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을 위한 마지막 경영 수업 -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4가지 필승 경영의 기술
아사쿠라 유스케 지음, 김수빈 옮김, 정은교 감수 / 더퀘스트 / 2022년 8월
평점 :
절판


영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경영(학)과 관련된 책을 많이/깊게 읽었다 말할 자신마저 없으나, 적어도 같은 상경계열인 경제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학문적으로가 아닌) 실무상 '경영'에 대해 (유정식의 정의(definition)에 약간 더 살을 붙여) 규정해 본다면 - 경제학에서 배웠던 '최적화'의 개념와 유사하게 - 'feasibility(실현 가능성)와 affordability(획득 가능성)를 충족시키는 자원을 찾아 구하고, 그것들을 (복수일 수 있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관리하는 (조직 내의) 전체 과정'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장을 위한 마지막 경영 수업"이라는, 뭔가 유언장스런 비장감을 내비치고 있는 제목의 이 책은, 그 '일련의 과정들(구매, 생산관리, HR/조직 관리, 마케팅, 전략 등등등)' 중 재무 분야(finance)에 대해 특화되어 있는, 관련하여 회계 분야(accounting)에 대한 보충적 사항도 상당 부분 가미시켜, (학문적 관점이 아닌) 철저하게 실무적 관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펼쳐내고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무에 대한 학문적 내용에 대한 입문서로는 미히르 데사이 교수가 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금융 수업」이라는 (지극히 촌스러운 제목의) 책을 강추합니다.)

재무가 '경영'이라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담당하는 부분을, 미히르 데사이 교수는 "첫째, 해당 기업이 이익을 얼마나 창출하고 있는가, 둘째, 해당 기업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가, 셋째,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는가?"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인지하고 분석하려면 재무이론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겠지요. 실무적 관점에서 쓰여진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그러한 재무 이론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스 지식이 애플리케이션이라면 파이낸스 사고는 그것의 바탕이 되는 운영체계라고 할 수 있다.(pp25~26)

네, 이 책은 지식이 아닌 사고 체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파이낸스 사고 ]

파이낸스에서는 기업 가치를 회사가 미래에 걸쳐 창출 가능한 현금흐름의 총액을 현재 가치로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p302) …… 이 책에서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재무 사고를 파이낸스 사고라고 부를 것이다. 많은 기업이 빠져들기 쉬운 손익 중심의 사고를 대신하는 개념이다.(p25) …… 이는 단순히 회사가 단기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창출 가능한 돈의 총액을 최대화하려는 발상이다. … 손익만 중시하는 발상으로는 사업을 확장하며 급성장하는 기업을 탄생시킬 수 없다.(p9)

자가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핵심은, 위에서 정의된 바로서의 재무적 사고가 왜 필요한지/중요한지에 대한 설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모든 장(chapter)에서 내내 (이렇게 말해줘도 안들을래?라는 식으로) 그 이야기가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지요. 

위에서 언급되고 있는 '손익 중심의 사고'는 쉽게 말하자면 '회계적 지식만으로 판단하는 사고'를 의미합니다. 이 사고를 대신하자 적혀있다하여, 저자가 회계에 대한 중요성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회계 역시 중요하지만, (회계적 지식 중, 일부만을 이용하는 좁은 범위의 적용이 초래하는 부작용과 더불어) 회계와 재무가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죠. "숫자를 정확히 읽으면 회사의 미래가 보인다!"라는 앞표지 뒷장의 문구처럼, 과거와 현재의 분석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회계와, 미래 시점에 대한 계획/대응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재무의 차이를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인 겁니다. 그 차이의 일례로, 

어떤 사업에 투입한 돈(자기 자본과 이자부부채)에서 이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를 ROIC(투하자본수익률)이라고 한다. 경영자는 ROIC가 WACC를 웃도는 사업에 자금을 투입해 ROIC와 WACC의 스프레드를 확대하려고 해야 한다. …… 그런데 실제 경영에서는 WACC보다 ROIC가 더 낮은 사업을 회사가 계속 가져가는 경우가 흔하다. 손익계산서상 수치만 보다보면 매출액의 절대액이나 영업이익의 절대액을 중시하게 되고, '흑자면 괜찮다'라는 발상에 쉽게 빠진다.(p318)

이익을 남기고 있는 자회사/사업부/제품 등을 매각 혹은 청산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손익 중심의 사고'를 하는 경영자라면 불가라는 답변을 하겠지만, '파이낸스적 사고'를 하는 경영자라면 보다 자세한 수치 분석을 통해 겉으로는 이익을 남겨주지만 응당 남겨야하는 (것으로 기대되는) 수준의 이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 난 자회사/사업부/제품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매각이나 청산을 통해, 보다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죠.

