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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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p57)란 구호는 여전히 제겐 과격한 이미지이기만 하며, '아나키즘'이란 것이 대체 자신의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제대로 링에 올라본 적이나 있었던가 싶은 대한민국이기에 "이미 패배당했고 또 여전히 탄압받는 사상"(p155)이란 (자조 섞인)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거늘, 특별한 이유도 없이 꽤나 오래간 지속되고 있는 '아나키즘'이란 사상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찾아 읽어본 이 책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제게 남겨준 걸 한 개의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의외로 --- '허무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짜 게임을 하는 건 몇 테이블 안돼. 하는 척만 하는 거야. 혼자 멍하게 앉아있지 않으려고..."(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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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는 이데올로기가 만발한 시대였다. 민주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라는 세 가지 주의(主義)의 투쟁이 이 시대 정치사의 기본을 이루고 있었다. 1930년대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에 몸을 바쳤다. 이 시대는 사상에 대한 정열이 역사를 움직인 시대였고, 이런 시대적인 특징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스페인 내전1' 에 대한 약간의 사전 공부를 했습니다. '엘 클라시코'로 불리우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의 시합에서 보여지는 그 열기는 그저 호날두와 메시의 대결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것, 더 나아가 이러한 '스페인 내전'을 통해 우리의 4·19 혁명이나 5월 광주를 거론하는 글도 보여지더군요.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제거해 내어도, 심지어 '아나키즘'이란 사상까지도 제거해낸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가슴에 두더지가 있다(p189) …… 두더지는 좌절된 내 꿈과 슬픔을 먹고 있었다(p190)"란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어쩌면 훨씬 더 큰/일반적인 범위로 확장되어, 심지어! --- '스페인 내전'과 '아나키즘'을 모두 지워버리고 이 책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삶을 이해함에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를 해보게도 됩니다. 2017년의 대한민국을 살아 내고 있는 우리에겐, 다른 모습의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이즘(主義)'들이 서로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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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측정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 자오팅양 · 레지 드브레 共著, 「상실의 시대」 p24, 메디치 刊, 2016.

주인공 안토니오는 농사가 주업인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만, 그는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p20)과 같은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일방적 강요2엔 끝내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불합리한 원리들이 하나둘 씩 보이기 시작했지요.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점차 알게 됐다. 그들에게는 그걸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할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 (반면) 우리의 가난함은 나눠봤자 더 가난해질 뿐이었고."(pp23-24)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을 떠나온 그에게, '꿈꾸어 왔던 이상이 현실이 되는 짜릿한 순간'이 실현되는 작은 사건3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 순간이--- 그의 이후 삶을, 그렇게 흘러갈 수 밖게 없도록 만들었다라 전 생각합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음'을 자각하는 도구로 쓰여야 할 '이상'을, '반드시 실현시켜내야 할' 현실로 변환시키는 순간, 모든 주의(主義)는 혁명을 요구하게 되지요. 주인공 안토니오의 향후 삶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스페인 내전'의 역사적 배경 속에 살았었기 때문도 아닌, 그의 정신 속에 '아나키즘'이 자라하게 되었기 때문 또한 아닌, 오로지 (상상이 현실이 되었던 그 순간처럼)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고싶다'란 그 욕망을 가졌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물론!

"애초부터 이길 가능성이 없는 탄원을 한 까닭은 오로지 그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p179)​

'이상의 현실화'란 욕망인 굳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 하여도, 그러한 '정신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안토니오의 삶은 스스로 느끼기에 행복했었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싸워야만 하는 시대 … 더 이상 화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p46) 시대를 살아야 했던 안토니오에겐, 이상이란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하는 무엇이었던 것이죠.

"나는 분열된 스페인에서는 평화와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제는 나도 싸우겠다는 증오를 품게 됐다."(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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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를 앞둔 마지막 수업 시간, 종로학원의 담임 선생님이였던 조한은 선생님께서, 1년 중 처음으로 저희에게 따뜻한 어조로 종례를 시작하셨습니다. 좋은 결과 있을 꺼라고, 여러분의 지난 1년이 더 충실한 대학생활의 밑거름이 되어주리라 확신하신다라고, 그리고!

'비겁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제 가정이 있고 삶에서 책임져야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진 지금의 우리 세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꿀 용기를 낼 수 없노라고, 그러하니 자네들이라도 이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말아달라고, 그러다 언젠가 자네들이 나의 세대가 될 때즈음, 잊지 말고 다음 세대들에게도 또한 이러한 부탁을 전해달라' ……​ 는 말로 종례사의 마지막을 끝맺음 해주셨었었지요.

그 분에게 지어져 있던 책임들의 가장 큰 부분은, 어느덧 지금의 저에게도 지어져 있기도 한,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국가 우선'은 '가족 우선'이 되었다"(p144)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혼'이란 것이 모든 이에게 "그동안 지켜왔던 자존심과 사상을 매장시키는 일"(p141)이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아주 많은 우리들에게 적어도 "이 애만은 내가 걸어온 길을 피하게 하고 싶"(p144)다란 소망을 가지도록 한다면, 그리하여!

​"살아남으려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해야만 했다. 단순히 지난날의 이상을 버리면 되는 게 아니라 열렬한 신봉자가 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절은 고백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숨겨 둔 개개인의 비극을 배신하는 짓이다. 아니, 배신이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자살을 의미한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묻어야 했고, 육체의 생존을 위해선 마음을 죽여야 했다."(p135)

마음을 죽여야하는 삶까지를 감수하면서까지 육체의 생존을 도모해야하느냐,란 질문은 2017년 제게 얹어져 있(다라 스스로 생각하)는 책임감들 앞에선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뭐 대단한, 시대를 어찌해보겠노란 이상을 가진 적도 없었었으며, 평균을 넘어서는 호사라면 호사일 수 있을 이제까지의 삶을 살아온 제게, 혹자는 '마음을 죽여야하는 삶'이란 게 어울리기는 하냐라 물을지도 모르겠네요.

"최선의 선택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승자에게 무릎을 꿇는 것 최선의 선택은 이제 투쟁을 포기하는 것 … 최선의 선택은 내가 따랐던 용감하고 위대한 사람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는 것 … 최선의 선택은 그 시절을 지우는 것."(pp123-124)

​시대 정신, 정의 … 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닌, '저 개인의 꿈' --- 저는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했거늘, 이루어낸 누군가는 항상 제 주위의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지금의 제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제 '투쟁을 포기하고, 그 시절을 지우는 것' 뿐이라는 게 이 작품이 저를 울컥하게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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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포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래도 먹고살기는 해야 했다."(p39)

내가 누워있게 될 묘지의 비명으로 쓰고싶다란 생각마저를 해보게 된 문장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계속된 실패와 패배, 그리고 모욕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쌓였기 때문"(p206)이라 이제까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의 남은 제 삶을 표현하지는 않아도 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복수이건 증오이건 포기이건 그 무엇이건! '채워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제/우리의 삶을 끝내,

"속세를 살아야 한다는 90년형"(p199)

로 만들어 버릴 꺼란 걸, 차마 부인하지는 못하겠는 겁니다.

뭐 그렇다 하여도, 이 이야기의 마지막 결말이 누구에게든 권장될만한 건 아닙니다. 'Graphic novel'이란 장르의, 뭐 우리말로 옮기면 (좀 이상한 게 되어버리는 --;;) '성인만화'쯤 될, 이 작품의 내용 전체가 어쩌면 '육체의 생존'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게임을 하는 건 몇 테이블 안돼. 하는 척만 하는 거야. 혼자 멍하게 앉아있지 않으려고..."(p178)

게임을 하는 척만 하며 앉아있는 삶을 원하지는 않을, 이루어질 가능성이 0에 거의 완벽하게 수렴되어 있다 할지라도 최소한 내게 여전히 그런 꿈이 있었노라란 사실까지를 망각하고 싶지는 않을, 망각하지 않음이 심지어 당신에게 괴로움이 될지라도 그것마저 뿌듯해할 수 있을 당신에게, 이 책을 진지하게 권해봅니다. 비록 그 결말을, '승리가 아닌' 패배라 말할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 하승우 著, 아나키즘」, 책세상刊, 2008.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The Battle for Spain' 또는 'Spanish Civil War'라는 영어 표현은 '내전' 혹은 '내란'등의 한자어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의미를 담고있다라 생각합니다.​
  2. "아나키스트는 모든 권위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권력을 거부한다. 아나키스트는 스스로 동의한 권위라면 전체의 결정이라도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따르려 한다." - 하승우 著, 「아나키즘」 p12, 책세상 刊, 2008.
  3. "그때까지 실제로 운전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상상해 왔기에, 실제로 기회가 오면 쉽게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 날이 온 것이다. 나는 운전석에 몸을 맡기고, 내 몸이 그토록 꿈꿔왔던 것을 하도록 놔주었다."(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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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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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향력은 둘 다 타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은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하지, 상황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 모이제스 나임 著, 「권력의 종말」 p69, 책읽는수요일 刊, 2015.​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미래는 내가 합의한 질서"1라는 설명에 대한 ---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듯, 일단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대한민국이 고수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는 선택의 대상이 아닌 주어진 기본 전제 조건"이란 당시의 생각, 그리고 (지금도 변함 없는) 이 생각의 기저에는 '권력의 존재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음' 이란 대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제게 주어져 있는 선택권은, 정체까지를 바꿀 수는 없은, 그저 '그 정체의 현시인 국가를 다스리는 (여러 계층의) 권력자'를 누구로 선출할 것인가에 더해지는 한 표 뿐이란 거지요. 헌데 이를 반대의 각도에서 보자면,

