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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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를 이야기하고 그 극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자신이 속한 그 작은 집단 속에서 또 소외집단을 만드는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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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동물농장 - 스노볼의 귀환
존 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천년의상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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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유일한 생명체는 지구 생물이기 때문에 외계의 생명체도 지구의 생명체와 같은 생물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아래 그들에게도 우리의 생물학을 적용해왔다. 이 가정이 옳았는지 아닌지 또한 밝혀질 것이다. 우주 어느 곳에 산소 대신 암모니아를 호흡한다거나 물대신 술을 마신다거나 광물을 먹고 산다거나 하는 생물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pp10-11) ……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각을 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만이 아닐 가능성은 매우 높다."(p123)

- 프랑수아 롤랭 ,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중, 알마 , 2009.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란 (전 좋아하지 않는, 허나 어느덧 별 이의없이 받아들여지게까지 된 이) cliche가, 현실적 측면에선 반박불가(irrefutable)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할지언정, 그러한 지위가 이 문구의 정당성, 그리고 당위성까지를 보장하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하다'와 '옳다'는 분명 다른 개념이니까요. 헌데, 이에 대한 어리숙한 착각이 기어이! --- 상대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은', 그러니까 그저 '살아남은 자'일 뿐인 존재가, 스스로를 '강한 자'라, 더 나아가 '유일하게 옳은 자'라 간주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현실을 낳았다라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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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가장 나쁜 점이 무엇인지 아니? 더럽고 추잡한 빨갱이들의 사상? 아니, 그건 두번째에 불과해. 뭐니뭐니해도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건 나와 맞먹는 힘을 가지려 드는 것이란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지. … 내가 가진 힘 … 그건 이 지구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나 외의 존재가 그런 힘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야. 나라면 안심할 수 있지. 왜? 내가 곧 이 세계의 '정의'니까.

- 박민규 , 「지구영웅전설」중, 문학동네 , 2003.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위와 같은 '억지'를, 그저 소설 속 설정이라고만 여겨버릴 수 있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소설에서와 같은, "내가 곧 이 세계의 '정의'니까"와 같은 말을 우리가 대놓고 들어야 하는 건 아니겠으나,

​"진보는 항상 서구화의 기준에서만 정의된다. 따라서 서구는 개념상 가장 서구화된 사회이기 때문이 인류 발전의 정점을 항상 차지하는 반면, 다른 사회는 서구화의 정도를 기준으로 진보의 정도가 평가된다."

- 마틴 자크 ,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중 p26, 부키 , 2010. 

누가 봐도 억지이고 불합리한 기준에 의한 판단의 기준이, 너무도 자연스레, 강자와 약자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 '미국 VS 소련'으로 현시되었던 '(미국식) 자본주의 VS (소련식) 공산주의'의 대결에서 살아남은 '미국'과 '(미국식) 자본주의'에게 '강한 자'의 칭호 뿐 아니라 '옳은 자'의 영예까지 모두 허여(grant)되는, 또한 미국 스스로도 그 칭호와 영예를 당연한 자신의 소유로 인식하게 되는 결과가 보여지게 된것이지요.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착각이 안겨준 영광이, 스스로를 몰락하게 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검치호랑이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암컷들의 유전자에 '수컷의 이빨이 길수록 사냥물을 더 많이 가져온다'는 법칙이 새겨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암컷들은 수컷을 선택하면서 '긴 이빨'이라는 유전적 특징에 힘을 실어 주었다. 짧은 이빨을 가진 수컷들은 암컷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암컷들의 부추김에 따라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되었고 급기야는 너무나 길어서 먹이를 입안에 넣을 수조차 없게 하는 이빨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진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중 p85, 열린책들 刊, 2012.  

 


……………………………………………………………………………

이상의 내용을, 그러니까 개인 블로그의 일 포스트로나 올려질 만한 수준의, 따지고 보면 그다지 새롭거나 한 내용도 아닌 것을, 굳이 ---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기어이 출판까지 해놓은, 하물며 이게 또 뭐라고 심지어 우리 글로 번역까지 해놓은 것이 바로 이 작품, 「자본주의 동물농장」입니다. 제목에서도 당연히! 알 수 있듯,

 

 나는 생각했다. 왜 저들이 우리한테 이러는 걸까? 쌍둥이 타워 공격은 우리 체제에도 뭔가 문제점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p203)

 작가 존 리드는, 위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속 메타포(metaphor)를 빌어왔거늘. 작가가 이 작품에서 차용하고 있는 그 메타포란 게 고작...


■  '접시로 고꾸라져 죽고, 시트를 덮고 자다가 죽고, 욕조에서 익사하고, 위스키를 들이마시다 부은 간에 희생되고, 담배로 인한 폐암으로 죽기도 하고' --- (혁명) 권력의 부패

■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p57) …… "불가능한 꿈을 꾸시오"(p82) …… "우리는 꿈을 살고 있소! 따라서 이제, 우리는 꿈을 더 꾸어야 하오!" (p169)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의 크기는 오직 우리가 원하는 것의 크기에만 제한을 받는 거요!"(p170) --- American Dream!

■ "신입들은 걷는 법과 옷 입는 법을 배웠다. … 신입 동물 대부분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들 대부분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원래의 농장 동물들이 이제는 하지 않으려는 일들을 하러 왔다. 인간의 욕실을 치우고 위생처리 하는 일, 큰 축사의 창을 닦는 일..."(p115) --- 3D 업종의 미국내 이민자들 (주로 멕시칸)

■ "최선의 일은 자기 걱정이나 하는 것이라고, …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고, 다른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들 모두 나누어 갖게 될 터였다."(p142) --- 유혹 멘트 of 신자유주의

■ "유독한 물과 갈색 공기 … 점점 많은 원주 농장 동물들이 기침을 하며 떠났다."(pp163-164) --- 심각한 환경오염  

■ "슈가캔디 로드스타라는 아주 비뚤어진 관념 … 슈가캔디 마운틴이라는 거룩한 계시와 완전히 어긋나는 것"(p187) --- 이슬람교 VS 기독교 

대충, 이 정도 수준입니다. 이걸 놓고, '통쾌한 비판'이니, '철학적 은유' 등의/따위의 표현으로 칭찬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겠으나 ---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단지 그 절묘한 매칭만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닌, 그의 메타포가 향하고 있는 권력의 구조/속성이란 게,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그러하다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마치 '산토끼'의 반대말로 고작 '집토끼'의 답안을 내놓는 수준인, 뭐 어디 인터넷 동호회 같은데서 조회수나 많이 받아볼까하고 올리는 제목의, 당연히 내용은 아무 가치도 없는, (심지어, 이것이 정영목C의 번역이 정말 맞긴 한건가,의 의문도 가져보게 해준...)  

