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52세의 남자, 이름은 로버트 킨케이드.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p56), 스스로를 "일종의 집시 기질이 있는"(p20)사람으로 표현하는, 이혼남인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誌에 기고할 일곱 개의 다리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를 방문했고, 마지막 촬영지인 '로즈먼 다리'의 위치를 묻기 위해 한 농가에 들러, 마침 현관문 앞에 나와있던 여인에게 다리의 위치를 묻습니다. --- "그가 마당에 들어서자 현관문 앞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곳은 시원해 보였고, 여자는 그보다 훨씬 더 시원해 보이는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현관에서 내려와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p33)


그녀의 이름은 프란체스카 존슨, 45세. 이탈리아 태생의 문학전공자로서, 미국인 남편을 만나, 잠시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니 출산과 동시에 그만 둔 채, "시골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과 감정을 제한된 울타리 안에 감추고"(p47) 이 곳 매디슨 카운티에서 살(아 가/내)고 있는 "농부의 아내"(p53)이었죠. 그 날은 마침,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며칠 비웠던 때였고 그래서, 그렇게, 그리하여 ---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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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륜의 시작 】

"누군가, 여자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p23)라 바래어 왔던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그야말로 "바람같이 보이는 남자. 그리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남자. 어쩌면 바람을 타고 온 사람"(p83)이었더랬습니다. 그렇게 --- 프란체스카는 "그를 본 지 단 몇 초 사이에"(p48) 킨케이드에게 "아주 오래되고, 세월에 약간 시달린 듯한 무언가가"(p51) 있다란 느낌을 받음으로, 이내 그만 (쉽게 말해) 첫 눈에 반해버리게 되었죠.1


이후의 전개는 예의 뻔한 스토리를 따라 갑니다. 상대의 외모에 성적(性的)인 이끌림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된 킨케이드2와 프란체스카3의 서로를 향한 호감은 그러나 이와 같은 육체적 욕망으로만 시작된 것은 아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 속 이성(異性)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었던 내면적 매력4이랄까, 뭐 이런 걸 거론하며 말이죠.5 이처럼 이 소설 속 두 남녀는 --- 사랑이란 감정의 시작은 '상대방의 외모'라는 물질적/시각적 요인과, '분위기'란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감성적/정서적 요인이 결합되어 상승된다라는 정석(定石)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밟아가고 있습니다.


● 남자, 킨케이드 - "이슬에 젖은 청바지가 그녀의 몸 아래쪽에 찰싹 달라붙었다. 킨케이드는 아까 앉았던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주 고전적인 방식으로. 다시 오랜 욕망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어떤 감촉일지 궁금했다. 그의 손에 느껴지는 그녀의 등의 곡선은 어떨까. 그의 몸 아래에서 그녀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배워서 알게 된 모든 것에 배치되는 오랜 욕망, 수세기에 걸친 문화에 의해 적절하다고 일컬어지는 것과, 문명인의 엄격한 규칙에 배치되는 욕망.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사진이나 길, 지붕 있는 다리 같은 것. 지금 그녀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라도."(p86)


● 여자, 프란체스카 - "프란체스카는 감자를 벗기면서도 낯선 남자와 너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감자 껍질을 벗기는 데에도 약간의 감정이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pp70-71) …… "그녀는 발폴리첼라 두 병과 마개 있는 유리병에 든 브랜디를 한 병 사면서, 관능적이고 속된 기분을 느꼈다."(p115)

 

​【 불륜의 전개 】

6는 곧 터득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대상은 피사체가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피사체는 단지 빛을 반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광선이 좋으면 언제나 촬영할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p29) …… 이제 쉰두 살의 나이에 그는 아직도 광선을 바라보고 있었다.(p31)