선출된 권력자 역시, (국가의 정체와 같이, 넓은 범위에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닌, 일정한 기간동안만 발휘되는 (제한적인, 그러나 그 제한 내에서는 나름 막강할 수도 있는) 영향력을 위임/부여받았을 뿐이라는 해석 또한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순조로운 사회생활'의 영위를 위해 조직된 '국가'라는 기구2가, 자신의 존재 이유인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내 도시지 네 도신 줄 아니?"(p76)처럼, 지배의 도구로 변질되어, 그 지배의 대상3으로 '국민'을 취급하게 되어 버리는 현실 또한, 비단 과거의 역사 속에서 뿐 아니라, 2017년 현재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북한 정권이 바로 그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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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살고 있는4 작가가 쓴 7편의 단편 소설들이 묶여 있는 소설집입니다. 소설의 내용들은, 약간 함부로 써본다면 ---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가 기존의 교육으로부터, 또한 뉴스들로부터 보고 들어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그 생명이 복되기를 바라서이지 한뉘를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p40)

​라는 구절에서 보여지는, 뱃속 아이를 일부러 유산시킨다라는 내용이 (작가의 의도완 달리) 어마어마한 비감(悲感)같은 걸 선사해주지는 못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만 이 세상이 '가시밭'인 건 아닐 수도 있는거니까요. 더 나아가 ---"누구나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될 공산주의 미래"(p92)가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란 것 역시, '개인의 소원은 시대의 제약을 넘어설 수 없다5'란 일반적 명제 앞에선, 딱히 그들에게만 주어진 불행이다라 주장되어질 수도 없다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처럼,

"​불과 사십오 분 안에 도시에 널려 있던 100만의 군중이 광장에 모여들다니! 무슨 힘이, 그 무슨 힘이 이 도시로 하여금 이런 불가사의한 사변6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일까?"(p73)

비록, 이 책 속 이야기들에 표현되고 있는 "마귀의 마술"(p176)과도 같은 김씨 가문의 지배가 "속엔 독재의 칼을 품고도 겉으로만 평등이요, 민주주의요, 역사의 주인이요, 지상낙원 건설이요 하는 허울 좋은 간판"(p261)임에 틀림이 없을지언정, 어쨌든! --- "체질화된 그 어떤 타성"(p121)"복종의식이라는 관념"(p132)을 통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무대자감7"(p189)의 경지에까지 이르르게 만들었다라는 사실 자체만큼은, 실로 놀라운 것이란 생각을 아니해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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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구약성서 욥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부자이면서도 고결한 품성을 가진 욥은 신의 시험을 받는다. 신이 사탄에게 시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준 것이다. … 신은 선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신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다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를 믿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 J. 스티븐 랭 著, 「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 p420, 들녘 刊, 2007.

​소설 속 인물은, 그러니까 곧 작가는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p209)이라고, 그러나 또한 "연극무대란 막이 꼭 내려지기 마련"(p209)이란 말을 합니다. 이제까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를 믿어라"란 (엄연히 '신적 존재'인) 3대에 걸친 '최고 존엄'들의 주문(spell)에 무조건적 복종을 보여왔던 북한 주민들이 이처럼 --- 어느덧 서서히 "그 어떤 절대의 힘 앞에서 당해야 하는 억울한 좌절감"(p122)을 느끼기 시작했다라는 사실이, 그렇게 생겨난 '자신들이 도대체 왜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이처럼 문학작품이라는 형태로까지 표현되어 밖으로 알려졌다라는 건 드디어!

"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 모이제스 나임, 위의 책 p50.​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으로서 정의(define)되는 ('영향력의 차원이 아닌) '권력'이란 것이, 드디어 북한 정권에서도 조금씩 '(진정한8) 종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제게 해보게 해주었다라는 이 단 한 가지! --- 이것이 제가 이 일곱 편의 소설들을 읽고 얻은 유일한 배움이었었으며, 그러나 이 단 한 가지만으로도 당신에게 이 작품들을 읽어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노라,라는 권유를 주저없이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까지는 '당위'의 개념으로 제게 인식되고 있는 '통일'이란 것이, 어느덧 혹시 "체질화된 그 어떤 타성"(p121)인 것은 아닐까/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보게도 되는 이즈음 --- 북한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일의 대상'으로부터 거두어, 그저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는 '보편적 인간애'으로 바꾸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란 저의 생각에까지도... 이 일곱 편의 소설들을 읽어낸 후,

어쩌면 당신 역시 동의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1. 하승우 著, 「아나키즘」 p12, 책세상 刊, 2008.
  2.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 Leviathan』(1651)을 통해, '인간은 자연 본성에서 오는 자만과 교만으로 인하여 서로 협력하여 질서 있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한 피조물이기에 그들의 순조로운 사회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구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였습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3. "통치 권력에 도달하는 방법은 달라도 통치하는 방식은 항상 거의 동일하다. 선거로 권력을 쥔 지배자들은 민중을 마치 사나운 황소를 길들이듯 취급한다. 정복자들은 백성을 노획물로 여기며, 권력을 세습받은 자들은 백성을 그들의 당연한 노예로 간주한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자발적 복종」 p65, 생각정원 刊, 2015.
  4. 이 책 속 소설들의 창작 시기는 1989.12.부터 1995.12.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쓰여진 것이 벌써 22년 전이니, 이 작가가 아직도 '살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겠네요.
  5. 일종의 '삶에 주어진 기본적 전제 조건'.
  6. "믿으려야 믿을 수 없고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도 없는 현실"(p46)
  7. "무대에서 꾸며지는 연극을 배우들이 진짜처럼 표현하게 해주는 그것"(p189)
  8. 「권력의 종말」이란 책 자체에 대해 전 철저하게 과거의 기준점에 고착해 있는 채 '권력의 변화'를 잘못 바라보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즉, 이전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었던/행사했었던 권력에 기준을 놓고 보니, 그것이 '권력의 쇠퇴'이고 결국엔 '권력의 종말'로 밖엔 보여지지 않는다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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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이의 있습니다 - 행동주의 투자 시대, 주주와 CEO를 위한 안내서
제프 그램 지음, 이건.오인석.서태준 옮김, 신진오 감수, 임종엽 해제 법률 자문 / 에프엔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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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이란 단어는 ​"모든 사물의 현상과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필연적인 불변의 관계"1로 정의(define)됩니다. 이 때 보편적, 필연적, 불변이란 세 개의 단어는 '법칙'이 지녀야 할 성질의 범위를 점점 더 좁혀주며, '법칙'의 지배를 받는 현상을 더 강하게 구속하고 있지요. 수학이란 학문이 매력적인 이유가 (더 나아가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통계학을 좋게 보지 않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불변이기까지 한 '법칙'이란 것이 지배하는 수학의 세계에는 그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없기에,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고민(?)해야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를 분석하고 설명해야하는 사회과학2"예외없는 법칙 없다"란 경구를 결코 부정해내지 못합니다. 사회과학을 더 곤란하게 만드는 점은 그러한 예외들이 단지 '존재한다' 정도의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너무도 많고, 심지어 점점 더 많아진다라는 것이기도 하지요.3

이 책, 「의장! 이의 있습니다」는 (상장)기업과 주식시장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이 책에 담긴 내용들 중 진짜로 집중해 바라보아야 하는 건, 눈으로 보게되는 현상이 아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가'와 같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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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라는 행위는 당연히 더 큰, 최소한 (+)의 수익(return)을 기대하며 행해지는 행위입니다. 어떤 행위로 인해 100%의 확률로 내 수중에서 100만원의 돈이 사라진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한다라는 건 '투자'가 아닌 '자선'이겠지요. 그러하기에 A 기업의 주식에 '투자'를 했다라는 건, A라는 기업이 그냥 사랑스러워서라거나 A가 생산하는 제품의 광고모델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 --- A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고 (보유하고) 파는 일련의 행위로부터 (+)의 수익을 얻으려는 (어쩌면 유일할 수도 있는) 목적 때문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됩니다.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 하지만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양에 제한받지 않는다"