따악! 그런 수준의 이야기라고 전 평하겠습니다. ​역자의 '일러두기' 중 하나인, "원제 Snowball's chance는 스노볼의 기회라고 해석되지만, a Snowball's Chance in Hell의 줄임말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지옥에서 snowball(눈뭉치)은 만들어질 수 없다, 곧 전혀 가망 없는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가, 책값 12,800원의 지불에 대한 유일한 소득이었던, 그러하기에, 이 표현, 언제 어디서든 한 번쯤은 써먹어 봐야 억울하지 않을텐데... 하는 남다른 각오(!)만이 남는, 뭐 그런 독서였었었네요. --;;

※ 조지 오웰의 위대한 원작 :동물농장

※ 원작 VS 원작에 대한 불만 VS 원작의 시대적 변주 :로빈슨 크루소」 VS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VS 「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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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소설에 대한 해설격의 글에도 역시 "리드는 이 얇은 책에서 미국 정책과 그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반발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소설 전체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 제국주의적 억압, 이민 정책, 선거 부정, 시만권 박탈, 초재벌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p204)라 쓰여져 있습니다.
  2. WASP.
  3. 이 문제를 냈던 라디오 DJ에 의하면, "집토끼 - 바다토끼 - 죽은 토끼 - 판 토끼 - 알칼리토끼"의 순으로 고급스런 정답이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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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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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들"(p147)이란, 역자 도정일의 주장에 명백한 이의가 없다면, 다음 문장


일단 역사적 정치풍자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동물농장」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pp147-148) …… 이 작품은 여전히 '배반된 혁명' 또는 '타락한 독재권력'에 대한 풍자이며, 우의적 풍자이면서 동시에 그 공격의 시대적 과녁(스탈린의 소비에트)이 분명한 역사적 풍자이다.(p152)

보다 더 정확한, 이 소설에 대한 묘사(이자 해석)는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 심플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지요. 말 그대로 '사람 대신 동물'일 뿐! 좀 더 나아가, 그러니까 이 작품을, 이와 같은 단순한 풍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p150)이자, "인간 정치사외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p151)로까지 넓혀 이해하여야 한다/되어진다라는 것 역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알게 됩니다. 이제, 


이 작품 「동물농장」을, 당신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한, 제 능력이 되는 데까지, 한번 잘게 쪼개어 보려/볼까 합니다. 칼질이 서툴러 잘못된 결로 쪼개어낼 수도, 괜히 쪼갰다 싶은 부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 번, 해보는 걸로. 그런데 그 전에 우선,


"존즈 씨의 침실 불빛이 꺼지기 무섭게 농장의 모든 축사에서는 일제히 부스럭거리는 소리, 날개 퍼덕이는 소리들이 나기 시작했다." (p9)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영화 <토이 스토리>가 떠오르더군요. 아마도, <토이 스토리>의 작가는 이 작품, 「동물농장」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뻬고, 대신 사랑 (또는 우정)을 넣어, 하나의 새로운 신화(myth)를 써보고자 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리하여 결국, 한 편의, 대중적으론 훨씬 더 거대한 신화가 탄생되었다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암튼, '경영'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커진다라는 건, 이런 면에서도 확인되어진/졌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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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의 잉태 · 혁명 발생의 조건 

「상실의 시대 :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에서 자오팅양은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일부 이익과 권력이 분배되는 상황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통치집단을 타도해서 그것을 대체하려"는 행위는 결코 혁명이 아니며, '반란, 봉기 또는 정변'등으로 불리어져야 한다라 주장합니다. 그는 혁명 "사회 전체의 생산양식과 정치법률,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개개인의 생활방식, 사유방식,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 보다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지요.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란 마오쩌둥의 말을 떠올려 주는,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p11)이란, 메이저의 연설을, 자오팅양의 구분에 따르자면, 작품 속 '동물반란'을 '러시아 혁명'과 매칭시켜 놓는 역자의 해석에 갸우뚱한 의문을 던지게 해줍니다. 작품 속 '반란'은 말 그대로 그저, '이익과 권력이 분배되는 과정을 바꾸라 요구하는' 반란일 뿐, '개인의 생활방식, 사유방식, 가치관의 변화'까지를 요구/수반하는 '혁명'이 될 순 없다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정말, 그런걸까요?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p78) 

​작품 속 메이저의 사상이 발전된 "동물주의"(p19)가, '사회주의(Socialism) 혁명'과 마르크스 버젼의 '공산주의(Communism)'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작품 속 메이저가 현실의 마르크스라는 역자의 해석에 기대어) "우리에게 있어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에 비추어본다면, 작가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 "혁명 자체가 아니라 그혁명의 배반"(p153)이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현실의 역사와 연결시키지 않은 채, 오로지 텍스트 자체만으로 보아 작품 속 '동물반란'을  반란이라 규정짓건, 혁명이라 규정짓건, '배반'이라는 거지요. 도대체 무엇에 대한 배반이었을까요?



【 혁명의 이유 

그것이 '반란'이건 혹은 '혁명'이건, 모두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 자체는 동일합니다. '동물반란' 직후, 농장의 동물들에게도 또한 상당히 급격하고도 많은 긍정적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 "존즈 시대의 가증스런 통치의 흔적들을 남김없이 제거했다"(p23)란 한 문장으로 대변될 수 있겠는, 과거 자신들을 억압했던 굴레들이 사라졌다라는 것 이외에도 또한 예의,

모두가 그들의 것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농장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자기네 것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p24)

'획득'이라는 새로운 변화도 함께 맛볼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모든 동물은 알몸으로 다녀야 한다' … 복서가 이 말을 듣고는 여름날 귀에 엉겨붙는 파리떼를 막느라 그가 사용하던 조그만 짚모자를 갖고 와 쓰레기불에 처넣었다. (p23)

​도대체, 그들이/우리가 갈구했던, 그리하여 쟁취해 낸 '변화'의 이유가 무엇이었던 것일까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것이 되었음에도, 그들은, '모든 동물든 알몸으로 다녀야 한다'란, 즉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라는 (일종의, 강력한) 교조주의에 매어, 자신의 삶에 이로움이었던 것들까지도 모두 '단절하여야하는 과거'로 치부해버립니다. 이는 어쩌면, (위에서 언급되었던)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가 오독(誤讀)되어진, 그 오독으로 말미암은 '전체주의'로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그리고 그러한 타락은 이른바 --- <화장실에 문이 달려 있으면 사람들이 꾸물대고 잘 나오지 않는다. →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화장실 문을 발로 차는 바람에 문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 → 그래서 모든 화장실에 문을 없앴다.>란 논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전개를 따라간 결과라고도 생각됩니다. 화장실의 문이 문제가 아닌 것이듯, 복서가 쓰던 짚모자도 문제가 아니었으며, "존즈 씨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p23) 그 모두가 곧, 청산되고 제거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던 겁니다. 단지, 그것들이 존즈라는 인물에 의해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죠.


