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샹즈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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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년, 아니 적어도 3-4년 내내 한 방울, 두 방울, 아니 몇 방울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땀을 흘린 다음에 겨우 그 인력거를 마련한 것이다. 비바람 속에서 이를 악물고 먹을 것 마실 것을 애써 참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력거를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인력거는 그가 발버둥치고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물이자 보수로, 백전노장의 가슴에 달린 훈장과 같았다.(p10)

'샹즈'라는 인물이 젊은 나이에 가진 것 없이 시작해, 자신의 꿈이었던 인력거를 마련했고, 그렇게 시작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져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 '희망은 대부분 허사가 되는 법이니, 샹즈도 예외는 아니었다.'(p21) --- 샹즈의 희망은 대체 왜! 허사가 되었던 걸까요?

그렇게 고생을 해 마련했던 인력거를 전쟁통에 빼앗겼고, 병에 걸려 고생을 했었어도 젊은 시절의 샹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있어 '소원이자 희망이며 심지어 종교와도 같았'(p69)던 인력거를 다시 장만하고자, 자신을 학대하는 수준의 절약을 해가며 살아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은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 사실 인력거꾼이라는 직업을 일반적인 당시의 중국인들이 선호한다거나 하는 직종은 아니었더랬습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집 안에 더이상 팔 것도 저당 잡힐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면서'(p7)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죽음의 길1'이었을 뿐.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가진 돈도 없었던, 그저 건장한 신체만 가지고 있었던 샹즈에게는 다른 선택이 주어져 있지 않았던거지요.


그에겐 인력거를 끌어 밥벌이를 하는 것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기개 있는 일이어서, 그가 인력거를 끌고 나가려 할 때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바깥세상의 뜬소문도 그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 제 인력거를 끄는 동안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는 잘 알았지만, 역시 시골뜨기였기에 도시 사람처럼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비가 올 것을 예측하지는 못했다.(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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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히 압축시킨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 성실하고 남을 속이지도 않는 누군가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기를 당하고,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며, 그러하다가 결국 낙오자가 되어갈 때 흔히들 이를 가리켜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거나 '자본주의의 폐해' 등의 표현을 쓸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 읽어내려가도 될까싶을 정도로 잘 읽혀지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무심결에 독자는 예의 바로 그러한 결론으로 안내받게 되지요.


누구나 살아갈 방법이 있고, 어디나 구멍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독 샹즈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바로 인력거꾼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인력거꾼이라는 게 먹느니 허접한 끼니요, 쏟아내는 건 피밖에 없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돈을 벌지만 가장 낮은 보수를 받았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서서 모든 사람, 모든 법, 모든 고난의 직격타를 맞았다. …… 인력거를 사놓고도 인력거를 잃고, 돈을 모아도 다시 빼앗겼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모두에게 능멸을 당할 뿐이었다.(p189) …… 비는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이에게도, 의롭지 못한 이에게도 내린다. 그러나 사실 비는 공평하지 않았다. 본래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내리기 때문에... (p287) 

​결국 샹즈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아무리 악착같이 일했었어도 지금도 공평하지 않은 이 세상은 조금이라도 공평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돈은 결코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오직 애시당초 왜 그렇게 갖은 노력으로 부지런히, 성실하게 살았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후회할 만한 일도 다 사라져 버렸다.'(p358) 심지어 가난한 샹즈에게는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 여져지게만 됩니다. 그럼 대체! 샹즈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했어야 할까요? --- 다음의 구절들이 샹즈가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생각했던 '공평하지 않는 사회에서 가난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샹즈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가난뱅이가 개인의 자유, 그것도 정말 보잘것없는 약간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모진 마음뿐이었다.(p309) …… 배려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피와 땀의 대가가 아닌가. 그는 더이상 손님들의 선심을 기대하지 않았다. 받은 만큼만 주면 된다. 먼저 가격을 분명히 한 다음, 힘을 쓰기 시작했다.(p329) …… 자기 목숨은 자기 손에 넘어갈 수 있을 뿐, 다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또한 자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개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었다.(p361)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개인주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역자의 해석은, 최소한 이 작품 「낙타샹즈」에 한한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는 옳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에게 개인주의란 서구적 의미의 그것이 아니라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울타리 (그것이 운명이든 인과응보의 결과물이든지간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의 관념을 의미하는 듯하다. 아무리 애써도 악몽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개인의 재앙이지 또한 사회의 비극이다. 그럴 경우 누구나 샹즈처럼 행동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거나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철저하게 자신을 버리며 산다.(pp38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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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 말하기도, 그렇다고 짧다 말할 수도 없겠는 지난 15년 간의 사회 생활을 겪고 나니 ---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시대의 관점에 비추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물론! 나의 아이에게는 정직하고 착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면 언젠간 반드시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란 교과서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만, 아버지로서의 이 말이 그의 삶을 보증해주지 못한다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아니!!! 어쩌면


지난 15년간의 사회생활이 그 질문에에 대한 하나의 실제적인 대답/반증이 아닐까란 의구심을 가지게만 되는 요즈음이기에 '정직하고 착실하게 산다'라는 것이 '행복한 삶'에의 보증수표이기는 커녕, 그 반대의 삶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라는 걸, 그 스스로 언젠간, 큰 아픔없이 꼭 깨달아주었으면... 이라는 소망을 마음 속에 가져보게도 됩니다. 과연! 지금의 이 사회는 '일생을 정직하고 착실하게 살아보니, 반드시 응분의 보답이 주어지더라!'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복단마저도 자랄 수 있는 사막'같은 곳일까요? 샹즈가 바래었던 '합당한 대가'라는 것이 정녕, 그가 살았던 공평하지 않은 사회의 기준에서도 여전히 '합당한' 것이었던 걸까요?


경험은 삶의 비료 같은 것이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사막에서 복단이 자랄 수 없다. …… 까마귀는 그냥 까만색이다. 그는 혼자 하얀 깃털을 갖고 싶진 않았다.(p330)

마음을 많이 아프게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중국의 시대적·사상적 교훈이 담겨져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저! (그러한 공간적·시대적·사상적 배경을 떠나)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시대의 관점에 비추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만을 떠올려 본다면, 이 작품은 그 어느 공간, 어느 시대에도 이처럼 아프게만 읽혀질 소설이 아닐까... 라 결론내려던 순간 문득! --- 백가흠 作, 「마담뺑덕」 속 주인공 학규의 다음 독백이 (그 원래의 작품 속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작용하여) 이 소설의 결론에 어쩌면 또 다른 메세지를 더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p45)

 

 

 

전, 이 두 줄 글이 소설 속 '샹즈'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겠으나 실은!!! 그의 최종적 선택에 대한 (또한 지금의 저에게도) 따끔한 훈계가 될 것이라/되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1. '겨울이면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 셈이었다. 귀신보다 나은 점이라면 그저 숨을 쉬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 뿐, 귀신보다 각박한 삶이다. 그러니 개들처럼 길거리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 그들에겐 최대의 안식인지도 모른다.'(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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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0 -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김형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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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69년 생입니다. 대한민국의 정규 학제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88학번이 되어야 했었거늘, 고삐리 시절 그 놈의 소개팅하는 재미에 빠졌던 탓에 (그나마 저의 이력에 자랑스러움으로 기억되고는 있는 '종로학원'에서의) 재수를 한 89학번이 되었었지요. 그렇다보니! --- 한동안 유행했었던 단어인 '386세대'의 그야말로 끝자락엘 걸치게 되어버린 겁니다. 뭐 아무리 '386'이란 단어 자체는 그저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물학적 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 단어가 가지게 된 사회적 의미의 거창함에 한 발 디뎌 이래뵈도 '나도 386 세대!'라 스스로를 규정짓기도 했었었... 거늘.