-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刊, 2001.​

(+)의 수익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백만 원 뿐일 때, 그 백만 원의 투자가 낳은 천만 원의 투자결과4가 '만족'스러울 수는 있겠으나, 결코 1억 원의 투자결과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천만 원이 있었더라면, 1억 원의 투자결과, 즉 9천만 원의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었었거늘, 내게 여유자금이 백만 원 밖에 없었다(=유한한 수단의 양)라는 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엔 없겠지요. 이제 천만 원으로 불어난 여유자금을 사용해 일억 원의 수익을 바라(願)보며 전의를 다질 뿐입니다.(=목적의 추구는 무한)

이처럼​ 내게 여유자금이 백만 원뿐이라 하는 사실이 내가 꿈꾸는/바라는 투자수익의 양을 제한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이기는 게 목적인 사람 … 이긴다는 것은 곧 돈을 의미"(p140)라 말하는 칼 아이칸의 말처럼, 우리는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몇 번만 혹은 적당히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5 이 때! --- '주가가 상승'해야지만 (+)의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나에게,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났다라는 사실은 분명 놀랍고도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바로, 그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누군가'를 표현하는 단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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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기업의 본질 】

"기업은 높은 비용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나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여 이윤을 남기고자 합니다. … 기업의 목적은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입니다."

- 「알기쉬운 경제이야기」 pp74-75, 한국은행 刊, 2013.​

어느 경제학 책을 보아도, 기업의 목적 (또는 존재 이유)'이윤의 추구'라 쓰여져 있습니다.6​​ 이는 개인기업, 비상장법인기업, 상장법인기업 등, 그 범위를 변경하여도 변하지 않습니다. 개인기업이 '이윤의 추구'를 통한 '개인 부(wealth)의 증대'를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비상장법인기업은 (대부분은 오너이자 경영자이기도 한) 한정된 수7주주를 위한 '이윤의 추구'를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라면 --- 상장법인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주들을 위해 투자수익을 창출하는 것"(p15)을 그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그 과정에서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하는 자금수탁자로서의 충실의무"(p288)를 이행하여야 한다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과연 '주주(shareholder)'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일까요?

'주식 시장에 기업을 상장한다'라는 걸 영어로는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go public'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주주(shareholder)'는 '주식을 가지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이나 법인'8으로 정의가 되지요. 이 두 가지를 합해 보면 결국 --- "주식시장은 경영권이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시장"(p31)이란 결론9에 별 무리없이 도달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에 대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매회전율이 높으며 단기 투자성향(평균주식보유기간 8.6개월)이 높"10은, 즉 (기업의 펀더멘탈까지를 고려하는) '경영권 차원'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단기차익만을 노린 (일종의) 투기판이라 폄하한다해도, 그러한 폄훼가 "주식시장은 경영권이 거래되는 시장"이라는 본질까지 저해할 수 있다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정상적 현상이 보여진다 하여, 그 본질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

​"이 책은 주주행동주의를 다룬다. 상장기업 주주들은 이제 관중석에 앉아 구경만 하지 않는다. 대형 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동적이어서, 회사의 경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주식을 팔아 버리면 그만11이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는 자신의 주식 가치를 높이려고 회사에 적극적으로 맞선다. 이 책은 주주들이 수동적인 관중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뀌는 극적인 순간에 집중한다."(p7)

​저자는 "주주들이 계속해서 수동적으로 나오면, 양털이 깎이듯 주주들의 이익도 깎일 것"(p209)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주식 가치 증대'를 목표로 하는 주주행동주의가 등장했던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Shareholder activism refers to the practice of holding managers accountable for the performance of their firms"12이란, 다른 각도에서의 시선으로 표현될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주주행동주의'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존재합니다. "기업의 감춰진 비효율성을 발견해 기업의 장기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증명"13되었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주주 권리라는 미사여구와 과장된 모습 뒤에 이기심을 숨겨 둔 사람들"(p13)이란 비난도 있지요. 저자는 이를 "주주행동주의의 핵심 문제를 요약하면, 누가 기업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느냐다. 즉, '전문경영인과 허울뿐인 이사회가 나은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나은가?"의 문제"(p14)라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 행동주의 헷지펀드 (The Hedge Fund as Activist) 】

Hedge란 단어가 경제학 학부과정에서 등장하는 건 '국제금융론' 과목이 유일하다라 기억합니다. 그 자체의 뜻14과 유사하게, 역시나 '위험회피'의 개념으로 사용되지요. 하지만! --- 'Hedge fund'15란 용어 속에는 이상하게도 이러한 '위험회피'의 개념이 전혀 들어있질 않다고 합니다.

"​Hedge funds don't really hedge : mainly they sell short as well as buy long. Short selling is always speculation, not investment."16

​그저, 여러 곳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볼륨을 키운 뒤 그 커다란 덩치로, 별다른 규제로 받지 않으며17 (주식)시장을 움직일 뿐이라는 거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의 볼륨이 크다라거나, 그들이 규제를 적게 받는다거나라는 게 아니라 --- 그들 헷지펀드가 주가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18라는 점입니다.

"The ordinary investor can make money in only one way - an up market -

while the larger investor can make it coming or going, up or down."​19

바로 이 점, '주가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라는 점은 --- 헷지펀드에 대한 현실적·이론적 찬반의 논거20를 모두 차치하고, 주식 투자의 목적을 (+)의 투자수익으로 상정하고 있는 일반 주주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결과를 안겨주는 요인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KT&G의 주가는 2007년 이후로도 계속 상승해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는 9만 원대 후반에 이르기도 했다. 결국 KT&G의 주주이익환원 전략은 칼 아이칸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으로도 연결되었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측면, 그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식회사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칼 아이칸의 행동21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p171)

약간 극단적으로 말해, 쥐만 잡으면 그 고양이가 검은 색인가 흰 색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흑묘백묘'식의 주장에 대해, 적어도 반기를 들 ('(+)의 투자수익'만이 거래 참가의 유일한 이유인) 주식시장 참가자, 즉 주주는 없다 할 수 있겠기에 --- 애국적 견지22 또는 사업적 견지23로만 hedge fund activism을 비판/비난하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도 없고, 동의해서도 안 된다라 생각합니다. 헹동주의 헷지펀드와 그들을 추종/환영하는 주주들을 비난하려면, 이러한 곁가지가 아닌, 본질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그들에 대한 비판/비난을 시작해야 하겠지요.

​【 불편한 진실 】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머튼 밀러Merton Miller는 한 인터뷰에서 재무론의 유용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론은 지혜를 얻는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했다. 즉, 이론이 현실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어느 가정이 왜 잘못되었는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지혜로워진다는 뜻이다.(p117)

저자는 "주식을 회사의 일부에 대한 소유권으로 보았으므로, 주식을 이용해 경영진과 이사회에 실적에 대한 책임"(p41)었던 벤저민 그레이엄을 주주행동주의를 투자전략으로 활용한 최초의 인물로 꼽습니다. 이 세상이,

모두 교과서 속 기술(despcrition)처럼 진행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벤저민 그레이엄의 위와 같은 주장은 교과서적으로 보자면 틀렸다거나 과도한 점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 "기업사냥은 말하자면 투자자 집단이 경영진에 맡겼던 경영권을 회수하는 행위"(p74)라는 또 다른 ('권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과격한) 주장에 대해서는, '주식의 소유'가 과연 '경영권의 위임'과 곧바로 연결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을 지워낼 수 없기만 합니다. 제 생각엔 아마도 "주식을 고르는 것 못지않게 주식을 소유하는 데도 관심과 주의가 필요한데도 … 지난 30~40년간 우리는 주인으로서 잠만 자고 있었다"(p208)란 구절이, '권리의 주장'에 앞서 '의무의 준수'를 먼저 되돌아보는, 주주로서의 자세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동주의를 주도한 사람들"(p14)"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나는 주주행동주의에 관해서 나는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 편"(p14)이라 명확히 밝히고 있는 저자가 이 책 전반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톤은 다분히 '친 주주행동주의'라 저는 느꼈더랬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그런 바로,

미국의 많은 상장기업은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사회는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기관이다. 이사회는 경영진과 주주들의 이해 관계가 같아지도록 하는 일종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 이사회는 경영진을 선임하고 이들이 회사를 잘 꾸려갈 수 있게 인도해야 하는 동시에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평가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사회는 회사의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고 그 전략이 잘 수행되는지 책임도 져야 한다는 뜻이다.(pp239-240)