【 다른 권력의 등장 

러시아 사회주의는 독재전체주의로 타락했고, 그 타락을 막지 못한 체제로부터 사회주의는 다시는 회생할 수 없다. - 이것이 오웰의 논리이다. (p155)

​작품 속, '동물반란'의 결과가 처참한 실패로 귀결될 수밖게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로, 작가 자신은 바로 '독재'를 들고 있다라, 역자는 전합니다. 바로 이 내용이, 제가 이 작품을 읽고 쓰는 감상문에, 가장 공을 들여 칼질을 하여 썰어내고자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 …… (이처럼)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질서'란 것은 자발적으로 지켜질 수/이행될 수는 있다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린 이후, 즉 혁명/반란 이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규정/정립만큼은, 완벽하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분배의 규칙'이란 것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갈리듯, '새로운 규칙'에 대한 사회의 모든 성원들의 자발적 합의란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죠. 결국,


돼지들은 직접 일은 하지 않는 대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다. (p28) 

위의 한 문장은, "인간의 모든 혁명은 '반드시' 그것의 당초 약속을 배반하게 되는가?"(p156)란 질문에 대해 "다분히 결정론에 가까울 정도의 비관적인 관점과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p156)란 역자 도정일의 견해를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즉, ---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p26)란 계명을 지켜내기/유지할 수 있기 위해, 불평등을 ("아주 자연스런 일"의 수준으로까지!) 고의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라는, 그리고 이 사실에 모든 성원들이 합의한다라는 것이죠.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르게 되면, 또한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라면 드디어/결국 우리는,


​"정치 권력은 결코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사람, 주인과 노예, 착취하는 자와 착취를 당하는 사람의 구별을 철폐하지 않는다."

라는 아나키즘의 선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작가 조지 오웰 역시,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p123)란,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묻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혁명은 '반드시' 그것의 당초 약속을 배반하게 되는가?"(p156)란 질문에 대해, "definitely Yes!"란 답을 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 우리는, 기존 권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권력'의 등장이 필연적이다,란 사실이 곧 '혁명이란 개념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란 마지막 희망, 곧 "권력의 타락은 인간 사회의 불가피한 조건인가?"(p156)란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작품 속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되면,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반대로 권력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그 권력을 부여한 원천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상적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에 기꺼이 복종합니다.


【 권력의 유지 

"독재자에도 상·중·하의 등급이 있다. 박정희는 중급은 되는 독재자였다. 김일성은 최하급이었고"란 대학 시절 "한국경제론'을 가르쳐주셨던 은사의 견해는 권력/인간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그 분의 사고(思考)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에티엔 드 라 보에시는 오래 전 16세기 때 이미, 권력을 손에 넣은 군주는 근본적으로 그가 선인(善人)이라 하더라도 "언제든 악인(惡人)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권력자'란 자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위대함이라 불리는 그 무엇에 홀려 기고만장"해질 수 밖에 없는, 그리하여 결국 "잘못할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선보였었었지요. 하지만,


좁게 보아 '권력자 개인', 허나 궁극적으론 '권력 자체의 속성이 그러하다는 것과, 그 권력자/권력 자체가 유지될 수 있다라는 건 엄연히 별개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권력자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일정 기간마다, 극단적으론 '혁명'을 통해 로 바꿔버릴 수 있거늘, 이 오랜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큰 틀에서 보아, 권력 자체의 속성이란 건, 변함 없이 내내 유지되어 오고 있지요. 도대체! --- 어느 것에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권력은, 유지의 원동력(driving force)을 얻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권력은 네 개의 서로 다른 통로, 즉 어떤 일을 강제로 하게 하는 완력, 윤리적 의무감을 부여하는 규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선전,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을 통해서 작동한다. … 권력의 장벽은 완력, 규범, 선전, 보상이 효과를 발휘하는 한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모이제스 나임이 제시한 네 가지의 원동력들 중, 눈에 보이는, 즉 현실로 체감되는 것은 '완력' 하나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밖의 것들, 심지어 '보상'이라는 것마저도 권력이 얼마든지 심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요. 조지 오웰이 이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권력의 작동과 유지 역시, 이 네 가지 동인(動因)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는, 뜻밖에도(?)/당신의 예상대로(?) --- '선전'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은 가져본 적 없는 것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아쉬움은 즐거움을 안 뒤에 오고, 지나간 기쁨에 대한 기억이 있는 까닭에 불행을 인식하는 것이다."

권력의 작동과 유지에 종사하는 '선전'의 목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세뇌'입니다. 세뇌는 아쉬움을 아쉬움으로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내는, 지나간 기쁨에 대한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그리하여 끝내, 불행을 불행이 아니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선전의 결과, 첫 단계로 동물들은 "통과됐던 것 같은 기억이었고, … 기억한다고 '생각하고'"(p62)와 같이, 자신의 기억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기에 "존즈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것도 아닐 거고?"(p63)와 같은 일종의 협박이 더해지게 되면,


동물들로선 '반란' 이전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스퀼러의 발표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p82)

과거에 대한 기억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그리하여 결국엔 반란/혁명의 이유 자체마저 잊게 되는 단계로 가게 되지요. 일단 잊게 되면 이젠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p101)가 더이상 아닌, 이제부턴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p117)로 전환되는 본격적 '세뇌'를 접하게 됩니다. 그러한 끊임없는 세뇌의 결과, --- 반란/혁명이 향하였던 비난/극복의 대상이 형태만 바꾸어 나타났음에도, 그들은 새로운 권력/권력자에게 새로운 복종을 보이게 되지요. "통계 숫자보다는 먹을 것이나 더 많았으면 좋겠다"(p82)란 본능적 바람()까지는 버려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들은 고달프게 일한다 해도 그 노동은 최소한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 모든 동물들은 평등했다. (p115)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사회 속 모든 구성원들은 평등하다라고, 그런데 또 그 평등이란 게 '절대적 평등'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도 받아들이는, 그리하여 결국,

​지난 날 존즈 시절에는 사정이 훨씬 더 나빴던 것임에 틀림없다고 동물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즐거이 그렇게 믿었다. 게다가 존즈 시절에는 모두가 노예였지만 지금은 누구나가 다 자유롭지 않은가, 그거야 말로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p99)

이제! 사회 구성원의 일부는 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믿음을 유지한 채 현실의 고통을 감내해내기 위해, '종교'라는 - 비록 종교계는 부인한다 할지라도 - 일종의 마약에 의존하게 됩니다. 작품 속 까마귀 모지즈가 언급하는 '슈가캔디 마운틴'에 대해 보이는 동물들의 반응이 점점 바뀌어, 그 존재를 믿고 싶어하게 된, 그리하여 믿게 된 것에 대해 작가는 --- 명확하게, 마약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지요.