1990년대 --- 내게 있어 그 시기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의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앞길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대학생이자 새까만 훈련병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거대한 사회의 부속품이자 회사의 말단이 되어 월급을 받아 가정을 부양하는 6년차 방송 PD가 되기까지의 짧지 않는 세월이었다. --- <머리말> 중

1970년 생이며, (아마도 빠른 70년 생인듯) 88학번인 저자 김형민의 1990년대는 그야말로 저의 1990년대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대한민국 남자의 20대를 인생에서 가장 길게/중요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두 가지라는, '결혼과 취직'의 대업을 저 역시 그 1990년대에 모두 이루어 냈었었으며, 예의 끝자락이긴 하나 '386 세대'라는 뭔가 비장함이 깃들어 있는 듯한 계층에 배정받았었기도, 허나 저의 개인적 1990년대는 그런 비장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었던, 그럼에도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 그 자체였었다라는 것에는 전혀! 이의가 없는 겁니다.

이처럼 1990년대에 대해 '개인적 추억'이라 불리울 것들은 많으나, '사회적 기억'은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 저에게 ---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삶을 만나다」 이 세 권의 책으로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개인적 추억'으로부터 '사회적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제까지 제가 만나보았던 그 누구보다 탁월했던 저자인 김형민은 이 책 「접속 1990」을 통해 과연... 또 어떠한 '사회적 기억'을 보여주며 (전작들을 통해 그러했었듯) 저를 부끄럽게 해주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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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한 시대를 풍미한다 싶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철석같이 탄탄했던 것들이 짚단처럼 스러져갔던 '100년 같은 10년'이었다. 크게는 인류의 거대한 실험이었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고 30년 넘게 우리나라는 지배하던 군부의 그림자가 걷혔다. 또 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사태가 닥쳐 수천만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위협했던 시기였다. - <머리말> 중

무거운... 이야기만을 할 것 같아 보이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저자는 이 '한 시대를 풍미한다 싶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 반짝했다가 스러져 간 비운의 기계나 물건'(p48)의 예로 삐삐와 PC 통신, 그리고 워드프로세서 등을 들고 있지요.


 제 삐삐 앞자리는 015였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이 아닌 지역번호를 가진 전화번호가 찍히더군요. 전화를 했더만 낯선 목소리의 여자!가 받는거에요. 알고보니 --- 당시만 해도 전 몰랐었던, '삐삐팅'이었던 겁니다. 앞자리가 012였던 그 여학생이 015의 똑같은 번호에 삐삐를 쳐놓고 그 상대방과 통화하고 뭐 그런 거라더군요. 근데 골때렸던 건... 저에게 그 삐삐팅을 신청(?)해왔던 여자가 대전에 살고 있던 무려! 중딩이었다라는 사실. --;; '얘야, 오빤 대학생이고 대전에선 먼 서울에 산단다' (그러니 이런 거 연결되봐야 너랑 나랑은 뭐가 어떻게 될 수 없는 사이야. 어쩌냐?)는 저의 말이 그 중딩에겐 요새 말로 대박이었었나 봅니다. (아마도 쪼르르 모여 그 '삐삐팅'을 같이 했었던 걸로 생각되는) 옆의 친구들에게 이 오빠 대학생이고 서울 산대!라 자랑스레 말했던 그 아이에게 끝내... '그럼 공부 열심히 하고, 담부턴 이런 짓일랑은 절대 하지 말아라'라는 말로 그 앳된 환상을 무참히 박살!내주었었지요. 저에게 은근 잔인한 면이 있지않나 싶기도 합... --;;


● 5.25인치의 말랑말랑한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다니던 시절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러다 등장한 작고 딱딱한! 3.5인치 디스켙은 그야말로 여러모로 새로운 세상이었었지요. 당시 조교들은 3.5인치 쓰는데, 교수님들은 여전히 5.25인치에 저장되어 있는 옛 데이터들을 쓰셨던지라 연구실에는 여전히 그 두 개의 저장장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갖춰놓아야 했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골때린 추억이 하나 있으니 --- 지금 모 대학의 전자공학과 교수가 되어 있는 제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겁니다. 30MB의 하드용량을 지닌 컴퓨터를 하나 샀다 말했더만 그 녀석 감탄하며 말하길, '야... 그걸 언제, 뭘루 다 채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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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이 책을 통해 그 느낌을 공유하면서 '그땐 그랬지'라고 반추하면서 낄낄거리고 추억에 젖어 옛 친구들고 수다 떨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저자의 바램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이제 "1990년대의 조각들을 오늘의 삶에 어떻게 가지고 갈지는 각자의 몫"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지요.



【 마광수 교수 구속


 1992년 10월 29일 마광수 교수는 '음란문서 제조 반포'혐의로 구속됐다.(p99)

마 교수님의 수업도 들어보았고, 화제/문제의 책이었던 「즐거운 사라」 역시 읽어보았었지만 그 분의 구속에 대해 그다지 진지한 생각을 해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저 강의 도중 담배를 피우던 모습에 놀랐었다라는 것 이외에는 수업도 그닥이었고, 「즐거운 사라」는 더더욱 별로였었다라는, 가끔 '장미 여관'근처를 지나갈 때에나 떠올려봤던 정도의 인물이었다랄까요?


저자는 뒤이어 갑자기 1990년대 대학가에 있었던 '규찰대'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저도 기억하고 있는, 교정 내에 유명했던 몇몇 으슥한 곳들을 둘러보며, 명목상으로는 불량 청소년들의 비행을 막기위함이라 했었었지만 기실은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커플들을 단속하려했던, 일종의 (질투심으로 무장된) 자율방범대 같은 것이었었죠.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습니다.


규찰대는 그 청춘들의 '거사'를 굳이 방해하고 플래시를 비추며 "아저씨!"를 부르짖어야 했을까.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닌데 '단속'의 대상이 돼야 했을까.(p101)

가수 전인권씨가 예전에 '나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대마초 피우고, 그 약빨로 곡들을 썼고, 대중들이 그 노래를 사랑하는데 왜 이게 죄가 되는거냐?'라 항변했었었지요. 개인 전인권의 이 말에는 틀림이 없다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약이라는 것의 (+)와 (-)를 집합적으로 따져보면 결국엔 '사회적 폐해'로 귀결되지요. 그러하기에 개인 전인권의 항변에는 틀림이 없다해도, '사회적 규범'은 그에게 잘못했다란 선고를 내렸던 겁니다. 그렇다면 '성매매'는 어떨까요? --- 최소한/이론적으로는/어쩌면 현실적으로도! '성매매'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회적 폐해'로 귀결되지는 않을꺼라 생각합니다. 집합적 총합은 이론적으로는/어쩌면 현실적으로도! (+)이며, (악의적으로 AIDS 등의 성병을 옮기려 하는 극단적 경우가 아니라면) 그 어떠한 경우에도 최소한 (-)의 결과를 낳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현대의 시각에서 과연 스스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라 할 수 있는걸까요? 


국가 차원에서의 생산성 증가를 위해서 개인이 자신의 효용을 스스로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 삶을 결정할 자유가 있으므로, 설령 그것이 자기 파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국가가 직접 대상을 징벌해서 다른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킬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감옥에 넣거나 취미 생활이 지나친 회사원에게 벌금을 물리는 행동도 합리화될 수 있다. - 유시민 著 「경제학 카페」 중.