[ 파이낸스 사고의 어려움 ]

에 적었던 '경영'에 대한 규정 중, '목적 달성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구절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내용을 꼽아주고 있습니다. 

회사의 활동 가운데 핵심은 비즈니스다. 이는 어떤 사업을 시작하려고 계획하는 사업가가 필요한 자금을 투자자에게서 조달하고, 그 돈을 투자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서 제공한 대가로 얻은 돈을 투자자에게 환원하는 일련의 활동이다.(p63)

투자된 자금에 대한 환원을 하는 것이, 기업 활동의 (의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주 목적 중 하나라는 사실에 이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때 환원될 자금은 최초의 금액보다 당연히 커야 하겠죠. 그럼 얼마나 더 커야 하는 걸까요?

은행으로부터의 부채는 대출 계약 당시 정해진 이율이 있을테니, 그 이율에 맞춰 정해진 시기에 이자를 더해 상환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이 책의 표현을 따르자면) 에퀴티 파이낸스로 조달한 자금에 대한 추가 금액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① 현재 가치는 미래에 받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돈의 액면가를 할인율로 나눠 산출한다. 이 할인율은 원금이나 이자가 보장되는 금융 상품(보통은 국채를 이용)의 금리(무위험 이자율)에 그 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위험 프리미엄)을 더해서 산출한다.(p304)

② 회사 측에서 보면 영업외비용에 해당하는 이자를 받는 채권자보다 당기순이익(더 정확하게는 재무상태표에서 설명하는 이익잉여금)에서 배당을 받는 주주가 수익 배분의 후순위가 된다. 만약 수익이 채권자와 다르지 않은데 변제 순서는 뒤로 밀린다면 투자자는 회사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주주는 채권자보다 더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기 때문에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것이다.(p276)

은행의 대출 이율도 기본적으로는 위 ①번의 논리로 정해지겠습니다만, 채권자보다 더 높은 리스크를 감내하는 주주들에게는 ②번에서 설명하고 있는 논리에 따라 ('얼마나 더 많이'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제외한다하더라도 어쨌든) 은행 상환액보다는 '더 많이' 상환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얼마나 더' 많이 지급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명시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미히르 데사이 교수의 설명과 동일한 맥락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는 고사하고, 회계적으로는 적자가 계속되고 배당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는 기업이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투자를 통해) 존재할/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 역시, 파이낸스적 사고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파이낸스 사고는 회사가 영속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현금흐름의 최대화를 목적으로 하기에 시간 기준이 장기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 파이낸스 사고에서는 사업의 시간 감각을 토대로 자금을 조달하고 활용한다. 나아가 스스로 내린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이해관계자인 주주나 채권자에게 설명한다.(p69)

위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을 쉽게 보자면 IR 활동이 되겠죠. 시총이 크고 외부 주주의 비중이 큰 상장사에서는 교과서적인 IR 활동을 하고 있겠지만, (제 경험의 한도 내에서 본다면) 고만고만한 시총의 상장사에서는 제대로 된 IR 활동이라는 게 사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필요성조차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요. 대체 왜 그런 것일까란 그간의 제 의문에, 책 속 다음 구절은 (적어도 저의 경험 내에 있는 조직에 한해서는, 하지만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그러하리라 추측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줍니다. 

매출지상주의란 말 그대로 손익계산서상 매출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라고 여기는 사고다. …… 매출지상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매출액을 최대로 하기 위해 이익 획득은 뒷전으로 미루는 태도다. 기업 가치는 회사가 미래에 걸쳐 창출하는 현금흐름의 총액을 현재 가치로 평가한 것이다. 기업 가치의 측면에서 매출은 단순히 현금 획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지표에 불과하다. 매출을 늘린다고 반드시 이익이나 현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 물론 회사나 사업, 제품 특성에 따라 매출액의 최대화를 이익보다 더 우선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현금을 회수하겠다는 계획과 장기적인 전망이 있을 때 실시하는 단기적인 전략이다.(pp168~169)

전년 대비 매출의 신장과 영업 이익의 증가라는 목표가 주어지지만, 결국 결산월에 가서는 매출 절대액의 신장 (혹은 경쟁사 대비 우월)이라는 단기적인 결과에만 온 조직원의 신경이 향하는 기업에게, 주주를 위한 이익의 환원이라는 단계는 물론이거니와, (현재 가치화 한) 미래 현금흐름의 최대화와 같은 장기적 개념까지 감안할 것을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이겠죠. 그렇다고, 회사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내부 유보 등을 통해 잉여이익의 재투자를 (행여 한다해도 기껏해야 부동산 매입에 한정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만약 장기적 기업의 미래 가치 향상을 위해 (어떤 이유에서건) 배당을 하지 않겠다라 할 때 그러한 회사의 설명을 이해할만한 사정의 주주들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말이죠. 결국,