​지금 그들이 배고프고 몸 고달픈 이승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어딘가 더 나은 세상이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건너무도 옳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p103)


【 권력에의 복종 

새로운 권력이 선()한 권력일 수는 없었던 걸까요? 나폴레옹이 아닌, 스노볼이 권력을 행사했더라면 행여 그는 선한 권력자가 될 수 없었을까요? 권력의 속성이, 그것, 권력을 쥔 자를 타락하게 만든다라 하지만, 민중의 견제가 권력의 타락을 막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요?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 댕기라는 건 바로 노예의 표시야. 댕기보다 자유가 더 값지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 (p20) …… 몰리는 털을 새로 깎고 앞머리에 분홍색 댕기를 달고 있었다 한다. 비둘기들은 몰리가 썩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p45)

​1945년 발표된 이 작품에 실려 있는 위의 문장은, 위의 문장이 담고 있는 뜻은, 이미 16세기에 에티엔 드 라 보에시에 의해 똑같이, (심지어 그 주체마저도 '말'로 똑같이) 묘사되었었지요.


"우리는 여기서 자발적 복종의 일차적 근거가 습관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말이 길드는 과정과 같다. 말에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 재갈을 갖고 장난질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장비와 장신구를 뽐낸다."

이같은, 두 작품 사이의 연관성은 이 밖에도 적잖게 보여집니다. 조지 오웰이 적어놓은 "여러 해가 흘렀다. … 많은 동물들이 새로 태어났는데, 그들에게 '반란'이란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흐릿한 전통일 뿐이었다"(pp111-112)라는 길지 않은 문장 속엔,

​"처음에는 강요에 의해 힘에 눌려 복종하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자유를 전혀 보지 못했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후회도 유감도 없이 앞선 세대들이 강제적으로 해야만 했던 일들을 자발적으로 행한다. …… 멍에를 지고 태어나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어떤 삶은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또한, 혹은 반대로,  


​"큰 특혜가 작은 특혜의 먹이 사슬로 이어지고, 독재자와 결탁해 얻은 이익이 또 새끼 이익을 가져와 자유인의 신분을 기꺼이 선호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독재 권력의 배를 불려주는 사람 수도 늘어나게 된다."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이 한 문장에 담겨져 있는 뜻을, 조지 오웰은 다음과 같이 (잘게 쪼개어!) 풀어내주고 있지요.


- 돼지들은 직접 일은 하지 않는 대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다. (p28)

- 그들은 나폴레옹의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들이 나폴레옹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지난날 농장의 개들이 주인 존즈에서 꼬리치던 모습 그대로였다. (p51)

- 농장은 그 자체로는 전보다 부유해졌으면서도 거기 사는 동물들은 하나도 더 잘살지 못하는 (물론 돼지와 개들은 빼고) 그런 농장이 된 것 같았다. 돼지와 개들이 너무 많은 것

   이 그 한 가지 이유일 성 싶었다. (p113)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p117)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라 생각되는 문장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 이 문장 속 '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집착하기 보다, 또한 이 결말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이러한 결말이 나타나게 되는 과정의 개연성? 심지어 정당성?이라고까지 일컬어질 수도 있겠는, 바로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가장 의의있는 (한 글자 한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서) 독(讀).(後).(感).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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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결의안을 제출하는 건 언제나 돼지들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투표하는 법까지는 알았지만 자기네 스스로 무슨 결의안 같은 걸 생각해 내지는 못했다. (p31)

권력의 타락을 비판하기에 앞서 --- ① 그러한 타락을 초래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혹 그것이 우리의 "무지와 무기력함"(p157)이 타락에 일조하지는 않았나하는 자기 점검과, ②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p58)로 대변될 수 있겠는 권력에의 맹종, 그리고 아부가 바로, 두 발로 서서 걷는 돼지들의 등장에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p118)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 아니겠느냐,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전 믿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단일국의 지도원리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은 '행복'했지만 어리석게도 '자유'를 요구했다가 황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이제 단일국은 인간의 자유를 제거함으로써 행복을 되찾아준 것이다." (p127)

그 반성에, 위의 인용문처럼, 권력의 오남용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지혜'를, '나만의 의지'를 우리 각자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역시 반드시 살펴보아야하겠지요. 그나저나,

길지 않은 소설이기에 뭔가, 잘개 쪼개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잘게 쪼개놓으면 보기에, 그리고 먹기에도 편할 것 같다라 생각했었었거늘, 여러 번을 읽어봐도 이건 '어떤 요리다!'란 게 느껴지지 않는 글이 되고 말았네요. 암튼! --- 참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해준 소설이었습니다. 비록 이 독후감에선 '권력'의 (재)등장과 타락에 관하여만 썼지만, 예를 들어, '동물주의'로 표현되고 있는 '사회주의/공산주의'란 사상이, 권력 또는 권력자의 선의(goodwill)가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와 같은 주제 역시 매우 흥미롭지요. 좋은 소설이란 게, 훌륭한 문학이란 게 이처럼,

이후의 독서/지적 호기심을 남겨 주는 것으로도 정의(define)된다면, 이 길지 않은, 술술 읽히는, 간단한 줄거리의 이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허나 그만큼 어려운 숙제를 남겨준다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숙제가 마냥 싫은 게 아닌,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뭐 그런, 아직은 그런 숙제인 듯 싶네요. ^^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 자발적 복종」, 생각정원 , 2015.

- 류동민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위즈덤하우스 , 2012.

- 하승우 , 아나키즘」, 위즈덤하우스 , 2012.

※ 읽어본, 조지 오웰의 작품

-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 2001.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어찌어찌/그럭저럭/꾸역꾸역/그나저나/고군분투/위태위태  

... 금연 52일째.