'성매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도박이나 마약에 대한 국가의 간섭까지도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 이러한 간섭의 논리가 확대되어 가령 (일반적으로 몸에 좋지않다라고 인식되는) 콜라와 햄버거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나서서 콜라와 햄버거 대신 몸에 좋은 채소와 과일만 먹고살라 강요하는 상황이, 많이 먹으면 살찌니 삼겹살에 비만세를 물리겠다는 상황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꺼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에 해로운 것을 먹는다면 그를 아끼는 사람은 그것을 말릴 수 있을지모르나,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국가의 간섭을 정당화 해줄 수는 없다라는 거지요. 저자 김형민은 유시민이 했던 (다분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위의 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관점이야말로 김형민이 보여주고 있는, 유시민이나 진중권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저를 뿅!!!가게 만들어 준 매력인겁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그때껏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좋게 말하면 엄숙주의, 나쁘게 말하면 위선의 벽이 깨져나가는 과정이었다. …… 적나라의 물결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둑을 쌓고 수갑을 꺼내 들고 치도곤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설치던 과도기이기도 했다. 그 서슬에 마광수 교수가 당했고 영화 <거짓말>과 <노랑머리>가 가위질당했으며 연극 <마지막 시도>의 연출자는 구속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게 쥐면 쥘수록 새어나오는 모래처럼 사람들은 바뀌고 있었다. (pp101-103)

【 지존파와 증오 범죄


'지존파'가 저질렀던 범죄를 옹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들 마음 속에 도대체 왜 그러한 증오가 생겨났었는가는 적어도 알아야하지 않겠냐란 말을 하고 있지요. '이미 벼랑 아래로 떨어져 올라갈 희망이 없어진 이들'(p151)이 지존파가 되었더랬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정반대편에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국을 휘몰아쳤던 부동산 열풍으로 인해 탄생한 수많은 졸부들이 자리하고 있었었지요. : "천민 자본주의가 펼쳐보이는 화려함 앞에 가장 먼저 절망한 사람들은 졸부들의 반대편 극단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의 가슴속에서 절망은 독기로 변한다."(pp148-149) 그리곤 이렇게 2015년의 우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비원이라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에게 온갖 설움을 다 당하고 그들의 행태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킨다는 것이, 결국 자기 몸에 불을 지르는 게 고작인 사회가 되었다. 그 분신 앞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집값을 걱정하고, 자신들의 안전과 편리를 지켜주던 경비원이 3도 화상을 입고 누워 있는 병원을 찾는 이 없거나 드문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명백한 사실은 1994년 당시보다 불평등은 심해졌고 절망은 더 깊고 넓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존파는 과거지사이기만 할까.(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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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독한 투쟁의 시대 】


비록! '386'의 끝자락이 마치 타고난 운명이기나 한 것처럼, 그 수없이 많았던 시위의 현장들 속에 단 한 번도 들어있지 않았던 1990년대의 저였었지만, 그런 저에게도 예의 1990년대는 '투쟁의 시대'로 각인되어 있기는 합니다. '개인적 투쟁'은 없었던, 오로지 '사회적 투쟁'만을 지켜보았던 저의 1990년대였었던 거지요.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참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분신이나 투신등의 죽음으로 당시의 사회에 저항을 했었었지요. 당시에도 그러했었고, 사실은 지금도 그들의 그러한 (방식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김형민은 매우 간명하게 그들이 그런 방식의 죽음을 택했었던/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죽음들이 남겨놓은/가지고 있었던 아쉬움들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988년 이전까지 분신 내지 투신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노동자 전태일처럼 살아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아도 소용이 없을 때 …… 막다른 골목에서 대답없는 세상을 향해 내지른 절박한 외침이었다. …… 하지만 1988년 이후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의기를 일깨우고자 한 '선도적인 결단'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 그 잔인한 봄, 강경대를 필두로 죽어간 생명은 열 손가락을 훌쩍 넘어섰다. …… 땅을 치도록 억울한 일은, 그렇게 제 몸을 까맣게 태우며 죽어간 이들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감수하며 외쳤던 주장들이 대중들로부터 멀어진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의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동화되기보다는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자체에 겁을 먹었고 몸서리를 쳤다. …… 학생들의 순결한 희생은 '순번 정해놓고 유서 대신 써주며 몸에 불 싸지르는' 공포의 화신들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 그 봄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내려앉는 이유는 하염없는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폭력에 맞선다는 믿음이, 목숨을 내놓고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화석화되는 과정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봄이 더욱 참담하게 스러진 것은 정권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자신들의 논리와 자신들의 믿음으로 쌓아올린 울타리를 이미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그 봄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질문이 많다.(pp225-229)

1990년대의 투쟁엔 이처럼 목숨을 내던지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식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문옥, 윤석양, 이지문 등의 '양심선언' 역시 당시의 사회를 향한, 그들의 인생을 건 투쟁이었었지요. --- 김형민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쓸 때면 매번... 인용문이 많아지게만 됩니다. 저자에 대한 저의 애정, 부러움, 못미침... 그 무엇으로 해석하여도 모두 다 정답!이기만 한 이유 때문이라 이해해주시길.


최소한 1990년대 초반의 한국은 1980년대 초중반의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다. 그 시대는 쓰레기를 민주화라는 양탄자 아래 죄다 놓은 채 애써 깔끔한 척하는 방과 같았다. 이를 모르는 체하거나 정말로 모르는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는 가운데 쓰레기는 양탄자 아래에서 온존하고 있었다. 이때 용감하게 양탄자를 들추며 여기에 쓰레기가 있다고 부르짖는 용자(勇者)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그들의 외침을 '양심선언'이라 부른다. …… 20년 후 오늘의 역사가 어처구니없는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고, 1990년대 줄줄이 이어졌던 양심의 결단으로도 바뀌는 건 결국 없지 않냐고 한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탄식 앞에서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을 수 있지만 그들 덕분에 우리는 여기까지라도 온 것일 테니까.(pp23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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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얻을 것은 변명이 아니라 교훈"(p244)라 말하고 있는 저자 김형민의 글들을 너무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움 깃든 창피함을 매번 느끼게만 됩니다. 똑같은 시간을 걸어왔었던 저자와 저이거늘1 --- '사회적 기억'이 아닌, 단지 '개인적 추억'으로만 간직해내고 있는 1990년대를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라는 것이, 또한! 그 1990년대라는 과거로부터 2015년의 현재를 이처럼 끄/꼬집어낼 수 있는 그의 시선이 너무도 부럽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 1990년대 뿐만이 아닌, 현재 이전의 모든 과거에 대해 과연 '나'의 삶은 얼마나 치열했었으며 또한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감동스러운 것이었던가에 대한 자문에 대해 저 스스로도 부끄러운 대답을 할 수 밖엔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건 절대... 뭔 립서비스스런 겸손 같은게 아닙. --;;)


이전에 읽었던 「썸데이 서울」이나 「삶을 만나다」등의 책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서 발행되어서인지 그리 오래 전 책도 아니건만 이미 절판이 되어있더군요. 김형민의 글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로 안타까웠더랬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이번 책은 그래도 몇년 새 사라져버릴 출판사는 아님이 확실해보이는 곳에서 출간되었다라는 게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런 팬으로서 정말... 둘이 만나 술 한잔 나누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불끈! (행여라도 그런 자리가 생긴다면, 왜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 이 책의 부제가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당췌 어울리지가 않거든요. --;;)



※ 읽어 본, 그리고 강추!하는 김형민의 다른 책들 :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삶을 만나다


 



 

  1. 바로 이 점이 '창피함'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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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들이 대부분 군대를 안 가기 때문에 군대를 잘 모르듯, 안 가본 사람은 징역을 모른다.(p21)

「파산」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던 이건범의, 일종의 에세이집입니다. 저 역시 '안 가보았기에 모르는' 징역 생활을 겪으며 보고 듣고 느꼈던 점들을 적어놓은 책이지요. 뭐 그냥... 무지하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은, 시간만 낼 수 있다면 서너 시간이면 다 읽어낼 수 있는, 그다지 무겁지 않은 주제의 책이기도 하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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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어딘들 감옥 같은 단절과 금지, 좌절과 고통이 우리를 구속하지 않겠냐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그 고통 속에도 웃음과 행복의 소재가 있다. 나는 고통의 무게감보다는 웃음의 가벼움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임을 역설적이지만 감옥에서 배웠을 뿐이다.(p13)

징역살이 중, 교도소 내 매점에서 산 훈제 닭을 우려낸 물로 만두국을 끓여 먹었다라는 부분을 읽노라니, 몇년 전 이대 앞에서 꽤 핫한 식당을 운영했던 어느 일본인 요리사가 후라이드 치킨의 뼈만을 모아 끓이면 닭육수가 될까 궁금해 실제 그렇게 해봤다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아쉽게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일화들과 저의 과거/기억과의 공통점은 단지 이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전반적으로 '웃음과 행복의 소재'가 너무도 두드러져, 저자의 징역 생활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여지마저 보여주고 있다는 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에피소드들에 이어지는 저자 나름의 가치관이 담긴 부분은 몇몇 부분에서 예의 그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걸 안겨주기도 했습니다만!