내·외부적으로 해당 기업이 지니고 있는 (종합적 의미에서의) '능력'이라는 게, 이론이 가르치는 내용이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못하게 되는 거의 유일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능력'이란 다름아닌,


과거 경영 부진에 시달린 도시바를 재건하기 위해 행정개혁을 실시한 도코 도시오 임시행정개혁주진심의회 회장은 '계획은 미래에 대한 의지다. 미래에 대한 의지는 현재로부터 성장하며, 무모하고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해 보여야 한다. 현재의 연장선상이 있으며,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계획은 오히려 예정이라고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스 사고는 여기서 말하는 예정이 아닌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사고방식이다.(p72)

취적으로 사고하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라!류의 cliche로부터는 생겨날 수 없는, 뭔가 쿵~하는 느낌을 받았던 구절입니다. 이 책의 핵심으로 표현될 수 있겠는, "계획은 미래에 대한 의지다. 파이낸스 사고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사고방식이다"라는 두 문장이 알려주는 바, 제 경험 상의 중소 상장기업이 지니지 못했던 건 파이낸스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행여 있었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었던 것이죠. 

아주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닌, 이 책이 매력적인 건 이처럼 ---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기본에 충실할 것을 지겹도록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 어떤 분이라도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이 파이낸스 사고에 대한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 재무(finance)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 :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금융수업

※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 「나의 첫 경영어 수업」 · 「빈 카운터스




[1] "경영이란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의 총합'을 일컫는다. 목적이 없다면 경영이 아니고, 목적만 있고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 또한 경영이 아니다" - 유정식, 「나의 첫 경영어 수업」중 p8, 부키, 2020.

[2] 미히르 데사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금융 수업」중 p29, 더퀘스트, 2021.

[3] 이전에 읽었었던, 「빈 카운터스」라는 책 역시, 회사의 경영 전반에 대한 실무적인 관점으로 쓰여진 책이었지만, '실무에만 몇 십년~'이라는 형용어구가 종종 보여주곤 하는 '본인의 전공 분야'만을 중시하는 편협함을 (이해는 하지만) 적잖이 느꼈더랬습니다만, 이 책은 일관되게 '파이낸스 사고'라는 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만, '편협함'이라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외려 '파이낸스'에 대한 좀 더 깊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나는, 뭔가 초긍정적인 영향을 남겨주었다고나 할까요? 

[4] "손익 중심의 사고란 기초적인 회계 지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파이낸스 관점이 결여되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보다 최근의 실적을 우선시하여 '눈앞의 손익을 최대화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의 지상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고와 태도를 말한다."(p45) …… "회계는 회사의 현재 위치를 알기 위해 필요한 스킬이다. 반면에 파이낸스 사고는 회사가 어느 목적지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구상하는 사고며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수단이다."(p99) …… "손익계산서와 현금흐름표는 사업 성과를 나타내는 자료이며, 재무상태표는 회사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를 포함해 보유하는 경영 자원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다."(p270)

[5] 예를 들면, 손익계산서상 자금의 규모와 현금흐름표상 자금의 규모가 경영진의 재량에 따라 의도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6] "파이낸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왜 흑자 사업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지 생각해 보자. 핵심은시간적 가치와 자본 비용이다. … 흑자 사업이라고 그대로 만족하기 보다는 미래에 창출 가능한 현금의 관점에서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p56) …… "비록 손익계산서 상 이익이 흑자라 해도 ROIC가 WACC보다 낮으면 이해관계자 (특히 주주)가 기대한 만큼 이익을 환원하지 못한다. 가령 ROIC가 낮은 사업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고, 앞으로 ROIC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면 ROIC에서 WACC를 뺀 마이너스 금액만큼은 선행 투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리라 예측할 수 없다면 경영자는 조속히 사업을 양도하거나 청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p58)

[7] 이 부분은 '매몰비용'의 개념은 반드시 적자인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①"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이미 써버린 시간이나 비용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결정을 내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p52) …… "흔히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매몰 비용의 개념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멀리 가기 전에 포기애햐 한다'고 말해야 한다. 과거의 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비용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맞다. 사라진 돈과 시간이 아무리 아깝더라도."(p56) - 하노 벡, 「경제학자의 생각법」중, 알프레드, 2013. ② "매몰비용이란,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회계에서는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에 매몰비용을 세세하게 따져 고려하지만, 재무에서는 자산 구매를 위해 사용한 금액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 미히르 데사이, 위의 책 p83)

