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정승락 외 지음 / 월간토마토 / 2017년 2월
평점 :
사물인터넷(IOT)에 인공지능(AI)가 결합되면, 뭐 오늘의 날씨에 맞춰 어떤 옷을 입을까 따위를 알려준다고, 이런 것이 '4차 산업혁명'이란 사뭇 거창한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조악한 상황의 거론에 '혁명'이란 과격/신성한 단어를 붙인 이유가 그 편리함 증대의 '급격함'에 있다라면 그래도 이해가/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겠거늘, 만약 그 주안점(focus)이 뜻밖에도(?) 단지/오로지/그저 '(존나 상승된) 편리함'에만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빅데이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 '내가 원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내가 원한다고 판단한 것'을 보는 현실. 내가 욕망하기도 전에 그들이 내놓은 선택지를 보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믿는 현실"에 대한 "선택과 통제의 권한은 과연 누가 행사하는 것일까"와 같은 의문은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버리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중파 FM 라디오가 매일 아침마다 되풀이하는 것처럼 정말로 만약,
일상의 편리함 증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목적/의의라면 --- 인간이 지혜로웠기 때문이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가 아닌, 도구를 사용했기에 지혜로워졌다는 마빈 해리스의 사회·문화적 진화의 논리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정말, 모두들 '4차 산업혁명'이란 것에, 보여지는 바 그대로 , 열광하는 그대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걸까요?
…………………………………………………………………………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이란, 흡사 '슈퍼울트라 초절정 MCU 스타일 서부 액션 활극'같은, B급스런 character를 부여받고 있는 이 여덟 편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신의 섭리에 따른, 유인원들이 (비교해 보아, 보다 더 무능력해진) 인간의 뒤를 계승하였다라는 「혹성탈출」의 결론이, 해당 세대의 허황된 상상의 산물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다만, 2017년의 우리들은, 유인원의 자리에, 과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을 한 번 넣어 보았죠!'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의 송신이, 수신자인 독자들이 사는 세상이란 데가, '4차 산업혁명'이란 표현엔 (이게 대체, 2017년의 대한민국 꼬라지에서, 5년 단임의 대통령 선거의 주요 주제가 되어야 하는 건지, 참 많이 짜증이 났었었고, 그래서 맨날 '4차 산업혁명의 적임자'는 자신 뿐이라며 양 손 들고 포효했던 후보가 참 어처구니 없었었는데) 온통 긍정적인 면만 쏟아부어놓았으면서도, (왕년의 King) 이세돌에 이어 (현재의 King) 커제까지 완벽하게 꺾은 알파고의 기력(棋力)에 새삼스런 당혹함과 또 다시 새삼스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라는 게,
곳곳에 설치된 CCTV들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라 반발하면서도, 막상 CCTV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미해결 범죄/사건에 대해선 'CCTV만 있었어도~'와 같은 안타까움/아쉬움/힐난을 쏟아내는, 그러니까 이건, 누군가를 볼 수 있는 CCTV가 나 역시 볼 수 있다라는 것만은 인정하지 못하겠는, 다시 말해 우리 삶의 구석구석들이 보여지는 것이 안전하다란 이상한 믿음 하에, '나만은 죽어도 보여지면 안 된다'란 억지를 끝내 포기하지는 못하겠다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의 결과일 뿐이란 것조차 알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그려낸 미래란 게, (권력욕을 버려내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기인된 우울함(distopia)의 전형이었다라면, 이 책의 소설들에 깔려 있는, 미래를 바라보는 우울함(distopia)은 ---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외모에 인간보다 뛰어난 감정대응"(p67) 능력을 지닌 로봇이 우리의 시중을 드는 미래의 삶을 바라(願)면서도, 동시에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는 걸 두려워"(57)하고 있는, 이기적 욕망의 모순으로부터 기인된다라고, 조금만 더 잔인(!)한 실례(example)를 들어보자면,
내 편리함의 증진에 도움되는 기능들을 죄다 갖추고 있지만, 그 기능들은 오로지 "제한된 공간에서의 존재"(p76)로서만 작동되어야 한다는, 흡사 귀여운 강아지의 애교와 위로는 즐기면서도 그의 성대와 자궁은 잘라내고 들어내어버린 후에도 서로에게 '애견인'이란 호칭을 스스럼없이 붙이는 뻔뻔함(이자 무식함)을, --- 이 책의 작가들은 힐난하고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
·
·
인간의 기술은 드디어/기어이 "인간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담아낸 인류 최대의 걸작"(p79)으로 평가받는 로봇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로봇은 무려! "성감이 이 '인간' 못지 않더란 말이지"(p158)란 찬탄까지 불러일으킬만큼 최대한 '인간스럽게' 만들어졌지요. 단!