「파산」을 읽고 쓴 감상문에서 저자의 글이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책들인)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삶을 만나다」의 저자 김형민을 떠올려주게 한다라 썼었거늘, 아쉽게도... 이 책, 「내 청춘의 감옥」은 그러한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네요. '내 젋은 날의 역사일 뿐이고, 내가 인생을 헤쳐 오는 데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준 경험이었다'(p10)라는 저자의 글처럼, 책으로까지 펴낼만한 무게는 가지지 못한, 공지영(작가)·정진영(배우)·조국(교수)·한홍구(역사학자)의 추천사를 다 읽고나면 사뭇 뜻밖이네!라 느껴지게만 하는, 그저 한 개인의 과거이야기 일 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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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안가 군대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굳이 군대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군대 생활을 궁금해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냥 그 여자에게만 말해주면 되는거죠. 마찬가지로! 일반 독자로서 제/우리가 '징역 생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라 생각합니다. 다만!!! --- 우리 사회의 어느 과거에,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가 아닌, '양심의 사유'로 인해 그 징역 생활을 겪어야 했던 저자가 보여주는 '징역 생활 속 그 만의 이야기'를 기대했었으나, 다음의 부분을 제외하고는 딱히 저에게 이 책을 통한 '독서의 즐거움/유익함'을 얻을 수도 없었었네요. 


● 난 한국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경향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이들조차 자주 비난하는 그의 '가벼움''말 막하는 버릇'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 그는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무겁게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 내고 그 특유의 솔직함과 가벼움으로 국민에게 다가선 첫 대통령이다. 국민이 엄숙한 자리에 올라갈 수 없으니 '가볍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스스로 내려선 이다. 나는 이런 가벼움이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눈높이를 맞추는 인간적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pp55-56)


● 1982년 3월 18일, 부산 지역의 대학생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및 독재 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물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 …… 사건 당시 피의자들 중 허진수, 김화석을 변호한 변호사는 노무현이었고, 사건을 재판한 담당 판사는 이회창이었다. 두 사람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만난다.(p179)

이 책을 읽고 있던 중 마침!!! 이제... 제가 기대하는 류의 글, 그러니까 개인/사회/국가의 특정 과거와 그 사실/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해석/주관을 보여주는 것에 너무도 탁월한! 김형민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라 알라딘이 알려줬습니다.1 아마도 1빠가 아닐까 싶게 잽싸게 사놓은 그 책에는 과연... 제가 기대하는 바가 담겨져 있을른지 궁금하네요. 



※저자 이건범의 다른 책 :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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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주식 투자의 귀재들 --- 물론! (타고난 감각이란 걸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런 개인적/천부적 부분은 배제시키고) 실제 현장에서의 배움이 더 크다 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 시작은 예를 들어 경영·경제학과에서의 수업이었었다라는 것에 그리 강한 반대를 표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나라 대학들은 등록금 문제로 그다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커다란 비약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저 매우 단순한 논리로 보아) 결론에 이르르게 됩니다. 주식 투자의 귀재들을 가르쳤던/길러내는 경영·경제학과 교수들이 직접 나서서 등록금으로 주식 투자를 하는데, (이 간단한 논리 구조의 결과로는) 어찌 수익이 아니 나겠습니까.

국문학과 교수가 쓴 소설이라면,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쓴 소설이라면 일단!!! --- (최소한 국문학과 출신이 아닌) 독자로서는 몇 수 접히고/접어주고 들어갈 수 밖엔 없습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국문학과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했었을진데, 그 작가들을 가르치는/쳤던 선생이니 오죽 잘 써냈겠냐라는, ​마치 상경계열 교수들이 주식 투자를 하면 어김없이 (+)의 수익을 올리지 않겠느냐라는 추론이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라는 거죠. 이 작품, 과연... 그러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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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방민호의 '작가관'에 관하여 】


​'늦둥이 딸 - 곽 부인의 죽음 - 심봉사의 헌신 - 삯바느질 - 장 승상댁 마님 - 개울에 빠진 심학규 - 공양미 삼백석 - 인당수 - 용궁 - 엄마 곽 부인과의 재회 - 연꽃 - 황제의 아내 - 봉사 잔치 - 모든 봉사들이 눈을 뜸' --- 원작 <심청전>의 대략적인 흐름은 이러하다라 알고 있습니다. 예의 '알고 있다'라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거늘, 누군가 저에게 또박또박  구체적으로 그 줄거리를 말해보라 한다면 사뭇 더듬거려질 수 밖에 없는, ('그러하니까/그러하기에' --;;) '고전'들 중의 하나죠.


'심청'이란 인물 앞에는 언제나 '효녀'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으며, 우리는 마치! '효녀'란 단어만이 심청을 설명하도록 허락된 유일한 수식어인 양 배웠더랬습니다. --- 이 '효녀'라는 수식어는 물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천재'라는 단어는 그 스스로/지향하는 대상 없이도 '천재'일 수 있는 독립성을 지니고 있으나, '효녀'라는 단어는 내생적으로 그 지향하고 있는 대상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상정한 뒤에라야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 「연인 심청」의 작가 방민호는, 그 제목에서부터 보여지듯, 심청이 앞에 붙는 수식어의 지향점을 아버지라는 늙은 남성(효녀)으로부터 윤상이라는 젊은 남성(연인)으로 바꾸어놓고 있으며, 이 전환이야말로 작가가 원작 <심청전>과 자신의 작품 「연인 심청」간의 결정적/유일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밖에도, 약간의 작가의 철학과 더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긴 합니다만, 그것들만으로는 원작과 이 작품간의 뚜렷한 구별을 설명해낼 수는 없다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작가란 황무지에 자기만의 꽃을 심는 존재가 아니었다. 길고 깊은 문학의 전통 속에서 나타나 그것에 한 줌 흙을 더하고 사라지는 존재였다. 나 또한 그런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p397)

제가 국문학과 출신이 아니어서일까요? 위와 같은 작가의 '작가관'을 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이 작품처럼 (이미 존재하여 왔던 어떤) 원작을 바탕으로 그 원작을 뒤틀어/변형시켜 또 다른 버젼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분야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작가관'이 성립될 수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이외의 문학 작품들에까지 이것을 적용시키는 일반화는 어불성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완전한 100%의 창작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에도 딱히 반대를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 하여 작가 일반을 가리켜 '꽃을 심는 존재'가 아닌 '한 줌 흙을 더하고 사라지는 존재'라 표현하는 것은 비평가/시인/작가/교수 방민호의 (좀 심하게 표현한다면) 교만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 '되어야 했다'라는 위의 표현은 마땅히! (첫 장편소설을 써내는 작가로서 자신은 이런 - '한 줌 흙을 더하는 - 작가가) '되는/될 수 밖에는 없었다'가 되었어야한다라 생각합니다.  


【 「마담 뺑덕」에의 오독(誤讀) 】

​여전히 지금도 원작 <심청전>을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러하기에 개략적인 줄거리만으로는 각 등장인물들의 심성까지를 알고 있지 못합니다만! --- 이 작품 「연인 심청」에서의 심학규는 매우 탐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1 그의 무능, 육체적 결함과는 무관하게 말이죠.