[8] "회사가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법은 데트 파이낸스(debt financing)와 에퀴티 파이낸스(equity financing) 로 크게 나눌 수 있다. …… 데트 파이낸스란 알기 쉽게 말하면 차입금을 말한다. 금융 기관 등에서 회사가 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하면서 일정 기일에 전액 변제를 전제로 대출 받는 조달 방법을 데트 파이낸스라고 한다. 회사에 데트 파이낸스로 자금을 제공하는 회사나 사람을 채권자라고 한다. 또 다른 방법인 에퀴티 파이낸스란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에퀴티 파이낸스는 회사가 자사 주식을 발행하고 그 주식을 투자자와 교환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에퀴티 파이낸스 시에 발행되는 주식을 사는 사람은 회사의 주주가 되고 … 경영자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 창업할 때 출자를 했다면, 회사는 창업 경영자에게서 에퀴타 파이낸스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것이 된다."(pp277~278)

[9] "ROE가 모든 기업에서 유사한 값을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 기업들이 제품시장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지 않지만, 자본시장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 원인이다. 자본시장에서의 경쟁 탓에 주주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큰 편차를 보일 수 없다는 말이다. 수익률이 차이를 보인다면 자본은 수익률이 낮은 기업에서 높은 기업으로 흘러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p49) …… "그렇다면 모든 ROE값이 동일한 값으로 수렴하게 될까? 아니다. 그 원인은 수익률과 리스크의 관계에 있다. 주주들은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할수록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본시장 내의 기업 간 경쟁은 주주에게 돌아가는 수익률들이 큰 편차 없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리크스는 수익률간에 편차가 생기게 하여 이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pp29~30)

[10] "1995년에 서적 전자상거래 서비스 회사로 설립된 아마존은 오랫동안 손익계산서상 이익이 나지 않으면서도 거액의 선행 투자를 계속해 온 회사로 유명하다."(p105) …… "아마존은 수익을 새로운 투자로 돌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같은 주주 환원을 극도로 자제했다. 과거에 몇 번인가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1997년 나스닥 상장 이후 주주 배당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매우 보기 드문 회사다."(pp110~111)

[11] "밀어내기 수법(channel stuffing)을 쓰면 손익계산서와 현금흐름표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밀어내기는 결산기 말에 매출액을 조금이라도 많아 보이게 하려는 회사의 상투적인 수법이다."(p50) - 상투적이 아니라, 매 연말 즈음에 밀어내기를 정기적으로 행하는 조직입니다.

[12] 우리나라의 평균주식 보유기간은 약 8.6개월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단기 투자 성향이 뚜렷하다(황재원, <행동주의 투자자의 아시아 공격과 대응방안> 중, 한국경제연구원, 2017.02.)고 합니다만, 제 경험 내에 있는 (대체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생산 제품이 뭔지도 모르는 주주들이 태반인) 조직의 보유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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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와 소음 - 불확실성 시대, 미래를 포착하는 예측의 비밀, 개정판
네이트 실버 지음, 이경식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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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껍습니다.

말미의 <주석>을 제외하고도 735쪽이 되어서야 마침표를 찍는 책입니다. 통계를 다루고 있는 책인만큼,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속도를 낼 수도 없지요. 게다가, 사례들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미국 문화와 관련된 것들이어 (특히 체스 게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분은 거의 건너뛰었을만큼) '피부에 와닿는' 듯한 느낌 같은 건 아예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명확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매우 명확합니다. (심히 뭉뚱그려진 요약입니다만)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확률적으로 생각하라. …… 속도를 늦추고 의심하라."(p38)로 대변될 수 있지요. (이 책의 제목에도 사용되었고) 설명 과정에서 사용되는, '신호'와 '소음'이라는 단어의 정의(definition) 역시 (통계학에 문외한일지라도)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만큼 심플합니다.

나는 신호통계적이거나 예측적인 문제 뒤에 놓인 진리를 가리키는 암시로 정의하고, 소음신호라고 착각하게 하는 무작위 패턴으로 정의한다.(p677) …… 신호는 진리다. 소음은 우리가 진리에 다가서지 못하게끔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이 책은 이것들에 관한 이야기다.(p69)

▶ 그런데, 난감합니다.