이게 사랑인가 봅니다. 이쑤시개가 100년된 장송처럼 보이는 착각이요. (p113)
로봇들에겐, 위와 같은 사랑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로봇들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기술의 한계 때문은 결코 아니에요. 인간들의 기술은, --- 귀여운 깨갱~소리는 내도 되는, 하지만 시끄러운 왈왈~ 소리는 허용할 수 없기에 강아지의 성대를 잘라버리는 것처럼, 로봇에게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센서를 장착해놓기는 했으나, 그 센서의 기능은 오로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작동되어야 한다는 한계 또한 너무도 명확하게 설정해 놓았었거늘, 그러니까 이건, 인간과 로봇의 유일한 차이점은 감정이라는 정신적 행위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느냐, 혹은 수동적으로 밖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방향성의 한계를 또한 말해주고 있기도 한 겁니다만,
"자연선택은 종종 어느 한 가지 기능을 위해서 선택된 구조를 이용하여 전혀 다른 기능을 가진 구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
- 마빈 해리스 著, 「작은 인간」중 p68, 민음사, 1995.
(이것을 자연선택의 예와 섞어도 될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로봇이 "답답함이라는 감정을 이해"(p46)하게 되었고, 서서히, 그리하여 겨얼국 --- "언젠가 모든 것을 다 보면서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는 사고행동체계"(p69)로까지 진화하게 되었거늘, 오히려 인간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것은 자연과 야생동물이 아닌 타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를 끈끈해 했던 타인을 외면하고 때로는 짓밟아야 살아남는 경쟁시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 타인과 홀로 맞서야 했습니다. 때문에 감정은 인류에게 꼬리보다 불편하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빠르게 퇴화했습니다. 감정의 퇴화에 힘입어 인류의 과학은 빠르게 진화했지요.(pp95~96)
…………………………………………………………………………
"SF, 액션, 추리, 스릴러,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은 폐기하기까지 한 시간여 남은 편의점 도시락 신세입니다. … 바야흐로 소설의 종말이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져 가는 소설을 지켜보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pp5~6)
설마? --- 그 의문은, 이 책 속 한 편의 소설에 스스로 담아놓고 있는, '다수 동조 편견'과 '정상화 편견'이 동원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선 이미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한 문학상의 예선을 통과했었다고도 하거늘, 인간계의 최고수가 질 리 없다 했던 바둑에서 보여졌던 인공지능의 막강한 능력은 언젠가/기어이, 앨런 튜링이란 필명/가명으로 진짜 노벨문학상을 받아낼 지 모르는 겁니다. 이에 대해, 과해도 너무 과한 염려라 말하는 분이 혹여라도 있다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너무 많을 때, 또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 최준식 · 지영해 共著,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김영사, 2015.
