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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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불친절한, 그래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기 참 힘든 소설이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고작(?)158 페이지 뿐인, 시간적 배경 역시 고작(!) 하룻밤 뿐인 이 소설에서 --- 작가는 (프랑스 이름에 대한 무지, 무관심으로 기인된 무의식적 판단이 안겨주었던, '미셸'은 당연히 여성의 이름일 것이란 저의 판단관 달리) '미셸'이 남성의 이름이란 것을, 그의 나이는 마흔다섯 살이며, 직업은 항공기 조종사라는 것을 무려(!) p71가 되어서야 (명시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죠.1 뿐만 아니라,  


여자는 내 또래로 보였다. 차이가 난다 해도 기껏해야 몇 년일 듯했다. 젊음과 매력적인 이목구비로 윤곽만 잡힌 그 무엇이 흰머리로써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p7) 

여자가 나이 들었다는 건지, 젊은 축에 속한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서술로, 소설 속 중요한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곤 --- "여자는 흰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런 머리형을 하고 있는 이유가 자신이 여전히 젊다고 생각해서인지…"(pp14-15)라며, (추리소설도 아닌 것이) 그 궁금증을 저~ 뒤에 가서야 풀어주지요.2 오! 이런 (스타일의) 소설,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


  "이건 사랑의 이야기 … 나는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래서 그건 사라질 수가 없다오."3(p64)

VS

"그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건가요?"(p108)

남자 미셸과, 그가 정의하는 '사랑'에 동의하지 못하는 여자 리디아가, 우연히 만나 보내게 된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4입니다.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인식의 차이, 그리고 미셸의 부인인 야니크와 미셸 간의 특별한(!) 사랑 등을 통해 작가는 '대체 사랑이란 게 뭘까?'를 이야기하고 있지요.5


【 남자, 미셸 】

​"늙은 피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건 사랑이 없을 때의 이야기야."(p40) …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여전히 흠 없이 처음 같지? 모든 게 퇴색하고, 모든 게 깨지고, 모든 게 진력이 난다고들6 하던데 …"(p41)

타고난 로맨티스트라 해야 할까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부인 야니크에 대한 (성욕도 포함하여) 사랑이 변하지 않은 미셸 말입니다. 이런 남편과 사는, 자신을 변함 없이 사랑해주는 남편과 사는 아내 야니크는 분명 행복하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 이런 고백(같은 질문)을 하는 남편에게 건네어지는 부인 야니크의 설명은 사뭇 냉철하기만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본모습을 보는 대신 그를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려고 애쓰지.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만드는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은 것 덧입히지. 그를 멋있게 보려고 두 눈을 감는 거야. … 당신의 젖가슴이 처진 것을 보고 그는 개성적이라고 여겨. 그가 촌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그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가 무식하게 여겨지면 당신은 자신에게 두 사람 몫의 교양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해. 그가 줄곧 그걸 하고 싶어 하면 당신은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가 그걸  별로 잘하지 못하면 당신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 명백한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갖은 애를 다 쓰는 거야. 너무나도 명백한데도 말이야. … 그러다가 서로 거짓을 꾸며내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 슬픔, 원한, 증오7가 되는 거야. 아이들 때문에, 혹은 그저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치욕 속에서 함께 사는 편을 선택8해 패잔병이 되는 거라고. "(41-42)

야니크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 없이 사는 삶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9이 바로 자신의 남편 미셸인 것을, 하지만 자신은 이제 곧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10을 말이죠. 그리하여, 유언 비슷한 다음의 말을 남편 미셸에게 남깁니다.





​"난 누군가를 갉아먹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 나는 당신을 떠날 수 밖에 없어. … 전혀 다른 여자에게 가. 그 여자를 찾아. 내가 당신에게 남겨놓은 걸 그 여자에게 줘. … 그건 나를 잊는 게 아니야.  … 오히려 그런 축하할 일이야. … 나는 곧 지상에서 사라지겠지만, 여자로 남고 싶어."(p25) …… "나를 사용해. 날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그러면 그 일을 해내는 거야. 나는 여자로 남을 수 있어."(p117)……  "나를 잊어버리는 가장 잔인한 방식은 바로 당신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야."(p125)

"재혼해도 괜찮으니까, 꼭 재혼해!"와 같은 의미가 결코 아니라 생각합니다. 남편을 너무도 사랑했고, 그 남자가 "여성성11 없이 … 이 시간, 이 세월을 살아낼 수 없"(p25)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남긴 단호함이지요. 그 남자 미셸은 그리하여, 그래서!12


"나는 … 그녀와 함께 죽을 수도 있었소. 하지만 그녀는 내가 살아서 행복하기를 원했소. 다시 말해 지금처럼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랐소."(p68)

길에서 우연한 일로 알게 된 여인, 리디아에게 그녀가 지닌 "여자의 빛"(p126)을 자신에게 비추어 달라 간청13하지요. 한 마디로! --- 저로선 당췌 이해 불가!!!



【 여자, 리디아 】

교통사고로, 실어증에 걸린 남편, 그리고 딸을 잃은 리디아는 "행복해질 권리가 없다는 걸 자신에게 증명"(p81)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인입니다. 여기서, --- 그녀는 남편의 실어증보다 딸을 잃었다는 것에 더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그리하여, 지난 10여 년 간, 남편을 향해있던 자신의 사랑이 (딸의 죽음으로 인해) 예전과 같지 않다라는 사실14에 괴로워하지요. 그리곤 결국,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데, 아니 그렇게 때문에 그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건가요?"(p108) … "한데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 하죠?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 하느냐고요."(p111)

사랑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을 지닌 리디아에게, 죽은 부인이 자신에게 안겨 주었던 "여자의 빛"을 다른 여자인 자신에게 간청하는 미셸의 사랑은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미셸의 청에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하지요. --- "나는 추억을 되새김질하기 위한 당신 수단이 되고 싶진 않아요."(p119) … "인공호흡으로 급할 때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숨을 쉴 순 없어."(p130)



【 대체, 사랑이란? 】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엔 상반된 사랑관(觀)을 가진 부부가 등장하지요. 남편 덕훈은 "사랑에서 낭만을 빼면 남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15라 생각하는 반면, 아내 인아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도 같이 잘 수 있다"16라 말하는 여자17입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시작하여, 작가는 결국 '사랑의 도착점이 반드시 결혼이어야 하는 것인가'란 질문을 던졌더랬죠. 다시 말해 --- 수단과 목적의 (혹은 원인과 결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대체 결혼이라는 건 (사랑하기에 결혼하고 싶어졌다와 같은) '사랑의 목적/결과'이냐, 아니면 글자 그대로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제도적 수단//원인'이냐라는 겁니다.18 이와 비슷하게,

작가 로맹 가리의 이 작품 「여자의 빛」에선 --- '사랑이,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느냐'란 질문이 담겨 있다 생각합니다. 미셸에게 사랑이란 (대체적으로)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19 하지만! 리디아는 딸의 죽음과 남편의 실어증 이후,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하는 회의 담긴 의문이 들었고, 그녀가 내린 결론은 바로,


​"신자들이 그저 자신의 믿음만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예배 자체가 목적20이 되는 거죠. 그러면 종교는 신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답니다.21"(p146)

이처럼, '사랑'이 없어도 '사랑한다라 생각하는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는, 하지만 '사랑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되는, 그리하여 신 없이도 지속될 수 있는 종교'와 같인,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22 --- 이 소설 속 미셸(과 야니크)의 사랑에 대해 전, '사랑이 목적'이었던 것이 아닌,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역자의 다음 표현, "누구든 삶의 어떤 시기에 내가 상대를 위해 태어났고 상대가 나를 위해 지상에 있다는 성스러운 착각에 놓일 때가 있다"(p161) 역시, 이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길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미셸과, 그 착각에서 벗어나기 싫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야니크에 대한 관계를 말하고 있지요. 다만! 역자는 이에 대해 "그게 한 번 이상이라면 단언하건대 축복"(p161)이라 생각하는 반면, 

 

신이 그를 사랑해 나를 만드셨대요.

그가 혼자 외롭게 두지 않으시려구요.

So I belong to him. I belong to him

 

신이 나를 사랑해 그를 만드셨대요 
내가 혼자 울도록 두지 않으시, 않으시려구요 
So you belong to me 
You belong to me

I believe, I belive, I believe in destiny

 

신이 그를 사랑해 나를 만드셨대요

신이 나를 사랑해 그를 만드셨대요


- <신이 그를 사랑해>, sung by 심규선 중

이런 착각, (목적으로서의 사랑이란) 관계의 시작과 현재까지 모두를 하나의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23은 분명 착각이며,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착각에서 깨어나지 않으려는 것은 예의 그가 감당해내어야 할 당연한 몫24이라 생각하는 전,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나도 알아. 다만 사랑 없이 살기가 불가능하다는 그 사실 역시 하나의 삶의 방식이야"(p155)와 같은 말장난에 관심이 없는 전, --- (이런 스타일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이런 내용의 사랑 이야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요.

제 아무리 "문학은 개인적인 것이며 점점 더 개인적이 되어가고 있다"25란 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저 역시 그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런 류의 개인적 사랑 이야기26는 그저 --- "좋은 책만 읽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괴테의 충고를, "좋아하는 책만 읽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해줄 뿐이었.