​이러한 교과서 속 기술과는 너무도 판이한 현실을, '어쩔 수 없는' 또는 '어느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러하기에 "이사회는 원래 주주들을 대변하는 기관"(p26)이란 구절이 사뭇 새삼스럽기까지 한, "이사회는 그 어떤 집단보다 강력하게 기업을 지배한다"(p239)란 문장엔 놀라움까지를 표하게 되는, 2017년의 대한민국 기업 현실을 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라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투자자의 단기성과주의는 기업의 임원진이 장기투자에 무게를 두고 경영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면에서, 행동주의 투자자의 경영개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음"24이란 (일종의) 공세적 방어25"기업의 CEO … 들이 주주를 위한다고 떠들어 대는 구호는 가식일 뿐이었다. 그들은 사리사욕이 우선이었다. CEO들은 적대적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회사 자금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p134)와 같은, 이 책 속에 적지 않게 기술되어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물며,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26과 같은 국뽕 충만 멘트나, 그 뒤를 잇는 "기업들도 주주들과의 소통 강화, 주주가치 제고 노력 필요함"27과 같은 내용 없는 제언으로는,

오늘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소버린과 칼 아이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회사를 주주들의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것으로 생각한 기존 경영진 뿐이다.(p362)

​란 비판을 견뎌낼 수 없는 것이겠죠지요. 이론이 현실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론의 폐기가 아닌, 어느 가정이 왜 잘못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주주들도 이익을 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로빈 후드가 아닙니다. 돈을 버는 것이 즐겁습니다"(p150)​ --- 칼 아이칸의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 (+)의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라 명확하게 밝힌 것이지요. 그리고 경고합니다.

"주가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올리기 전에 미리 알아서 끌어올려라."(p320)​

​이 책의 뒷 표지에 쓰여져 있는 "주주 공격에 대응하는 기업의 방어 기법은?"이란 문구에 해당하는 답변은 고작 --- "정상적으로 배당하고, 낭비하는 비용이 없도록 하면 된다. 그리하여 시장에서 형성되는 주가가 회사의 제 가치를 반영하도록 하면 된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p372) 뿐입니다. 사실! 뭐 더 나올 것도 없겠지요. 공격하는 측에서 미리 공격 지점을 알려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은 그 공격 지점이 과연 어디인가를 알아내는 것일테니까요.

………………………………………………………………………………

​상장기업의 목적 또는 존재이유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주들을 위해 투자수익을 창출하는 것"(p15)이라는 명제는, 시대의 변화가 낳은 일종의 '예외'가 아닌, 상장기업이란 존재의 탄생을 가져온 본질로부터 나오는 당연한 정상(normal)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라면, 그렇다라면 우리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양에 제한받지 않는다"

②​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

​라는 경제학의 두 전제를 당연히 따라야 합니다. ①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양에 제한받지 않는다"를 통해서는, 정상적으로 얻어진 (+)의 수익에 '지나치게 많은'이란 비난을 가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또한 ②"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를 통해서는 상장기업의 목적을 반드시 지켜내어야 하는 이사회와 경영진에의 의무28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보는 기회를 가져야만 하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 「의장! 이의 있습니다」가 상장기업의 CEO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행동주의 헷지펀드들의 공격을 이겨낼 것인가?"와 같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 --- 스스로의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행동주의 헷지펀드의 공격을 받게 되었는가, 그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어린 성찰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라... 생각하게 됩니다.

오랫만에, 여러 편의 새로운 참고문헌들을 참조해가며, 또한 새로운 개념들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해가며 읽고 쓴 한 권의 책이었네요. 막연하게나마 --- '칼 아이칸'과 '소버린', 심지어 '엘리엇'에까지 부정적 시선을 버려내지 못하고 있었던 제게, '대체 그 녀석들은 뭐하는 것들일까?'란 호기심에 읽었던 이 책이, '보수'를 향한 '진보'로부터의 공격에 대응하는 논리를 깨치기 위해 '진보'를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진보'의 편으로 발을 옮기게 되었더라,란 경험과도 같이, 공격하는 <그들>이 아닌,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도록 기업을 경영해왔던 <우리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글로 읽혀졌다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주식이란 걸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저도 읽은 이 책을... 주식을 하는 또는 하려는 당신에게 감히 권하여 보고 싶네요


 

  1. 네이버 국어사전.
  2. "사회과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사계절 刊, 2013. 의 <머리말> 중.
  3. 이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란 게 그만큼 복잡해져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즉, 900만 원의 추가 수익.
  5. 경제원론에서 가르치는 우리의 목적이 '효용극대화'​이지, '적정한 효용의 달성'이 아닌 것이듯.
  6. 이는 소비자의 목적이 '효용의 극대화'로 한정됨과 마찬가지인 구조이지요.
  7. 우리나라 법인들 중에는 'one-man company'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8. 네이버 국어사전.
  9. "주식의 본질은 의결권이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회사의 경영권이다. 비록 투자자 본인이 사고파는 주식의 회사의 지분 중 아주 적은 분량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의결권 중 일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p359)
  10. 황재원, <행동주의 투자자의 아시아 공격과 대응방안> pp 7-8, 한국경제연구원. 2017.2.
  11. "to vote 'with their feet' by selling shares"--- <THe Hedge Fund as Activist> by Robin Greenwood​, HBS Working paper, 2007.08.22.
  12. Robin Greenwood, 위의 논문.
  13. "주주행동주의와 행동주의 펀드의 성장",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2015.2.
  14. "Something that is a 'hedge against' something unpleasant will protect you from its effects." - Dictionary.com
  15. ​"헤지펀드는 <포츈>지의 캐럴 루미스가 A.W. 존스의 롱-쇼트 헤지드(long-short hedged) 투자회사를 묘사하느라 사용했던, 과거의 흔적이 묻어 있는 용어다. 오늘날에는 광범위한 사모 투자 자금을 일컫는 말로 사용한다. 헤지펀드는 운용보수 이외에 펀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성과보수라는 명목으로 가져간다." (p255)
  16. "The Problem with Hedge Funds", by Quinn Mills, <HBS Working Knowledge>, Oct, 2003.
  17. "The(hedge) funds are regulated little and do not report their activities, trades, and balances." - Quinn Mills, 위의 논문.
  18. 의미의 명확한 전달을 위해 이 표현을 쓰긴 했으나, 이게 소위 일컬어지는 '작전 세력'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19. Quinn Mills, 위의 논문.
  20. ● 학문적 견지에서의 반대 의견 : "A number of recent academic papers have found that hedge funds generate returns of over 5 percent on announcement of their involvement, suggesting that investors believe these funds will increase the value of firms they target … by putting firms 'in play' as potential merger or acquisition targets." - Robin Greenwood, 위의 논문.

    ● 애국적/감정적 견지에서의 비난/비판 : "칼 아이칸은 KT&G가 요구사항을 사실상 거의 다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2006.12. 배당금 포함한 약 1,500억 원 상당의 매도차익을 실현하고 10개월 동안 42%의 수익을 챙긴 뒤 철수" - 황재원, 위의 논문.

