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수학이란 과목이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수학을 싫어하고 내가 죽어라! 싫어하는 역사과목을 좋아하는겁니다. --- 그때.로부터 하 세월이 흘러 아빠가 된 이제, 역사라는 것에 적잖은 흥미를 가지게되었더만 이번엔 제 아들녀석의 한국사가 대부분인듯 보이는 5학년 사회과목의 성적이 제일루 좋지 않더군요. : 중고딩 시절에 왜 역사과목들을 싫어했었던지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연도를 외워야하고, 한두 끗 차이로 비슷비슷한 이름들의 온갖 전쟁이나 혁명의 이름들, 혹은 책들의 제목들을 깔끔하게 구분해 외워야하는 게 싫어서였었겠지요. (그 창대!한 방점.은 고등학교때 교련 선생님이 찍어주셨었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교련 시험문제들 : '이순신 장군은 몇 살때 돌아가셨나','OO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격침시켰던 일본 전함의 숫자는?' --- 농담 아닙니다. 진짜에요. 선생님께서 주관식 문제는 무조건 숫자로 답쓰는 거니까 시험범위에 나오는 숫자란 숫자는 다 외우라 하셨었지만 설마... 이런 게 나오리라고는. --;;)

 

수학과목을 좋아하는 데에 굳이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명확하고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하는 건 아닙니다. 역사를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뭐 그냥.'이란 간단한 세 글자도 충분히 합당한 이유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이걸... 다른 곳에도 한번 적용시켜 볼까?로 가게되면 그 세 글자만으로 대답하기엔 참... --;;

 

 

기대에 많이 못미쳤던 「나는 아버지입니다」를 읽고 나서 이제는 '모성애'에 관한 소설을 읽어보려 했었습니다...만, 마침 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의 표지를 가지고 있던 「소울케이지」에 대한 이웃분의 감상문이 올라와 읽어보니... 이 책도 '부성애'에 관한 책이라더군요. 그래... 서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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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본, 저와 동갑인, 게다가 대학에서의 전공도 경제학으로 똑같은 혼다 테쓰야의 작품은 아... 초반엔 적응하기 꽤나 어렵더군요. 등장 인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다다가 그 이름들도 어찌나 일본스럽던지요. 암튼! 복잡한 스토리이긴한데 이게 또... 간단하게 요약하려한다면 또 무지하게 간단하게 표현될 수도 있는 줄거리이기도 한겁니다. 간단하게 말해 '세상 모든 짐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가겠다. 그러니 남아있는 자여, 부디/꼭 잘 살아다오!'쯤 된다고나 할까요?

 

수사 스타일이 매우 상반된, 직감을 중시하는 레이코라는 경찰과 오로지 증거에만 기초한 수사를 고집하는 쿠사카라는 경찰이 각자의 방법대로 한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나가고, 그러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결론에 도달하여 결국엔 진짜 범인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제까지 읽어본 추리소설들과 비교해 뭐 등장인물들이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이 그리 새롭다거나 대단하다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소설에서 정작 주목해서 보아야할 점은 바로!!! 범인의 범죄수법, 그리고 그보다는 그가 왜 그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가하는 그 '이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상황을...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었다면 과연?'의 의문으로 가져가보면,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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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살의를 품고 사는 죄를 짓고 있다. 자신을 범한 남자를 직접 죽이고 싶다, 자신의 부하를 죽인 남자를 없애버리고 싶다. 그러한 살의가 마음속 어딘가에 늘 존재했다."

 

시리즈의 소설을 그 첫번째부터 읽지 않았다는 단점(?)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졌었습니다만, 그러하기에 그 자세한 전후 사정까지는 알지 못한다하더라도... 주인공격인 레이코 형사의 위 독백은 한참동안을 위 문장 다음에서 저를 멈춰있게 해주었었습니다. 중간 연한 색 부분만 각자의 사정에 맞춰 바꿔버린다면, '살의'까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향한 '아. 정말 미워 죽겠어!' 혹은 '그 사람만 없었더라면!!!'같은 감정은 조금씩이나마 다들 한때/지금도 가지고 있었을테니까요. 