 

 



 

  1. pp39-42에 나오는 미셸과 야니크 간의 대화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미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p10의 첫 줄을 매우 신중하게 읽지 않았었다면, p71까지는 그냥 어리둥절하게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2.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 작가는 느닷없이 어느 장면에선가부터 한동안 '미셸'로 생각되는 인물을 '미셴코'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예의 몇 페이지를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읽다 보면 이내, "사람들의 이름을 모조리 러시아식으로 발음하는 거"(p86)란 이해의 key를 발견하게 되지요.
  3.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주인공 유지태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와 같은 의미겠죠?
  4. 뭐 그렇다고 흔히 예상되는 바, 둘 간의 섹스같은 것이 명시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5. "이 소설 역시 '사랑'에 관한 것이다."(p161) - <옮긴이의 말> 중.
  6. "나는 여자의 그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미코는 좋은 엄마다. …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나의 연인은 아니다. … 지금 함께 사는 이 여자는 예전에 내가 사랑한 여성과는 다른 누군가이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 결혼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와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는 옛날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마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리라."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중 p274, 재인 刊, 2011.
  7. "아주 짧은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 정작 사랑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중 p282, 문학동네 刊, 2014.
  8. <각주 6>의 마지막 부분.
  9. "여자 없는 남자, 남자 없는 여자는 삶의 절반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할 거요. … 사랑 없이 살 수 있소. 다만 그게 몹시 지루하다는 거요."(pp68-69)
  10. "장기들이 고약하게 병이 들었다오. 너무 늦게 발견되어서 말이오."(p37)
  11. 솔직히, 이 '여성성'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섹스의 상대'로서의 여자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물론 '인생의 동반자'같은 좀 더 넓은/일반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또한 그 두 가지를 넘어서는 뭔가가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12.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네. 그녀는 누군가의 뜻에 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살고 싶어 하지 않았네. 물론 좀 더 버틸 수도 있었네. … 둘 다 극도록 고통 받으면서 말일세. 하지만 … 그녀는 기개 있는 여자일세. 그래서 나는 카라카스로 떠나고 그녀는 자기 길을 가기로 합의할 걸세."(p52)
  13. "나를 사랑해달라는 게 아니야. 동료애를 가져달라는 거지. 불행이 넘실거리는 상황에서 내 곁에 있어달라고 청하는 거라고."(pp129-130)
  14. "난 10년 동안 그를 정말 사랑했어요. 그리고 더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선 이전보다 더 사랑하려고 노력했어요."(p107) … "내게 그는 문제의 사고를 낸 당사자일 뿐이에요.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했어요."(p111)
  15. 박현욱, 위의 책 p32.
  16. 박현욱, 위의 책 p73.
  17. 인아의 이러한 사랑관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은 - "화폐는 원래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기(represent)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상품은 그것과 교환됨으로써만 가치가 있음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모든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 마찬가지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결혼이나 성교가 이제는 그것으로 표현되지 않는 모든 사랑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릅니다."(류동민 著,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중 pp178-179, 위즈덤하우스 刊, 2012.)
  18. 제 생각에, 작가 박현욱이 「아내가 결혼했다」를 통해, 한 번쯤 생각해 보시죠~라 던져낸,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제도라는 거, 인간이 만드는 거잖습니까. 일부일처제가 인간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제도일진 몰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맞지 않습니다.(p181)" …… "어쩌면 문제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결혼 자체인지도 모른다.(p398)"
  19. 세뇨르 갈바와 그의 경호견 마토의 관계, 리디아의 남편과 시어머니 간의 관계 또한 그 자체로서의 목적인 사랑으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반면, 그의 아내, 야니크에게 과연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는, 저로선 뭐였다라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20. 이러한 착각은 권력에도 또한 유사한 형태로 작동되지요. 지배에의 복종, 복종에의 지배가 아닌, 지배와 복종 자체가 각기 하나의 목적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반대로 권력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그 권력을 부여한 원천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상적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에 기꺼이 복종합니다." (류동민, 위의 책 p69.)
  21. 종교에서 신(神)이 과연 중심적 개념인가에 대한 의문은 다음의 구절에서도 보여지지요. - "세상이 무자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의 폭력에 맡겨져 있다고 믿는 것보다는 제사로 그 노여움을 달랠 수 있고 찬미와 기도로 축복을 빌 수도 있는 신의 질서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는 쪽이 저들에게 얼마나 더 큰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인가. 우리가 한 일은 다만 그 같은 저들의 믿음을 가로막거나 깨뜨리지 않은 것 뿐이었다."(이문열 作, 「사람의 아들」 중 p142, 민음사 刊, 2012.)
  22. 따라서, 리디아는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았고, ​"당신은 대성당의 건축가인데, 나는 침실 두 개짜리 80제곱미터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여자일 뿐이야."(p154)란 말로 미셸의 청을 당연히/끝내 거절합니다.
  23. "삶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을 선택할 수는 있다." - 박주영 作, 「고요한 밤의 눈」중 p123, 다산북스 刊, 2016.
  24.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 - 백가흠 作, 「마담뺑덕」중 p45, 네오북스 刊, 2014.
  25. 박주영, 위의 책 p278.
  26. "로맹 가리, 곧 에밀 아자르 작품들 중 나로서는 네 번째 번역이다. 친구의 말을 알아듣듯 그가 쓰는 단어들이 익숙하고, 이 소설을 발표한 1977년 그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진 세버그와 이혼한 후에도 왜 그녀에게서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진지 변사체로 발견된 지 1년여 후인 1980년 유서를 대신해 남긴 글에서 그가 왜 '진 세버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라고 썼는지 알 것 같다."(p162 - <옮긴이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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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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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의 남자, 이름은 로버트 킨케이드.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p56), 스스로를 "일종의 집시 기질이 있는"(p20)사람으로 표현하는, 이혼남인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誌에 기고할 일곱 개의 다리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를 방문했고, 마지막 촬영지인 '로즈먼 다리'의 위치를 묻기 위해 한 농가에 들러, 마침 현관문 앞에 나와있던 여인에게 다리의 위치를 묻습니다. --- "그가 마당에 들어서자 현관문 앞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곳은 시원해 보였고, 여자는 그보다 훨씬 더 시원해 보이는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현관에서 내려와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p33)


그녀의 이름은 프란체스카 존슨, 45세. 이탈리아 태생의 문학전공자로서, 미국인 남편을 만나, 잠시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니 출산과 동시에 그만 둔 채, "시골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과 감정을 제한된 울타리 안에 감추고"(p47) 이 곳 매디슨 카운티에서 살(아 가/내)고 있는 "농부의 아내"(p53)이었죠. 그 날은 마침,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며칠 비웠던 때였고 그래서, 그렇게, 그리하여 ---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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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륜의 시작 】

"누군가, 여자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p23)라 바래어 왔던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그야말로 "바람같이 보이는 남자. 그리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남자. 어쩌면 바람을 타고 온 사람"(p83)이었더랬습니다. 그렇게 --- 프란체스카는 "그를 본 지 단 몇 초 사이에"(p48) 킨케이드에게 "아주 오래되고, 세월에 약간 시달린 듯한 무언가가"(p51) 있다란 느낌을 받음으로, 이내 그만 (쉽게 말해) 첫 눈에 반해버리게 되었죠.1


이후의 전개는 예의 뻔한 스토리를 따라 갑니다. 상대의 외모에 성적(性的)인 이끌림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된 킨케이드2와 프란체스카3의 서로를 향한 호감은 그러나 이와 같은 육체적 욕망으로만 시작된 것은 아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 속 이성(異性)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었던 내면적 매력4이랄까, 뭐 이런 걸 거론하며 말이죠.5 이처럼 이 소설 속 두 남녀는 --- 사랑이란 감정의 시작은 '상대방의 외모'라는 물질적/시각적 요인과, '분위기'란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감성적/정서적 요인이 결합되어 상승된다라는 정석(定石)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밟아가고 있습니다.


● 남자, 킨케이드 - "이슬에 젖은 청바지가 그녀의 몸 아래쪽에 찰싹 달라붙었다. 킨케이드는 아까 앉았던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주 고전적인 방식으로. 다시 오랜 욕망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어떤 감촉일지 궁금했다. 그의 손에 느껴지는 그녀의 등의 곡선은 어떨까. 그의 몸 아래에서 그녀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배워서 알게 된 모든 것에 배치되는 오랜 욕망, 수세기에 걸친 문화에 의해 적절하다고 일컬어지는 것과, 문명인의 엄격한 규칙에 배치되는 욕망.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사진이나 길, 지붕 있는 다리 같은 것. 지금 그녀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라도."(p86)


● 여자, 프란체스카 - "프란체스카는 감자를 벗기면서도 낯선 남자와 너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감자 껍질을 벗기는 데에도 약간의 감정이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pp70-71) …… "그녀는 발폴리첼라 두 병과 마개 있는 유리병에 든 브랜디를 한 병 사면서, 관능적이고 속된 기분을 느꼈다."(p115)

 

​【 불륜의 전개 】

6는 곧 터득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대상은 피사체가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피사체는 단지 빛을 반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광선이 좋으면 언제나 촬영할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p29) …… 이제 쉰두 살의 나이에 그는 아직도 광선을 바라보고 있었다.(p31)

인생이란 것에 대해 시간을 두고 계속된 교정을 가해가며 좀 더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내는, 짧지 않은 하나의 과정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매우 중요한 몇몇 개의 결정들에 대해서만큼은, 그와 같은 시간적 여유를 둔 교정이 가능하지 않기도 합니다.7 특히 '결혼'이라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에 있어, 단 한 번의 선택(결혼)을 통해 그 이후의 삶을 내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란 의지나 기대에 (심지어!) '환상'이란 단어로 조롱하는 시선도 종종/적지 않게 보이지요.8  


이 작품 속에서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움직였던, (물론, 킨케이드라는 한 남성 자체 - 외모나 분위기 - 로부터도 발생되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생활은 아니에요"(p63)이란, "오랜 세월 동안 묵혀 두기만 하고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말이었지만, 정말 하고 싶던 말이기도 했"(p63)던 한 마디를 그녀로 하여금 기어이 하게 했던 건, 그렇게 그녀 안에 잠자코 있었던 후회라는 감정을 느닷없이 하나의 실체로 만들어내졌던 이유는 바로!


현재의 삶 속에선 느껴보지 못했던/느껴볼 여유마저 존재하지 않았던/ 심지어 존재한다라 인식하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그녀 속 감정의 촉수들이, "아직도 광선을 바라보고 있"는 킨케이드에 의해 건드려졌기 때문이기도 했던 겁니다. --- "킨케이드는 그녀에게 다가와 야생화와 노랑 데이지로 만든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 그녀는 또 다시 속에서 뭔가 느꼈다. 꽃. 특별한 경우에도, 누구에게 꽃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p55)9 --- 킨케이드로 인해, 프란체스카는 이제껏 잊고 살아왔던 자신 속 또 다른 자신의 모습10을 발견했던 것이며, 그것이 현재의 자신과 한데 어울어짐으로써, 이제까지의 삶에서 잊고 살았던 '인생이란 이런 것!'의 새 버젼11을, '인생이란 이럴 수도 있는 것!' 더 나아가, '인생이란 것은 이러해야 하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란 것이죠. 그렇게 그녀는, 킨케이드를 만나기 이전의 그녀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12


부엌 위의 전등이 커피와 브랜디를 마시기에는 지나치게 밝았다. 리처드 존슨의 아내 프란체스카 존슨이라면 전등을 그대로 두었으리라. 저녁 식사 후에 초원을 산책하고, 소녀 시절의 꿈을 지닌 여자, 프란체스카 존슨이라면 불을 꺼버릴 터였다.(p88)

 

 

【 성공한 불륜의 정의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친구인 납득이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첫사랑이며,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마지막 사랑이라고 승민을 위로한다. 그 말이 일종의 통념으로 성립한다면13, 사람들은 사랑의 진정성을 사랑이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 김동조 著,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중 p128, 북돋움 刊, 2012.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인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두 당사자들에게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각자의 feasible set14의 일정 부분을 거의 완전히 포기하(고 훨씬 좁아진 범위의 새로운 feasible set을 받아들이)라 요구15합니다. '다른 이성과의 새로운 사랑' 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게 그 중 대표적인 것이겠지요.16 이러한 상황 하에서 --- (결혼을 결심했던 당시의 상대방인) '지금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것 같은 현재의 배우자'를 기어이 이겨내는,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17의 이성(異性)이 내 앞에 나타났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인생 한 번 밖엔 못사는 거잖아요!