    ●​ 사업적 견지에서의 옹호 : "행동주의 투자 이후 해당 기업의 수익성(ROA 등)이 평균적으로 크게 향상되며, 향상된 수익성은 장기간 지속된다는 실증 연구 결과 … '주주이익의 대변자'로서의 위상 확보 … 미래 사업전략 및 구조조정 방안 등 장기적 기업가치 성장에 필요한 변화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행동주의 투자의 관점 변화" -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위의 논문.
  21. 저자는 '칼 아이칸 식 차익거래'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왜곡된 가격과, 공개매각되었다면 받았을 법한 정상적인 가격 사이의 차리를 노리는 차익거래"(p170)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2. '행동주의 펀드'라는 동일한 경제활동에 대해 <한국경제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내놓은 세 편의 보고서들은 각기 다른 관점과 강조점을 지니고 있더군요. ​<각주 18>에 인용한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의 문장은 개인의 에세이에서나 용인될 법한, 경제 연구소의 경제 보고서에는 절대 쓰일 수 없는 수준 이하의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애국'을 가장한 '(이기적) 자본주의의 애사'의 변종일 뿐이지요. (이런 비난은 다른 두 연구서의 보고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뭐, 원래 부설 경제 연구소라는 데가 그런 일 하는 곳이다란 반박엔 두 손 들 수 밖에 없겠지만서도 말이죠.)
  23. "​The bank is an intermediary between the investor and the hedge fund." --- Quinn Mills, 위의 논문.
  24. 황재원, 위의 논문 p6.
  25. 사실 이러한 논거 자체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행한/결정한 투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오로지 투자자 자신이 지는 것이므로, 주주행동주의 헷지펀드들의 투자기법(?)이 단기투자방식이라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요구에 대해 떳떳하게 대답해낼 수 있는 확실한 경영실체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겠지요. --- "주주행동주의의 핵심원리는 … 상장기업 자산이 경매 시의 입찰가격보다 싸거나 다른 경영진이 운영할 때보다 저렴하게 거래되면 차익거래 기회가 존재한다. … 이사회와 경영진은 주주행동주의를 무력화하려면 … 차익거래 기회를 없앨 만큼 충분히 성과를 개선해야 한다."(p340)
  26. 황재원, 위의 논문 p21.
  27. 황재원, 위의 논문 p22.
  28. pp239-247에 걸친 '이사회의 역할과 현실적 한계'에 대한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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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경제학
세일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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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의 힘은 세다. 상식은 분명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만약 상식적인 사람들만 모여 사는 사회가 있다고 하자. 과연 그 사회는 유토피아일까?"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중 pp25-27, 사계절 刊, 2013.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은 '개인'을 분석하는 경제학이고,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은 그러한 개인들의 총합1(summation)을 분석하는 경제학이다"라는 단순한 구분2은, 그 단순함만을 제외한다면 본질적으로 매우 정확합니다. 그러하기에 --- 미시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완벽하게 합리적3'인, 즉 (더할 나위 없이!) '상식적' 인 개인들의 총합이 보여주는 행위와 결과들을 연구·분석하는 거시경제학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상식적인 현상을 그 결과물로 보여주어야 마땅하다라는 추측은 딱히 이상하지 않습니다... 만!!!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노명우, 위의 책 p26

(비록 그러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 역시 '합리적' 개인들의 행위 총합으로 정의되는 사회/국가는, 결코 유토피아의 모습이 아닌, '합리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우리 개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


화폐4의 기능5(들 중 본질적 기능)은,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윤활유' 역할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이 윤활유가, '엔진의 원활한 가동'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윤활유'가 그 스스로 엔진의 가동 자체를 좌지우지하게 된다면 이 상황을 두고 과연 '정상'이라 말할 수 있는걸까요? 아무리 관대한 입장을 취한다 해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바로 이 점,

화폐(=돈)가 경제의 전반적인 상태를 결정지어 버리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초래할 (지금은 보이지 않는) 머지 않은 미래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좀 알려주고 싶다,라는 게 바로!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는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하나의 상식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비상식적인 사건을 낳을 뿐이다. … 지배적인 상식의 괴물에게 바쳐질 제물이 될 위험에 처하고 나서야, 순진한 믿음과는 달리 모든 상식이 정의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 노명우, 위의 책 p26.

이 책, 「불편한 경제학」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난 지금 상식적으로 이 경제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것이야~'란 생각에 대해 --- 우리의 '상식'이 '정의가 될 수 없음'일 수도 있다라는 자각이 필요함을, 그리고 그러한 근본 원인이란 게 "한국인들은 … 돈에 관한 지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유는) 정규적인 사회제도가 돈에 대한 진짜 지식6을 가르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 … 돈에 대한 진짜 지식은 바로 '불편한 진실'에 해당하기 때문 … 또 지배집단 입장에서는 피지배집단이 돈에 관한 진짜 지식을 잘 모르는 게 통치하기에 좋기 때문"(p46)일 수도/이라 진단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유들로 인해 현재7"평소에 믿어왔던 사회제도 들이 거짓말을 하는 시기"(p14)라는 것이며, 자신이 이 사실을 좀 알려주겠다라는 거죠.



【 경제성장

'경제성장률'이란 단어는, 경제학은 전혀 배우지 않은 이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매년 말이 되면, 다음 해의 경제성장률이 대한 예측치가 발표되고, 그 수치에 대해 거의 언제나, '걱정이네~'라는 말로 끝맺음되는 신문 기사들을 (대체 그게 왜 걱정스러운 건지에 대한 정확한 논리가 어떻게 성립되는 것인지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허락치 않도록) 곧바로 만나보게 되기 때문이죠. 일단! --- '경제성장'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우리는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요?


정말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경제성장'이란 내 아이의 키가 자라는 것과 별 다를 것 없습니다. 1년 전과 오늘의 신장이 다르다는 것, 우리는 그저 cm라는 단위로 표현되는 숫자를 비교하는 것 뿐이죠. 미국 가정에선 그걸 feet로 측정할 테고, 미국의 중2 녀석과 종원군의 키를 비교해 보려면 cm와 feet로 표시된 수치를 환산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 때, 키를 재는 단위의 환산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만 ---ㅡ 화폐의 환산은 시시각각 변한다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죠. 그런데 이 차이가 너무도 어마무시(할 수도 있)하다는 거!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내 아이의 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걸까요? 이게 뭐, 옆집 아이와의 비교를 위해서일 수도 있겠고, 부모의 키가 부디 유전적으로 내 아이에게만은 전달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바람 때문일 수도 있겠고, 농구나 배구 선수를 시켜보려는 부모의 욕망 때문일 수도 있겠는, 암튼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 실제 내 아이의 키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cm나 feet로 표시되어지는 그 숫자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점이지요. 비록 저와 조교수가 '종원이는 키가 그래도 180cm 정도는 되어줬으면 해~'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해도, 진정 원하는 것은 그만큼의 키가 자라줬으면 한다라는 것이지 180이란 수치 자체는 아니란 겁니다. 그냥 예를 들어, 180cm... 라는 숫자가 나온 것일 뿐. 이처럼!

우리가 '경제성장'을 말할 때에도 예의, 경제가 '성장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하나의 바람(願)을 표현하는 것이거늘, --- 대체 작년에 비해 얼마만큼 성장했는가를 단지 측정해보는 도구로서 고안된 '경제성장률'이란 것이 만들어 낸 '수단과 목적의 전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마저 '7%의 경제성장률' 따위에 집착하고 있었던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뭐, GNP란 거, 가만히 보면 별 거 아닌겁니다. 걍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 해동안 만들어냈고, 서로 교환했던 물건과 용역(서비스)들을 돈으로 환산한 수치'에 불과한 거에요. 이 자체가 일종의 목표가 된다라는 게 왜 우습기만 한 거냐하면,


"일정기간 동안에 국민에 의해서 생산된 최종생산물의 시장가치 총액을 보통 국민총생산 또는 영어로 GNP(Gross National Product)리고 한다. .… 생산과 직접 관계가 없는 자산의 거래는 GNP에서 제외된다."

- 이정전 著, 「두 경제학 이야기」중 p379, 한길사 刊 , 1993.

그러니까 GNP는 쉽게 말해, '생산된 제품에 해당 가격을 곱한 값(p*q)의 전체 합계'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 이 GNP의 크기가 커질 수 있는 건 p가 커지거나 q가 커지는 두 가지8의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GNP의 수치가 커진 주된 이유가 q(생산물의 양)가 커졌기 때문이라면, 딱히 뭔 문제는 없습니다. (과잉공급이니 뭐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고) 일단 '실물(산출물의 양)'이 많아졌다라는 건 (최소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되지 않는 거니까요. 하지만!


q(=실물 = 산출물의 양)은 그대로/혹은 줄어들었는데, 오로지! p(=측정의 도구=가격)만이 올라서 GNP가 성장했다,라는 결과를 낳았을 때, 과연 우리는 이 GNP의 성장에 대해 좋아해도 괜찮겠느냐란 의문이 생겨나는 겁니다. 이건 마치, 종원군의 키는 똑같은데, 1cm의 단위가 훨씬 좁아지게 그려진 줄자로 키를 재서 190cm가 나온 결과에 환호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죠.


​저자는 중국이 현재(2010년 3월) 보여주고 있는 경제성장이란 것이 단적으로 말해, q의 증가가 아닌 p의 상승으로 인해 이룩된 것9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이 자랑(?)하고 있는 연 8%의 경제성장률이란 게 --- "중국에서 성장률 8%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연간 2,000만 명의 신규 일자리를 보장하는 마지노선이 성장률 8%이기 때문"(p414)이어서라면, 그리고 '신규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10으로부터 기인되는 것이라 한다면, 이건 너무도 심각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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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원론 수준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의 기본 목적은 '주어진 제약 조건 하에서 주어진 목표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즉, 주어져 있는 나의 소득 수준 하에서, 내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라는 것이죠. 우리 삶의 목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약 조건으로 '주어져'있는 소득을 극대화하는 것에 모두 매달려 있다보니 어느 새, 우리의 진짜 목표(=행복의 극대화)를 잊어버리게 되는, 다시 말해 엄연히 제약 조건일 뿐인 '소득'을 마치 그것이 목표인 양 극대화하려다 보니, 우리의 삶이란 게 팍팍하게만 느껴지는 것이고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와 같은, 그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에 대해 새삼스럽게도 침 튀기는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라 전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 우리는 '경제성장'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경제성장률'이란 것이 과연 어떠한 이유로 떨어져서는 안되는 것이 되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11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지요. (저자가 중국경제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가하며, 상당히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 인플레이션 】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건 대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가의 전반적 상승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12라는 표현이 일반적/대체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뜻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일반적/대체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13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정말로 --- 인플레이션은 좋지 않은 것일까요? 혹시나,

​"부자 되기라는 상식은 부동산 거품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내가 사둔 아파트의 가격은 하락해서는 안 된다는 자폐적 사유가 자라는 온상이 된다."