●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다. 오늘 가진 것보다 늘 내일 가질 것을 꿈꾸는 아버지다.(p100)

● 심봉사는 돈보다도 애랑이가 그렇게 일찍 떠나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 짝이 없다. 애랑이가 쓸어가버린 돈으로 더 많은 계집을 섭렵하며 즐기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깝다.(p253) 

만약 이러한 심봉사의 성정(性情)이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 백가흠 作, 「마당 뺑덕」을 읽고, 작가는 원작으로부터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이름만을 빌려왔다라 했던 저의 독해는 일단 완전히 틀린 것이 됩니다. 거기에 더해 만약 원작을, 또한 이 작품을 '욕망으로 지은 죄'에 관한 이야기로도 이해할 수 있다/이해해도 된다라면 역시나! 「마담 뺑덕」에서 보여졌던 각 등장인물들의 행동/생각/말들은 모두... 작가 백가흠이 창작해낸 것이 아닌, 역시나 단지 원작에 '한 줌 흙을 더해놓은' 욕망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게 되지요. 결국... 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마담 뺑덕」을 이해했던 저의 독해가 기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었었다라는 걸 시인할 수 밖엔 없게 됩니다. 


시선을 이렇게 바꾸고 보니 --- 「마담 뺑덕」과 「연인 심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질 수 있는 정서랄까? 혹은 심학규를 위한 변명이랄까? 그런 게 바로 다음의 문장에 표현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은 사람을 눈멀게 한다. 보통 때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한다. 세상의 선과 악을 넘어서게 한다.(p240)


【 숙명론(宿命論) VS 조명론(造命論) 】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헷갈렸던 부분입니다. 저의 얕은 독해로부터 기인된 것이 크겠지만, 그 얕은 독해로는 작가가 이 '숙명론'과 '조명론'에 대해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보라면) 사뭇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란 표현을 쓰고 싶을만큼, 이야기의 전개과정과는 완전히 상반된 결론을 내놓고 있다라고 밖에는 결론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우선 작가가 설명하고 있는 '숙명론'과 '조명론'을 살펴 볼까요?


사람이 하늘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숙명론(宿命論)이라 한다면, 정성과 의지로써 타고난 운명조차 바꾸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조명론(造命論)이라 할 수 있다.(p399)

작가가 써놓은 다음의 글을 읽어보고, 이것이 과연 숙명론과 조명론 중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봐주시길 바랍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왔나. 왜 이렇게 춥고 배고프고 외롭게 살아야 하나. 이 고통과 슬픔의 수렁에서 어떻게 해야 헤어날 수 있나. …… 실로, 인간은 자기가 처한 상황보다 항상 더 큰 것을 욕망하며, 현대는 그 극심한 욕망이 충돌하는 아비규환의 쟁투장이다. 여기에 나오는 심봉사는 바로 우리 현대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이타적 사랑밖에 없다.2 「연인 심청」은 이타적 사랑의 이야기다. 그것을 실현해가는 운명 개척의 이야기다. …… 이 소녀가 무슨 운명을 타고났으며 어떻게 자기 운명을 바꾸어갔는지를 이 이야기는 말해보고자 한 것이다.(pp398-399)

​애매... 하지 않나요? 전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분명히 '조명론'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라 생각했습니다. 심청이가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갔는지, 그 운명 개척에 관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표현에서 그렇다라는 결론을 내렸었지요. 헌데 말입니다!!! --- 이 작품 그 어느 곳에서도 심청이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가겠노라 하는, 그 '조명(造命)'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발견해내지 못했다라는 데에서, '작가의 말'과 '작품의 말'이 다르다/다르지 않는가라는 혼란을 겪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 등에 업혀 동냥을 다니던 때부터 청이는 과거 급제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걸 이루기만 하면 이렇듯 구차하게 목숨만 이어가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다. 청이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다. 아직 어리지만 자기 앞에는 막막한 내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p10)

​오십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과거 급제가 신산한 삶의 유일한 탈출구라 믿고 있는 이 망상 속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에게 죽어라 고생만을 요구하는 현실의 청이에겐 이미! 밝은 미래에 대한 환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위의 구절만을 가지고 제가 이 작품의 주제가 '숙명론'이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좀 더 보시죠.


윤상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청이는 윤상이의 존재만으로도 고된 자신의 현실에 대한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뿐이죠. 청이는 스스로 자신과 윤상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 : '하지만 자기에게는 앞 못 보는 아버지가 있다.'(p27) --- 그렇기에 고민과 한탄을 하게 되지요. : '나는 어느 별에서 여기로 온 걸까. 아버지는 또 어디서 와서 나와 이렇게 아비와 딸이 되었을까.(p44) …… 아비가 지붕이 되고 울타리가 되는 것이 순리인 세상인데, 자기는 거꾸로 아비를 봉양하며 살아가야 한다. … 무슨 뜻이 있겠지. 사람마도 운명이 다른 것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뜻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이겠지. 아,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어떻게 살라는 하늘의 뜻일까.'(p46)     

장 상서 댁 마님마저 이러한 숙명론에 한 수저 크게 더해주고 있습니다. : '그럼 네 이름은 물속에 들었다 나와 깨끗하니 새 삶은 산다는 뜻이로구나. …… 청이의 성인 심자는 본래 가라앉을 침(沈)자다. 큰마나님은 이를 염두에 두고 이름풀이를 한 것이다.'(p69) --- '물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날 운명'이 아예 이름에 박혀 있다라는 거죠.


게다가! 개울에 빠졌던 심봉사를 건져줬던 스님이 말했다는, 눈을 뜨기 위한 공양미가 삼백 석이었거늘, 중국 뱃사람들이 인당수에 바칠 (바로 청이의 나이인) 열다섯 살 처녀를 사며 내놓는 돈이 또 삼백 석인 겁니다. ​: '청이는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는 느낌이다. … 삼백 석이라니. 그건 아버지가 몽운사 화주승에게 약속했다는 그 삼백 석이 아닌가.'(p82) …… '운명이라면. 이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면.'(p94)


​하지만 무엇보다! 저에게 청이가 '숙명론자'임을 보여주었던 결정적인 부분은 바로 다음의 구절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청이나 윤상이나 똑같이 이 세상에서 보람을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로 자랐다. 뜻을 만들기도 전에 운명이 자기들을 사로잡았다. 사람이 다른 점이 있다면 윤상이가 자기 운명을 바꾸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면 청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 밤하늘을 보면 청이는 저 너머 깊은 곳에 자기보다 더 크고 높은 힘이 있어 자기를 마음대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바로 운명이라는 거겠지. 복사골에서 태어나 복사꽃처럼 없이 스러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의 몫이겠지.'(p129)

 

위의 인용에도 나와 있지만, 윤상이란 인물은 작품 속에서 내내 확실한 '조명론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만약! 작가가 이 이야기를 가지고 누군가가 '어떻게 자기 운명을 바꾸어갔는지'를 말하고자 했다라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당연히 심청이가 아니라 윤상이가 되었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히 심청이가 '어떻게 자기 운명을 바꾸어갔는지'를 말하고 있는 이야기라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지요.3 그래서일까요? 작가는 뜬금없이 몇몇 곳에다 심청이의 의지가 깃든, 그러니까 심청이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겠노라 결심하는 장면들을 넣어놓고 있습니다만, (작위적인 설정으로 보이기만 하는) 그것들로는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어보이기만 합니다. 즉! 작가 스스로가 (심청이가 숙명론자이냐 조명론자이냐 /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심청이가 되어야 하냐 윤상이가 되어야 하나에 대해) 작품을 써가는 도중에도 여전히 막!!! 헷갈려하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거지요.4 : '공양미 삼백 석에 내 생명을 바쳐야 하나?' 오매불망 눈 뜨기를 원하는 아버지를 위해 자기를 송두리째 바칠 수 있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삶을 결말지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이유가 되는 게 아닐까.(pp90-91) --- 이러한 고민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만으로 심청이를 '조명론자'라 분류하는 건 너무도 고민없는 단순한 결론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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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빌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까. 세상이 열린 이래 사람들은 그럴 수 있기를 바라왔다. 사람의 의지를 떠받드는 이들은 사람의 힘으로 이루지 못할 게 없다고들 했다. 사람은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만을 제출하는 법이라고, 제법 그럴 듯한 논리를 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즐겨 하늘에, 하느님께, 상제께 빌었다. 자기의 불완전함을 믿고 그 결핍을 채워줄 초월적 존재를 믿었다. 사람들은 그 바람만으로도 그 사이에 이루지 못했던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이 발원에는 그것은 자신의 내적 신념으로 바꾸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해 있었다.(p363)