 

  1. successful matching을 위해선, 양쪽이 간결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목적이건 수단이건 대상이건, 그 어느 것이건 말이죠.
  2. "알레고리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기(other speaking)'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를 어원으로 한다. 우유(愚喩), 우의(寓意), 풍유(諷諭)로 불리기도 하는 알레고리는 인물, 행위, 배경 등이 일차적 의미(표면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이솝우화』와 같은 동물 우화는 일차적으로는 동물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3.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 첫 소설이었다."(p143)
  4. 자오팅양·레지 드브레 共著, 메디치 刊, 2016.
  5. 자오팅양 외, 위의 책 p30.
  6. 자오팅양 외, 위의 책 p31.
  7. 자오팅양 외, 위의 책 p231.
  8. "지주는 이미 농장에서 일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을 서류 위에서만 농사를 지었다. 그들은 흙을 잊고, 흙의 향기와 흙의 감촉을 잊었다. 단지 자기들이 그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했고, 땅에서 돈을 벌고 손해를 본다는 것만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농장은 너무 커져서 이미 한 인간의 머리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 이윽고 그러한 농장주들은 상인이 되어 상점을 경영했다. 그들은 농장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그들에게 식량을 팔아 지급한 돈을 되찾았다.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노동자에게 전혀 돈을 지불하지 않게 되었으며 장부를 만드는 성가신 일을 덜게 되었다." - 존 스타인벡 作, 「분노의 포도」중, 홍신문화사 刊, 2012.
  9. "편의상 「동물농장」의 이야기세계와 그것의 시대적 문맥이 된 현실세계 사이의 연결관계를 1대1로 표시하면..."(p148)
  10. "The most fundamental difference is that under Communism individuals are provided for or compensated based on their needs, in effect meaning that in a true communist system you wouldn't have money and you'd simply be given what the government thinks you need in terms of food, clothing, accommodation, etc. Central to socialism is that individuals are compensated for based on their individual contribution, so people that work harder or smarter would receive more than those that don't contribute. This difference highlights a key flaw in the Communist model, where no one has any motivation to work harder or smarter as it would have no impact or benefit for them." - "Communism VS Socialism", BusinessDictionary.com
  11. 마르크스·엥겔스 共著, 「독일 이데올로기」중 - 류동민 著,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중 p248 재인용, 위즈덤하우스 刊, 2012. --- 류동민은 이 책에서 이를 다시 "현실에서 완전하게 달성될 수는 없으나 현실이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이념적 원형"(p249)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오팅양의 '이상(理想)'에 대한 견해 - ​"저는 이상을 하나의 척도로 간주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해, 이상은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측정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자오팅양, 위의 책 p24) - 와 거의 완벽하게(near-perfect) 흡사하지요.
  12. 역자가 적어놓은 다음의 글 역시, '혁명' 또는 '반란' 그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우건, 작가가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에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이 그가 작품 「동물농장」에 싣고자 한 메시지라 말하고 있다."(p153)
  13. "여러분이 그를 정복하더라도 절대의 그의 악한 짓거리들을 모방해선 안 됩니다. … 인간의 모든 습관은 사악합니다."(p14)
  14.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오독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는 성립하기 어려우며 우연히 성립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p121) --- 러시아라는 후진농업사회에서 선도적 정치의식을 지닌 소수의 직업혁명가에 의해 시작되었던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과 그 실패를 가리켜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실패'라 규정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오해이며, 오히려!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정당한) 입증이라 평가받아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 류동민, 위의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의 일부.
  15. ​이 때 '전체주의'는 (러시아) 사회주의 타락의 원인일 수도, 동시에 타락의 결과일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16. 류동민, 위의 책 p67.
  17. 류동민, 위의 책 p109.
  18. <각주 10> 참조.
  19.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하는 상황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 하에서 만든다." - 류동민, 위의 책 pp 102-103
  20. "충성과 복종이 필요해요. …… 강철같은 기율이 필요해요."(p53)
  21. 하승우 著, 「아나키즘」 중 p74, 책세상 刊, 2008.
  22.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가져가는 것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돼지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 우리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하사고 있습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 돼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의 복지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을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pp35-36) --- "오웰은 바로 이 대목이 혁명의 부패가 시작되는 전환점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p153)
  23. "혁명이 반드시 스스로를 배반하게 되어 있다면 어떤 혁명도 이미 가치가 아니며 애당초 시도될 이유도 없다"(p156)
  24. 류동민, 위의 책 p69.
  25.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자발적 복종」 중 p35, 생각정원 刊, 2015.
  26.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64.
  27.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39.
  28. 모이제스 나임 著, 「권력의 종말」 중 p150, 책읽는수요일 刊, 2015.
  29. "젊은 식용 돼지 네 마리가 이번에도 쭈뼛쭈뼛 항의하고 나섰지만 개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통에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p60)
  30.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80.
  31.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내 임무는 …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지."란 주제로 쓰여진 정말 멋진 소설도 있습니다. --- 존 르카레 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중 p243, 열린책들, 2009.
  32. "농장의 동물들이 바랐던 것은 오늘 같은 날이 아니었고 허리가 휘게 일한 것도 이런 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p78)
  33. "돼지와 개들만 빼놓고 다른 동물들에 돌아가는 식량 분배량은 또다시 줄어들었다. 식량 분배에 지나치게 엄격한 평등을 적용하는 것은 동물주의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스퀼러는 설명했다."(p98)
  34. "그해 내내 동물들은 노예처럼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노동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그들 자신의, 그리고 다음에 올 후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게으른 도둑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p56)
  35. 추가로, '미신' 또는 우리에게 좀 더 친근(?)한 용어로는 '색깔론'도 또한 등장합니다. --- "뭐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모두 '스노보링 그랬다'가 되었다. …… 동물들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스노볼이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허공을 떠다니며 온갖 위험한 일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pp71-72)
  36. 즉, 종교란 것이 존재(sein)의 차원이 아닌, 당위(sollen)의 차원으로 변모되어, 마약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하게 되는 것이죠. 종교가 설파하고 있는 당위의 문제에 대한 의문이 --- "설령 한 푼도 없더라도 그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얌전하게 견디고 있으면 죽어서 금쟁반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얘기밖에 가르쳐주지 않아요." (존 스타인벡 作, 「분노의 포도」중, 홍신문화사, 2012.) --- 이 작품 「동물농장」(사회주의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위로/돌파구)과 「분노의 포도」(자본주의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위로/돌파구)에서 각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37.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81.
  38.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p68-69.
  39.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111.
  40. 물론, 이 문장 속 '평등'은, 우리가 사전에서 보게 되는 의미 그대로의 '평등'은 아니겠지요.
  41. "무슨 일이 성공적으로 완수되거나 운수 좋게 잘 풀리면 그 공로는 어김없이 나폴레옹의 것으로 돌려졌다. … 암소 두 마리가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다가 '나폴레옹 동무의 영도력 덕분에 물맛이 그저 그만이군 그랴!'라고 말하는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p83)
  42. "돼지 하나가 두 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 다음 순간, 돼지들이 길게 한 줄로 행렬을 지어 본채 문 밖으로 걸어나왔다. 모두 … 직립보행의 자세였다."(p116)
  43. 같은 맥락에서 전,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p123)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과연 우리는 '분간할 수 있어~'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지금 당장 답하라면 전... 분간할 수 없,다라 말해야 할 것 같아요.
  44. 성경을 이렇게 해석해낼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헌데, --- 그 반대, 그러니까 '행복을 제거함으로써 자유를 되찾아준 것'이란 상황은 아무래도 상상이 되질 않네요. '행복을 제거함으로써 자유를 되찾아준 것'이 과연 성립 가능할까요?
  45. ​"저자 진중권 교수는 '서구의 근대화는 ……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라는 미셀 푸코의 말대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근대화 또한 '전태일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잔인한 폭력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그 말로 '근대화 자체를 비판'했던 푸코완 달리 대한민국의 우익은 푸코의 그말을 자의적으로 인용해 서구의 근대화도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다라는 '한국적 근대화의 폭력성을 옹호하는 논리'로 둔갑시켜버렸다는 것이지요." - 진중권 著, 「호모 코레아니쿠스」, 웅진지식하우스 刊, 2007. 을 읽고 쓴 감상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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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마케팅적 사고방식, 개정판
강민호 지음 / 와이비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했다 하여 그/그녀가 용산전자상가에 단골 컴퓨터 가게를 몇 개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 씨 그럼 교대 졸업생은 초딩 시험문제 다 백점 맞냐?란 대꾸와 별반 차이 없는 수준으로, 그 개연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추측이라는 것에는 주저없이/이의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 경제학과 졸업생이 주식시장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경제학은 사장이 되어 회사를 경영하거나, 회사원이 되어 경영당하거나에 관한 것은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항변이 대략 '너 대학 때,  공부 드럽게 안했구나~'란 반응과 당연하게 매칭되어야 한다라는 건, 아무리 겸손해져봐도 뭔가 좀 심히 억울하다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게 해줍니다. 저 학생 때만해도, 경제학과에 주식에 관한 과목은 개설되어 있지도 않았었었고, 국제금융론도 선택과목이었었기에 환율, 뭐 이런 거 원하면/원하지 않으면 전혀 배우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그러했었듯. 그렇게,