'이혼 해버리지 뭐!'와 같은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라 가정한다면18, 이 불륜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두 당사자 모두 현재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feasible set을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두 당사자가 (결혼 이전보다는 훨씬) 작아져 있는19 feasible set 안에서만의 반응을 보여야 할 뿐 아니라, 현재의 feasible set을 절대 깨뜨려서도 안 된다20라는 제약을 무리 없이 이행해 낼 수만 있다면21 --- 그 둘의 불륜은 '성공하는 불륜'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까지는 구비하게 된 겁니다.22 그러나! 

둘 혹은 둘 중 한 당사자의 파국으로 결말지어진 「새벽 거리에서」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혹은 아예 불륜 관계의 종말을 보여주었던 「불륜」등은 '불륜'이란 것이 과연 성공23할 수 있을까,란 의문에 긍정적인(?) 해답을 주지 못했었죠.24 제가 읽어 본 소설들 중 아직까지는! ---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가 유일하게 (위의 기준에서 보아 어쨌든25) '성공한 불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6그렇다면! 이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불륜은, 똑같이 위의 기준에서 보아 과연 '성공한 불륜'이라 말해질 수 있게 될까요?


【 성공한 불륜의 전형(典型) 

"그녀는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다리 면도를 하고 비누칠을 했다. 그가 몇 분 전에 여기 있었고, 그녀는 물이 그의 몸을 흘러내렸던 바로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몹시 에로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버트 킨케이드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에로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p117)

신데렐라에게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었듯, 프란체스카에게도 자신의 남편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이 둘에게도 드디어/기어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p145)란 물음에 대한 각자의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 된 거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성공하지 못한 불륜의 당사자들이 내놓는, 그 실패의 원인이었던 선택에 대한 변(辨)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이건 현재 배우자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적용되기도 하지요.27)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바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왜곡이 쉽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공유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없었던 시간으로 남곤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던 순간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똑같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사랑이 온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은 드물다.

- 백가흠 作, 「마담뺑덕」중 p59, 네오북스 刊, 2014.

피천득 선생의 <인연>은, 고삐리 감성에서야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이지만, 살짝 닳고 닳은 감성으로 되짚어 보자면 일종의 '이기적 착각'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능합니다. 아사코의 훗날 모습이, 자신의 기억 속 과거 모습과 달라졌다 하여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할 것을'이라 생각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 과거엔 동등한 위치의 사이였었으나 이제는 뭔가 아사코(의 처지)가 측은해 보인다라는 감정이 유발한 (나만의) 일방적 후회일 뿐이죠. 아사코 역시 피천득 선생의 나이 든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러려고 저 사람을 다시 보았던가'하는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어차피!


('이혼'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정상적/일반적인 삶의 진행에서, 일종의 '총효용 극대화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 관계는 부부 밖에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배우자라는 단 한 개의 재화/서비스를 소비함에 있어 그것의 한계효용이 (-)가 되었다 해서, 소비를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며28, 소비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마저 '비합리적 선택'이란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와는 달리,

불륜이란 관계는 한계효용이 (-)가 되는, 즉 그 만남 자체가 비효용(disutility29)가 되었을 때 그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해야 할 아무런 유인(誘引, incentive)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효용의 발생이 상대방에 대한 흥미의 감소 때문이든 혹은 자신의 feasible set을 깨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불륜의 유지로부터 얻는 효용을 상쇄하여 버렸기 때문이건! --- ​불륜은 어차피 '총효용 극대화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이기에, 어느 시점 이후에는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다란 게 애초부터 명확했던 관계라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죠.30 따라서,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pp149-150)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열쇠」란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극단적 경우31가 아니라면, 불륜이란 안타깝게도 태생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단 한 번만 오는 확실한 감정"의 잔상을 아름답게 남기려면, 그리하여 피천득 선생께서 훗날의 아사코를 보며 가졌던 감정인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할 것을'과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① 현재 속해 있는 feasible set의 유지 :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속된 말로 자신과 함께 이곳에서 도망칠 수도 있다란, 강요함 없는 선택의 여지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 위에서 인용했던 구절(p86)의 의미처럼, "우린 자유를 포기하고, 점점 조직화되어 가면서 우리 감정을 하찮게 여깁니다"(p132)란 그의 중설(重說)에서도 알 수 있듯, 킨케이드의 제안은 자신의 욕망 성취를 위함이 아닌, 이제까지 "시골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과 감정을 제한된 울타리 안에 감추고"(p47) 살아왔던 프란체스카에 대한 안타까움/연민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지요. 킨케이드의 이 제안에 대한 프란체스카의 답변이야말로, 이 둘의 관계는 분명 '불륜'이었음에도, 「열쇠」에서과 같은 극단적 설정이 아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나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가능한 '성공한 불륜'의 가능성/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내게는 지독한 책임감이 있어요. … 나도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책임감이라는 현실로부터 내 자신을 찢어내 버릴 수가 없어요. … 만일 내가 지금 떠난다면, 떠난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에요. 당신이 사랑하게 되었던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릴32 거예요."(pp148-149)

② 또 다른 방식의 사랑 :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로지 감성적 측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닌, 분명 육체적 본능의 충족이 함께 존재하기에 형성될 수 있는 것33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륜의 과정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feasibel set을 지켜내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 육체적인 면 때문이지요. 감정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나의 배우자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어도 머리 속으로는 불륜의 상대를 그려볼 수 있으니까요.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와의 관계를 "그를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차원에 속하는 문제"(p137)라 애써 감정의 차원으로만 한정시킴으로, 자신의 feasible set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눈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감정의 차원으로만 한정시킨다는 것은 분명 마음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었기에, 그녀 프란체스카는 기꺼이 한 평생 마음 아플 수 밖에 없는 사랑의 방식을 선택했었었지요. 이 점 또한, 이 둘의 불륜에 '성공한'이란 수식어 붙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 요인입니다.


예순일곱 살 되는 생일, 프란체스카는 창가에 앉아서 빗줄기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녀는 브랜디를 부엌으로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마음 속의 감정이 넘쳐흘렀다. 언제나 그랬다. 얼마나 강한 감정인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감히 이렇게 자세히 추억하는 것은, 겨우 일 년에 한 번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짓눌리고 짓눌린 나머지 프란체스카라는 존재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으리라.(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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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사랑이, 이해되기 쉬운 사랑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청춘들에게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며, 두 주인공의 중간 나이인 저에게조차, 이 사랑이 부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오래 전에 버렸던 신이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 부드러운 손길로 기름을 부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에게 사랑을 느꼈다.  워싱턴 벨링햄에 사는 사진 작가이자 작가이며, 해리라는 털털이 픽업 트럭을 모는 그에게.(p121)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코 청춘들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며, 또한 그 감정이 일생에 단 한 번만, 그리고 일생에 단 한 사람에게만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 조차 쉬이 인정할 수 없기에, 중년의 나이가 되어, 새로운 사람에게 설레임의 느낌, 더 나아가 사랑의 감정을 가진다라는 것에, 딱히 경도된 가치 판단을 내리지는 말아야 한다란 생각을 해보게는 됩니다. 내 눈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해도, 그러하기에 상대를 만질 수 없다해도! 잡지에 실리는 그의 사진들을 보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되는 그의 사진 속 모습들을 보며 --- "그 오랜 세월 동안,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p164)던 프란체스카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이 둘의 관계가 엄연히 불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투의) 비난이 아닌 (내 안에게도 숨겨져 있을지 모를) 안타까운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행하는' 것이었다.34

프란체스카는 끝내, 가족의 의미를 '행하는 것'으로 지켜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전, 유언을 통해 자신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는 부탁35을 자식들에게 남겨 놓지요. 그렇게,

"나는 내 가족에게 인생을 주었고,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내게 남은 것을 주었다."(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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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 昨 「마담뺑덕」중 p45, 네오북스 刊, 2014.

'우연'이 가져다 준 감정을, 자신의 명백한 의지로 이겨내고 끝내 가족을 '행하였던'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우리는 과연 '불륜'이란 한 단어로만 표현해도 괜찮을까요? :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36은,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같은 순수한 첫 사랑이 아닌, 섹스가/도 결부되어 있는 '(불륜이라 불리우는)두 번째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되는 "모든 형태의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고, 사랑이 편리성의 문제가 되어 버린 이 세상"(p11)에서 (도덕적 판단의 잣대를 떠나) 엄연하게 사랑의 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그 '불륜'이란 것이, 서로의 feasible set에 변화줌 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아닌, 둘의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하는 불륜'임을, 이는 또한! --- 불륜이 아닌, 정상적인 결혼 관계의 부부 사이에서도 예의 가장 중요한 '성공하는 결혼'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라는, 결코 어려워 몰랐던 것이 아닌 사실 하나를, 이렇게 새삼 알려주고 있지요.


