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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잔혹동화
국수경 엮음 / 백암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라는 질문에 대해, 동일 제목의 책에서 저자 박현희는 "백설공주는 외로웠던 것이다"라는 대답을 제시해주었더랬습니다.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라는 부제(副題)에 걸맞게 저자는 이 백설공주의 "외로움은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나와는 관계가 없다"라 단정지으며, "현대 사회에서 관계가 결핍된 자리는 소비로 채워진다"라는 (사뭇 심히 프랑스적 분위기를 풍기는) 시사적 진단까지를 동원해 백설공주를 변호해주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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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이란 단어가 '피 철철'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만, 그보다 훨씬 더 센 강도로 '잔혹'하게 느껴졌더랬습니다. --- '백설공주', '인어공주', '재크와 콩나무', '신밧드의 모험' 등의 (주로 그림 동화 원작의) 외국 동화들을 중심으로 '신 별주부전'(한국)이나 '딱딱산'(일본) 그리고 '노생의 꿈'(중국)등의 동양 이야기들에 심지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카프카의 '변신'까지 담고 있는 이 책에서!
(편역(編譯)이란 단어가 정확히 어떤 작업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편역자 국수경은 각각의 이야기들 맨 뒤에 한 줄로 된 자신의(?) 교훈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 편역자의 한 줄 교훈을 읽어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것의 진수(珍秀)라 할 만큼 재미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노생의 꿈>에 달려 있는 "인생은 깨어나지 않는 악몽이다"(p97)과 같은 한 줄 교훈엔 동감을 아니표할 수 없었었으며, <아이들이 돼지잡기를 흉내낸 이야기>의 "정의는 여론이 만든다"(p71)와 같은 교훈에선 '과연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이런 한 줄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을 만큼의 촌철살인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책의 '교훈'들이 주는 진짜 재미는!!!
"세월이 흐르면 여자는 마귀로 변한다"(p149)라는 한 줄로 원작 <신밧드의 모험>은 대체 어떤 내용인걸까란 심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며, <엄지둥이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 후 "Small은 Beautiful이 아니다"(p108)라 정리해는, 이것이 정녕 sex를 대하는 여성들의 진심이지 않을까 싶은 유머코드를 뿜어내기도, 반면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참사랑은 추한 것을 사랑하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이다"(p115)와 같은 시니컬함으로 요약해 내는 편역자의 기발(!)한 발상들을 읽는 데 있습니다. 뭔가 (정상적으로 일반화시키기엔 무리가 있다,라는 의미에서의) B급스런 교훈스럽지 않은 <교훈>들이야말로 차라리/오히려!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과 같이 "정색을 하지 않은 소설에 정색을 하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의 삶에 유익한 윤활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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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잠자리 시중을 들면서 이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백설공주는 … 금새 침실 기술에 능숙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난쟁이들과 백설공주는 즐거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p11)
원작 <백설공주>가 대체 어떤 이야기인지 정확히 알아낼 수가 없네요. 검색을 해보니 어디에선 백설공주가 쫒겨난 이유가 (계모왕비때문에 아니라) 아버지와의 근친상간때문이란 버젼도 있고, 키스의 주인공인 왕자가 백설공주와 결혼하려 궁전으로 컴백했으나 계모왕비와 눈이 맞아버렸다는 버젼도 있고 암튼! 뭔가 우리가 알고 있는 'white snow'란 이미지의 원작이 아닌 것 같기는 하거늘! --- "침실 기술에 능숙"한 백설공주를 등장시키는 (그러니까 이게 맞느냐 틀리느냐, 혹은 유익하냐 유해하냐와 같은 잣대의 판단을 떠나, 낯설지만 웃음이 지어지는) 이 정녕 B급스런 버젼의 한 줄 교훈인 "어리석은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p16)이 ("현대 사회에서 관계가 결핍된 자리는 소비로 채워진다"류의 정색(正色)보다는 / '빨고 핥고 싸고'류를 좋아하는) 제 감성에 훠~일씬! 더 잘 들어맞네요. 조만간... 이런 B급 소설들 찾아 읽지않을까 싶!
※ 정색을 하고 있긴 하지만, 유익한 부분도 있는 동화 이야기 : 박현희 著,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 박현희 著,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중 p135. 뜨인돌 刊, 2011.
- <각주 1>과 동일.
- 박현희 著,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중 p141. 뜨인돌 刊, 2011.
- 주제 사라마구 作, 「죽음의 중지」중 p282,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