인생이란 것에 대해 시간을 두고 계속된 교정을 가해가며 좀 더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내는, 짧지 않은 하나의 과정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매우 중요한 몇몇 개의 결정들에 대해서만큼은, 그와 같은 시간적 여유를 둔 교정이 가능하지 않기도 합니다.7 특히 '결혼'이라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에 있어, 단 한 번의 선택(결혼)을 통해 그 이후의 삶을 내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란 의지나 기대에 (심지어!) '환상'이란 단어로 조롱하는 시선도 종종/적지 않게 보이지요.8  


이 작품 속에서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움직였던, (물론, 킨케이드라는 한 남성 자체 - 외모나 분위기 - 로부터도 발생되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생활은 아니에요"(p63)이란, "오랜 세월 동안 묵혀 두기만 하고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말이었지만, 정말 하고 싶던 말이기도 했"(p63)던 한 마디를 그녀로 하여금 기어이 하게 했던 건, 그렇게 그녀 안에 잠자코 있었던 후회라는 감정을 느닷없이 하나의 실체로 만들어내졌던 이유는 바로!


현재의 삶 속에선 느껴보지 못했던/느껴볼 여유마저 존재하지 않았던/ 심지어 존재한다라 인식하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그녀 속 감정의 촉수들이, "아직도 광선을 바라보고 있"는 킨케이드에 의해 건드려졌기 때문이기도 했던 겁니다. --- "킨케이드는 그녀에게 다가와 야생화와 노랑 데이지로 만든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 그녀는 또 다시 속에서 뭔가 느꼈다. 꽃. 특별한 경우에도, 누구에게 꽃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p55)9 --- 킨케이드로 인해, 프란체스카는 이제껏 잊고 살아왔던 자신 속 또 다른 자신의 모습10을 발견했던 것이며, 그것이 현재의 자신과 한데 어울어짐으로써, 이제까지의 삶에서 잊고 살았던 '인생이란 이런 것!'의 새 버젼11을, '인생이란 이럴 수도 있는 것!' 더 나아가, '인생이란 것은 이러해야 하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란 것이죠. 그렇게 그녀는, 킨케이드를 만나기 이전의 그녀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12


부엌 위의 전등이 커피와 브랜디를 마시기에는 지나치게 밝았다. 리처드 존슨의 아내 프란체스카 존슨이라면 전등을 그대로 두었으리라. 저녁 식사 후에 초원을 산책하고, 소녀 시절의 꿈을 지닌 여자, 프란체스카 존슨이라면 불을 꺼버릴 터였다.(p88)

 

 

【 성공한 불륜의 정의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친구인 납득이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첫사랑이며,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마지막 사랑이라고 승민을 위로한다. 그 말이 일종의 통념으로 성립한다면13, 사람들은 사랑의 진정성을 사랑이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 김동조 著,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중 p128, 북돋움 刊, 2012.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인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두 당사자들에게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각자의 feasible set14의 일정 부분을 거의 완전히 포기하(고 훨씬 좁아진 범위의 새로운 feasible set을 받아들이)라 요구15합니다. '다른 이성과의 새로운 사랑' 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게 그 중 대표적인 것이겠지요.16 이러한 상황 하에서 --- (결혼을 결심했던 당시의 상대방인) '지금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것 같은 현재의 배우자'를 기어이 이겨내는,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17의 이성(異性)이 내 앞에 나타났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인생 한 번 밖엔 못사는 거잖아요!

'이혼 해버리지 뭐!'와 같은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라 가정한다면18, 이 불륜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두 당사자 모두 현재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feasible set을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두 당사자가 (결혼 이전보다는 훨씬) 작아져 있는19 feasible set 안에서만의 반응을 보여야 할 뿐 아니라, 현재의 feasible set을 절대 깨뜨려서도 안 된다20라는 제약을 무리 없이 이행해 낼 수만 있다면21 --- 그 둘의 불륜은 '성공하는 불륜'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까지는 구비하게 된 겁니다.22 그러나! 