이 책을 준비하고 쓰면서 나는 세계관이 바뀌었다. 생각하는 방식도 변했고 인간 관계의 울타리가 내가 전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넓혀질 수 있다는 것37을 깨달았다.(p14, '시작에 앞서' 중)

차마 '아름다운' 이란 형용사를 아니 붙일 수 없겠는 이 작품에 대한, 저의 이 지리한 감상문이 자칫, 아직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뭔가 질린다!하는 느낌을 주지나 않을지 모르겠네요. 암튼! --- 당신에게도 또한,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이,그 둘의 불륜이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 받아들여질지 사뭇 궁금합니다. 심지어 혹시 이런 사랑, 해보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 옌렌 커 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

- 파울로 코엘료 作, 불륜

 

 

 

 

 

- 다니자키 준이치로 作, 「열쇠

-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

 

 

 

 

 



 

  1. "그의 눈길이 곧장 그녀에게 향하자, 그녀는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p46) …… "세대는 거듭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것만이 필요하다. 남녀의 끌어당기는 힘. 그 힘은 무한하고도 아름답다. 이런 힘이 작용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조금도 어긋나는 법이 없이 단순하고 또렷하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복잡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뿐. 프란체스카는 자기도 모르게 그 힘을 느꼈다. …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녀를 영원히 변하게 하는 일이 시작되었다."(p47)
  2. "아름다웠다. 적어도 예전에는 아름다웠을 얼굴이었고,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조금이라도 끌리는 여자를 만날 때면 늘 겪게 되는 다루기 힘든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p33) ……​"그는 아이스티를 조금 마시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176센티키터 가량의 키에 나이는 마흔,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먹었을까. 얼굴은 예쁘장했고, 근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p58)
  3. "단단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육체는 단단해 보였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은 엉덩이가 얼마나 작은지 … 어쨌든 그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p54) …… "프란체스카는 그가 무릎을 굽힐 때 허벅지 근육이 청바지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물 빠진 작업복 셔츠가 그의 등에 딱 달라붙었고, 잿빛 머리칼이 칼라 위를 덮었다. 그녀는 그가 웅크리고 앉아서 장비를 맞추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 다리 사이가 젖어 버렸다."(p112)
  4. 킨케이드의 표현 옮겨보자면 --- "그는 지성과 타고난 열정,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과 정신의 섬세한 부분에도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라도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에게 끌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프란체스카 존슨에게는 정말로 그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지성적인 면모가 풍겼다. …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pp58-59)
  5.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핑계가 아닌,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 믿어집니다. 이는 이 작품 전체를 읽고나면 거의 누구나 동의하게 될 판단이라 생각되며, 그러했기에 프란체스카의 자녀들이 훗날 자신들의 부모에 대하여 "사람들이 품고 있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평가절하되리라는 것을"(p11) 미루어 짐작했었음에도 작가에게 이 실화를 소설로 써달라 부탁했던 것이었겠죠.
  6. 킨케이드.
  7.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늦는다. 시간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으로 결정된다." - 실뱅 테송 著,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중 p257, 까지 刊, 2012.
  8. "우리가 사랑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들. ……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중 p29, 문학동네 刊, 2014.
  9. "프란체스카는,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이런 것이 일상적인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이런 대화는 문학적인 대화였다. 매디슨 카운티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날씨와 농산물 가격, 새로 태어난 아기, 장례식, 정부의 프로그램, 운동 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예술과 꿈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음악을 침묵하게 만드는 리얼리티나, 상자 안에 가둬 둔 꿈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p75) … "카키색 바지와 흰 셔츠, 샌들이 프란체스카의 눈에 들어왔다. 이곳 남자들은 샌들을 신지 않았다. … 농부들은 그렇지 않았다."(p114)
  10. "이제, 그녀의 마음 속에 숨어 있었던 또 하나의 '내'가 살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p93)
  11. ​"프란체스카는 그의 가슴에 달라붙어 춤을 추면서, 원피스와 셔츠 사이로 그가 그녀의 가슴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러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프란체스카는 이런 느낌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 그녀는 다시 여자가 되었다. 다시 춤출 여유가 생긴 것이다."(p134)
  12. 비슷한 예를 보자면 - "공원에서의 대화, 그 키스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후회는 없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했고, 그 행동 자체가 나를 가두고 있는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의 행동은 항상 놀랍다. 오럴섹스, 분별있는 충고, 공원에서의 키스. 내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야코프와 함께 있으면 나는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된다."(파울로 코엘료 作 「불륜」중 pp 81-84, 문학동네 刊, 2014.)
  13. 즉, 이혼과 재혼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14. 실현가능한 모든 것.
  15. 물론, 결혼이란 행위에 그러한 요구가 담겨져 있음을 당사자들은 알고 있으며, 그에 동의했기에 서로 부부가 된 것이지요.
  16. 결혼으로 인해 feasible set 이 넓어지는 것의 예는 「롤리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롤리타」를 읽고 쓴 감상문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면 : ​험버트는 '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춘기 소녀'의 의미를 갖는 님펫인 롤리타를 하숙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매력적 외모의 이 영국인 남자에게 하숙집 주인, 즉 롤리타의 엄마인 샬럿 또한 연정을 가지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롤리타와 직접적으로는 어떠한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험버트는 오로지 그녀, 롤리타를 자신의 효용극대화에 사용될 feasible set안에 집어넣게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샬럿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롤리타는 험버트의 의붓딸이 된거죠. 그러고는 자신의 딸인 롤리타와의 합법적(!) 애무를 상상합니다. 헌데 이 에로 영화의 스토리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 "나는 그녀가 롤리타의 언니라고 상상했다. …… 샬럿과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이볼을 마셨다. 그 술기운 덕분에 엄마를 애무하면서 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새로 얻은 아내의 완숙한 몸에 올라타면서 이것이야말로 생물학적으로 롤리타와 가장 가까운 육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 우리가 함께 지낸 50일 사이에 …… 마치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엄마와 결혼했기 때문에 아내가 딸을 대신하려고 상당량의 청춘을 되찾은 듯했다."
  17. 말하자면 "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중 p90, 재인 刊, 2011.)와 같은 상황이죠.
  18. '결혼 배우자의 선택'이 (단 한 번 뿐인 삶의) 평생에 있어 '단 한 번뿐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 그리하여 결혼식장을 나서는 순간, (이전까지 누렸던 넓은 범위의) feasible set이 다시는 복구될 수 없다라는 제약을 받아들인다는 조건.

  19. 기혼간의 불륜일 때에는 두 당사자의 feasible set이 결혼 전 보다 작아져 있겠지요. 기혼과 미혼간의 불륜이라 해도 기혼자의 feasible set은 어쩔 수 없이 미혼자의 그것보다 작을 수 밖엔 없습니다.
  20.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 한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중, 아침나라 刊, 2001.
  21. 조금 더 양보(?)해, feasible set을 잠시 깨뜨렸다 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를 배우자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라는 최종적 제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22.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벽 거리에서」를 통해 불륜에 대한 두 가지의 정의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 ① 보수적 정의 :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륜이다. 데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이상 그것은 불륜이다."(p60) ② 개방적 정의 :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성에게 연애 감정조차 품지 말라는 것은 무리이다. 아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데이트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정도의 두근거림이 있는 편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 키스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시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불륜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p60) --- 하지만, 그 어떤 정의를 적용하건 그 불륜이 '성공'하기 위해선 위의 필요조건이 반드시 구비되어야 하지요.
  23. 이 때의 '성공'이란 의미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라는 것보다는, 최소한 상당 기간 지속가능하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바가 더 큽니다.
  24.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도 '불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이나 방식이 '불륜' 자체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25. "남편은 (비록 자신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성공하는 불륜'의 조건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켰었지요.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feasible set을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라는 점말이죠. 그 조건만 지켜진다면 아내의 (육체적이건 혹은 정신적인 것만이건) 외도는 자신이 일 당사자인 이 '부부라는 관계'를 깨뜨리지도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효용함수에 (+)의 영향을 미치니, 굳이 그것을 막거나 화를 낼 필요조차 없다는 이 설정은 사실 --- 제가 그토록 읽어보고싶었던 '성공하는 불륜'의 소설이었기에, 그러나! 제가 어렴풋이라도 그려보았던 '성공하는 불륜'의 방식은 아니었다라는,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전개…" - 「열쇠」를 읽고 쓴 감상문 중.
  26. 「당신 없는 일주일」의 마지막에서 보여지는, 엄마의 선택은 '불륜'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결혼'으로 인한 feasible set 자체가 '남편의 죽음'으로 아예 해체된 상태에서 시작된 만남이었으니까요.
  27. "누군가와 살면서 실생활에 따르는 모든 골칫거리들을 공유하다 보면 그때그때 해결을 보지 못한 자잘한 원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치태처럼 쌓이게 되고, 상대에게 키스를 하고 핥고 애무를 하는 순간에도 의식의 가장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로를 안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분을 잊지 않고, 온기, 둘만의 친밀감, 혹은 그저 저급한 만족을 위해 기계적으로 상대에게 몸을 비비면서도, 마음은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속적인 생각의 조각들, 마음의 응어리들로 가득 채웠다." - 조너선 트로퍼 作, 「당신 없는 일주일」중 pp182-183, 은행나무 刊, 2012.
  28. '이혼'의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
  29. "해(불편, 불쾌, 고통)를 가져오는 것/성질" - 네이버 영어사전.
  30.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선택하겠다는 이유는 어쩌면(?) -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파울로 코엘료, 위의 책 중 p11)
  31. 이 작품의 마지막 결론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
  32. ​이 부분은 또한 ---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사랑이 '삶 혹은 일상'이 되었다 해도, 이렇게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었겠느냐란 방향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 혹은 일상'이란 게 좀 잔인한 면이 있어, 사람의 감정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망쳐가는 것으로 작용하기도 하니까요. : "나는 여자의 그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미코는 좋은 엄마다. ……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나의 연인은 아니다. …… 지금 함께 사는 이 여자는 예전에 내가 사랑한 여성과는 다른 누군가이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 결혼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와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는 옛날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마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리라." (히가시노 게이고, 위의 책 중 p274)
  33. 소위 말해지는 세속적 의미의 '불륜'에서는 당연히 육체적 본능의 충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할 수 없이 크겠지요.
  34. 가와무라 겐키 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중 p176, 오퍼스프레스 刊, 2014.
  35. "1982년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란체스카는 시체를 화장하고, 재는 로즈먼 다리에 뿌려 달라고 요청했다. 매디슨 카운티에서는 화장이 흔한 일이 아니어서 - 어쩐지 약간 급진적인 행위라는 관점이었다 - 그녀의 이런 소망은 카페와 텍사코 주유소, 농기구 상점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pp183-184)
  36. "이 이야기는 마이클과 캐롤린이 도움을 준 것과 프란체스카 존슨의 일기장에 있는 정보들에 기초한 것이다."(p12)
  37. feasible set이란 것이 사람의 감정도 적용될 수 있다라는, 그리하여 feasible set을 깨지 않아야만 성공하는 불륜이 될 수 있다는 저의 추측에, 그 안에는 반드시 사람의 '감정'도 담겨 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전까지 제가 생각했던 feasible set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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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일주일
조너선 트로퍼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초토화된 삶의 한복판에서 퀭한 눈으로 서 있을 때 어김없이 당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까마득한 과거의 한 시점이다.(p72)

국가의 안위 혹은 인류 역사의 진보 등과 같이, 보편적 당위(當爲)로서 여겨져야 한다라 말해지(곤 하)는 것들이, 실제로 또는 의식(意識)적으로라도/까지도 당위의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에 별다른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당위가 실현되어가는, 당위를 실현시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저'라는 일 개인이 그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자책감스러운 것을 내심 지니고 있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일들에 대해 우리의 사고(思考)가 항상 그러한 거시적인 면만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를 또 다른 하나의 당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의 집합체가 국가라는 사회가 되었다면, 일 개인을 구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결국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1란 구절을 부정할 수 없(다 생각하)기에 --- 정의(定義)상, 과거를 향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기억'이라는 것이 어떠한 이유로 현재와 같은 잔상의 형태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추측, 더 나아가 자신/타인의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이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겪어 비로소 '현재의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었던가를 되돌아 보는 것이/은 결코! 국가의 안위나 인류 역사의 진보 등과 비교되어 덜한 무게감을 가져야(만) 할 합당한 이유를 짊어지고 있지 않다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이(者)의, 이 작품 「당신 없는 일주일」을 읽고 난 감상은 이러합니다.