작가 스스로가 '조명론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자신의 가치관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 이 소설의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들 자체가 모두 '숙명론자'들 뿐입니다. 기껏해야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인 윤상이만이 (작가의 의도를 100% 작가의 뜻대로 표현해/따라주고 있는) 유일한 '조명론자'이죠. 게다가!!!


작가가 원작에 (한 줌 흙마냥) 더해놓은 판타지적 부분은, 마치 (우스운 꼴의) 자가당착처럼, 이 소설 「연인 심청」이 '숙명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도록 한번 더!의 망치질을 하고 있습니다. --- 그 판타지의 핵심인 심봉사와 심청이의 관계라든가, 작품의 중간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요화라는 인물 모두 결과적으로는 딱!!! 거스를 수 없는,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의 그런 '숙명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분... 계속 헷갈리고 있다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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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황무지에 자기만의 꽃을 심는 존재가 아니었다. 길고 깊은 문학의 전통 속에서 나타나 그것에 한 줌 흙을 더하고 사라지는 존재였다. 나 또한 그런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p397)

다시 한 번 더 인용해 본, 작가 방민호 스스로 밝힌 그의 작가관입니다. 이러한 작가관을 가지고 있어서일까요​? 이 작품을 읽다보면 <홍길동전>의 내음을 풍기는 곳도 있으며, <성경>의 한 구절인듯 보이는 부분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본다면, 최신!의 '한 줌 흙'으로는 혼다 테쓰야 作,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핵심 문장과 비슷한 구절도 있더라!라 말할 수도 있을듯 싶구요. 물론!!!

'효녀'라는 단어만이 허용되어 있던 심청이에게 '연인'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부여한 작가의 발상에 대해서는 응당 '그만의 창작'이라 말해야겠으나, 이 작품을 읽고 느낀 바가 오로지 그것 뿐이라면, 실제로! 딱히 감동스러운/아름다운 문장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이 메마른 문장들로 뭔가 가슴 저미는/생각할 꺼리를 안겨주는 메세지를 지니고 있지도 못한, 저에게는 암튼! 별달리 끄집어내어 언급할만한 것이 없었었기에 --- 주식투자를 강의하는 교수들에게 등록금을 맡겨 놓았더니 반토막을 내놨더라~라는 것과 비슷한, 아니! 이 작품으로 보자면 원작 <심청전>이 지겹도록 주입해주었었던 '효도'의 의미마저/조차 퇴색시켜버린, 그러하기에 훨씬 더 폭망한 결과만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라는 수근거림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아무리 전문가가 보기엔 훌륭한 전략과 계획을 지닌 투자였었으나 아쉽게도 운이 안 좋아 반토막이 난 것이란 평을 들을 지언정, 일반 투자자의 입장에게는 그저 실패한 결과만이 보여지는 투자일 뿐이듯, (국문학과 출신이 아닌) 일개 평범한 독자인 저의 눈에 이 작품은 '괜히 읽었네!'란 감상을 남겨주는 소설이기만 했네요. (사실... 이 작품의 감상문에 대해 적잖은 상금이 걸려 있는 대회가 있다 하길래, 뭔가 낙수(落水)라도 맞아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 읽었더랬습니다만, 이런 처참한 결과를 보여준 '투자'에 뭔 가타부타를 더하겠나하는 생각만 남습니다. 왜... 냐구요? --- 뭐, 저의 '독자관(讀者觀)'이란 게, '한 줌 흙만을 더하는' 독자가 되는 건 원하지 않기 때문이어서랄까요. ^^;;)   

※ <심청전>을 모티프로 삼고 있는 또 다른 작품 : 백가흠 作, 「마담 뺑덕


 



 

  1. 이에 관해 작가는, 심청이마저 아버지 심학규에 대해 (안타까움과는 별도로) 원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노라 적고 있습니다. : '안 가지는 게 아니고 못 가져서, 못 가진 괴로움이 평생의 한이 되어, 한시도 한탄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다. 이렇게 사시면 아니 되는 것을, 이제는 욕망을 내려놓으실 때도 된 것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청이는 아버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사람들에게 효성스러운 칭찬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꼭꼭 숨겨둔 진짜 자기 마음은 아버지를 너무나 원망하고 부끄럽게 여겨왔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쳐드는 혐오감, 불쾌감을 누그러뜨리느라 청이의 속마음은 불탄 숯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p93)
  2.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이타적 사랑밖에 없다'라는 이 구절을 본문 74쪽 심청의 독백인 '꼭 세상을 바꿔야 한다면 사랑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거야.'로부터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본문 속에도 왜? 사랑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냥... 작가가 그렇다라 써놓았으니 독자로서 그런가보다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죠.
  3. 인용문 p399 참조.
  4. 그 일례로 --- p74 초반부에 나오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문장을 담고 있는) 심청이의 독백부분은 저의 이해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상충된 논리를 하나로 엮어놓았다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도대체 이 긴 구절이 뭘 뜻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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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합본)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26
염상섭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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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였든 어디에서든 몇 번은 들어보았던 작품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작가 염상섭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는 이 소설 「삼대」는 제목 그대로, '할아버지(조 의관)-아버지(상훈)-주인공(덕기)'의 삼대(三代)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등장 인물의 탄생/성장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가 아닌, 그 삼대가 동시에 등장하고 있는 특정 시점의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지요. 그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1930년 언저리의 일제 치하 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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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엔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란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이처럼 '나의 가까운 과거'에 대해서조차 그것을 현재(의 조건들)와 비교해 본다라는 건 그만큼 그 과거에 대한 (때로는 그리움이 있기도 하나 대부분) 안쓰러움스러운 감정을 가지게 해줍니다. 후회와 아쉬움은 물론이구요. --- 그리 멀지않은 시대인 1930년대엔 그러한 안쓰러움과 후회, 아쉬움을 뛰어 넘어 지금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도 있었던 듯 합니다. 그 시절이 (저도 물론 피부에 와닿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저의 다음 세대들은 더더욱 알 수 없을) 우리의 자주권 없는,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때라는 커다란 사실을 제외하고도 말이죠.

