐'을 했고... 그리고 또 후회했고, 그렇게 하루,
일주, 한달의 세월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아들은 열세 살의 나이가 되어있는 겁니다. 종원군은 나름 열심히 '건강하고 착하고, 아빠와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오기위해 노력해왔고 실제로 그런 아들이 되어주었건만 이 아빠는... 여전히 반복되는 '다짐과 후회'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거죠.
주말에
아빠와 야구했으면 좋겠어요!란 녀석의 소원에 이제껏 보내왔던 수많은 주말들 중 도대체 몇 번이나 같이 야구 해주었던가, 우리 가족 다 같이
영화보고 싶어요!란 소망에도 엄마와 아이만 들여보내고 이 아빠는 혼자 사람 죽이고하는 영화를 봤었던 건 또 얼마나 많았던지, 크리스마스
날에조차도 '같이 책 읽자!'라며 데려간 곳에서 좀 쑤셔 죽을라하는 아이에게 '넌 오래 앉아있는 훈련을 좀 해야해!'라는 타이밍 죽여주는 훈계를
했던 아빠였었으며, 바람쐬러 나가자 한껏 기분 들뜨게해놓고는 결국 파주에 있는 북카페로 데려가 숙제 먼저하고 그 다음엔 책 읽으라고, 그거
다하면 게임해도 된다고 말했던... 그 많고 많고, 또한 지나간 날들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얼마나 미안하게 느껴지던지요.
제
아이는 건강합니다. 또한 운동하는 걸 무척 좋아하기도 합니다. 딕의 아들은 건강하지는 않았으나 제 아이처럼 운동하는 걸 좋아했더군요. 딕은
자신의 아들이 건강하지 않았기에 그 아들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기꺼이 '아들에게 팔다리를 빌려 주는 존재'가
되주었습니다만, 건강한 아들 종원군의 아버지인 저는 그 아이에게 '너는 건강하니까'란 핑계로 제 팔다리를 빌려주길 꺼려하며
살아왔었던겁니다.
이
책 속의 아버지와 아들은 분명 저와는 다른 아버지이고, 종원군과도 다른 아들입니다만 이렇게... 저에게 아직은 늦지않았.을 수도 있는 가르침을
주더군요. 이 책 속의 아버지와 아들은 "아버지
고마워요,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는 할 수 없었어요. …… 아들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다."라는 대화를 나눕니다만, 저와 종원군은
하시라도 야구 글러브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자전거 끌고 아무곳이나 갈 수도 있는 그런 아빠와 아들임에도 '오늘만 봐줄께. 대신 딱 한
시간만 게임/TV시청하는거다.'란 일방적 지시만이 있어왔었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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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슬픔, 괴로움, 고독이 무엇인지... 웃음, 행복, 즐거움, 사랑이 무엇인지... 위로가
무엇인지, 돌아봄이 무엇인지, 돌봄이 무엇인지 알고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가난해 보아서, 상처받아 보아서, 아파 보아서 알았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속상하고, 괴롭고, 외롭고, 서럽고, 지치고, 두렵고, 피하고 싶고, 원망하고 싶은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위로를 보았고, 사랑을 보았습니다. 순간마다 다가오는 따듯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010년 11월 21일 아내의 일기
중에서
「아빠는
목사! 아들은 동자승?」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책을 읽었을 때에도 '없어지고 나서야 알게되는' 소중함에 대해 느꼈었더랬습니다만, 지금까지 예의
반복되어온 제 '다짐과 후회'를 바꾸어놓지는 못했네요. 언제까지나 내 아들이 아빠와 야구를 함께 하고싶어할른지 모르겠습니다. 또 머지않으면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기보다는 여자친구와 영화보기를 더 원하게도 되겠지요. 이젠 정말! 다시 '다짐하고 또 후회'만 하기에는, '어쩌겠어. 이미 지난 일인데...'라는 억지위로를 하기에도 더 이상은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않아 보이기도 하네요. 오늘부터 시작하는 녀석의 봄방학.엔... 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지난 12년간
이어져왔던 '다짐과 후회'의 반복을 끊어봐야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늙었을 때 제 아들이 저와 같이 놀아줄 것.도 같고.
헌데...
뭔가 감동적이었다라 써야할 듯한 책을
읽고난 독서후 감상문이 제가 쓰니 뭔 반성문의 분위기가 되버렸네요. --;;
(사실
딱히 감동적.이라 쓰기도 뭣하긴하네요. 이런 류의 감동은 TV나 신문에 이미 넘쳐나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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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Food for Thought"
- 박송주 著, 「아빠는 목사! 아들은 동자승?」 :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란 표현은 이럴 때 써야 진부함을 벗어날 수도, 또한 그 진정한 가치를 말해줄 수도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