……………………………………………………………………………………………

​한 가족, 좀 더 넓게는 작은 동네의 구성원들간에 있었던/있는 과거의 추억과 (그 과거의 추억들과 관계된)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 3남 1녀의 자식들을 남겨두고 (1년 반 여간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모튼 폭스먼이 자신의 장례식을 '시바'2로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아내 젠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다라는 충격에 사로잡혀 있는 주인공 저드3에게, 이 와중에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은 오히려/그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슬픈 과정의 사소한 결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p10)더랬습니다. 단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 본가로 가야 한다라는 것에 "가족들과 맞서기 위한 우군을 얻기 위해 우리는 결혼이란 것을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전쟁터홀로 돌아가야 하는 것"(p20)이란 착찹함 내지 짜증이 더 싫었을 뿐이었죠. 그렇게 --- 가족의 만남이 '전쟁터'로 표현되어지며,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 역시 "만인 대 만인의 싸움"(p205)으로 간주되어지는, "모두 같은 틀에서 찍혀 나오긴 했지만 마감은 다른 공정을 거친 것 같"(p54)기만한 3남 1녀의 자녀들과 배우자들, 그리고 (자녀들의) 엄마로 이루어져 있는 폭스먼 가(家)가 일주일간의 '시바'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그 일주일동안 일어나는 여러 ('막장스런'이란 형용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또한 '막장스런'이란 형용사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과거와 함께, (흔히 예상되는 바의 두루두루 행복한) 최종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그런데/그 와중 그 안에는,


​① 고등학생 때엔 키스를 해주고 젖가슴을 만지게 해주는 여자친구와, ②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같이 좋아해주는 남자 친구가 있으면 더 바랄게 없는 법이다.(p318)

②번 상황과 같은 공감도 존재하는, 하지만! ①번과 같은,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만 47세의 남성들에게 어지간해선 공감할 수 있는 과거가 될 수 없는 문화적 이질감이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다 읽고나면, 아니 읽어가는 과정에서조차 분명! 그 문화적 이질감이란 건, 그저 미국 영화나 드라마 몇 편만 봤었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이해해낼 수 있는 수준이 대부분임을, 혹 그 이질감 자체를 극복해낼 수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깊은 짜릿함의 공감들이 얼마든지 그 이질감을 압도한다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심지어! --- 짜안~함의 역할을 공감이 담당하고 있다라면, 이 소설 속 문화적 이질감은 일견 유쾌함의 소재로서만 작용되고 있다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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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행하는' 것이었다.4

이 소설의 주제는 (혹은 주제의 일부는) 위의 구절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 탄생된 것이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으나, 그 강제적 형성의 일 집단을 여타의 (강제적 형성의) 사회 집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은 분명 그 구성원들의 자발적 행위/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작가는 --- 한 가족의 탄생은 '결혼'이라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을 통해 시작된다라는 사실을 집어내주고 있습니다.



【 결혼 : 사회적·자발적 결합

​주인공 저드의 결혼 생활이 '아내의 불륜'이란 결말이 지어졌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회상해 본 아내 젠과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었노라,라는 1차적 회상의 꺼풀을 걷어내는 순간, 마치 '내가 이러려고 결혼이란 걸 했었던 건가'하는 자괴감으로 가득차 있(는듯 하)기만 합니다.

"자기 친구들과 동석했을 때 소유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내 팔뚝에 얹혀 있던 그녀의 손"(p365)과 같은 미묘함이 곁들여져 있었던, 또한 한땐 "며칠 굶은 짐승들처럼 질퍽한 입과 혀로 상대를 공격하듯 탐"5(p64)하는 것과 같은 격렬함이 있었기도 했던, 그리하여 그것들이 이내 만들어내었던 서로를 "필생의 사랑이라고 여기는 감정"6(p25)이 모든 것이었던 연애의 시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7 '결혼'이란, 마치 더 이상의 변화조차 없을 것 같은 안정적이며 최종적인 해피 엔딩으로 여겨지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으로 귀결되어졌었죠. 하지만!

그 결합은 결코 '엔딩'일 수 없는, 또 다른 기나긴 과정의 시작이었었으며 그 과정은 대부분 "필생의 사랑이라고 여기는 감정이 서서히 진부한 일상8으로 변해"(p25)가는 모습으로 진행되어가기 마련입/이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내 --- "때로는 지금 이 삶 자체도 꿈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엔가 … 진짜 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p114)의 단계9(원하든 원치 않든) 거의 당연스레 넘어가게 되지요. 이제 부부라는 이 결합이 만들어 낸 것이라곤 고작해야, 그간 치뤄온 수많은 부부싸움의 결과 "'하지만'이란 말 앞에 나오는 말들은 모두 헛소리라는 것"(p117)만을 알게 된다 정도로만 남게 될 뿐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선택했었던 이 자발적·사회적 결합을 만들어 낸 과거에 대해 누군가는 "우리가 얼마나 철부지였는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다 못해 분노까지"(p25) 자아내기도 하는, 이른바 이 선택에 대한 후회란 것10을 하게 된다라 작가는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에 대해 일부의 불만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전적인 부인까지 하는 기혼자는 없지 않을까 시포요~ --;;)


누군가와 살면서 실생활에 따르는 모든 골칫거리들을 공유하다 보면 그때그때 해결을 보지 못한 자잘한 원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치태처럼 쌓이게 되고, 상대에게 키스를 하고 핥고 애무를 하는 순간에도 의식의 가장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로를 안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분을 잊지 않고, 온기, 둘만의 친밀감, 혹은 그저 저급한 만족을 위해 기계적으로 상대에게 몸을 비비면서도, 마음은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속적인 생각의 조각들, 마음의 응어리들로 가득 채웠다.(pp182-183)

물론! 누군가들은 이와 같은 과거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자발적·사회적 결합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뒤늦게나마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 이혼이라는 또 다른 자발적·사회적 해체를 해결책으로 선택하기도 합니다만, - 이 작품이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만 47세의 기혼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전체적으로 이질감보다는 공감을 안겨준 이유 중 하나인 - 주인공 저드의 의문은 이혼이라는 비교적 간단한/보편적인 선택이 아닌 --- "사랑, 혹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며 우리는 빙글빙글 불나방처럼 춤을 추면서 돌아간다"(p415) …… "처음 드는 생각도 아니지만 도대체 왜 … 계속 같이 사는 것인지,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하면서 이런 따분한 고착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않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p299)라는 (그러니까 어쨌든 '결합의 유지'라는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는) 고민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결국!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상대방도 나만큼이나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pp 183-184)

​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충실할 수 없는 이유의 근원에는, 결혼이란 것을 엄연한 '현실'11로서가 아닌, 하나의 즐겁기만 할 '꿈'12으로 여겼었기 때문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 겁니다.


【 가족 : 혈연적·강제적 결합 】

이제 막 아버지를 잃은 나는 곧 아빠가 될 것이다.(p193)

'가족'이란 혈연적·강제적 결합은 이처럼, (당연하게도) 혈연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하지만 강제적으로 지속13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결합에도 역시나 --- 연인이 부부가 되었고 그 둘간의 사이가 변화되었/하였듯,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또한 (역시나 원하든 원치않든) "아버지는 어렸을 때 우리들을 무척 예뻐했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p56)에서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질적 변화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14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지 부모의 관점에서만 관찰되어지는 것이 아닌, 자식의 입장에서도 또한 감지되는 것이기도 하며 끝내는,

분명히 아버지와 나 둘만의 시간들도 많았을 테지만 기억이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의 맥락에서만 아버지가 기억이 난다.(p128)

"곧 전처가 될 여인, 전처 예정자"(pp17-18)(사회적 결합의 상대자인) 젠과의 사이에 "나의 젠이었던 때를, 우리가 아직도 우리였던 때"(p290)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나마/그래도 어색하지 않으나, (혈연적 결합의 일원이나 내 탄생의 근원 중 한 분인) 아버지에겐 차마 '나의 아버지였던 때'란 구절을 사용하지 못하겠는 저드는 그저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왜 아버지를 더 많이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p354)란 후회만이 남아 있는 겁니다.15 그리고 그 후회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걸 역시 알게 되지요.


형제자매가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때로는 가슴이 아픈 일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p431)

형과 누나16, 그리고 동생에게 각각 서운함과 분노, 이해하지 못함을 가지고 있었던 주인공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서운함과 분노, 이해하지 못함의 실체는 결국 "화가 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악습"(p445)과도 같이, 그들을 유지시키는 최소한의 동력조차 없이 그저/습관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었을 뿐이며, "혼자 속으로 분을 삭여온 10여 년이란 세월과 다섯 잔의 위스키"(p373)으로 풀어낸 그것들의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p373)란 사실을 새삼 알아채게 됩니다.