책의 두께도 두께거니와,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범위가 방대하다보니 이 책을 적당한 길이로 요약하는 건 예의 제 능력 밖의 일이자 스타일에도 맞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요약의 대가인 조진래 기자가 혹 이 책을 다루었나 검색해보니 없더군요.) 거의 항상 그러해왔었듯, 저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부분만을 발췌해 정리해볼까 합니다. (오는 11월인가부터 사용이 중지된다는 기존 방식의 에디터에서 제가 유용하게 사용했던 각주 기능이, 이 스마트 에디터인가에는 없을 거라네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자 하는 첫 노력이 결부된 첫 시도이기도 합니다. --;;)


측(forecasting)이라는 단어는, 비록 오늘날에는 별 차이 없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 점쟁이를 주어로 주로 삼는 동사였었던 '예언(predict)'이라는 단어와는 (적어도 통계학적으로는) 구분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사용되고 있는 '예측'이라는 단어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우주의 작동에 불규칙한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그 인과관계를 확립하고, 또 배후에 있는 규칙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 데이비드 핸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중 p28, 더퀘스트, 2016.

데이터를 이용하든 그렇지 않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추측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거와 (심지어는) 현재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의 양과 질(정확성)은 사안마다 또 사람마다 대부분 천차만별이기도 하지요. 이 때,

A라는 사건(event)이 미래에 '발생할 것인가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可不라는) 가장 간단한 경우를 보자면, 그 여부를 예측함에 있어 과거의 사례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매우 적거나 전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예를 들자면 --- 제가 지금 동전을 10번 던져서 그 결과를 놓고 당신과 내기를 하려 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경우의 수와 그 각각의 (이론적) 확률은 저나 당신에게 이미 알려져 있는 케이스입니다. (앞 0 & 뒤 10, 앞 1 & 뒤 9, …… 앞 9 & 뒤9, 앞 10 & 뒤 0) 하지만, 오늘 저녁에 제가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광화문 사거리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예측은, 앞서와 같이 참조할 만한 사전(社前)적 분포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경우이지요. 통계학에서는 이 두 case를 각각 'risk'와 'uncertainty'로 구분합니다.

그 어떠한 경우든 어쨌든 --- 예측이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아직 발생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있는 행위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측은 100%라는 확실함의 정도를 보장할 수 없으며, '과거'를 대상으로 한 사후(事後)적 해석은 결코 '예측'이라 불리워서는 안 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정식의 다음 지적은 기업 실무에서도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 "전문가나 일반인이 매번 예측에 실패하는 이유는 본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해 내려고, 다시 말해 '맞히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p178) …… "요컨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맞히는 게 예측이 아니다. 발생 가능한 여러 케이스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 예측이다."(p185) - 유정식, 「나의 첫 경영어 수업」중, 부키, 2020.) 이처럼,

예측은 개념적으로 현재를 포함한 앞으로의 '상황 변화'에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를 보완하는 정성 분석(qualitative analysis), 다시 말해 '인간만이 갖고 있는 능력'의 중요성은, 제 아무리 컴퓨터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저자의 의견 역시 동일합니다.

정확한 예측을 하는 열쇠는 순전히 계량적이기만 한 정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모든 유형의 정보를 적절한 맥락에서 파악하는 좋은 의사결정 과정을 구축하는 것이다.(p201) …… 정보는 맥락에 놓일 때만 비로소 지식이 된다. 맥락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신호와 소음을 구분할 수 없다.(pp726~727)

런데, 데이터에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몇 가지 문제가 발생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점들의 수많은 사례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문제의 원인은 크게 보아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과 인간 능력의 한계로부터 초래되는 것들로 구분되어질 수 있습니다.

#1. 인간의 본성 : 편견 / 집착

1440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은, 새로은 '기계'의 발명이라는 상황 자체보다는, 그것이 초래한 '정보의 축적과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라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참고로, 인쇄술의 발명을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 해석과 연결하는 저자의 시선은 정말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홍훈 교수의 행동경제학 강의」에서도 보았듯, 인간은 그 어떤 기준에서 보아도 결코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다만, 여러 기준에서 합리적이 되려고 노력은 한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예측과 관련하여, 저자 네이트 실버가 제기하고 있는 인간의 비합리성은 '편향/편견'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은 때로 '계량적'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개인적 편향과 편견 너머에 있는 진리를 바라본다는 뜻이다.(p157)

즉, 인간의 본성(이라고까지 일컬어질 수 있겠는)인 편견, 다시 말해 주관성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예측이 틀리게 된다라는 주장입니다. (분야에 따라서는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겠으나) 현대에서 데이터의 부족으로 인해 예측 분석의 오류가 발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는 달리 표현해 --- 데이터를 더 많이 달라, 그러면 더 정확한 예측을 내놓겠다라는 주장이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지니고 있는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관련하여, 

저자는 예측가의 성향을 (UC Berkeley의 필립 테틀록 교수를 인용하여)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가 TV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게되는 패널들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고슴도치과(科)가 더 환영받(기에 더 많이 출연하)는 경향을 보인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 결과가 출연 빈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죠.