마케팅(marketing)이란 것에 대해 배워보질 않았으니 당연히, 이 책을 읽기 전, 마케터(marketer)란 단어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그저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추측만 해볼 뿐이었더랬습니다.  게다가, 세상에 마케터랑 직업이, 그러니까 '교사, 증권사 애널리스트, 의사, …'등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직종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심만 가득한 심보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었던 거죠. '뭐 별 거 있겠어, 경영학과 애들 좋아하는1, 영어 약자만 잔뜩 써놓아 그럴듯하게 보이기 원하는2, 그런 책이겠지~' 

 

 

 


…………………………………………………………………………

"거래보다 관계, 유행보다 기본, 현상보다 본질"

 

"마케팅적 사고방식을 위한 생각의 틀과 의사결정의 기준을 제시하는 데 초점"(p18)을 맞추고 있다란 이 책의 저자는, 위의 문구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스럽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마케팅의 기본틀이 바로 이러하다라는 거지요. 뭔가, 랩의 rhyme스럽게 리듬을 맞춘 듯한, 예의, 조어(造語) 좋아하는 경영학과 사람들의 분위기가 폴폴 느껴지는, 내심 믿음이 딱히 가지는 않는 시작이었었거늘,

 



"경영학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문의 주석에 불과"(p83)하다란 저자의 설정이 무엇보다 확~하고 제 맘을 당겨줍니다. 이게 뭐, 이제와서 여적지 학문의 우열 같은 걸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경영학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러니까 경영학의 정체성이란 게 결국 (뭔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존 학문들의 복합적 적용의 산물이란 것을 (깔끔하게) 인정한다라는 것이, 사실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어왔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주저리주저리 사족을 많이 붙이죠.) 이처럼, --- 이 책에 대한 심정적 추(錘)가 부정과 긍정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이, 저자가 추구하는 마케팅 관(觀)에 대한 제 공감의 면적이 점차 넓어져만 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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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고객들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뭔가 계속 잘 안 되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아주 심플합니다. 바로 그만큼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p45) 

저자는, 마케팅이란 것이 실체에 무언가를 계속 더해가는 포장의 과정이 아닌, '벗겨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라 주장합니다.3 그리고 그렇게 벗겨내려면, (벗겨내고 벗겨낸 후, 무언가가 남아 있으려면) 고객에게 제시하는 실체, 곧 제품/서비스에 기업의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라 말해줍니다. 대체 그 진정성이란 게 뭘까요? 또 다시 뜬구름 한 번 잡아보자는 걸까요? 저자는 그 '진정성'을 바로 '철학'이라 규정합니다. 제품/서비스 속에 담겨 있는 기업의 철학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무기가 된다라는 것이죠. 

스티브 잡스는 …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철학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했던 대표적인 경영자입니다. 고객은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과 철학에 공감하고 또 열광했습니다. 고객들은 단순히 아이폰과 맥북이라는 기계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철학을 구매한 것입니다.4 아이폰과 맥북은 그가 추구하는 철학의 부산물일 뿐입니다.(p24)5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인,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속가능성"(p161)이어야 한다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 마케팅의 과정에 있어,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업을 경영해감에 있어 분명한 철학적 기준이 존재해야 합니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의 마케팅은 "그동안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소비를 부추기고, 소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p122)해야만 자신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 풍요/과잉의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하기에,


​이전에는 단지 판매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면 충분했지만, 이제 인간을 이해하는 일 자체가 중요해진 것입니다.(p120) …… 경영과 마케팅, 브랜드에 관한 통찰의 본질적인 리소스는 인문학입니다.(p24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많은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사업의 부진을 인문학이 아닌, 경영학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려 하기에, 그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가치가 없는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당연히!) 그로부터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에 사업이 부진함에도, 그 원인을 마케팅 부서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못해서!라는, "광고와 홍보의 문제로 귀결"(p46)시켜 버린다는 거지요. 이러한 상황을, 즉 '철학의 부재'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엔 아예 접근도 못하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는 상황의 원인을 바로,  