둘 혹은 둘 중 한 당사자의 파국으로 결말지어진 「새벽 거리에서」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혹은 아예 불륜 관계의 종말을 보여주었던 「불륜」등은 '불륜'이란 것이 과연 성공23할 수 있을까,란 의문에 긍정적인(?) 해답을 주지 못했었죠.24 제가 읽어 본 소설들 중 아직까지는! ---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가 유일하게 (위의 기준에서 보아 어쨌든25) '성공한 불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6그렇다면! 이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불륜은, 똑같이 위의 기준에서 보아 과연 '성공한 불륜'이라 말해질 수 있게 될까요?


【 성공한 불륜의 전형(典型) 

"그녀는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다리 면도를 하고 비누칠을 했다. 그가 몇 분 전에 여기 있었고, 그녀는 물이 그의 몸을 흘러내렸던 바로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몹시 에로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버트 킨케이드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에로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p117)

신데렐라에게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었듯, 프란체스카에게도 자신의 남편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이 둘에게도 드디어/기어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p145)란 물음에 대한 각자의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 된 거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성공하지 못한 불륜의 당사자들이 내놓는, 그 실패의 원인이었던 선택에 대한 변(辨)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이건 현재 배우자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적용되기도 하지요.27)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바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왜곡이 쉽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공유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없었던 시간으로 남곤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던 순간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똑같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사랑이 온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은 드물다.

- 백가흠 作, 「마담뺑덕」중 p59, 네오북스 刊, 2014.

피천득 선생의 <인연>은, 고삐리 감성에서야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이지만, 살짝 닳고 닳은 감성으로 되짚어 보자면 일종의 '이기적 착각'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능합니다. 아사코의 훗날 모습이, 자신의 기억 속 과거 모습과 달라졌다 하여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할 것을'이라 생각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 과거엔 동등한 위치의 사이였었으나 이제는 뭔가 아사코(의 처지)가 측은해 보인다라는 감정이 유발한 (나만의) 일방적 후회일 뿐이죠. 아사코 역시 피천득 선생의 나이 든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러려고 저 사람을 다시 보았던가'하는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어차피!


('이혼'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정상적/일반적인 삶의 진행에서, 일종의 '총효용 극대화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 관계는 부부 밖에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배우자라는 단 한 개의 재화/서비스를 소비함에 있어 그것의 한계효용이 (-)가 되었다 해서, 소비를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며28, 소비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마저 '비합리적 선택'이란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와는 달리,

불륜이란 관계는 한계효용이 (-)가 되는, 즉 그 만남 자체가 비효용(disutility29)가 되었을 때 그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해야 할 아무런 유인(誘引, incentive)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효용의 발생이 상대방에 대한 흥미의 감소 때문이든 혹은 자신의 feasible set을 깨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불륜의 유지로부터 얻는 효용을 상쇄하여 버렸기 때문이건! --- ​불륜은 어차피 '총효용 극대화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이기에, 어느 시점 이후에는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다란 게 애초부터 명확했던 관계라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죠.30 따라서,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pp149-150)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열쇠」란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극단적 경우31가 아니라면, 불륜이란 안타깝게도 태생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단 한 번만 오는 확실한 감정"의 잔상을 아름답게 남기려면, 그리하여 피천득 선생께서 훗날의 아사코를 보며 가졌던 감정인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할 것을'과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① 현재 속해 있는 feasible set의 유지 :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속된 말로 자신과 함께 이곳에서 도망칠 수도 있다란, 강요함 없는 선택의 여지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 위에서 인용했던 구절(p86)의 의미처럼, "우린 자유를 포기하고, 점점 조직화되어 가면서 우리 감정을 하찮게 여깁니다"(p132)란 그의 중설(重說)에서도 알 수 있듯, 킨케이드의 제안은 자신의 욕망 성취를 위함이 아닌, 이제까지 "시골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과 감정을 제한된 울타리 안에 감추고"(p47) 살아왔던 프란체스카에 대한 안타까움/연민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지요. 킨케이드의 이 제안에 대한 프란체스카의 답변이야말로, 이 둘의 관계는 분명 '불륜'이었음에도, 「열쇠」에서과 같은 극단적 설정이 아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나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가능한 '성공한 불륜'의 가능성/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내게는 지독한 책임감이 있어요. … 나도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책임감이라는 현실로부터 내 자신을 찢어내 버릴 수가 없어요. … 만일 내가 지금 떠난다면, 떠난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에요. 당신이 사랑하게 되었던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릴32 거예요."(pp148-149)