테틀록은 여우가 고슴도치보다 예측을 상당히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p128) …… 고슴도치의 경우 더 많은 사실을 마음대로 활용할수록 그 사실들을 자기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 (p132) …… 고슴도치들은 자기 편견을 증거에 갖다 붙임으로써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p133)

어쨌든, 우리 안에 내재된 편향/편견, 혹은 집착 등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는 거짓말/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는 (데이터가 아닌, 단순히 수학적 의미로서의) 숫자(number)를 곡해하고 맙니다.

예측이 '언제나' 주관적 관점으로 오염된다는 점분명한 사실이다.(p65) …… 더 많은 정보가 오히려 빗나간 예측을 유도할 수 있다. 예측가가 그 많은 정보를 통해 진리를 파악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예측하는 데 동원하는 일이 빚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경우다.(p187)

위 인용구에 등장하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이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 물론 다분히 고의적인 경우도 포함하겠으나, 그같은 (일종의) 사기(fraud)의 경우를 제외한다하더라도 - 인간에게 드리워져있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제약(?)은, 많은 "예측'에서 오류를 낳게 합니다. (이에 대한 지적이 새로운 건 아닙니다. 이 책이 지닌 장점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에도 있지만, '기존의 사실을 정리(categorize)'해주고 있는 점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확증 편향'이 단지 예측의 정오(正誤)의 판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그나마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늘어나고, 그리하여 우리가 자연을 (지배할 수는 없으나) 더 많이 이해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 하여도,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사회의 갖가지 현상들에 대한 지배력이나 이해까지 함께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건 이같은 편견/편향들이 꽤 심각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점이 대두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100년에 한 번씩 오는 대규모 폭풍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발생할 확률이 변하는 것은 아니죠." - 애덤 쿠하르스키,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중 p197, 북라이프, 2016.

자연과학에 관해서는 이러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갖게 되는 주관적 판단이 실제의 객관적 사실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요.(그 역(逆)은 성립됩니다.) 하지만, 위 인용구 속의 '대규모 폭풍'을 '대규모의 주가 폭락'으로 치환시키면, 주관적 판단이 객관적 사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란 주장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의 판단만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판단, 그리고 본인의 그 판단과 상호 작용을 하는 타인들의 판단이 자아내는 결과가 사회적 예측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라는 점을 심각하게 인지하여야 하는 겁니다. (현대 통계학이 기반을 하고 있는 정규분포 가정은 서로(의 판단 혹은 행동)가 상호작용을 하는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여타의 원인들도 있겠습니다만) '자기충족적 예언'과 '자기부정적 예측'이 그 주요한 원인(cause)이자 결과를 자아내는 주요 기제(mechanism)로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인간 활동에 대해 예측할 때 많은 경우, 예측이라는 행위 자체가 예측 대상자들의 행동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때로 행동의 이런 변화들은 경제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측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영향은 예측을 더 정확하게 할 수도 있고 완전히 빗나가게 할 수도 있다. 독감을 비롯한 전염병 예측은 이 두 방향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예측이 예측 내용을 스스로 실현하는 것을 자기충족적 예측(self-fufilling prediction) 또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filling prophecy)이라 한다. …… (이와는 반대로) 자기부정적 예측(self-canceling prediction)은 자기충족적 예측과 정반대다. 예측이 그 자체로 예측 내용을 약화시킨다. …… 독감 예측의 기본 목적은 독감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준을 높여 백신 접종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대중의 행동을 바꾸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독감 예측은, 이 예측 덕분에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행동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예측이 빗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pp375~380)

이 구절을 읽는 순간, Covid-19에 대한 방역 당국의 예측에 대해 '괜한 호들갑이었다'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가졌었던 저 역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편견/편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허나 그렇다하여, --- 그러한 방역당국의 '호들갑'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노라 말할 수 없을 가능성 또한 책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외삽(extrapolration)[21]은 예측의 매우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그런데 과용되기 일쑤다. 외삽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추세가 앞으로도 무한하게 계속 이어지리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빗나간 예측으로 유명한 것 다수가 이런 가정을 너무 방만하게 적용한데서 빚어졌다. …… 통계적 관점에서 볼 때 더 큰 문제는 기하급수적 증가가 진행되는 분야에 외삽 방법론을 동원할 때에는 정확한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 예측 범위가 너무 넓어서 유용한 예측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pp368~371)