​"요리사 자신도 스스로가 무슨 맛을 내고 싶어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경영자들이 그렇습니다. 본질이 명확하지 않으니 점점 흐려지고, 흐린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려다 결국 MSG로 맛을 냅니다. 이 유혹을 떨치기 힘든 이유는 그 맛이 참 그럴듯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MSG로 맛을 내는 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p207)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그러니까 --- "모든 전략은 해당 기업의 철학을 대변해야 합니다"(p196)란 조건이 충족될 수 없으며, 타사와의 차별화에 대한 전략의 핵심이 철학이 아닌 가격에 맞춰져 있다 보니, '고객(customer)'을 향하여야 하는 마케팅의 목적이 '경쟁사를 이기는 것'으로 어느 순간 바뀌어 버리게 되는 겁니다. 마케팅의 본질의 이러한 변질은 결국 모든 기업들에게서 일정 정도 모두 발생되게 되며, 이는 곧 "전략도 경쟁사를 닮아가게 되는 결과를 초래"(p237)하게 되어, 어느새 모든 기업들이 "차별화가 아닌 동일화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p237) 모습을 보여주게 되지요. 저자는 이에 대해,

"이제 결승점은 하나가 아닙니다. 굳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려 1등과 2등을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각자가 가는 차별화의 방향에 각자의 결승점이 존재합니다. 애써 노력해가며 경쟁사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려고 하지마세요"(p236)란 조언을 해줍니다만, 이러한 조언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안심하려 하기엔,

"​당신을 위협하는 진짜 경쟁자가 누군지, 당신은 모른다."(p234)6

이 한마디가 보여주고 있는 --- 기지(旣知)의 무지(known unknowns)가 아닌, 완전한 무지(unknown unknowns)로부터 발생되는 공포가 너무도 큽니다.7 어쩌면! 이러한 공포가, 우리로 하여금 경영학/마케팅에 대해 더 공부하도록 만드는 동인(leading motive)으로 작동할 수도 있겠는, 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 일말의 답이 책 속에 담겨져 있긴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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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수립하는 이유는 바로 실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실행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계획하는 것이죠. 그런데 계획에 집중하다보면 계획을 위한 계획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p175)

조직생활을 하는 분이라면 이처럼, 수단과 목적의 명확한 정립과 유지란 것이, 그 간단하고 의문의 여지 없을 듯 싶은 행위가,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여러 번 체감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8 마케팅이란 것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은 책이었기에,

여타의 마케팅 책들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건지, 아니면 이 책에 뭔가 새로운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제 능력의 범위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실무적인 선에서 몇 가지 힌트를 얻었다라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이 책이 ---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혹은 비중의 변함 없이, 그야말로 한결같이 팽팽하게 죄어진 채 보여지고 있다라는, 한 마디로 읽어감에/배워감에 있어 전혀 지루함이 생기지 않았다라는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다라는 점은 자신있게 적을 수 있습니다. 사례의 나열이 지닌, 남는 것 없는 흥미로움만의 연속이 아닌, 흥미로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마케팅에 대한 자신의 견해/지식을 독자에게 전하는 법을, 저자가 매우 잘 알고 있는듯 하다랄까요?(이건 뭐, 간만에 칭찬이 좀 과한 듯 합니다만, 다시 한 번, 마케팅에 문외한인 독자로서의 느낌이 이러했다라는 거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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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매장에서는 희망을 판다."9(p222)

당신이 제품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 당신이 하려는 것이 비록 일종의 cosmetic touch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 작업을 위해선 바르고자 하는 분()의 성질에 대해, 바르는 방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는 전제가 존재하기에, 더 나아가 당신은 왜 cosmetic touch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조언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하기에, 그와 동시에! 

제품을 사는 사람으로서의 당신10이, --- 나는 과연 필요에만 의하여 제품을 소비하는가, 혹 욕망에 의한 소비는 없는 건가, 있다라면 제품을 파는 사람들은 과연 나의 욕망을 어떻게 건드려 나로 하여금 그들의 제품을 소비하게 만드는가11 등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생각하기에,


당신이 마케팅 관련 일을 한다면 두말 할 것없이 당연히, 또한 당신이 평범한 소비자라 할지라도, 저들이 어떻게 당신을 꼬득이는지 알고나 당하자라는 의미에서, (롯데의 강민호를 좋아한다해도 그럼 꼭!) 이 책을 꼭 권해 봅니다. 제가 정리해 내지 않은/못한, 더 많은 내용들이 책 속에 있습니다. 책에 밑줄 쳐가며 읽는 습관의 제가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절반의 걸레가 되어 있을 만큼 말이죠. 그만큼 --- 얻을 수 있는 것이, 얻어내야 할 것들이 많았던 책이었다란 거겠죠. 그나저나 경영학... 배워갈수록12, 참 흥미진진한 학문이네요, 이걸 내가 왜 이제서야, 싶을 만큼!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어찌어찌/그럭저럭/꾸역꾸역/그나저나/고군분투

... 금연 48일째.



 

