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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 혁명의 딜레마, 고객이 된 시민, 지식인의 브랜드화
자오팅양.레지 드브레 지음, 송인재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여전히! --- '혁명'이란 단어가 제시해주는 이미지는 저 개인에겐 버겁기만 한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5·16'은 반란인가 혁명인가, '4·19'는 의거로
불리어져야 할까, 혹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난(亂)으로 인지되고 있지나
않을까 등등의 개념적 구분은 차치하고라도 여전히!
저의 일상과는 절대 가깝지 않은 단어이며, 앞으로의 일상과도 결코 가까와지지 않을 것 같은
단어임에는 분명합니다. 단지 --- '유전자 혁명'이니, 'IT혁명'이니 등과 같은, 뭔가 '파격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상징적 단어로서나 일상 속 뉴스 등에서 목격되어질 수
있는 단어일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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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혁명가와 혁명을 옆에서 목격한 사람이
만났다."(p266)
전자는 프랑스인 저자 레지
드브레를, 후자는 중국인 저자 자오팅양을 일컫는 말입니다. 혁명을 목격한 이(자오팅양)가 지적하는 "혁명의 부작용"(p266)에 대하여, 혁명을 실천했던 이(레지 드브레)가 '저 친구와 끝장 토론을 해보고 싶군!'이란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편지로 각자의 생각을 주고 받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 혁명의 '상상임신'은 끝났다!
】
자오팅양의 지닌 '혁명'에 대한 생각을 먼저 보죠. --- 자오팅양은 "정서적으로는 혁명에 동의합니다. …… 그렇지만 이성적으로는 혁명을
신중하게 대합니다."(p25)라는 지극히 완곡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힙니다. 읽히기에 따라선 '혁명은 잘못된
선택이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실제 전 그렇게 이해했더랬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자오팅양이 반대하는 '혁명'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요?
그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이 바로 근대적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생각"(p24)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이상'이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지요.
"저는 이상을 하나의 척도로 간주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해, 이상은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측정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p24)
즉! 두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어디에선가
옳지않다,라 느껴졌을 때,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옳은 현실이 되는 것인가,를 설계해보는 하나의 기준점으로서만
가능한 것이 이상(理想)이거늘, (근대적 의미의) 혁명은 그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려 했었을 뿐 아니라, (옳지않은 현실의) 파괴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라는 점에서, 그는 '혁명'이란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지요. 굳이 지금의 옳지 않은 현실을 바꾸겠다면,
"부드러움으로 단단함을 이기는
침투력은 유연한 대처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도록
만들어주고, 정서와 정세에 따라 점진적이고 세부적으로 추진해나갈 때 개혁이 더 풍부하게 작용할 것이다. 작은 것이 쌓여 큰 변화를 이룰 때 결국
현실을 복종시킬 수 있으며, 여기서 형성된 변혁의 효과가 훨씬 안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pp14-15)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혁명이 동원한 대규모 집단 행동은 개인 이성이 모여서 초래한 비이성적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비이성적인 집단행동"(p26)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단정을 내림으로써, '혁명'이란 개념/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피력하고 있지요.
이처럼 자오팅양은 혁명이란 개념의 사용에 매우 신중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였던 여러 사례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일부의 이익과 권력이
분배되는 상황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통치집단을 타도해서 그것을 대체하려"(p30)하는 것은 결코 혁명이 아니며,
'반란, 봉기, 또는 정변'으로 불리어야 한다라 주장하지요. 그가 정의하는 혁명은 "사회의 총체적 변화'로서, 이는 "사회 전체의 생산양식과 정치법률,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개개인의
생활방식, 사유방식,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p31)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오팅양의 정의를 따른다면, 대한민국의 1987년 6월을 단순히 '항쟁'이라 표현하는 것은
우리 스스의 과도한 겸손이 되겠지요.)
자! 이번엔 레지 드브레의 답변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
드브레는 "(혁명이라는) 상상임신은
끝났습니다!"(p56)란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의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자오팅양의 의견에 동의를 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이상과 환상도 필요합니다. 유토피아의 우울한 최후를 겪고도 계속
살겠다는 용기가 남아 있다면 어떤 유감도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p57)
라는 것으로, 예의 자신의 일생에서 '혁명을 몸소 주도했었던 자'로서의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하지요.
암튼!
이 책의 서문엔 "두 사상가는
학술계의 은어나 논조를 사용하지 않았다"(p10)라 쓰여있거늘, 두 사상가가 주고받은 글의 내용은 이해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혁명'에
관해 주고받은 이들의 <첫 번째 편지 : 반혁명을 초래한 혁명의 두 얼굴>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은근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었더랬습니다만 --- 두 번째 편지부터는 저의 이해력을 내내 탓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더군요. 은근 자존심이 상해, 작정하고 여러 번, 특정
부분을 계속 읽으며 이해하려 했었음에도 끝내는 두 손을 들고 말 수 밖에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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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라는 전통적 원칙을
'남이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로 바꾸고자 합니다.(p196)
어제는 종원군 학교에서 '학급의 날'로 보냈다 합니다. 종원군의 반은 공포 영화를 보기로 했다더군요.
헌데! --- 종원이는 절.대.로 공포영화를 안/못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무섭다고 안읽었었을만큼 무지하게 싫어하죠. 그래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혼자 운동장에 나와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답니다. (물론! 게임도 했었겠죠.)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었네요. 핸드폰 사용금지 조항에 걸렸고, 선생님께서는 5일간 핸드폰 압수의 조치를 취하셨답니다. 종원군은 억울한 마음에 울었다
하더군요.
선생님의
핸드폰 압수는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여하한 이유로 한 명의 예외를 허용하다보면, 전체의 통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요. 선생님께서
조교수에게 전화를 하셔서, 이러저러한 상황을 설명하셨고 양해까지 구하셨었다더군요. 저나 조교수나 그런 선생님의 제재조치에 그 어떠한 반감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 --- 공포영화를 못보는/보기 싫은 학생은 그럼 어찌해야할까?라는 의문이 위 문장을 읽다보니 떠올랐습니다.
공포영화
보는 것이 반의 결정이기에, 즉 그것이 민주주의가 말하는 다수결의 결과이기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라 말해지는 건
엄연히 '폭력의 정당화'일 뿐입니다. 복숭아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다수결로 결정된 과일이므로 무조건
먹어야 한다!라는 건 말도 안되는 거죠. 복숭아 이외의 과일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졌)다면, 복숭아를
먹지 않을/복숭아 먹기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종원군의
선택이 그 시간에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 것임에는 저 역시 이견이 없습니다만, 또한 그 곳이 학교라는 교육의 현장이었기에
반의 결정이 공포영화 보는 것을 거부한 종원군의 선택에 대해 차마 옳다!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 그 녀석이 제 자식이어서가 결코
아니라,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p231)
마오쩌둥의 이 말이, 이 상황에 적용시켜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참
많은 아쉬움을 가지게 해주는 담임 선생님의 결정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해보게만 됩니다. 이로써 --- 대체 이런 어려운 책을 왜 읽어야
하나,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 하나를 찾아내게 되었지요. 거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도, 단 하나만의 생각해 볼 꺼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라는 거. 이것 역시, 적잖이 유익한 소득이긴 하겠습니다만, 이런 류의 책에 대한 호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라는 건 아주아주 오랫동안 제게 큰 상처로 남아있게 될 듯 하네요. 아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