② 또 다른 방식의 사랑 :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로지 감성적 측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닌, 분명 육체적 본능의 충족이 함께 존재하기에 형성될 수 있는 것33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륜의 과정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feasibel set을 지켜내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 육체적인 면 때문이지요. 감정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나의 배우자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어도 머리 속으로는 불륜의 상대를 그려볼 수 있으니까요.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와의 관계를 "그를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차원에 속하는 문제"(p137)라 애써 감정의 차원으로만 한정시킴으로, 자신의 feasible set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눈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감정의 차원으로만 한정시킨다는 것은 분명 마음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었기에, 그녀 프란체스카는 기꺼이 한 평생 마음 아플 수 밖에 없는 사랑의 방식을 선택했었었지요. 이 점 또한, 이 둘의 불륜에 '성공한'이란 수식어 붙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 요인입니다.


예순일곱 살 되는 생일, 프란체스카는 창가에 앉아서 빗줄기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녀는 브랜디를 부엌으로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마음 속의 감정이 넘쳐흘렀다. 언제나 그랬다. 얼마나 강한 감정인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감히 이렇게 자세히 추억하는 것은, 겨우 일 년에 한 번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짓눌리고 짓눌린 나머지 프란체스카라는 존재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으리라.(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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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사랑이, 이해되기 쉬운 사랑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청춘들에게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며, 두 주인공의 중간 나이인 저에게조차, 이 사랑이 부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오래 전에 버렸던 신이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 부드러운 손길로 기름을 부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에게 사랑을 느꼈다.  워싱턴 벨링햄에 사는 사진 작가이자 작가이며, 해리라는 털털이 픽업 트럭을 모는 그에게.(p121)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코 청춘들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며, 또한 그 감정이 일생에 단 한 번만, 그리고 일생에 단 한 사람에게만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 조차 쉬이 인정할 수 없기에, 중년의 나이가 되어, 새로운 사람에게 설레임의 느낌, 더 나아가 사랑의 감정을 가진다라는 것에, 딱히 경도된 가치 판단을 내리지는 말아야 한다란 생각을 해보게는 됩니다. 내 눈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해도, 그러하기에 상대를 만질 수 없다해도! 잡지에 실리는 그의 사진들을 보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되는 그의 사진 속 모습들을 보며 --- "그 오랜 세월 동안,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p164)던 프란체스카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이 둘의 관계가 엄연히 불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투의) 비난이 아닌 (내 안에게도 숨겨져 있을지 모를) 안타까운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행하는' 것이었다.34

프란체스카는 끝내, 가족의 의미를 '행하는 것'으로 지켜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전, 유언을 통해 자신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는 부탁35을 자식들에게 남겨 놓지요. 그렇게,

"나는 내 가족에게 인생을 주었고,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내게 남은 것을 주었다."(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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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 昨 「마담뺑덕」중 p45, 네오북스 刊, 2014.

'우연'이 가져다 준 감정을, 자신의 명백한 의지로 이겨내고 끝내 가족을 '행하였던'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우리는 과연 '불륜'이란 한 단어로만 표현해도 괜찮을까요? :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36은,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같은 순수한 첫 사랑이 아닌, 섹스가/도 결부되어 있는 '(불륜이라 불리우는)두 번째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되는 "모든 형태의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고, 사랑이 편리성의 문제가 되어 버린 이 세상"(p11)에서 (도덕적 판단의 잣대를 떠나) 엄연하게 사랑의 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그 '불륜'이란 것이, 서로의 feasible set에 변화줌 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아닌, 둘의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하는 불륜'임을, 이는 또한! --- 불륜이 아닌, 정상적인 결혼 관계의 부부 사이에서도 예의 가장 중요한 '성공하는 결혼'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라는, 결코 어려워 몰랐던 것이 아닌 사실 하나를, 이렇게 새삼 알려주고 있지요.