"우리가 진짜 가족이었던 게 얼마나 오래되었지?"(p359)


돌아가신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서 발견한 마리화나를 나눠 피며, 세 형제는 모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합니다.17 아버지에 대한 이런 그리움에, 아내와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고, 형제들과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진 주인공 저드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보고,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어린 동생과 장난을 치지만, 언제가 그런 일들을 하는 마지막 순간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모든 일에는 마지막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을 다 기억한다면 우리는 슬픔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p215)

아버지와는 이미 마지막을 경험했지만,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아내와의 마지막과 형제들과의 마지막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라는 사실과 더불어 작가는 세월의 흐름, 혹은 나이 들어감이란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 】

"나도 안다, 걸핏하면 과거로 회귀하는 이런 짓거리가 지금 내 인생이 얼마나 꼬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는 것을."(p195)

'나도 한때는~'으로 시작되는 누군가의 말 듣는 것을 참으로 싫어하며, 저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말 하게되는 상황을 매우 매우 경계합니다. 비록 현재의 제 모습이, 20-30대 시절 그려보았던 그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차마 지워지지 않은/지워낼 수 없는 후회로 각인되어 마음 좀 (혹은 많이 --;;) 아프다 하여도, 실현되지 않은 과거의 희망으로 하여금 실현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을 비하하도록 만드는 우(愚)를 범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저 스스로 저의 현재를 과거와의 비교 때문에 비하 혹은 후회한다면 그건 너무 비참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요? 맹세코 이번에는 진짜 잘해볼게요."(pp378-379)

저 역시, 위와 같은 바람(願)으로부터 자유롭다고는 말 못합니다. 지금의 제 현재가 저의 잘못이었건 아니면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무엇 때문18이었건간에 어쨌든! --- 뭔가 "아무리 별 탈이 없이 순조롭게 시간이 흐르더라도 성장을 하는 것에는 무언가 비극적인 것이 있다"(p301)란 주인공의 어림을 도무지 부인하지 못하겠(다 말하고만 싶어지)는 이 놈의 '사람 인(人), 살 생(生)'이란 것이, 그리 젊지도 그렇다고 늙어있다라 말하기도 싫은 나이의 저에게마저도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가 영원할 것 같지만 우리는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p333) … 인생이란 무척 거창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한순간에 뒤틀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p382)함이 (겸험상!)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이나 수치라는 감정에 의해 편집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무자비하며, 우리 생각의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 밖에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우리를 무정한 잡놈이라고 욕할 것이지만 실제로도 우린 그런 인간들이다. … 단지 살균되고 희석된 생각의 흔적들만을 내어놓을 뿐이다.(pp187-188)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까지를 들먹이지 않아도, 성경 속 인간의 원죄 같은 걸 거론하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여간을, 그렇게 이어져 온 나의 삶을 솔직하게 산다라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 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 아이의 다섯 살 시절에는 "행복하고 온전했던"(p53)이란 수식어를 붙여놓을 수 있으며, 그러했던 시절엔 "아무 꿍꿍이 속셈이나, 깊숙이 감춰둔 앙심이나, 지울 수 없는 상처도 없이 정말 즐거운 한때"(p301)를 만끽할 수 있었었거늘 어느 순간 우리는 --- "미리 경계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이런 일들은 아주 서서히 진행이 되고 고칠 수도 없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문득 늙어 있는 자신"(p94)을 알아채곤 속절 없이 당황하게 될 뿐입니다. 결국,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이란 "행복하고 온전했던"(p53) 우리의 과거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임을 대체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란 거지요.

​때로 행복은 마음의 문제다. 지금 당장 내 손에 지니고 있는 것을 쳐다보면서, 이미 내게서 떠난 것에다가 끝없이 견주기보다는 그것이 내게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진실이고 삶의 자세 … (p342)

라 억지 자위를 해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 것"(p342)로 맺어지는 문장을 읽어보게 되는 것처럼, 삶에서의 희노애락이란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좋은 점"19(p154)일 수도 있는 것과는 달리 ---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이란 아무래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만 싶은, 미루어 낼 수 있다면 미루고만 싶은,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할 수가 없는, 그러하기에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거나 혹은 나의 다음 세대에게 건네 주게될 뿐이란 걸, 존나 슬프지만 또한 아니 인정할 수가 없는 겁니다.


"늙지 말게나. 그게 내가 저지른 잘못이라네."(p405)


……………………………………………………………………………………………


뭔가 굉장히 정리되지 않은 감상문을 쓰게 될 것 같다, 뭔가 무자하게 주절대는 감상문이 나올 꺼 같다란 생각을 미리부터 했었더랬고, 예의 그 예감은 또한 틀리지 않았다라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간단하게 줄여 보자면, '막장 가족의 유쾌한 애정 복원기'정도로 표현될 수 있겠는 이 한 편의 소설로부터, 허나 이 작품을 단순히 '소설'이라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지는, 어쩌면 소설의 형식을 빌어 온 '삶의 중간 자락에 선 이들에게 필요한, 뭐랄까 일종의 인생 중간 점검 지침서'쯤?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도 같은 이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점은 다름 아닌,

"나는 너희들이 필요했다. 너희 스스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도 너희도 서로를 필요로 했고."(p426)


이 필요가 --- 나의 부모를, 나의 아내를, 나의 형제를, 그리고 나의 가족 전체를, 그리하여 결국엔! 나 스스로의 삶을 향해 있다라는 걸 배울 수 있었던, 이 사실을 이제껏 알지 못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마음보다 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p341)기 때문이란 것까지/마저를 또한 배울 수 있었던 이 한 편의 소설에 대해, 한 치의 덜함이나 더함도 없는 완!벽!한 '여인의 치마'20라 말하게 됩니다.

당신이 미혼이라면, 혹은 기혼이라면 더욱 / 당신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혹은 두 분/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면 더더욱 / 당신의 현재가 젊음이라면, 혹은 (어지간히) 나이 들어있음이라면 더.더더욱!당신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이 소설을 읽고나면 알게될 수 있으리라 사뭇 자신합니다. 여기에 더해 --- (대한민국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연배가 저와 비슷하다라는 사실21마저, 그렇게 당신이 1969년의 언저리에 태어났다라면! 그가 등장시키고 있는 (제가 거의 다 알고 있는!) 팝송들이나 "야시카 카메라"(p340)와 같은, 그야말로 스토리의 전개와는 하등 상관을 지니지 못하는 소품마저도 뭔가, "늙지 말게나"라며 '우리 나이대'의 취객들끼리 그 시절 신촌의 '만미원·투'나 '나의 집'같은 술자리에서 두 손 마주잡고 나눌 듯 싶은 이야기를, 지금 내가 이 것을 활자로 읽고 있다란 느낌마저 순간적으로 잊게 만들어 주는 일체감까지를 닭살 돋는 듯한 공감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해줄 거라 확신합니다. 암튼!


  1. 박주영 作, 「고요한 밤의 눈」중 p36, 다산책방 刊, 2016.
  2. "유대교에서 7일 동안 지키는 일종의 삼우제 - 옮긴이'(p8)
  3. "당신의 부인이 외간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자신의 죽음이나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처럼, 아내가 외도를 할 가능성도 아무런 실감 없이 머리를 스쳐가는 여러 생각들 중 하나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평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p31)
  4. 가와무라 겐키 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중 p176, 오퍼스프레스 刊, 2014.
  5. "좋은 섹스의 정의에는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겠지만 분명한 건 효율성은 절대로 그 안에 끼어 있지 않다"(p182)
  6. "사랑에 빠지면 모두 나르시시스트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도 우리 관계가 얼마나 친근하고 밀접한지에 대해, 우리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형성된 완벽한 연인이기라도 하듯 제멋에 빠져 끊임없이 지껄여댔다."(p24)
  7. "나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애들의 시야를 왜곡시켜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인생이란 한 편의 거대한 로맨틱 코미디다. 귀여운 여자애를 만나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모든 게 동화처럼 출려나갈 것이라고 믿어버린다."(p78)
  8.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 나지 않게 방귀를 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소변을 볼 때 화장실 문을 닫지도 않을 것이다. … 아내는 남편의 농담을 듣고도 다른 이들처럼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밤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 것이고, 화장실 휴지를 갈아놓지 않았다거나 … 하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 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다툼을 벌일 것이다. 각자 가슴속에 장부책을 숨겨두고는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방식으로 상대의 점수를 매길 것이다."(p25)
  9. "지금의 내 삶이라는 악몽을 꾸고 있는 다른 세계의 나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p114)
  10. ​"우리는 손만 뻗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인생을 출발하지만, 우리가 잘못될 수 있는 수만 가지 가능성들을 조금이라도 의식할 수 있다면 감히 침실 밖으로 나설 용기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p395)
  11. "우리 모두 결혼생활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실감만으로 지껄이는 말이다. 그건 분명 비극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지구 반대쪽, 우리의 현실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p23)
  12. ​"나는 긴 머리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가죽 끈 팔찌를 하는 멋진 아빠가 될 것이라도 항상 생각해왔다. 손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들에게 고함을 지르지도 않으며, 놀이공원에 가서는 비싼 간식거리들도 모두 다 사주고, 아이들을 목말 태워 집으로 데려오는 그런 아빠 말이다. 나는 남편보다는 아빠로서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물론 논리상으로는 남편이 되는 것이 먼저였으므로 나는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을지 - 영리하고 분별이 있고 성격이 좋은 속옷광고 모델 - 생각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어떤 타입의 남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결혼한 상태의 나, 그 정도가 다였을까?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거기에서 문제점을, 나를 향해 나부끼는 커다란 경고의 깃발을 봤어야 했다."(p195)
  13. 큰 딸 웬디가 초경을 하자,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습니다. 그때 간호사가 웬디에게 탐폰 사용법을 알려주며 하는 다음의 말이야말로, '결혼'이라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이 어떻게 '가족'이라는 혈연적·강제적 결합으로 변모되는지를 가장 간결하게 상징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놀랄 필요는 없단다. 얘야, 이것보다 큰 놈들도 그 안으로 들어갈 테고, 또 그보다 훨씬 큰 놈도 그 안에서 나올 테니까."(p126)
  14. "우리가 어렸들 때 아버지는 최고였다. … 하지만 우리가 머리가 좀 굵어지자 아버지는 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텔레비전과 비디오 게임에 빠져 지내는지, 사지 멀쩡한 것들이 왜 그렇게 게으른지, 방하고 침대 꼬락서니는 왜 그 모양인지, 머리는 왜 그렇게 길게 기르고 꼴 보기 싫은 날염 무늬 티셔츠는 왜 그렇게 걸치고들 다니는지,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pp 99-100)
  15.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부모님을 보지 못할 때를 맞는다.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얼마간의 추억과 부모님 생전에 미처 그들고 풀지 못한 몇 가지 후회스러운 문제들뿐이다."(pp 55-56)
  16.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아무 의미 없는 섹스도 해보고 맥주 캔처럼 여자들을 차버리기도 하고 말이야."(p446) --- 이런 누나가 있었으면 남자의 청춘은 좀 더 즐거웠을지도. ^^;;
  17. "아버지가 그리워요"(p259) … "아빠가 보고 싶어"(p270) … "아버지가 정말 그립다"(p271)
  18. "사람들은 흔히 한 가지 현상을 가리키면서 그것에 모든 잘못된 일들의 책임을 돌리기 좋아한다. 비만인 사람들이 맥도널드가 그들을 뚱뚱한 돼지로 만들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잘못된 수식이 쓰인 칠판을 지워버리듯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이다."(p197)
  19. 작가는 이러한 것의 예로 "액션영화의 누드신"(p154)를 들고 있지요⁠. 하지만! --- 누드신은 '있으면 있는 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20. ​"'좋은 연설은 여인의 치마 같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큼 짧아야 하지만, 주제를 덮고 있을 만큼은 길어야 한다는 뜻이다."(p316)
  21. 1970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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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주식에서 로또, 카지노까지 승리를 지배하는 베팅의 과학
애덤 쿠하르스키 지음, 정훈직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1. "The Perfect Bet :  How Science and Maths are Taking the Luck Out of Gambling"가 원제인 이 책에서 옮긴이는 ' gambling'이란 단어를 그냥/굳이 '갬블링'이라 적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 경마, 룰렛, 복권, 포커, 체스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실례(實例)들로 보아, 'gambling'이란 단어를 우리말로 '도박'이라 적어내어도 무방할 듯 싶지만, '도박'은 뭔가 '요행'이란 단어와 함께 쓰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반면, '갬블링'은 그보다 약간은 중립적인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기에 '행운(luck)'이란 단어와의 매칭이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란 이유가 아니었을까란 짐작을 해봅니다. 이러한 양보(?)에도 불구하고,