  1. 솔직히 말하자면, 최소한 제 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경영학 알기를 개똥같아 했더랬습니다. '우리는 깊이 있는 학문을 하지만, 걔네는 테크닉을 배우는 얕은 애들~'이란 게 경제학과 학생들의 일반적 정서였더랬었죠.
  2.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것만 대략 추려봐도, SWOT, MECE, CRM, ICM, ATL, BLT, TTL, CSR, CSV, MBO … 등 무지 많습니다. 이런 류의 'fancy해 보이고 싶어함'은 다른 분야에도 적잖이 퍼져있어, 부동산 쪽에 가니, FSBO란 약자를 쓰고 있더군요. 뭔 심오한 뜻일까 봤더니 글쎄 'For Sale By Owner', 우리말로 걍 '주인 직거래/직접 임대'. --;; --- 필요에 의한 조어나 약칭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연말이면 등장하는 '트렌드 예측' 관련 책들 마냥, 이건 무슨 신조어 사전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석이라기보다는 말장난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분위기는, 그저 천박해보일 뿐입니다.
  3. "마케팅은 무언가를 더하고 포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포장을 벗겨내어 본질적인 가치를 심플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정성이 없다면 심플해질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가면을 덧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58) ……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부차적인 전략으로 뭔가를 자꾸 포장하려고 합니다. 정말 좋은 비즈니스와 마케팅 전략은 포장을 벗겨내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을 단순한 날것의 상태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이제는 속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장점이 되는 시대입니다."(p208)
  4. ​"1980년대 위기의 할리데이비슨을 다시 살린 리처드 티어링크는 말합니다. '우리는 철학을 판다. 오토바이는 슬쩍 끼워 팔 뿐.'"(p27)
  5. "GM 시스템이 정말로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회사의 운명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 피터 드러커"(제프 그램 著, 「의장! 이의 있습니다」중 p184. 에프앤미디어 刊, 2017.) --- 애플이 정말 스티브 잡스의 철학을 파는 회사였다면, 이는 곧 스티브 잡스의 수명과 애플의 수명이 동일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과연 그럴까요? 과연 그런 것 같나요?
  6. 저자는 "경쟁사를 산업 카테고리가 아닌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과 시간 점유율의 개념으로 설명"(p233)하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 TV에 광고를 내려할 때, 동시간대 경쟁 채널의 시청률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포켓몬의 인기 정도라든가, 독서율의 증가 추세라든가, 운동에 대한 관심 증가 등, 사람들을 TV 앞에서 멀어지게 하는 여타의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 ​2002년,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Donald Rumsfeld가 했던 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that we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there are things that we now know we don'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There are things we do not know we don't know.’ ⁠여기서, 'known unknowns'와 관련하여, 슬라보예 지젝은 'unknown knowns'를 'the things that we know, but are unaware of knowing'라 정의하기도 하였습니다.
  8. 저자는 이를 "행복해지기 위해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지, 변화를 위해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p257)란 말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9. 화장품 회사 레브론의 창업자 찰스 레브슨.
  10. "나 스스로도 다른 누군가의 고객입니다."(p218)
  11. “소비는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이다.”- 장 보드리야르
  12. 관리회계, 경영전략, 그리고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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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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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라 하는 게 가장 적당할 것 같은, 왜냐하면 이 작품엔, 형사도 나오고, 범인도 있고, 살인 사건도 등장하니까, 그러하기에 당연히 추리소설로 특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한데, 읽어가는 내내, 다 읽고난 지금엔 더더욱, - 이건 추리소설이라기보단, 그러니까 뭔가, 그게...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 , 「마담뺑덕」중 p45, 네오북스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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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면, 정말, 정말 반가울꺼야."

그러니까 저의 첫 사랑, (네 글자의 이름을 가졌던) 그녀와, 20대 시절,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순간,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제 입에서 나온, 헤어짐의 한 마디 인사였었습니다. 이후 아주 오랫동안, 아마도, 조교수를 처음 만나기 이전까지 정말 계속,

​"세상 곳곳에서 그녀의 일부와 마주쳤다. 비행기 여승무원에게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고, 케이프 해변에서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1를 보고, 심야의 라디오 재즈 방송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p16)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녀를 길에서, 그것도 같은 방향이 아닌, 반드시 서로 마주치는 방향으로 걷다가 만날 수 있길 바래었지만, 세상살이는 그런 영화 속 한 장면을 끝내 제겐 연출해 내어주지 아니더군요. 그토록 바라던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었으며, 시간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주르륵 흘러가기만 했고, 그렇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만나게 해주마~스럽게 등장했던 한 사이트가 만들어 준/놓은, 더 이상은 그런 우연을 기다리지 말라하는 마련에 의해 결국,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그런데/그러나,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바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왜곡이 쉽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공유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없었던 시간으로 남곤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던 순간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똑같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사랑이 온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은 드물다."

- 백가흠, 위의 책 p59

그 의미, 그대로의 '우연'을 기대했었던, "그녀의 얼굴, 그녀의 걸음걸이를 찾아 군중을 흝었"(p148)었던 제게, 그 바람(願)에의 보답으로 주어지는 그녀와의 조우를 기대했었던 제게, '명백한 의지'가 개입되어 만들어 낸 작위는, 결국 - "마음이 늘 그때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고 지나쳤던 것들까지도 거의 전부 기억"(p282)하고 있었던그 시절을, 차마 후회스러운 것으로 남겨주었었지요. 그것도 심지어, 저 또한,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던 낯선 당황함으로.

"조지는 이 순간을 여러 번 상상했지만 왠지 결말까지 상상한 적은 없었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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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줄거리는 적지 않겠습니다. 그저 한 남자가, 20여 년 전의 첫 사랑을 다시 만나, "갈색 음모는 기억보다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p110)라는 감각까지 기억하고 있듯, 여전히 그녀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유혹을 없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2하는 것이란 선택을 하였고, 그 후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여러 법규들의 정당함이나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운전석에 오르면 우리는 어린애 같은 흥분과 쾌감에 모든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 그로 인해 우리 삶에 가해질 위해를 피하려는 결의에 차 있다. 그러나 한 번 사랑에 빠져 버리면 우리는 이내 비정한 쾌감과 잔인한 이기에 휘몰려 그 모든 걸 잊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아침나라 刊, 2001.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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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내 마음 같아~'스런 감정을 안겨주었던, 그리하여 아마도 전, 추리소설3이 아닌 연애소설로 이 작품, 「아낌없이 뺏는 사랑」4을 기억하게 될 듯 싶습니다. 물론, --- 이런 '싶습니다'가 비단, 저에게만 있는/을 것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도, 그리고 혹시,

"마흔이 다 되어가니 세상이 서서히 바래가는 듯했다. 누군가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룬다거나, 출세를 하겠다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다."(p15)

이런 감정 속에 있는 당신에게, 설레임을 느끼게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혹시라도 당신이 바래어(願)보고 있다면 이 소설은 필히, --- '읽는 재미'5와 더불어, (과거에 실재했었던, 혹은 현재에 실재하고 있는) 그 혹은 그녀를 '상상해보는 야릇함'을, 그리하여 잠시나마 설레어할 수 있는 순간을 함께 안겨줄지도 모를, 한 편의 멋진 연애소설로 읽혀질 꺼라 확신합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그녀를 상상해 보며,

"지난 몇 년간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던 당신이 설레어 할지도 모를.



 

  1. 아쉽게도 이건 아니었... --;;
  2. 오스카 와일드 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중 p32, 베스트트랜스 刊, 2012.
  3. 엄밀하게 말해, 이 작품을 온전히 추리소설로만 보기엔 마무리가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4. 원제 "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읽고 나면, 원제목이 참 잘지어졌다라 생각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전 --- "Ghost"보다는 "사랑과 영혼"이 훨씬 더 잘 어울리듯, 이 작품에는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 원제보다는 조금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아낌없이 뺏는" 그녀에게, 그렇게 빼앗기고도 그 또한 "아까워하지 않는", 뭐 그런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랄까?
  5. 이건 확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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