이 책을 준비하고 쓰면서 나는 세계관이 바뀌었다. 생각하는 방식도 변했고 인간 관계의 울타리가 내가 전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넓혀질 수 있다는 것37을 깨달았다.(p14, '시작에 앞서' 중)

차마 '아름다운' 이란 형용사를 아니 붙일 수 없겠는 이 작품에 대한, 저의 이 지리한 감상문이 자칫, 아직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뭔가 질린다!하는 느낌을 주지나 않을지 모르겠네요. 암튼! --- 당신에게도 또한,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이,그 둘의 불륜이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 받아들여질지 사뭇 궁금합니다. 심지어 혹시 이런 사랑, 해보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 옌렌 커 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

- 파울로 코엘료 作, 불륜

 

 

 

 

 

- 다니자키 준이치로 作, 「열쇠

-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

 

 

 

 

 



 

  1. "그의 눈길이 곧장 그녀에게 향하자, 그녀는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p46) …… "세대는 거듭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것만이 필요하다. 남녀의 끌어당기는 힘. 그 힘은 무한하고도 아름답다. 이런 힘이 작용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조금도 어긋나는 법이 없이 단순하고 또렷하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복잡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뿐. 프란체스카는 자기도 모르게 그 힘을 느꼈다. …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녀를 영원히 변하게 하는 일이 시작되었다."(p47)
  2. "아름다웠다. 적어도 예전에는 아름다웠을 얼굴이었고,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조금이라도 끌리는 여자를 만날 때면 늘 겪게 되는 다루기 힘든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p33) ……​"그는 아이스티를 조금 마시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176센티키터 가량의 키에 나이는 마흔,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먹었을까. 얼굴은 예쁘장했고, 근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p58)
  3. "단단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육체는 단단해 보였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은 엉덩이가 얼마나 작은지 … 어쨌든 그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p54) …… "프란체스카는 그가 무릎을 굽힐 때 허벅지 근육이 청바지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물 빠진 작업복 셔츠가 그의 등에 딱 달라붙었고, 잿빛 머리칼이 칼라 위를 덮었다. 그녀는 그가 웅크리고 앉아서 장비를 맞추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 다리 사이가 젖어 버렸다."(p112)
  4. 킨케이드의 표현 옮겨보자면 --- "그는 지성과 타고난 열정,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과 정신의 섬세한 부분에도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라도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에게 끌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프란체스카 존슨에게는 정말로 그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지성적인 면모가 풍겼다. …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pp58-59)
  5.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핑계가 아닌,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 믿어집니다. 이는 이 작품 전체를 읽고나면 거의 누구나 동의하게 될 판단이라 생각되며, 그러했기에 프란체스카의 자녀들이 훗날 자신들의 부모에 대하여 "사람들이 품고 있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평가절하되리라는 것을"(p11) 미루어 짐작했었음에도 작가에게 이 실화를 소설로 써달라 부탁했던 것이었겠죠.
  6. 킨케이드.
  7.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늦는다. 시간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으로 결정된다." - 실뱅 테송 著,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중 p257, 까지 刊, 2012.