양반 관직을 돈으로 산, 한 마디로 백만장자인 중인 출신의 덕기 할아버지.1 --- 헌데 이 양반이 나이 칠십이 다 되어, 자신의 며느리 (그러니까 주인공 덕기의 어머니)보다 네 살이나 어린 첩2을 들여 덜컥 딸3까지 낳아버렸습니다. 그의 손자 덕기 역시 아들을 낳았거늘, 이제 그 가족에는 항렬로만 보자면 '네 살짜리의 할머니와 세 살 먹은 손주'(p27)가 공존하게 된거지요. 헐~

이런 짜장스런 관계가 가족 내에서만 있었느냐 --- 덕기의 부친 상훈은 젊은 시절 미국에까지 다녀온, 그리하여/그로 인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허나 부친의 막대한 재산 덕에 딱히 하는 일 없이4 교회 일에만 열심인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아버지인 조 의관과 상훈의 관계가 좋을리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상훈이 기독교 신자라는 것. 돈으로 조상들의 묘를 새로이 단장하고 제사를 으리으리하게 지내려는 조 의관과는 달리 상훈은 그처럼 제사에 큰 돈을 쓰는 것을 못마땅해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아예 제사 참석 자체를 거부했었었으니까요. 하지만!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 같은 상훈도 속을 까보면 그렇지도 않다라는 게 문제입니다. 낮에는 교회 일에 열심을 다하는 신사이지만, 밤만 되면 남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기생 술집에 출입을 하는 인물이었던거지요. 뭐 그렇게 몰래몰래 술만 마시고 다녔다면 '돈 많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 넘겨버릴 수도 있겠거늘, 이 양반 역시 (그의 아버지인 조 의관처럼 대놓고 첩을 집으로 들인 것은 아니나) 한 젋은 여성에 혹해 결국 그 사이에 아이를 하나 낳았던 겁니다. 근데 문제는... 그 상대인 '젊은 여성'이 상훈의 아들 덕기의 국민학교 동창이었다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덕기에게는 자신의 국민학교 동창이 졸지에 자신의 서모(庶母)5가 되어버린 상황이 생겨난 겁니다. 헐,헐~

덕기는 할아버지의 명으로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방학을 맞아 본가에 와 있다가 이러이러한 짜장스러운 상황들을 알게 된 거죠. --- 어느덧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 스물세 살의 나이가 되자 덕기에게 보이는 자신의 가족이라는 게, 특히나 자신의 아버지 상훈이 좋게 보일 리가 없는겁니다.


부친은 봉건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오는 외나무다리의 중턱에 선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마침 집안에서도 조부와 덕기 자신의 중간에 끼여서 조부 편이 될 수도 없고 아들인 덕기 자신의 편도 못 되는 것과 같은 어중간에 선 처지라고 새삼스러이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자기의 사상 내용으로나 가장 불안정한 번민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덕기는 부친에 대하여 가다가다 반감이 불끈 치밀다가도 한 편으로는 가엾은 생각, 동정하는 마음이 나는 것이었다.(p41)

물론! 덕기는 여전히 아들로서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매우 괴로워하기는 합니다만, 끝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같은 '19세기의 인물'이 될 수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던 19세기, 그리고 그 '19세기의 인물'들에게 다음과 같은 잘못이 있다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앞서 산 사람이 자기의 뒤틀린 경험과 사상과 습관 속에 뒤에 오는 사람을 가두어 넣으려 하는 데서 그 비극의 씨를 뿌려 가지고 청춘의 꿈이 깰 때 어떻게 집심6(執心)하고 조신7(操身)하겠는가 하는 마음의 준비를 시켜 주지 못하고 방임하였던 실책에서 그 열매를 거둔 것이나 아닐까? 이것이 너무나 실제에서 먼 관념론이라 할까?(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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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변모해 가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의 삼대를 통한 각 세대의 가치와 의식 변화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덕기로 대변되는 당시 청년들의 정신적 갈등이 사실적 수법으로 탁월하게 묘사되고 있다. 식민지 현실과 근대 사회로의 변천 과정을 밀도있게 재구성하면서 한 가족의 가족사를 통해 당시 사회의 구조와 모순, 세대간의 가치관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 <작품 해설> 중

위의 인용 ①,②에서 보여지는 덕기의 생각을 본다라면, (어느 정도의 비약이 있긴 하나) 이러한 <작품 해설>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겁니다.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代) 사이의 갈등요소가 '기독교'로 대변되는 외래 문물만으로 표현되고 있다라는 게 (물론 극적인 대비를 위한 것이겠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일견 지나치도록 단순화 시킨 설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도 해줍니다만, 그들(조 의관과 상훈)을 바라보는 덕기의 시선에는 분명! ('19세기의 인물'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와 의식의 변화'가 녹아 있었기 때문이죠.


조 의관은 눈을 감으며 남긴 유언장에서​ 자신의 재산 분배를 세심하게 적어놓으며, '금고지기'로서의 역할을 아들 상훈이 아닌 손자 덕기에게로 넘깁니다8. 졸지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게 된 덕기이지만, 친부(親父)인 아버지가 엄연히 살아 있다보니 덕기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같은 실질적 재산 관리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었지요.9 --- 이전에는 그래도 기독교 신자로서 타인의 시선을 피해가며 주색잡기를 즐겼던 상훈은, 아버지였던 조 의관이 자신을 무시하고 손자인 덕기에게 집안의 금고지기 역할을 넘겼다라는 데 낙담해, 이젠 아주 대놓고 향락에 빠져선 그 모든 금전적 해결을 아들인 덕기에게 미룹니다10. 결국 조 의관이 세상을 떠난 지 단 두 달여만에 조 씨집안은 '짜장'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어버렸으며, 이렇게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버린 자신의 집안을 보며 덕기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지요.


​'할아버니께서 돌아가신 지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 되는데!' 덕기는 이 두 달동안에 집안 형편이 이렇게도 변하였을까 하고 한숨을 지었다. …… 덕기 생각으로는 때는 흘러나가는 것이요, 조부가 돌아가고 새 사람, 새 살림, 새 시대가 바뀌어 들겠지마는 그것이 일조 일석에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안 것 같다. …… '할아버니께서 일흔이 넘어 돌아가셨으면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닐 거요, 결국 우리의 뒷받침이 늦은 것이다. 우리가 아무 준비도 없기 때문에 불과 두 달에 이 모양이다!'(pp517-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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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에게 '나/우리의 과거'에 있었었던 사실을 알려줍니다. --- 일제의 지배를 받아야 했었고, 외래의 문물들이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었었으며, 어느 부분에 대해선 저항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채, 강제로 그 외래의 문물들을 받아들였었어야 했다라는 건 분명!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가르침들이겠죠. 그렇다면 이 작품처럼 우리의 실제 역사의 한 단면을 가공의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는 (문학에서의 분류가 아닌, 그저 '역사 자체는 아니되 역사를 담고 있는'이라는 의미로의) '역사 소설'로부터는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걸까요?

이 작품 「삼대」가 (이광수의 「무정」과 같은) 계몽 소설은 아닌 것 같지만, 작가 염상섭이 당시의 사회상을 작품 속에 그려내며 대중들에게 (이광수의 「무정」이 보여주었던 '우리가/는 변해야 한다'라는 식의 적극적 계몽이 아닌, 소극적 의미로서의 '계몽'일 수는 있겠는) 일종의 '반성', 혹은 미래에의 '대비'같은 걸 요구했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는 됩니다11. (다시 한 번 더!) 그와 같은 의미가 이 작품에 주어져 있다면, 이미 시대가 완전히 바뀌어 있는 2015년의 우리는 대체 이 작품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문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읽을만한 가치가 있기는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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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이라 불리우는,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감각/경로를 통해서든 바라보게 되는 '과거'에 대해,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종의 우월감과도 같은 감정을 갖게되곤 합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그저 사용하는 자의 입장에서 가져보게되는, '이렇게 편한 게 없었을 땐 대체 어떻게들 살았었을까?'하는 의문이 그 단적인 예이지요. 사실! 우리는 '이게 없었을 땐'의 다음에 '대체 어떻게들 살았었을까?'라는 의문이 아닌, '이런 걸 만들어낼 생각을 대체 어떻게 했었을까?'라는 감탄을 가지는 것이,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가셨던 그 모든 분들을 향해 가져야할 합당한/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주인 시즈카 作, 「아버지와 외삼촌」이라는 소설을 읽고 제가 썼던 감상문의 첫 문단입니다. --- 제가 '짜장스럽다'라든가 '개판'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실어왔었던 이 작품 「삼대」 속의 상황들은 물론 2015년의 제 가치관에 비추어 그렇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엔 '덕기의 아내'처럼 자신의 남편이 첩을 두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라 말하는 인물도 있듯이, 당시엔! 지금의 저처럼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 '짜장스럽다'라든가 '개판'이라는 표현 자체를 아예 떠올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거라, 어쩌면 (최소한 특정 계층에 한해서는) 대다수가 그러했었을 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들, '19세기의 인물'들에게는 아직 '가치와 의식의 변화'라는 것이 발생되지 않았었으니까요. 이처럼!