#2. 인간 능력의 한계

배가 고프면,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될 수 있습니다. 예측 행위도 마찬가지여서, 예측에 자신이 없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와 과도할 정도의 복잡한 모델로 그 불안함을 감추려 한다라 저자는 말합니다. 과도한 데이터의 이용은 심심치않게 (어느 정도까지는 말이 되는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의) 터무니 없는 오류를 자아내기도 하며, 복잡한 모델의 구축은 '과적합(overfitting)' 문제를 야기하는 우(愚)를 범하곤 한다는 것이죠.

통계학에서는 소음을 신호로 잘못 인식하는 행위를 가리켜 '과적합(overfitting)'이라고 부른다. …… '일반적인'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지나치게 특수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과적합이고, 과적합은 더 나쁜 예측을 유도한다. …… (과적합 문제는) 언뜻 보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실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건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으로 데이터 구조를 훤하게 다 꿰뚫고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증거에서 그 구조를 추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한정되어 있고 소음이 많을 때, 그리고 데이터 안에 내재하는 근본 관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대개 과적합의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사정은 지진 예측에서도 마찬가지다.(pp298~303)

독립변수(설명변수)들로부터 종속변수의 관계를 수식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그 수식의 설명력 정도를 나타내는 결정계수(coefficient of determination : R)이라 부르는데, 0에서 1의 범위를 가지는 이 값은 1에 가까울수록 설명력이 높은 회귀식으로 인정받게 됩니다.만약 제가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 소속 타자들의 시즌 타율을 예측하는 것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쓴다고 할 때, 남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변수들 5개를 대입했을 때의 R 값(예를 들어 0.55)보다, 제가 나름대로 추측하여 3개의 설명변수를 추가하여 총 8개의 설명변수로 R값을 뽑았더니 0.8이라는 놀라운 값이 나왔다 할 때, 비록 그 3개의 추가된 변수들이 (누가봐도 타율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라 여겨질) 선수 개개인의 '비행기 탑승 경험 횟수', '가족 구성원의 수', 그리고 '보유 차량의 배기량'이라 할지라도 과연, 0.8을 낳은 그 3개의 추가된 변수를 과감하게 제외하고 0.55의 R값을 보이는 모델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라 상상해본다면, 그 누구든 추가된 3개 변수에의 미련을 버릴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 그러한 3개의 변수를 추가한 회귀방정식은 엄연히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결과인 것이고, 십중팔구 미래에 대한 예측에서는 '소음'으로 작동하여 더 형편없는 예측치를 내놓게 되겠죠.

'매개변수가 넷 있다면 나는 코끼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 매개변수가 하나 더 있다면 난 이 코끼리가 몸을 흔들게도 할 수 있다.'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한 말이다. 과적합은 '엎친 데 덮치는' 격이다. 과적합 모델의 연구논문에서는 '더 나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더 나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후자의 특성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 예측하는 데 동원될 경우 호된 대가를 치른다. 이 모델은 또한 전자 때문에 겉보기에는 더 인상적이다. 매우 정확하고 뉴스 가치가 있는 예측을 할 수 있으며 과거에 사용된 여러 기법보다 훨씬 나은 듯 보인다. (물론 이는 참담한 실패와 그에 따른 호된 대가를 치를 때까지 뿐이다) 그렇기에 이런 모델은 학술지에도 좀 더 쉽게 발표되고 고객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반면 좀 더 정직한 모델은 시장에서 내쫓긴다. 그러나 과적합 모델은 신호가 아닌 소음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정확성, 다시 말해 과학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p304)

이처럼, 인간은 자연의 구조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과적합'이라는 실수를 쉽게 벗어내지 못합니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 이는 신에게만 가능한 일이지요. (또한 신이 창조했기에 인간은 가능하나, 인간이 발명한 과학 기술로는 여전히 불가능한 일들도 있지요. 「수학의 쓸모」에서 저자들은 '보청기'를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이처럼! ---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의 발언으로 유명해진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가 점점 더 많아진다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해줍니다.