  8. "우리가 사랑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들. ……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중 p29, 문학동네 刊, 2014.
  9. "프란체스카는,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이런 것이 일상적인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이런 대화는 문학적인 대화였다. 매디슨 카운티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날씨와 농산물 가격, 새로 태어난 아기, 장례식, 정부의 프로그램, 운동 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예술과 꿈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음악을 침묵하게 만드는 리얼리티나, 상자 안에 가둬 둔 꿈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p75) … "카키색 바지와 흰 셔츠, 샌들이 프란체스카의 눈에 들어왔다. 이곳 남자들은 샌들을 신지 않았다. … 농부들은 그렇지 않았다."(p114)
  10. "이제, 그녀의 마음 속에 숨어 있었던 또 하나의 '내'가 살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p93)
  11. ​"프란체스카는 그의 가슴에 달라붙어 춤을 추면서, 원피스와 셔츠 사이로 그가 그녀의 가슴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러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프란체스카는 이런 느낌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 그녀는 다시 여자가 되었다. 다시 춤출 여유가 생긴 것이다."(p134)
  12. 비슷한 예를 보자면 - "공원에서의 대화, 그 키스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후회는 없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했고, 그 행동 자체가 나를 가두고 있는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의 행동은 항상 놀랍다. 오럴섹스, 분별있는 충고, 공원에서의 키스. 내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야코프와 함께 있으면 나는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된다."(파울로 코엘료 作 「불륜」중 pp 81-84, 문학동네 刊, 2014.)
  13. 즉, 이혼과 재혼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14. 실현가능한 모든 것.
  15. 물론, 결혼이란 행위에 그러한 요구가 담겨져 있음을 당사자들은 알고 있으며, 그에 동의했기에 서로 부부가 된 것이지요.
  16. 결혼으로 인해 feasible set 이 넓어지는 것의 예는 「롤리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롤리타」를 읽고 쓴 감상문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면 : ​험버트는 '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춘기 소녀'의 의미를 갖는 님펫인 롤리타를 하숙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매력적 외모의 이 영국인 남자에게 하숙집 주인, 즉 롤리타의 엄마인 샬럿 또한 연정을 가지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롤리타와 직접적으로는 어떠한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험버트는 오로지 그녀, 롤리타를 자신의 효용극대화에 사용될 feasible set안에 집어넣게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샬럿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롤리타는 험버트의 의붓딸이 된거죠. 그러고는 자신의 딸인 롤리타와의 합법적(!) 애무를 상상합니다. 헌데 이 에로 영화의 스토리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 "나는 그녀가 롤리타의 언니라고 상상했다. …… 샬럿과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이볼을 마셨다. 그 술기운 덕분에 엄마를 애무하면서 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새로 얻은 아내의 완숙한 몸에 올라타면서 이것이야말로 생물학적으로 롤리타와 가장 가까운 육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 우리가 함께 지낸 50일 사이에 …… 마치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엄마와 결혼했기 때문에 아내가 딸을 대신하려고 상당량의 청춘을 되찾은 듯했다."
  17. 말하자면 "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중 p90, 재인 刊, 2011.)와 같은 상황이죠.
  18. '결혼 배우자의 선택'이 (단 한 번 뿐인 삶의) 평생에 있어 '단 한 번뿐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 그리하여 결혼식장을 나서는 순간, (이전까지 누렸던 넓은 범위의) feasible set이 다시는 복구될 수 없다라는 제약을 받아들인다는 조건.