- 노명우, 위의 책 p26.

'전체적으로 봐서는 좋지 않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일까요? 맨큐 교수가 "If you ask the average person why inflation is a social problem, he will probably answer that inflation makes him poorer. …This complaint about is a common fallacy.14"라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그냥 남들이 '인플레이션은 나쁜 것'이라 말하니까 나쁜 것으로 알고 있는 정도는 아닌 걸까요? 단지 내 아파트 값이 오를 때에만 인플레이션은 땡큐!가 될 뿐. --- 인플레이션은 결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makes him poorer)'이 아니라는,15 바로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일종의 '화페금융론' 교과서스런 설명을 책의 전반부의 할애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


이 부분이 지극히도 매력적이라는 게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 "돈은 누가 공급하는가? … '중앙은행'이라 답한다면 틀린 것16 … 돈은 누가 공급하는가? … 정답은 '시중은행'"(pp56-58)을 설명해주는 과정은, 저 역시 "학교에서부터 이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p46)었다라 기억에 남아 있는, 논리의 전개 과정만 놓고 보자면 분명, (일반적인)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17임에는 틀림없다라 생각합니다. 암튼!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이 지속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즉 '인플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다가올 것이다'란 주장이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간략하게 뼈대만 보자면,

"산업화를 이루고 경제가 성숙단계에 이르면 저축의 역설이 작용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p21)

"개인 입장에서는 돈을 소비에 쓰지 않고 저축하는 것이 미덕이지만, 경제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악덕."(p534)

"모두가 소비를 뒤로 미루기만 하고 저축만 하겠다고 하면 … (수요부족으로 인해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제는 붕괴하고 말 것"(p23)

"유동성 함정에서 경제를 탈출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조장하는 것18"(p345)


즉, 미국정부건 한국정부건, 현재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자꾸만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이유는 실제 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조장함으로써 유동성 함정으로부터 탈출"(p15)하려는 의도 때문이란 것이고, 심지어는! 이러한 거짓말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그 거짓말을 퍼뜨리는 쪽에서도 이미 알고 있다"(p15)는 것이라 저자는 또한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플레이션은 오지 않는다는 거지요. 여기에 더해지는, 어쩌면 인플레이션이 존재할 수 없는 핵심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막강해질대로 막강해진 금융자본의 존재입니다.


"실제의 인플레이션은 은행이자율보다 낮지만19,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인플레이션은 은행이자율보다 더 높게 만듦으로써, 저축으로 인한 화폐의 퇴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의 인플레이션율이 은행이자율보다 높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금융자본의 수익성 때문입니다. … 실제의 인플레이션율이 낮게 유지되어야 금융자본의 안정적인 수익활동이 가능해집니다. 즉 자본주의 경제를 주도하는 금융자본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원치 않는 것20입니다."(p(144)

【 미국 VS 중국

"경제성장이란 투자활동의 결과로 나타난 생산 부가가치의 증가"(p187)

"신용(통화)시스템은 '능력본위제' … 신용(통화)시스템은 유한한 '신용의 양'을 통해서 통화의 지나친 팽창을 막는 제도"(p103)

"신용(통화)시스템에서는 누군가가 추가로 빚은 져야 돈이 생겨납니다.(p248) …… 빚이 곧 돈인 우리 시대의 통화시스템에서 빚이 줄어들면 돈이 줄어들게 됩니다. 바로 디플레이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빚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 돈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즉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황으로 가게 됩니다.(p251)"

"빚으로 떠받쳐온 경제호황이 침체의 조짐을 보이게 되면, 중앙은행은 대출을 통한 돈의 공급을 더 늘림(=신용팽창정책)으로써 침체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p224)

"GDP 거래가 늘어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GDP 증가율 이상으로 공급된 신용은 결국 비GDP거래로 흘러가게 됩니다."(p359)

"문제는 경제에 빚(=신용)을 무리하게 주입하면서 시작됩니다.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는 것입니다."(p394)

"자산가격상승은 … 통화량의 증가로 통화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 통화로 표시되는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입니다. …… 자산시장이 과열국면에 이르면 정책당국이 기준금리를 높이게 마련입니다. …… 이제 의자 빼앗기 게임이 시작됩니다. … 누군가는 이자를 내기 위해 부동산을 팔아야 한다는 말 …… 부동산을 매도하고 부채를 갚기 시작하면 통화량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가격이 하락합니다. … 피라미드가 연속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pp227-229)


저자는 --- "국가의 부(富)는 치러낸 고통의 크기에 비례한다"(pp457-458)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③번의 단계에서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라 주장합니다. 이 책이 쓰여졌던 2010년 당시의 미국이 불황에 잠겨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불황은, "신자유주의가 자랑하던 화려한 경제성장의 진실은 … 빚으로 떠받쳐서 성장의 겉모습을 유지해온 것"(p353)이란 사실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되는,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한 일종의 정상적인 방편21이었었지만,


이와는 반대로, "막대한 경기부양책과 부동산 버블을 키우는 것"(p415)으로 버텨왔던, 즉 신용의 크기 이상으로 돈을 발행해왔던 중국 경제에 대해선 "시장의 원리상으로는 … 무너질 일만 남은 것"(p431)이란 냉혹한 판단22을 내리고 있습니다.



【 So What? 】

​"2008년 말의 경기침체화 환율 폭등은 예고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수평선 너머에서는 한반도를 향해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형국입니다."(p14) …… "앞으로 우리 앞에 미증유의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위기를 극복해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한국의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는 그 기간 동안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p18)

현실감 있는 표현을 빌자면, 저자는 "앞으로 원달러 환율은 (이 책이 쓰여졌던 2010년 3월을 기준으로) 전고점인 1,597.00원을 한참 넘어서게 될 것23"(pp606-607)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향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닥쳐올 가능성이 있는 인플레이션 요인은 환율폭등뿐"(p598)이라는 경고까지를 더해주고 있기도 하지요.


2010년에 출간된 책에 쓰여져 있는 전망에 대해, 2017년 현재 시점에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저자 스스로의 자기방어24에 한 표를 던졌기 때문이 아닌, "경고의 내용을 담은 예언이 가장 주목받는 건 참사를 미연에 방지했을 때가 아니라 예언된 참사기 실제로 일어났을 때"25란 소설 속 구절처럼 --- 2010년에 등장했던 저자의 경고가 앞으로도 당분간 실현되지 않을 것인지, 혹은 2017년 현재가 폭풍 전야의 고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예견되었던 참사를 피해왔다라 믿는 것이, 언젠가 저자의 경고와 같은 '미증유의 위기'가 닥쳐와 이 책 속 주장들이 다시금 새롭게 주목을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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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의 힘은 세다. 상식은 분명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만약 상식적인 사람들만 모여 사는 사회가 있다고 하자. 과연 그 사회는 유토피아일까?"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중 pp25-27, 사계절 刊, 2013.