#2.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란 한국어판 제목이나, '확률론과 카오스 이론, 기계학습까지 베팅의 현장에서 찾은 절대 승리의 방정식'이란 뒷표지의 문구는 다분히 마케팅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이 책의 실제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프로 갬블러들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닐 것임이 확실!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일반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주제는 오히려/차라리/결국 다음의 구절이 아니었을까 싶지요.

​"우리가 카지노에서 갬블링을 한 적이 없고 베팅 업체를 방문한 적이 없다 해도 베팅은 우리 삶에 널리 퍼져 있다.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운은 우리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숨어 있는 정보에 어떻게든 대처해야만 하고 불확실한 가운데에서도 타협을 해야 한다. 모험과 보상은 균형을 이뤄야 하고, 낙관주의는 확률과 비교 검토해야 한다."(pp311-312)

#3. '갬블링'을 대학 교수가 연구한다? MIT에 '갬블링'에 관한 강의가 있다? 인터넷 포커 업체에 대한 재판에 변호인 측과 검사 측 모두 경제학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계량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다중회귀분석1이 경마의 우승자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사뭇 쉽게 믿어지지 않을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라 이 책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20세기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이라 일컬어지는 앙리 푸엥카레 역시 룰렛2에 관한 연구를 했다는 놀라운 사실3을 이 책의 초반부터 보여주고 있지요.

푸엥카레는 "룰렛과 같은 사건의 결과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 결과들이 무작위인 것처럼 보인다"(p23)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내용은 --- 우리가 '무작위'라 생각하는 현상들 중 어느만큼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 또 다른 어느만큼이 '행운(luck)'에 의해 좌우되는가를 가려내기 위한 수학자, 통계학자, 물리학자, 경제학자 등등의 시도들4, 그리고 그 시도들의 현실 적용 예5를 보여주고 있다,라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의 결론이란 건 결국/아쉽게도,


"벤터는 'A가 B의 원인이다'라는 결론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도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측만 잘할 수 있다면 벤터는 정밀하면서도 논리적인 근거를 기꺼이 버릴 수 있다. 자신이 말하는 요인들이 직관에 어긋나거나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예측 모델은 특정한 말이 승리할 확률을 추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말이 승리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p300)6

#4. 위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계량경제학이 미래의 예측을 위한 학문인가, 아니면 과거를 해석하기 위한 학문이가란 질문에 대해, 이 질문 속 '예측과 해석'의 구분 자체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란 견해7에 반(反)하는, "구단이 새롭게 영입하는 선수와 계약할 때는 과거 성적을 기초로 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구단이 실제로 지불하는 돈은 그 선수의 미래 활약에 대한 보상"(p161)에서 볼 수 있듯, 명백하게 어느 한 편, 즉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위 주장은, 분석의 대상이 바로 (넓게 보아, 스포츠에서 선수의 영입 역시 일종의) '갬블링'이기 때문에 당연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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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경마, 룰렛, 복권, 포커, 체스' 등의 갬블링을 제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8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 초반부는, 뭔가 수학적 분석이 담겨져 있을 것만 같은 책의 제목에 매우 충실하게 전개됩니다. 통계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다면 어떻게 손해를 볼 수 있는가를 '몬테카를로의 오류'9로 설명하는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하며, '소행성의 분포 패턴'10에 대해 푸엥카레가 내놓은 가설의 경우는 수학이 지닌 아름다움의 극적 단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다가 어느새,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나란 생각을 가지게 해준 3,4,5장을 꾸역꾸역 읽어내고 나면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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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움직임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한 드래프트11는 항상 똑같은 결과로 끝난다. 수학 용어를 사용하자면 이 게임은 '결정론적deterministic'이다."(p230)

​'결정론적'이란 단어를, 게임 이론(Game Theory)에서는 '순수 전략pure strategy'라고 하지요. '순수 전략'하에서 플레이어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늘 A를 해라'와 '저런 일이 일어나면 늘 B를 해라'와 같은 고정된 규칙"(p213)을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교과서 속 결론과 같이 매번 예측 가능한/동일한 현상12으로 결과지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 예를 들어, 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문제는 '순수 전략'을 따르면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 뿐입니다만, 정작 수능에는 '순수 전략'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혼합 전략mixed strategy'을 사용하여야만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곤 한다라는 것과 같응 이유에서이죠. 


이 책의 6장13과 7장14은, 올 초 대한민국에 바둑 열기를 한껏 불어넣어주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떠올려 보며 읽어보면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대결 전 당시, 전문가들은 압도적으로 이세돌 9단의 우세를 예측했었었고, 그 이유로 --- (표현해 보자면) 인간인 이세돌 9단은 '혼합 전략'을 사용할 수 있지만, 기계인 알파고는 '순수 전략'만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을 들었었지요. 하지만, 바둑 전문가들은 말 그대로 바둑에의 전문가였었을 뿐, 수학자는 아니었던 겁니다.  


"체스와 같은 게임에서 정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에게는 모든 것이 보인다. 말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상대가 어떻게 말을 움직였는지도 안다. 플레이어들이 사건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게임에 운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p247)

양측 모두 '혼합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바둑 9단 간의 대결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것은 바로, 정보 처리 용량의 한계로부터 초래되는 missing part를 (상대방이 흔히 '실수'라 표현하는) '행운'이라는 녀석이 맡게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대국 전 바둑 전문가들이 말했던 '순간순간 발휘되는 인간의 직감을 컴퓨터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라는 이유는 기실 --- 이미 1950년 앨런 튜링이 발표했던 논문의 주제가 "기계가 (생각하는) 인간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행동할 수 있는지 … 컴퓨터는 속임수를 써서 누군가 자신을 인간으로 착각하게 할 수 있을까?"(p250)였었다는 걸 알지 못했었기에 제기되었었을 뿐인 것이죠.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의문의 한 수에 무너지기 시작했었듯,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게임에서도 이미! 동일한 상황이 발생했었던 겁니다.15


"딥블루와 카스파로프의 대결에서 초반에 딥블루는 이해할 수 없도록 아주 교묘하게 지능적으로 말을 움직여서 카스파로프를 크게 당황하게 했다. 카스파로프는 딥블루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에 따르면 그 움직임이 이후 경기 진행에 영향을 미쳤고 러시아의 체스 대가인 카스파로프는 그때까지 겨뤄 봤던 모든 선수를 넘어서는 상대와 대결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pp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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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체스와 같은 경기에서는 더 이상 컴퓨터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 "상대방의 카드가 숨겨져 있다는 점"(p247)이 체스와는 다른, 즉 불완전 정보가 존재하는 포커의 경우엔 여전히, 컴퓨터과 과연 인간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흥미로운 주제로 남아 있지요. "포커에서의 내기는 결과를 놓고 하는 내기와 같은 의미가 아니죠. 선수가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게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말이죠."(p290)16이란 경제학자 랜들 히브의 주장은, 체스와 포커의 차이점을 사뭇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의 차이점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100년에 한 번씩 오는 대규모 폭풍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발생할 확률이 변하는 것은 아니죠."(p197)

자연과학은 이러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가지게 되는 주관적 판단이 실제 객관적 사실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위 문장 속 '대규모 폭풍'을 '(주가의) 대규모 폭락'으로 바꾸면, 더 이상 주관적 판단이 객관적 사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 말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 "주가를 추측할 때 투자자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지를 예상하는 것이다. 회사가 근본이 탄탄하다고 해서 그 회사의 주가가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그 회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p184-185)란 문장은, 이와 같은 사회 과학이 다루고 있는 대상의 특질을 극명하게 표현해주고 있지요.


