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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High's Aim> ------------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가, 아빠와 엄마의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려서, 그걸 꺼내려고 침대 밑으로 들어간 사이, 몇 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쳐, 곤히 자고 있던 아빠와 엄마를 잔인하게 죽였고, 입을 막고 흐느끼지도 않으며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던 하이(High)는,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손목엔 전갈 모양의 문신이 있었으며, 그의 이름이 로우(Low)라는 걸 알게 되었고 …… 하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어코 로우를 찾아냈으며, 뒤늦게 하이를 알아본 로우는 용서를 빌지만 끝내 하이의 손에 잔인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근데 알고보니 그게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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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 모든 일 가운데 필연적인 것은 많지 않았다. …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조형과 부착으로 이루어진 콜라주였고 지금의 삶은 모든 어쩌다 보니의 총합이었다. (pp 126~127)
왜 하필 그 때, 장난감이 침대 밑으로 굴러 들어갈 수 있었던건지, 그 어린 아이가 그렇게 참혹한 상황에서도 울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을 수 있었던건지, 왜 그런 아이는 자라났다 하면 다 하나같이 원빈이나 공유같이 생긴 킬러가 되는건지,와 같은 모든 설정들은, 'ex ante & ex post'(의 관계)를 어찌하여도 성립시켜낼 수 없는 것이니, 아! 물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신다니까~'란 반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신은 동전 던지기도 하지 않으신다'란 재반론을 이겨낼 논리나 확증을 가지고 있지도 못한 것이니, 나름 맘 편하게, 간단하게 '세상 모든 어쩌다 보니의 총합'이라든가 등으로 돌려버리고 나면,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히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 作, 「마당뺑덕」중 p45, 네오북스 刊, 2014.
이제 우리 앞엔 그저 --- 퇴적된 우연으로서의 필연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베일을 벗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되는 건 예의, 누군가의 명백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라는 것만 남게 되는 겁니다. 자라고 보니 원빈이나 공유같은 외모가 되었고, 타고나기를 이소룡의 운동신경과 함께였었다 할지라도, 하이에게 자신의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의지가 없었었다면, 로우의 삶 역시 그처럼 끝이 나진 않았을꺼란 거죠.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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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발톱과 뿔은 누군가를 사냥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p51)
이 작품 「파과」에 등장하는 킬러, '투우'가 지니고 있(다 할 수 있겠)는 자질 - 영화 속 예를 들자면, '원빈이나 공유같은 외모'와 '이소룡의 운동신경' - 을 가리켜, 그의 삶을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하고 살아온 사람"(p35)인 킬러가 되는 것으로 만들어 낸 원인(causation)이었다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들은 단지 필요조건이었을 뿐이죠. 그 필요조건에 '투우'의 의지가 더해져, 실제 그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기회란 것이, 그에게 허락되었었으며, 정확하게 말하자면 허락되어질 수 있게 그가 만들어 내었었으며, 만약 그 기회를, 그러니까 이 소설의 마지막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들 속에서 '투우'가, 자신이 원했던 바를 이루어냈었다라면, 관객으로서의 독자는 과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 속>에서 보여졌던, (그 누구도 차마 부정할 수는 없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혹은 저지르고자 마음 먹은 죄에 대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정당성'과도 같은 무언가를, '투우'의 그 오랜 "의지"에게도 허용할 수 있겠느냐/허용해도 되겠느냐란 중요한 선택을 앞두게 됩니다. 물론, 그 반응은, 각자의 가치관/취향에 따라 (물론 대부분은 한 쪽으로 몰리겠지만,) 예의 둘로, 그러니까 예를 들어 <High's Aim>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 통쾌해!'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다수일꺼라 추측되는) 부류와, '저건 엄연한 살인이지~'란 불의(unrighteouness)를 느낀 부류로 나뉘어지겠지만,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조각'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조각'이었던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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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s Aim>의 하이가 이 작품 속 '투우'라면, 구병모의 이 작품 「파과」는, 제가 만든 이야기 그대로 이해되어질 수 있겠으나, 만약 작가에게 --- '지나친 작위'라는 비난을 감수할 의지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 소설 「파과」는, 하이가 '조각'일 수 있을, 원작 그대로의 <High's Aim>인 채, '투우'가 주인공이 되는 <Aim High>의 프리퀄로 변신되는 구조를 지닐 수도 있었다라 생각합니다. 이, 꼬이고 꼬인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바로,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p222)