'유토피아'는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아닌 것이냐?란 질문에 대한 답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이유가 어쩌면 --- 그 믿음26이란 게 "자기 스스로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를 회의해야 할 때"(p122)의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사뭇 절망적인 생각을 이 책으로부터 받게도 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비정상'이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여겨집니다. 이제 일부 사람들은 그 '비정상'을 '능력'이라 부르며 부러워하게 됩니다. '비정상'은 점점 오만해지고 이제 대놓고 '정상'을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정상'이 '무능력'이라 불리기 시작합니다.(p122) ……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사태는 바로잡혀야 합니다. '원칙'으로 '변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p126)

여전히 그러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정상'이라는, 이 다행스런 사실을 공감받을 수 있었다라는 점이 더 커다랗게 남는, 이 주저리주저리스런27, 그만큼 반복적으로 한 말 또하고 또 했던 말 다시 반복하는 책을 읽어낸 보람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진실(truth)도, 사실(fact)도 아닐 수 있겠으나 최소한, 정말 최소한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게 말하고 있다"28의 단점은 충분히 극복해내고 있다라 확신하기에, 부디! --- "경고의 내용을 담은 예언이 가장 주목받는 건 참사를 미연에 방지했을 때가 아니라 예언된 참사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상황이 부디, 현실이 되어 우리의 눈 앞에 등장하는 상황까지는 이르르지 않기를 바래어 본다는 의미에서, 이 책의 1,2,3장만큼은 읽어보고, 이해하려 고민하고, 곱씹어 보기를 권합니다란 말로, 참 두서도 없이 정리해 낸 이 글의 끝맺음을 하겠습니다. (언제가 되어야 저도... '짧고 간결한' 감상문 좀 써보게 될까요. --;;)

※ 경제학으로의 초대

- 유시민 著,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장하준 著,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1. "Macroeconomics, the study of the economy as a whole" - Gregory Mankiw, 「Macroeconomics」 2nd deition, p3,1994.
  2. "Microeconomics describes economic activity at the level of individual agents such as consumers, investors or managers of firms. … Macroeconomics, by contrast, deals principally with large aggregates of agents and commodities." - David Luenberger, 「Microeconomic Theory」, pp1-2,1995.
  3. 미시경제학에서 말하는 개인의 '합리성'이란 철학적 의미의 '합리성'과는 아예 차원이 달라, 말하자면, 각 개인들이 항상 '자신을 위한 최적의 선택(making choices that are optimal for themselves)'을 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경제학에서의 합리성은 'completeness', 'reflexivity','transivity'와 같은 (철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상식적인 가정과, 'continuity', 'nonsatiation', 'strong monotonicity'와 'convexity'라는 (또한 '철학적'일 수 있겠는) 수학의 가정을 통해, '(일상의) 언어'가 아닌 수학으로만 표현되어지게 되지요.
  4. 죽기 전에 되돌아 보는 자신의 일생, 혹은 지금까지 살아온 이 시점에서 되돌아 보는 나의 일생, 뭐 이런 걸 한 번 해보자면 : 제가 (크게 나눠) 미시경제학을 공부하기로 했던 이유는 거시경제학을 재미있게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 반면 미시경제학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배웠던 여러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 갈림길에서의 선택에 대한 설명일 뿐,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쭈욱! '경제학'의 본질(essence)이란 걸, 미시경제학에서의 모습처럼 '분석의 도구'일 때 가장 화려하게 발휘된다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건 바로! --- 미시경제학에는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 화폐(money)의 기능은 대략 '가치저장수단(store of value)', '가치척도수단(unit of account)', 그리고 '교환의 수단(medium of exchange)'라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그 중 가장 근원적인 기능으로는 역시 '교환의 수단'이 꼽히고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거시경제학 책이 '화폐가 없다면?'의 설명으로 'double coincidence of wants'를 들고 있는 것만 봐도 확인되어지지요.
  6.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 시대가 돌아가는 원리"라는 사뭇 거창한 제목을 달아놓고 있습니다.
  7. 이 책이 발간된 시점은 '2010년 4월'입니다.
  8.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① p 고정, q 상승 ② q 고정, p 상승 ③ p 하락, q 더 큰 상승 ④ p 동일, q 상승 ⑤ q 하락, p 더 큰 상승 ⑥ q 고정, p 상승"의 여섯 가지겠지만.
  9. "세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2009년 성장률 8.8%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통화량을 팽창시킨 결과 부동산의 재버블화에 성공하고, 그 결과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중국 경제가 2009년에도 8.8%의 고도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에 부동산 버블이 터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반대로 부동산 버블 때문에 8.8%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GDP에서 고정투자가 40%나 차지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pp413-415)
  10.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입니다. 중국이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면서 지금까지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 모든 불만을 무마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경제성장 덕분이었습니다. 경제성장이 무너지면 중국 공산당의 지배체제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체제수호 차원에서 성장률 8%에 매달리는 것입니다."(p415)
  11. "중국의 통화량이 과도하게 팽창하는 모습을 보면, 중국은 지금 세계인들의 찬탄을 받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매우 절박한 상태에 놓여 있는 듯 합니다."(p415)
  12. 이정전, 위의 책 p448.
  13. "Many people consider inflation a major social problem." - Gregory Mankiw, 위의 책 p140.
  14. Gregory Mankiw, 위의 책 pp163-164.
  15. "역사적으로 …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구매력이 약화되어 국민이 빈곤하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경제원리를 따져보아도 그런 일은 생길 수 없다는 사실을 경제학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p39)
  16. 이 질문과 단정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In an economy that uses fiat money, …, the government controls the supply of money"(Gregory Mankiw, 위의 책 p144)란 문장마저를 '틀린 것'이라 하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17. 물론, 경제학자들이 완전히 입다물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Heilbroner와 Galbraith, 두 거목들이 쓰신 책,「The Economic Problem」, 9th edition의 19장엔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이 매우 교과서적으로 기술되어 있지요.
  18. "'나보다 더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식이나 아파트 같은 투자대상에 투기바람이 불 때, 현재의 가격이 가치에 비해 너무 높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더 높은 가격에 사줄 바보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가격에 사서 투자수익을 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 이론의 진짜 해석은 따로 있습니다. '내가 그 바보다'가 정답입니다.(pp167-168) ---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자꾸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심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일종의 폭탄 떠넘기기를 유지시키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 "부동산 중심 성장잔략이라는 것은 … 전국민을 상대로 피라미드 사기판을 벌이는 것과 같습니다. 뒷사람이 앞사람의 부동산을 더 높은 가격에 사주는 동안에만 유지가 가능한 것입니다. 전 국민을 상대로 국가주도하에 벌이는 사기판이다 보니 규모가 커서 좀 더 오래가는 것일 뿐,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나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피라미드 사기판의 속성은 완전히 동일한 것입니다."(p454)
  19. "장기적으로 보면 인플레인션율은 은행이자율을 넘어서지 못합니다."(p37) --- (이 주장 자체가 아니라)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저자가 제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20. "조달(채무)과 운용(채권)의 만기가 서로 다른 만기불일치 문제를 흔히 미스매치mis-match라고 부릅니다. … 미스매치가 금융의 본질 … 단기금리가 장기금리에 비해 낮다는 사실 … 예대금리차가 바로 금융업의 수익 기반입니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에 비해 낮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여 장기로 대여하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금융업의 본질상 만기불일치 문제는 항상 존재할 수밖게 없습니다. …… (따라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경우 금융업의 수익성이 필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기준금리는 올라가게 됩니다. 이에 따라 단기 조달 금리는 쉽게 올라가는 데 반해 장기 계약을 해둔 대출금리는 올릴 수가 없기 때문"(pp133-134)
  21. "불황은 탐욕을 부려 무리하가 확장한 경제주체들에게 벌을 줍니다. 이를 통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왜곡된 자원배분을 바로잡는 것이 불황의 역할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작은 붕괴들은 이처럼 왜곡된 자원배분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조정을 의도적으로 미루는 시도는 일시적 지연일 뿐 결국 성공하지 못합니다. 왜곡을 시정하지 않고 뒤로 미룸으로써 더 커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p119)" …… "국가가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 공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원칙'으로 '변칙'을 시정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p124)
  22. "중국국민들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이 오른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중국경제가 돈을 그냥 계속 찍어내는 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돈 가치가 계속 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는 순간 … 결국 부동산 버블의 붕괴를 맞게 될 것입니다."(p434)
  23. "2009년 3월 초의 환율폭등(2009년 3월 2일 1,575원)은 예고편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p580)
  24. "어떤 경우에도 예측을 100% 확신해서 그에 기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전망에 기반해서 행동할 때도 항상 오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행동하는 것이 좋습니다."(p593) …… "예측은 신의 영역일 뿐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p610)
  25. 야마다 무네키 作, 「백년법 下」중 p132, 애플북스 刊, 2014.
  26. 상식적인 개인의 단순한 총합(summation) 역시 상식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
  27. 굉장히 친절한 설명을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만, '친절'이란 단어의 또 다른 모습은 예의 '주저리주저리'일 수도 있지요. 지나친 친절로 인해 글이 너무 길어지면, 읽는 이도 어쩔 수 없이 지치게 됩니다. 이 책이 지닌 유일한 단점을 굳이 꼽으라면 이것이 아닐까 싶네요.
  28. 노명우, 위의 책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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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격자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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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1이 미국을 방문했고, 인도의 간디가 단식을 했으며,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대혈전이 벌어졌고, 영국의 수상 처칠이 감기에 걸렸다. 1942년의 세계 상황 속에서는 하남성에서 삼백만 명이 굶어 죽은 것보다 이러한 사건들이 더 중요했다.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처칠, 간디, 아름답던 송미령,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대혈전은 알아도, 내 고향에서 가뭄으로 삼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

- 류전윈 作, 「1942년을 돌아보다」중, 소나무 刊, 2004.