 

자세한 내용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주 오래전에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No Way Out>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관객이 보기에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는 그야말로 'No way out'의 상황에 쳐해지게 됩니다만,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문자 그대로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보다 훨씬 더 강력(?)한 'No way out'의 상황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 안쪽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었음을 말해주지죠. ------ "나는 A가 진짜 밉다. 도대체 그 A는 뭔 이유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건지 모르겠어. 그 A만 없다면!!! 내 생활은 훨씬 더 찬란해질 수 있을텐데." 아무리 친한 친구, 심지어는 내 가족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해서 곧바로 저까지 그 A를 미워하게되지는 않을겁니다. 일단 말하는 상대가 도대체 왜 A를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그 A가 이전에 어떠한 짓들을 했었었는지... 등등을 먼저 들어보고난 후에라야 그의 말에 동의를 하던 반박을 하던 하는게 순서이겠죠. 근데 말입니다... 사람이란게, 막상/정작 그 상황에 진짜.로 처해보지 않는 한에는 말만 들어서는 말하는 사람과 똑같은 감정이 생기지는 않는다.라는 거... 그걸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난 정말 미칠 것만 같아서 A를 경찰에 신고했는데, 정작 경찰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경찰서에까지 오느냐라며 되돌려 보냅니다. 이렇게 소위 '최후의 보루'라 불리우는 공권력에마저도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시킬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뭐 그냥'이라는 이유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 될 뿐인, 그런 'No way out' 의 상황에 직면하게되었을 때 그렇다면 과연 나의 선택은 어찌되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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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옮긴이는 이 책을 <서툰 부성이 빚은 슬픈 이야기>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 전 <타인에게 이해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없이 이런 식으로밖엔 해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만의 마무리>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의 입장이 실제로 되어보지 않고서는 내가 당췌 왜 A를 그토록 미워하는 건지를, '뭐 그냥'은 아닌거지만 또한 '뭐 그냥'으로 밖엔 표현해낼 수 없는 미움을, 내가 왜 A와의 문제를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수 밖엔 없는지를... 이제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남은 여지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걸까요?  

 

 

………………… 

 

  

범인을 검거한 후... 레이코 형사가 쿠사카 형사에게 묻습니다. '아들이 있는 동년배의 아버지'로서 범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자신의 감정을 수사에 개입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쿠사카 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동정도 하고 이해도 하지만 공감은 안 간다고 말해야겠지. …… (어떤 점이 공감할 수 없는거냐 묻는 레이코의 다음 질문에) ……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는 법이지. 자식은 보지 않는 듯해도 은근히 부모의 모습을 보는 법이야. 따라서 자식에게 해명하지 못하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 행동은 자식이 옆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지 말아야겠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면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자식에게 자립하는 생활 태도를 갖게 하려면 우선 자신이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

 

 

………………… 

 

 

동정도 하고 이해도 되고, 그리고! 공감도 됩니다. 저는 말이죠. (이걸 실제 행동에 옮길 수도 있느냐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구요.) --- 왜.였을까요?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손의 주인공... 그가 정말 코스케,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키미에 (그리고 소설의 내용상 밝힐 수 없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인물)등을 위해 죽었던 것일까요? 제 생각엔... 그는 자신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에서 '부성애'라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쩌면 겉으로만 드러난 것일 뿐, 살인이라는 결과로 얻어지게 될 부수적인 것일뿐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밖엔 없었었지요. 살인의 가장 주된 원인은 'A가 너무 미웠기 때문'이었던 것이고, 'A를 죽임'으로써 나도 그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일종의) 선물을 줄 수도 있다는 부수적 산물까지도 얻어지게 된다는 살인범의 심정... 그것을 격하게 동정하게도, 이해하게도 그러하기에 공감까지도 되었던... 그런 좀 복잡한 이야기였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 「제7일」, 「인생」 속의 아버지들. 그리고 「소금」속의 아버지들. 또한 「나는 아버지입니다」의 아버지. --- 그 아버지들의 '희생'과 이 소설 속 범인의 '희생'이 과연 결국에는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은 '희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라 말해도 되는 것일지... 소설의 재미를 떠나 꽤나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참 무거운 생각을 해보게 된 책이었네요. 과연... 저는 제 아들을 위해 '희생'이라는 단어로 어떤 수준까지 상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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