소설의 주인공을 반드시 꼽아야 하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하더라도 이 소설의 주인공이 왜 반드시 '조각'일 것이라 거의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안타까움/불만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 거의 당연스럽게, 위 인용구에 걸맞는 인물은 '조각'일 것이라고, 그녀의 인생이야말로 너무도 일찍 갈변되어진 '파과(破果)'이라고, 심지어 도대체 이해해낼 수 없겠는 또 다른 선택지인 '파과(破瓜)'에서도 '투우'에게 할당되어질 수 있겠는 점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란 이 상황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 겁니다. 제게 보이는 '조각'의 삶이란 그저,
한번 구축된 조직은 이미 더 큰 질서 안에 포섭이 되어버리고, 그다음부터는 그 질서가 조직을 움직이는 것일세. 기계의 부품이 모두 빠지고 더 이상 대체할 게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일세. …… 그녀는 앞날에 대한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그것은 훌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pp 254~255)
'조각'으로 인해 p222의 인용구 속 "그러지 못한"의 당사자가 되어야 할, 그리하여 살아갈, 그리고 살아온 삶 속에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작동시켜 놓았던/놓을 수밖게 없었던 '투우'완 달리, --- '조각'의 삶은 그저 '훌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 그 이상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라, 전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 '조각'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p332) 가졌었었거늘, 그러했다하여, '파과(破果)'로서의 이 작품을 온전히 그녀만의 이야기로 보는 것은, 그녀 '조각'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조각(shaped)된 삶을, 즉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살아지게 된(destined to live) '투우'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죠. (심지어, 죽게 되는 역할마저도 '투우'의 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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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s Aim>에 등장하는 로우. 그 역시, 그가 어릴 적, 하이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부모님을 잃었었던 거라면? 그래 그 복수를 한 것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 우리는 부모의 복수를 완성시킨 하이에게 박수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까요? 이 작품 「파과」가 이처럼, <Aim High>라는 후편을 낳을 수 없는 구도를 지니고 있기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조각'이어서는 안 된다라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니?라 질문받아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끝내 이걸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건,
지금 만난 게 저 사람인데!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해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p16)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억울한 임산부의 항변 역시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처자의 투정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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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에 읽었던 작가 구병모의 다른 작품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과 마찬가지로, 「파과」 역시, 예의 '네이버 국어사전'을 열어놓은 채 읽어야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하얀 꽃잎이 난분분히 뒤섞여"(p107)을 읽고는, 이 단어 '난분분히'를 작가가 참 좋아하는 모양이네, 마치 이건 모르는 영어단어를 완전히 암기하기 위한 반복학습 같잖아,란 생각이 들기도 했으며. "익숙하지 아니하여 서름서름하다"란 뜻의 '서어하다'란 단어를 비롯, "설의를 머금은 하늘"(p287)처럼 지금이라도 연애편지에 써보고 싶은 구절등, 아주 꼼꼼하게 사전을 찾아 기록해가며 읽어내었다란 뿌듯함만으로도 충분하거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서 보여주었던 "봄철의 꽃은 몰상식했다"의 경이로운 조합이, 이 작품 속에선
당신이나 나나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 (p202)
'부지런히'와 '허물어지다'란 두 단어를 함께 이어 써낸 문장으로, 다시 한번 저에게, 한국 작가가 한국 말로 써낸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읽는 쾌감'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만, 무엇보다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p317)
쉼표가 사용된 위치에 마저, 정말 별 것 아닌 그것에까지 감탄하게 되는, 화자(speaker)인 '조각'의 심정을 상상해보며 나의 목소리로 따라해봤던 이 한 마디는 제게 --- 문학 작품을 향해서는 아마도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것 같은 그 (의미로서의) 단어, "쌀 것 같..."다란 단어, 읽는 내내 제 머릿 속에서만 맴돌던 이 단어를, 기어이 이렇게 적어내게 만들어 줍니다. 이 작가, 은근 집요하며, 은근 늘어지는 문장을 즐겨 쓰고, 단 번에 이렇게 제 마음을 사로잡은 점이 또한 은근, 하늘 나라로 가신 작가 주제 사라마구와 비슷하지 않나 싶...
¶다 쓰고 읽어보니, 이런 적이 있었던가, 싶을만큼, 오로지 이 작품 「파과」를 이미 읽은 분들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진, 읽은 분들을 이해시킬 수나 있을까 자신없는 독후감이 되어버렸네요. 결코 저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독후감이란 게 줄거리의 요약은 아니어야 한다란 생각에, 뭔가 정리되지 않은 채 혼란스럽기만 한 저의 요즈음,이 더해져, 이 소설에 대해 쓴 저의 독후감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네요. 왠지 죄송합니다,란 문구를 꼭 넣어놓아야 할 것 같은...
※ 읽어 본, 작가 구병모의 작품 :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금연 71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