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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들이 대부분 군대를 안 가기 때문에 군대를 잘 모르듯, 안 가본 사람은 징역을 모른다.(p21)
「파산」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던 이건범의, 일종의 에세이집입니다. 저 역시 '안 가보았기에 모르는' 징역 생활을 겪으며 보고 듣고 느꼈던 점들을 적어놓은 책이지요. 뭐 그냥... 무지하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은, 시간만 낼 수 있다면 서너 시간이면 다 읽어낼 수 있는, 그다지 무겁지 않은 주제의 책이기도 하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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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어딘들 감옥 같은 단절과 금지, 좌절과 고통이 우리를 구속하지 않겠냐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그 고통 속에도 웃음과 행복의 소재가 있다. 나는 고통의 무게감보다는 웃음의 가벼움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임을 역설적이지만 감옥에서 배웠을 뿐이다.(p13)
징역살이 중, 교도소 내 매점에서 산 훈제 닭을 우려낸 물로 만두국을 끓여 먹었다라는 부분을 읽노라니, 몇년 전 이대 앞에서 꽤 핫한 식당을 운영했던 어느 일본인 요리사가 후라이드 치킨의 뼈만을 모아 끓이면 닭육수가 될까 궁금해 실제 그렇게 해봤다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아쉽게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일화들과 저의 과거/기억과의 공통점은 단지 이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전반적으로 '웃음과 행복의 소재'가 너무도 두드러져, 저자의 징역 생활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여지마저 보여주고 있다는 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에피소드들에 이어지는 저자 나름의 가치관이 담긴 부분은 몇몇 부분에서 예의 그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걸 안겨주기도 했습니다만!
「파산」을 읽고 쓴 감상문에서 저자의 글이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책들인)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삶을 만나다」의 저자 김형민을 떠올려주게 한다라 썼었거늘, 아쉽게도... 이 책, 「내 청춘의 감옥」은 그러한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네요. '내 젋은 날의 역사일 뿐이고, 내가 인생을 헤쳐 오는 데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준 경험이었다'(p10)라는 저자의 글처럼, 책으로까지 펴낼만한 무게는 가지지 못한, 공지영(작가)·정진영(배우)·조국(교수)·한홍구(역사학자)의 추천사를 다 읽고나면 사뭇 뜻밖이네!라 느껴지게만 하는, 그저 한 개인의 과거이야기 일 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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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안가 군대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굳이 군대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군대 생활을 궁금해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냥 그 여자에게만 말해주면 되는거죠. 마찬가지로! 일반 독자로서 제/우리가 '징역 생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라 생각합니다. 다만!!! --- 우리 사회의 어느 과거에,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가 아닌, '양심의 사유'로 인해 그 징역 생활을 겪어야 했던 저자가 보여주는 '징역 생활 속 그 만의 이야기'를 기대했었으나, 다음의 부분을 제외하고는 딱히 저에게 이 책을 통한 '독서의 즐거움/유익함'을 얻을 수도 없었었네요.
● 난 한국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경향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이들조차 자주 비난하는 그의 '가벼움'과 '말 막하는 버릇'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 그는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무겁게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 내고 그 특유의 솔직함과 가벼움으로 국민에게 다가선 첫 대통령이다. 국민이 엄숙한 자리에 올라갈 수 없으니 '가볍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스스로 내려선 이다. 나는 이런 가벼움이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눈높이를 맞추는 인간적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pp55-56)
● 1982년 3월 18일, 부산 지역의 대학생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및 독재 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물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 …… 사건 당시 피의자들 중 허진수, 김화석을 변호한 변호사는 노무현이었고, 사건을 재판한 담당 판사는 이회창이었다. 두 사람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만난다.(p179)
이 책을 읽고 있던 중 마침!!! 이제... 제가 기대하는 류의 글, 그러니까 개인/사회/국가의 특정 과거와 그 사실/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해석/주관을 보여주는 것에 너무도 탁월한! 김형민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라 알라딘이 알려줬습니다. 아마도 1빠가 아닐까 싶게 잽싸게 사놓은 그 책에는 과연... 제가 기대하는 바가 담겨져 있을른지 궁금하네요.
※저자 이건범의 다른 책 : 「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