우리, 현생 인류 스스로에 대한 '이런 의구심'마저 생겨나는 시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따위(?) 의구심까지 믿어내기엔 현실감이 너무도 떨어진다시면,
인류의 발전은 사랑이 운명이 아닌 엄연한 질병이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 사랑이 질병으로 규정되기 한참 전인 2016년, … 인류가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 하여 삼포세대로 불렸던 그 세대 젊은이들, … (pp98~99)
이것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확실하며, --- '왜 물을 돈 주고 사마셔?'라든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구? 이런 개같은...'와 같은, 저의 20대 시절, 우리에게 당혹한 질문과 당연한 판단으로 귀결되어졌던 것들이, 고작(?) 20여년 밖에 흐르지 않았거늘 어느새, 그 때완 완전히 정반대의 의미로서 당혹한 질문과 당연한 판단이 되어 있듯,
복제 과정이 거꾸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흡충이 뇌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뇌가 흡충을 모방하게 된다. (p29) …… 사람이 로봇을 닮아 가는 게 요즘 추세 아냐? (p253)
되돌아보니, "원래 애초부터 이곳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p183)가 맞는 말이었었다라는, "경고의 내용을 담은 예언이 가장 주목받는 건 참사를 미연에 방지했을 때가 아니라 예언된 참사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란 소설 속 한 구절을, 더 이상 소설 속 한 구절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에 대해서까지도 당신은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다시 말해, --- 1949년 발표되었던 조지 오웰의 「1984년」의 많은 부분이 현실로 보여졌었고 여전히 보여지고 있듯, 1963년에 프랑스 작가에 의해 발표되었던 「혹성 탈출」, 그리고 2017년 한국 작가들이 말해주고 있는 이 책 속 여덟 작품의 이야기들이 언젠가, 그러니까 뭐, 종원군의 아들? 혹은 손자 세대쯤?에선, 더 이상 예측이나 상상이란 단어로 국한되어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을, '당연'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상태'란 의미의 '개연'으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학은 개인적인 것이며 점점 더 개인적이 것이 되어가고 있다."
박주영 作, 「고요한 밤의 눈」중 p278, 다산책방, 2016.
이 나라의 소설가들이 … 쓰는 이유는 인간의 상상력은 완벽하지 않음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그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야말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p7)
알파고의 바둑이 완벽했었다 하더라도, '인간과 두는 바둑이 훨씬 더 즐거웠다'란 커제의 말처럼, 인공지능이 써낸 소설의 플롯이 제 아무리 완벽할지라도 여전히 우린, --- 약간의 헛점이 보이기도 하는, 인간에 의해 쓰여진 인간의 이야기에 더 빠지게 될 꺼라 믿어 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전, 이 믿음이 반박되어질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기만 합니다.
할머니의 협박과 간곡한 부탁으로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 다만 불붙인 담배를 손에 들고 그것이 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10년 내내 그랬다. 나는 입과 손의 그 거리만큼이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라 생각했다. (p256)
이런 생각과 표현이, 지능으로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믿기에, 소설 속 로봇이 털어놓는 바 그대로 - "간접경험들과 직접 겪는 것과의 차이 …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며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p49) - 사랑을 했었.었.었.었.고, 그로 인해 담배를 끊었.었.었.고, 그 사랑을 잃었.었.기에 다시금 담배를 피웠.어야 했던, 그 이후 겪어 온 여러 변주(variation)들이란 게, (제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대략,적으로) 딱히 희귀한 건 아닌, 암튼! (로봇은 못하고) 인간만이 직접 겪어볼 수 있는 경험이기에, 여전히/역시나 --- 우리에겐 훌륭한 소설에 열광할 이유와 기회와, 자신만의 개성과 독특함을 지닌 여러 작가들이 사라지지 않을 꺼라 믿습니다, with "어쩌면 당신이 있기에 소설의 종말이 조금 늦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p7)란 작가의 인사말에, 이제까지/지금보다 조금 더 읽고,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더 늦춰질 수 있다면,이란 소망을 간직하고 실행하는 독자가 되겠습니다,란 다짐과 함께이기에...
·
·
·
이 책에 실려 있는 <할망구 17호>의 작가 전건우C가 <여는 글 :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것>에 써놓으신, "이 책을 손에 들고 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바로 당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p7)란 겸손의 글에,
인공지능도 소설을 쓰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을 써내주셔서, 단지 써내줌에 그친 것이 아니라, 쾌감의 읽는 재미,와 인간으로서의 작가만이 독점할 수 있을 표현인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들에 대한 경탄 또한 만끽할 수 있게 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리노라는 (비록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할지라 해도) 인사를 드립니다.
※ 미래에 대한 소설들 : 「어떤 소송」, 「1984년」, 「혹성탈출」
... 금연 89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