핸드폰이나 스마트 폰이 없었을 땐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어!라, 마치 남 이야기하듯 말할 것이 아니라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낼 생각을 했었을까!'란 감탄과 그에 따르는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대해 가져야할 후인(後人)으로서의 옳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 우리가 역사 소설을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러 이러했던 과거가 있었다'라 역사가 알려주는) 사실(史實)로부터의 깨달음/배움(그리고 그에 대한 감사함)이 되어야 한다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말입니다!!!


​언젠간 현재의 우리들도 예의 과거의 사람들이 되어있을 겁니다. : '삼대(三代)'라는 구조에서 가장 괴로운 인물은 아무래도 바로 가운데 끼인 사람, 즉 이 작품에서의 상훈이 될 수 밖엔 없겠지요. 이런 시선으로 상훈을 바라보면 일견 그에게 동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처럼 '가운에 끼인 자'의 처지/비애를 작가 염상섭이 의도적으로 낮과 밤에 완전히 다른 생활을 했었던 상훈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일 수도 있다라 생각되기도 하구요.  --- '가운데 끼인 세대'는 항상 존재합니다. 지금의 '저/우리'를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가 고작(?)해야 정치적 관점에서나 충돌했던/할 뿐이었던 것에 비해, 우리 아이들의 세대와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상당한 범위와 간극의 격차가 존재하는 '가치관의 대립/충돌'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염려 어린 가정은 충분히 그 설득력이 있다라고 생각하며, 이 때!!!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어쩌면! 이 소설 속 다음의 구절에 담겨져 있지 않을까도 싶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작품 속 덕기의 한탄처럼 '우리의 뒷받침'이 얼마든지 늦어질 수도 있는거니까요.       

 

 

그이12는 자네 조부에게는 기독교도로서 이단이었지마는, 자네에게도 시대 의식으로서 이단일 것일세. 그에게는 얼마 동안 술잔과 19세기의 인형을 무릎에 맡겨 두는 것도 좋은 일이나 …… (p307)

​왠지 자꾸만 상훈이라는 인물에 비난보다는 동정의 마음을 더 크게 가졌었던 저에게, (덕기의 친구인) 병화라는 인물이 덕기에게 써보냈던 위의 편지 속 구절이 (이것이 이 작품의 교훈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내내... 제 머릿 속에서 맴돌더군요.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구절과 (어느 분인가의 블로그에서 보았다가 메모해두었던) 다음에 쓰게 될 구절의 연관성을 명쾌하게 보일 수는 없습니다만, 자꾸! --- 무언가 이 둘 간의 사이에 (작가 염상섭의 의도하였던 것은 물론 아니겠으나), 우리의 부모 세대에게 내가 하지 못하였던 것들에 대한 후회로부터, 우리 세대에 해내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책임 의식, 그리고 나의 자식 세대에게 기대하는 바람(願)까지가 모두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털어낼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뒤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더 실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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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로부터 시작되었던 우리나라 근대 문학에 대한 흥미가, 이광수의 「무정」을 읽게 해주었었다라면 --- 염상섭의 이 작품 「삼대」를 향해서는 앞서의 두 작품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며, '나/우리'의 현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어 있는 것인가를 찌릿!하게 알려주었다라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도 아니건만, 지금 우리의 일상에선 사용치 아니하는 단어/구절들이 너무도 많이 나와 '네이버 국어사전'을 함께 띄워놓고 매 페이지마다 두 세개씩 사전을 검색하고 적어놓으며 읽었어야 했다는 노동이 필요하긴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당시의 어휘들로 쓰여져 있는 버젼을 읽어야만이 원작의 풍미를 한껏 맛 볼 수 있다라는 건 누구에게나 틀림없이 해당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오래 전(?) '귀여니'란 작가(?)의 소설이 그 해괴(?)한 단어들로 논란(?)이 된 적 있었습니다만, 내 아이들이 지금의 제 나이가 되어 있을 때 과연... 김훈 작가나 이문열 작가의 소설들을 사전의 도움 없이 읽어내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다시 한 번 더! 제가 상훈과 같이 '끼인 세대'임의 일례가 아닐까도 싶네요. 끝마무리까지... 이 작품에 대한 저의 독해는 아무래도 상궤(常軌)로부터 매우 엇나간 것 같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


※ 감상문을 써놓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 : 이광수 作,무정

 

 

 

 

 

 






 

  1. 소설에 그의 본명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관직을 성(姓)뒤에 붙여 '조 의관'이라 불릴 뿐.
  2. ⁠즉, 항렬로는 덕기의 새 할머니, 서조모(​庶祖母)가 됨.
  3. 뭐라 표현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항렬상으로는 덕기의 부모뻘이 되는 것이죠.
  4. 상훈이 단지 학교에 관련되어 있다라는 것만 나옵니다.
  5. 아버지의 첩.
  6. 흔들리지 아니하게 한쪽으로 마음을 잡고 열중함. 또는 그 마음.
  7. 몸가짐을 조심함.
  8. 영감으로서 생각하면 죽은 뒤에 아들의 손으로 제사받기는 틀렸으니가 장손에도 외손자인 덕기 하나를 믿는 것이었다. 내가 죽은 뒤에 기도를 하면 내가 황천으로 가다 말고 돌아와서 그놈의 혓바닥을 빼놓겠다고 노영감은 미리미리 유언을 해 둔 터이다. 아들이 예수교식으로 장사를 지내 줄까 보아 그것이 큰 걱정인 것이다.(p95)
  9. 덕기는 자리에 드러누우며 세상이 신산하다고 생각하였다. 나이 스물 셋이 되도록 인생 고초라고는 감기나 앓아 보았을까 그외에는 소설책이나 병화의 생활을 통하여밖에는 모르고 자라던 이 청년은 사생활이나 가정일로 세상이 귀찮다거나 신산하다는 생각이 들어 보기는 아마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 지금까지 살림이라는 것, 식구들의 불평이라는 것을 책임없는 처지에서 원광으로 바라만 보던 것이 별안간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에게 책임을 지우려 들고, 자기도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 신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책임은 걸머졌어도 자기 힘으로는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데에 기운이 더 찌부러들고 신산한 생각만 들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pp469-470)
  10. 금시로 정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 속에 앉은 부친은 딴세상 사람같이 생각이 들었다. 신앙을 잃어버리고 사회적으로 활약할 야심이나 희망까지 길이 막히고 보면야, 생활이 거칠어 가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동정은 하는 한편에, 이미 신앙을 잃어버린 다음에야 가면을 벗어 버리고 파탈하고 나서는 것도 오히려 나은 일이라고도 하겠으나, 노래(老來)에 이렇게도 생활이 타락하여 갈까 하고, 덕기는 부친에게 반항하기보다 다만 혼자 탄식을 하는 것이었다.(p433)
  11. 사실 소설 속에는 상훈의 타락한 '현재'와 덕기의 순수한 '현재'가 마치 도돌이표에 의해 움직이는 악보와도 같다라는 메시지가 보이기는 합니다만, 작가가 강조하는 바는 결국 덕기에게는 '가치와 의식의 변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기에 상훈의 '현재'와 같은 덕기의 '미래'는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점이 작가가 내비치고 있는 '일종의 반성 혹은 미래에의 대비'가 아닐까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 '반성과 대비'란 것이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는 당시의 현실에 대한 비판 내지 충고일 수도 있겠으나, 제 수준에서는 감히 그러한 것을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네요.)
  12. 덕기의 아버지 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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