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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평점 :
추리소설이라 하는 게 가장 적당할 것 같은, 왜냐하면 이 작품엔, 형사도 나오고, 범인도 있고, 살인 사건도 등장하니까, 그러하기에 당연히 추리소설로 특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한데, 읽어가는 내내, 다 읽고난 지금엔 더더욱, - 이건 추리소설이라기보단, 그러니까 뭔가, 그게...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 作, 「마담뺑덕」중 p45, 네오북스 刊,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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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면, 정말, 정말 반가울꺼야."
그러니까 저의 첫 사랑, (네 글자의 이름을 가졌던) 그녀와, 20대 시절,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순간,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제 입에서 나온, 헤어짐의 한 마디 인사였었습니다. 이후 아주 오랫동안, 아마도, 조교수를 처음 만나기 이전까지 정말 계속,
"세상 곳곳에서 그녀의 일부와 마주쳤다. 비행기 여승무원에게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고, 케이프 해변에서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보고, 심야의 라디오 재즈 방송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p16)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녀를 길에서, 그것도 같은 방향이 아닌, 반드시 서로 마주치는 방향으로 걷다가 만날 수 있길 바래었지만, 세상살이는 그런 영화 속 한 장면을 끝내 제겐 연출해 내어주지 아니더군요. 그토록 바라던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었으며, 시간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주르륵 흘러가기만 했고, 그렇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만나게 해주마~스럽게 등장했던 한 사이트가 만들어 준/놓은, 더 이상은 그런 우연을 기다리지 말라하는 마련에 의해 결국,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그런데/그러나,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바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왜곡이 쉽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공유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없었던 시간으로 남곤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던 순간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똑같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사랑이 온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은 드물다."
- 백가흠, 위의 책 p59
그 의미, 그대로의 '우연'을 기대했었던, "그녀의 얼굴, 그녀의 걸음걸이를 찾아 군중을 흝었"(p148)었던 제게, 그 바람(願)에의 보답으로 주어지는 그녀와의 조우를 기대했었던 제게, '명백한 의지'가 개입되어 만들어 낸 작위는, 결국 - "마음이 늘 그때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고 지나쳤던 것들까지도 거의 전부 기억"(p282)하고 있었던그 시절을, 차마 후회스러운 것으로 남겨주었었지요. 그것도 심지어, 저 또한,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던 낯선 당황함으로.
"조지는 이 순간을 여러 번 상상했지만 왠지 결말까지 상상한 적은 없었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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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줄거리는 적지 않겠습니다. 그저 한 남자가, 20여 년 전의 첫 사랑을 다시 만나, "갈색 음모는 기억보다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p110)라는 감각까지 기억하고 있듯, 여전히 그녀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유혹을 없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란 선택을 하였고, 그 후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여러 법규들의 정당함이나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운전석에 오르면 우리는 어린애 같은 흥분과 쾌감에 모든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 그로 인해 우리 삶에 가해질 위해를 피하려는 결의에 차 있다. 그러나 한 번 사랑에 빠져 버리면 우리는 이내 비정한 쾌감과 잔인한 이기에 휘몰려 그 모든 걸 잊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아침나라 刊, 2001.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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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내 마음 같아~'스런 감정을 안겨주었던, 그리하여 아마도 전, 추리소설이 아닌 연애소설로 이 작품, 「아낌없이 뺏는 사랑」을 기억하게 될 듯 싶습니다. 물론, --- 이런 '싶습니다'가 비단, 저에게만 있는/을 것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도, 그리고 혹시,
"마흔이 다 되어가니 세상이 서서히 바래가는 듯했다. 누군가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룬다거나, 출세를 하겠다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 지난 몇 년간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다."(p15)
이런 감정 속에 있는 당신에게, 설레임을 느끼게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혹시라도 당신이 바래어(願)보고 있다면 이 소설은 필히, --- '읽는 재미'와 더불어, (과거에 실재했었던, 혹은 현재에 실재하고 있는) 그 혹은 그녀를 '상상해보는 야릇함'을, 그리하여 잠시나마 설레어할 수 있는 순간을 함께 안겨줄지도 모를, 한 편의 멋진 연애소설로 읽혀질 꺼라 확신합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그녀를 상상해 보며,
"지난 몇 년간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던 당신이 설레어 할지도 모를.
- 아쉽게도 이건 아니었... --;;
- 오스카 와일드 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중 p32, 베스트트랜스 刊, 2012.
- 엄밀하게 말해, 이 작품을 온전히 추리소설로만 보기엔 마무리가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 원제 "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읽고 나면, 원제목이 참 잘지어졌다라 생각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전 --- "Ghost"보다는 "사랑과 영혼"이 훨씬 더 잘 어울리듯, 이 작품에는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 원제보다는 조금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아낌없이 뺏는" 그녀에게, 그렇게 빼앗기고도 그 또한 "아까워하지 않는", 뭐 그런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랄까?
- 이건 확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