  19. 기혼간의 불륜일 때에는 두 당사자의 feasible set이 결혼 전 보다 작아져 있겠지요. 기혼과 미혼간의 불륜이라 해도 기혼자의 feasible set은 어쩔 수 없이 미혼자의 그것보다 작을 수 밖엔 없습니다.
  20.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 한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중, 아침나라 刊, 2001.
  21. 조금 더 양보(?)해, feasible set을 잠시 깨뜨렸다 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를 배우자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라는 최종적 제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22.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벽 거리에서」를 통해 불륜에 대한 두 가지의 정의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 ① 보수적 정의 :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륜이다. 데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이상 그것은 불륜이다."(p60) ② 개방적 정의 :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성에게 연애 감정조차 품지 말라는 것은 무리이다. 아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데이트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정도의 두근거림이 있는 편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 키스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시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불륜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p60) --- 하지만, 그 어떤 정의를 적용하건 그 불륜이 '성공'하기 위해선 위의 필요조건이 반드시 구비되어야 하지요.
  23. 이 때의 '성공'이란 의미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라는 것보다는, 최소한 상당 기간 지속가능하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바가 더 큽니다.
  24. 박현욱 作, 「아내가 결혼했다」도 '불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이나 방식이 '불륜' 자체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25. "남편은 (비록 자신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성공하는 불륜'의 조건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켰었지요.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feasible set을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라는 점말이죠. 그 조건만 지켜진다면 아내의 (육체적이건 혹은 정신적인 것만이건) 외도는 자신이 일 당사자인 이 '부부라는 관계'를 깨뜨리지도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효용함수에 (+)의 영향을 미치니, 굳이 그것을 막거나 화를 낼 필요조차 없다는 이 설정은 사실 --- 제가 그토록 읽어보고싶었던 '성공하는 불륜'의 소설이었기에, 그러나! 제가 어렴풋이라도 그려보았던 '성공하는 불륜'의 방식은 아니었다라는,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전개…" - 「열쇠」를 읽고 쓴 감상문 중.
  26. 「당신 없는 일주일」의 마지막에서 보여지는, 엄마의 선택은 '불륜'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결혼'으로 인한 feasible set 자체가 '남편의 죽음'으로 아예 해체된 상태에서 시작된 만남이었으니까요.
  27. "누군가와 살면서 실생활에 따르는 모든 골칫거리들을 공유하다 보면 그때그때 해결을 보지 못한 자잘한 원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치태처럼 쌓이게 되고, 상대에게 키스를 하고 핥고 애무를 하는 순간에도 의식의 가장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로를 안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분을 잊지 않고, 온기, 둘만의 친밀감, 혹은 그저 저급한 만족을 위해 기계적으로 상대에게 몸을 비비면서도, 마음은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속적인 생각의 조각들, 마음의 응어리들로 가득 채웠다." - 조너선 트로퍼 作, 「당신 없는 일주일」중 pp182-183, 은행나무 刊, 2012.
  28. '이혼'의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
  29. "해(불편, 불쾌, 고통)를 가져오는 것/성질" - 네이버 영어사전.
  30.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선택하겠다는 이유는 어쩌면(?) -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파울로 코엘료, 위의 책 중 p11)
  31. 이 작품의 마지막 결론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
  32. ​이 부분은 또한 ---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사랑이 '삶 혹은 일상'이 되었다 해도, 이렇게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었겠느냐란 방향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 혹은 일상'이란 게 좀 잔인한 면이 있어, 사람의 감정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망쳐가는 것으로 작용하기도 하니까요. : "나는 여자의 그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미코는 좋은 엄마다. ……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나의 연인은 아니다. …… 지금 함께 사는 이 여자는 예전에 내가 사랑한 여성과는 다른 누군가이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 결혼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와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는 옛날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마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리라." (히가시노 게이고, 위의 책 중 p274)
  33. 소위 말해지는 세속적 의미의 '불륜'에서는 당연히 육체적 본능의 충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할 수 없이 크겠지요.
  34. 가와무라 겐키 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중 p176, 오퍼스프레스 刊, 2014.
  35. "1982년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란체스카는 시체를 화장하고, 재는 로즈먼 다리에 뿌려 달라고 요청했다. 매디슨 카운티에서는 화장이 흔한 일이 아니어서 - 어쩐지 약간 급진적인 행위라는 관점이었다 - 그녀의 이런 소망은 카페와 텍사코 주유소, 농기구 상점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pp183-184)
  36. "이 이야기는 마이클과 캐롤린이 도움을 준 것과 프란체스카 존슨의 일기장에 있는 정보들에 기초한 것이다."(p12)
  37. feasible set이란 것이 사람의 감정도 적용될 수 있다라는, 그리하여 feasible set을 깨지 않아야만 성공하는 불륜이 될 수 있다는 저의 추측에, 그 안에는 반드시 사람의 '감정'도 담겨 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전까지 제가 생각했던 feasible set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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