​…………………………………………………………………………………


이 책 속엔 '승리의 방정식'이라 불리울 만한 것이 없기도 하지만, 설혹 그 일부가 있다 해도 한 개인의 차원에서 실행에 옮겨볼 수 있는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결국 이 책은 --- "현실에 대한 모델로서의 과학"17(p301)을 이해하는 것에 주안점이 놓여져 있는, 즉 현실에서 보이는 무질서/무작위가 실제 무질서/무작위만이 작동하기에 발생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결과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p23)이란 푸엥카레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그리고 그렇게,

"포커에는 규칙과 제약기 있긴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요인들도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생의 여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협상, 경매, 흥정 등은 모두 정보가 불완전한 게임들이다."(p247)

'알려지지 않은 요인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려는 인간의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18을,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실제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실을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라 읽혀졌습니다. 알파고의 열풍에서 우리가 끄집어 냈어야 하는 것이 '코딩 열풍'이 아니었었듯, 경제학/수학에서의 그 어떠한 학문적 성과도 인간의 삶/일상에선 결국 하나의 수단으로써만 사용될 뿐이라는, 더 나아가 자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하는/질 수밖게 없는 인간이란 사실을 배울 수 있었던 그런 독서였다라 생각됩니다. (맨날 뭔가를 깨닫기는 하는데, 현실 속에선 그걸 행동에 옮겨내지 못하네요. 참, 쫌! --;;)


"수학자들은 돈을 액수에 따라 평가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그것의 쓰임새에 따라 평가한다"(p11)



 

 

 

※ 읽어본, 수학과 관련된 책들 : 재밌어서 밤새읽는 수학이야기」, 문명과 수학」 · 「수학, 철학에 미치다

※ 읽어본, 통계학과 관련된 책들 : 통계의 거짓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

 

 



 

  1. "영향을 미칠 만한 몇 가지 요인들 중에서, 주어진 결과에 각각의 요인들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법"(p89)
  2. "대부분의 룰렛 테이블은 눈금이 서른여덟 개가 있는 최초의 프랑스식 디자인을 계승해 왔다. 이 눈금들에는 1부터 36까지의 숫자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번갈아 칠해져 있고, 초록색이 칠해진 0과 00이 추가로 있다. 0이 들어간 숫자로 인해 룰렛은 카지노 업체 측에 유리한 게임이 된다. 갬블러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에 1달러를 연속으로 건다면 평균적으로 룰렛이 서른여덟 번 돌 때마다 한 번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이때 카지노 측으로부터 받는 액수는 36달러가 될 것이다. 따라서 룰렛이 서른여덟 번 도는 동안 참가자는 38달러는 걸겠지만 버는 돈은 평균 36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2달러의 손해, 또는 서른여덟 번의 회전에서 1회전 당 5센트를 손해 본다는 뜻이다."(pp24-25)
  3. "진정한 의미에서 '만능인 Universalist'이라고 할 만한 수학자로 앙리 푸엥카레를 들 수 있다. 20세기 초에 수학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이 그가 주목한 덕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룰렛의 무작위성 역시 그가 관심을 보였던 수많은 영역 중 하나였다."(pp22-23)
  4. "주어진 상황에서 운과 실력을 분리하고 싶다면 그것들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만 한다."(p296)
  5. "지난 10년 정도 동안 베팅에 접근하는 방식은 극적으로 변해 왔다.(p145) … (단적인 예로) 스포츠 베팅을 위주로 하는 헤지펀드는 다양성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매력적인 투자가 된다."(p149)
  6. 이에 대한 일종의 반성은 --- "사실 겉보기에 완벽한 모델을 만드는 일은 간단할 것 같다. 개별적인 경마 결과에 대해 1등을 차지한 말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그 모델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각의 경주에서 실제로 승리한 말들에 이 요인들을 포함한 모델이 완벽하게 들어맞을 때까지 모델의 수치들을 조금씩 수정할 수 있다. 결점이 전혀 없는 모델을 만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실제 결과를 갖고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바꿔 예측 모델로 둔갑시켜 놓았을 뿐이다."(p94)
  7. 경제학이 주타겟으로 잡고 있는 경제(economy)에 대한 분석에서는 '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과, 성장해 온 경제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 양자간의 구분이 명확할 수는 없습니다.
  8. 로또는 가끔 삽니다만, 이 책에서처럼 진지한(?) 태도로 사지는 않습니다. 경마장도 딱 두 번 가봤었고, 첫 번째 방문에선 꽤 많은 돈을 땄었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어느 덧 20여 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지요. 룰렛, 포커나 체스는 룰조차 알지 못해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질 못했네요.
  9. "1913년 8월 18일 밤을 예로 들자면, 몬테카를로의 어느 카지노에서 룰렛 알이 수십 번에 걸쳐 연속으로 검정색에만 멈춘 경우가 있었다. 갬블러들은 테이블 주변에 모여들어서 다음에는 어떤 색이 나올지를 지켜보았다. '설마 검정색이 또 나오지는 않겠지?' 룰렛 바퀴가 돌자 사람들은 붉은 색에 돈을 쌓아 놓았다. 룰렛 알은 다시 검정색에서 멈췄다. 붉은 색에 거는 돈은 더 많아졌다. 다시 한 번 검정색이 나왔다. 그리고 또, 다음에도 또 나왔다. 룰렛 알이 연속으로 검정색에 멈춘 횟수는 모두 합쳐 스물 여섯 번이었다. 그 룰렛 바퀴의 결과가 무작위였다면 각 회전의 결과는 다른 회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검정색이 연속으로 나왔다고 해서 불은색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앞 사건과 뒤 사건은 서로 독립적이다. 하지만 그날 밤 갬블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붉은색에 연속 돈을 걸어 잃었으니 이번에는 딸 것이라 확신했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편향되는 현상은 이후 '몬테카를로의 오류'로 알려지게 된다."(p27) --- 관련하여 혼돈되는 것이 바로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 LLN)이지요. LLN은 특정 결과를 보장(guarantee)해주는 장치가 아닌, 단지 대수(large numbers)로 갈 경우, 일반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개연성만을 알려주는 것이거늘, LLN이 '사상의 독립성'을 압도한다라고들 착각하게 되어 '몬테카를로의 오류'와 같은 현실적 우(愚)를 범하게도 되지요.
  10. pp32-33.
  11. "체스와같이 드래프트는 8X8로 이루어진 보드 위에서 진행된다. 말들은 대각선으로 전진하고 상대의 말을 뛰어넘으면 그 말을 잡게 된다. 말은 보드의 반대편 끝에 도달하는 순간 왕이 되어 앞뒤로 모두 움직일 수 있다."(p228)
  12. "게임 이론은 모든 선수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선수들은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여러 결정의 결과를 알고 있고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판단을 내린다는 이야기다. … 이는 선수들의 전략이 거의 항상 내쉬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다."(p236)
  13. <게임에 허풍이 필요할까 : 승리에 도달하기 위한 게임 이론>
  14. <기계는 어떻게 배팅하는가 : 인공지능과 게임>
  15. 이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은 수학이 아닌, '코딩'에 집착했었었죠.
  16. 이외에도, 포커의 경우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도 있다 합니다. --- "무제한 포커는 더 힘든 과제로 여겨진다. 선수들은 제한 없이 판돈을 올릴 수 있고 원할 때마다 전부를 다 걸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선택권이 많아지고 민감한 사항들이 늘어난다. 따라서 무제한 포커는 과학보다 예술에 가까운 것으로 평판이 나 있다. 이런 이유로 조헨슨은 컴퓨터가 이기는 것을 간절하게 보고 싶다. 조핸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포케에서는 인간 심리가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에 컴퓨터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신비주의를 반박할 수 있갰죠.'"(p273)
  17. 이는 이상(理想)과 현실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다음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요. --- "저는 이상을 하나의 척도로 간주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해, 이상은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측정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 자오팅양·레지 드브레 共著 「상실의 시대 :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중 p24, 메디치 刊, 2016.
  18. 이와 대비되어 보일 수도 있겠는 데이비드 핸드 교수의 다음 서술이, 상상으로서는 가능한, 하지만 현실의 조절/통제가 통계학의 목적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 "우주의 작동에 불규칙한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그 인과관계를 확립하고, 또 배후에 있는 규칙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 만약 일어날 법하지 않는 사건을 예측할 수 있거나 나아가 통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 셈이다."(데이비드 핸드 著,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중 p28, 더퀘스트 刊,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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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한담 - 오래된 책과 헌책방 골목에서 찾은 심심하고 소소한 책 이야기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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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책을 보면서 내 지식이 늘어나는 것인 양 착각하며 뿌듯해 한 적도 있었다"(p12)란 구절을 읽으면서는 유학 시절, 밥 대신 책 샀던 그 호기로움의 비독점성 내지는 보편성에 내심 안도감을 가져보기도 하였으며, "책을 사는 핑계도 여럿이다. … 워낙 고전으로 소문난 책이라서,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무언가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아서 산다. 가 이런 책을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주랴 하는 어쭙잖은 동정심(?)에서 사들인 책도 있고, 심지어 장정이 너무 좋아서 산 책도 있다."(p12)와 같은 부분에선, 저자가 거론하고 있는 핑계들로 인해 나의 책꽂이에 자리하게 된 책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며 뭔가 인류적 공감 같은 것도 느껴볼 수 있었던 그 시작을 지나면 이 책은 이내, 그리고 끝까지 


"그냥 그저 그런 책에 관한 심심한 이야기다. 혹 이 책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냥 그 심심함에 공감해주셨으면 고맙겠다."(p5)

<머리말>에서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 그대로의 내용을 거쳐, 딱 그만큼만의 느낌을 남겨주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어지는 몇몇 불운1이 남긴 혼란으로 인해, 앞서 읽었던 「아나키즘」의 감상문을 완성하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어내었다라는 점이 뜻밖에도! 이 책 자체보다는 저자 강명관 교수의 가치관에 흥미를 가지게 해주었다라는 가외의 소득을 저에게 건네어 주었다는 점을 더 크게 말하고 싶네요. (이 책으로부터 인용한 문구들은 아나키즘」의 감상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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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閑談) : 심심하거나 한가할 때 나누는 이야기. 또는 별로 중요하지 아니한 이야기.2 

책의 제목에 '한담'이란 단어를 넣어도 괜찮겠다,란 저자와 출판사의 여유로움이 부럽기만 한 이 책은, 저자가 부산의 보수동 헌 책방 골목을 다니며 마주쳤던 몇몇 에피소드들을 펼쳐낸 후, 좀 가혹한 한 마디로 말해보자면 '학자의, 약간은 꼰대스런 면도 없지 않은, 불평과 아쉬움'정도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곳곳에서 빛을 내고 있는, 뭔가 아나키스트스런 저자의 가치관을 적어낸 문장들은, 「독서한담」이란 책의 제목관 어울리지 않을만큼 날카로운 면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저 하 시절이 '한담'이란 단어를 제목으로 삼고 있는 책을 말 그대로 한가롭게 읽을만하지 않다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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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감상문에 인용하여 놓지 않은, 하지만 인용되어진 구절들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는 글들을 옮겨 놓는 것으로, 「독서한담」이란 제목에 걸맞는 한가스런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독서를 업(業)으로 삼고 계신 저자가, 참 많이 부럽네요.


"음란은 일반 민중의 것이 아니다. 음란은 음란할 만한 여유가 있는 자들의 것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p74) : 과거의 역사만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닌, 2016년의 대한민국 현재도 보여주고 있지요. 회장님이나 '그녀'나...


"요즘 말끝마다 문화 콘텐츠니 콘텐츠 사업이니 하는데, 정작 그 결과물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실상 많은 사업은 그냥 돈 나눠 먹기 경연장 같다. 엉뚱한 곳에 나라 예산 퍼붓지 말고 남아 있는 고문서나 한곳에 모아 분류하고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려주면 좋겠다.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작업이 선행되어야 좋은 문화 콘텐츠가 개발될 것이 아닌가."(p244) : 기대할 걸 기대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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