인간의 기억은 예의 선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기억'이란 단어를 입으로 말할 때면 대부분 그 앞에 '가장 기뻤던'이라든가 혹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등의 수식어가 붙여지곤 하지요. 작가 류전윈은 한 민족에게도 그러한 기억의 선택적 취사가 작용된다라는 사실을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처칠, 간디, 아름답던 송미령,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대혈전을 알아도, 내 고향에서 가뭄으로 삼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라는 한 문장을 통해, 처절하게 알려주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선택'이란 행위가 개입될 여지조차 없었던 시절의 기억2이란 것이, 더군다나 그 기억의 내용이란 것들이 --- "사내아이는 겨우 일곱 살이었지만, 총살이 있을 때만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p202)이라든가, "우리 엄마는 젊고 아름다운데, 엄마가 젊고 아름답다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p258)다 등의, 사뭇 잔인하기만 한 것들이라면, 그리하여 그 기억들을 "42세에서 58세 사이의 장년"(p414)이 되어서도 여전히 잊어낼 수 없다라는 건, 굳이 (그런 시절을 겪었었다란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한 '민족'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일 개인에게마저도 부인될 수 없는 아픔임에 틀림 없다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어른과 다른 세계에서 삽니다. 아이는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고 땅바닥에 바짝 붙어 지내잖아요. 아이의 세계에서는 비행기가 한층 무시무시하답니다. 그 세계에서는 포탄이 한층 무시무시해요."(p100)

이 책 속에 기술되어 있는, 화자(話者)들이 어린 시절에 겪어야 했던 '전쟁'의 의미는,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분석되어지는 '전쟁'과는, 이처럼 완전히 다른 것들입니다. ​그저 "머나만 곳에서 잠시 벌어지는 어떤 것"(p131)로만 추상했던 전쟁이란 것이, 어느 새 죽음에 대한 공포3를 가져다 주었고, 그 공포는 이내 "전쟁이란 아버지가 없는 시간"(p13)이란 현실을 안겨주었으며, 그것은 곧바로 "엄마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p155)을 뿐 아니라, "엄마는 울고 또 울다가 실명하고 말았어요."(p158)과 같은, 자신의 남겨진 가족들에게 덮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극한의 고통을 통해,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삶의 한 페이지를 그들의 삶에선 지워져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유년기는 내 인생에서 지워졌습니다. 난 유년기가 없는 인간입니다. 내 인생에는 유년기 대신 전쟁이 있지요."(p52)

…………………………………………………………………………………………

​"우리는 히틀러가 프로이센 장교 사회의 기사도 정신을 경멸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오히려 히틀러는 전투 상황에서 인간적인 배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 알베르트 슈페어 著,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중 p640, 마티 刊, 2016.​

​'전쟁'이란 것을 겪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책에서 읽었었고, 기록 영화로만 보았으며, 부모님으로부터 얼핏 들었을 뿐이죠.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를 보고, 전쟁이란 참으로 끔찍한 것이로구나, 강준만의 책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을 통해선 이 땅에서 일어났던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이었던가를 그저, 미루어 짐작하듯 느껴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 전쟁이란 것을 겪어보지 못한 제가 가지고 있는 '전쟁'이란 것에 대한 이미지와,

이 책 속에 등장하고 있는 화자들처럼, 전쟁의 일방적인 피해자 -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억되는 전쟁4은, 너무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히틀러의 통치를 어떤 시각으로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5

​와 같은, (전쟁을 현실로 겪어보지 못한 저임에도) 역사적 맥락으로서의 전쟁에 대한 시각에까지 이르러볼 수 없음이며, 또한 그러하기에 더더욱! "파괴는 독일 국민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행위"6를 주장했었다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대변되는, 민간인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나는 그 무엇도 알지 못했다"7라는 고백에 의심의 눈길을 거두어낼 수 없는 것이며, 한 번 더, 그러하기에! - "세상에는 사과를 해도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 있다. 그 죄가 너무 무거워 인간이 할 수 있는 사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8 란, 자신에 대한 처벌을 갈구하는 듯한 ​회개에마저도,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란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게 됩니다.

​·

·

·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한강 作, 「소년이 온다」중 p134, 창비 刊, 2014.

​산 사람을 땅 속에 묻고, '적(敵)'이라 말할 수도 없는 민간인들의 감정까지를 통제하려 했었던 그 잔인함9이란 것이, 결코 독일 민족 고유의 특성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 "과연 인간이기는 한 걸까요?"(p349)란 처절한 질문이 담고 있는, 인간임에 대한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며,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 믿고 있는 특질들이 정녕 올바른 것인가를 더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우리 할머니는 오십 년 전에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다. … 만약 이 분처럼 초라한 수많은 백성을 무시한다면, 중국의 파란만장한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재난과 성공의 역사에서, 최대의 피해자이자 최종 수혜자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들과는 인연이 없었다. 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넓은 홀에서만 이루어졌다. … 할머니가 1942년을 잊은 것은 그 해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살면서 사람 죽는 일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류전윈, 위의 책.​

"과거를 잊어버리는 인간은 악을 낳습니다"(p417)란 저자의 일갈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장에 없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누가..."(p376)란, 이 작품 속 화자들에게 남겨진 과거는, 잊혀지길 바래어 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그것들이 잊혀지지 않아야함을 강요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비록 그 기억들이 --- 류전윈의 묘사처럼, 개인에게 있어 아픈 과거에 대한 기억이란 것이, 한편으로는 그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도 있다 할지라도 말이죠.

"위로할 길 없는 울음"(p30)이란 구절이, 이 책에 등장하는 화자들의 아픔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하기에, --- 과연 이 책을 읽은 것이,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제가 이 책에 담겨 있는 '위로할 길 없는 울음'들을 읽었다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 책 속 내용들이 엄연한 현실이었었으며, 그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겪어내었던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 어느 곳에선가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을, 경탄10이 아닌 ('하지만 난 그런 전쟁을 겪지 않았다'란, 사뭇 이기적일 수도 있겠는) 감사함으로 잊지 않고 있을 뿐이겠죠.

※ 읽어본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 (수상연도 순)

- 크누트 함순(1920) : 「굶주림

- 펄 벅(1938) : 「대지

- 헤밍 웨이(1954) : 노인과 바다

- 알베르 카뮈 (1957) : 이방인」 · 「페스트

- 존 스타인벡 (1962) : 분노의 포도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970)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윌리엄 골딩 (1983) : 파리대왕

- 주제 사라마구 (1998) : 눈 먼 자들의 도시· 죽음의 중지· 도플갱어· 예수복음· 카인」 · 「눈 뜬 자들의 도시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2010) :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 모옌 (2012) :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1. 장개석의 부인.
  2. "만약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우리 기억에만 있을걸요."(p244)
  3. "죽을까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때 죽음에 대해서 뭘 알았겠어요? 도대체 뭘?"(p51) - 바샤 하렙스키(네 살)
  4. "한 여자가 선 채로 젖먹이를 안고 있었어요. 아기는 작은 병에 든 물을 빨고 있었죠. 놈들은 처음에는 병을, 그 다음에는 아기를 쐈어요. … 그러고 나서야 아기 엄마를 쏴죽이더군요."(p372)​
  5. 알베르트 슈페어, 위의 책 p813.
  6. 알베르트 슈페어, 위의 책 p690.
  7. 알베르트 슈페어, 위의 책 p190.
  8. 알베르트 슈페어, 위의 책 p830.
  9. "아낙들이 비명을 질렀어요. … 눈물을 흘리지 않고 비명만 질렀죠. … 놈들이 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거든요. 소리를 지를 테면 질러라. 단, 울지 마라. 동정하지 마라. 놈들은 우는 사람들을 다가가서 죽였어요. 열여섯 살, 열일곱 살 먹은 십대 아이들에게 총질을 하더군요. 울었다는 이유로요."(p118) …… "아빠와 오빠가 구덩이에 둥둥 떠 있어요. … 우리는 삽을 쥐고 그 위에 흙을 덮으며 울어요. 그러자 놈들이 말해요. '우는 년은 쏴버리겠다. 미소를 지어.' 그자들은 우리에게 억지로 미소를 짓게 했어요. 내가 침울하게 있으면, 한 놈이 다가와 얼굴을 들여다봐요. 내가 웃고 있나, 울고 있나 보려구요."(p332)
  10. "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꾸며 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중, 비룡소 刊,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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