정보화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고 또 우리 도처에 스며 있는 위험 가운데 하나는, 지식의 양이 아무리 넘쳐나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과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p115) …… 날씨에서 문제의 상당 부분은 초기 조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는 기상 시스템의 작동 규칙은 매우 잘 알지만, 구름이나 폭풍우, 허리케인을 이루는 모든 분자의 위치는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확률론적 예측을 하는 것이다. …… 예측이 필요한 것은 꼭 세계 자체가 불확실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 밖이기 때문이다.(pp451~452)

이처럼,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의 참 모습을 알 수 없다라는 (피조물로서 갖게 되는) 근본적 한계 이외에도, 인간은 '정보의 양(量)이 적어도 혹은 많아도 문제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정보가 적은 경우는 너무 당연해서 차치하더라도) 체스나 바둑에서처럼 경우의 수가 두뇌가 감당해낼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게 될 때에도 우리 인간은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없게 되지요.


렇다면, 그러니까 이같은 인간의 편견 혹은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결코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적어도 단번에 항상 올바른 예측을 할 수는 없을 수 있을지 몰라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다보면, 그리고 그 시행착오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 인간도 '더 나은'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베이지언 추론'이지요.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미래의) 불확실함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동적 대응을 추구한다라는 겁니다. (이 책의 역자인 이경식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베이지언 추론을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 "기존의 통계학이 멈춰 있는 과녁을 맞히는 것이라면 베이즈주의 통계학은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것이다."(p733))

베이즈 정리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당신이 갖는 주관적 인식이 사실은 진리에 대한 어림짐작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p722) …… 베이즈 정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때마다 기존의 예측을 업데이트하라고 주문한다.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구글처럼 진짜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들은 예측 모델 구축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예측 모델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자기 모델이 과거 데이터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설명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 어떤 예측 모델이 소음을 놓고서 신호를 포착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과적합 오류를 범하기는 아주 쉽다. 예측을 '미래 사건에 엄격하게 적용되는 어떤 것'이라고 확실하게 정의하는 것만이 이런 오류를 저지를 위험을 줄여준다.)(pp72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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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유능한 예측가인지 아닌지 아주 간단하게 알아보려면, 정보가 더 많아질 때 여러분이 하는 예측의 질이 나아지는지 확인하면 된다.(p201)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베이지언 추론'을 알고 있는 지금과, 알지 못했던 과거에 접하는 위 인용구의 의미가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는 점, 그 진정한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면, 이 두껍고 그러나 명확한, 허나 정리하기엔 참으로 난감한 이 책을 읽어낸 보람을 한껏 즐기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라기 보다는, 기존의 많은 책들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다라는, 앎의 정도가 이해의 정도를 또한 견인한다라는 점을 배울 수 있었던, 매우 유익한 독서였었습니다. 그 어떠한 목적으로든, 세상을 보다 올바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신다면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선택은 언제나 당신의 몫으로... ^^

(그나저나, 이 새로운 에디터에 익숙해지려면 꽤나 노력도 하고 시간도 걸릴 것 같습니다. 중간에 각주 하나 추가되면 이후로 번호 수정하는 것도 꽤나 일이네요. 뭐, 이 에디터가 모바일에 최적화되어 있다 하는데, 제가 쓴 글은 모바일로 봐도 별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뭔가 헛고생 한 것 같은데, 글 쓰는 스타일을 바꿔야할지, 플랫폼을 아예 바꿔야하는 건지... --;;)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수학의 쓸모」 ·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팩트풀니스」 · 「벌거벗은 통계학」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1] "나는 <신호와 소음>이라는 이 책의 내용을 자동차에 붙이는 스티커에 들어갈 정도로 압축한다면 무엇이 될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생각하라'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기에다 스티커 하나를 더 추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스티커의 내용은 이렇다. '속도를 늦추고 의심하라.'" - <개정서문 : 더 나은 확률적 사고를 위한 두 가지 제안> 중 p38.

[2] "여러 상황이 벌어질 확률 분포를 (객관적, 혹은 주관적이든) 알고 있을 경우는 '리스크가 있을 때의 의사 결정'이라고 부른다. 또, 이 확률 분포를 전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불확실한 때의 의사 결정'이라고 한다." - 나카무라 지카라, 「정량×정성 분석 바이블」중 p70, 한스미디어, 2019.

[3] "불확실성은 예측의 본질이다."(p652)

[4] "'현재의 정보를 가지고 과거의 판단을 추론하는 것'은 예측 행위가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이 같은 식으로 '과거를 예측'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따라서 예측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p294)

[5] 과거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통계' 또는 '정량 분석(quantitive analysis)'과 '예측(forecasting)'은 또한 구분되어 이해해야 합니다. '통계'에 대한 야구 전문기자 레너드 코페트의 다음 지적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지요. :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통계는 앞으로 해낼 일의 능률을 재는 잣대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일의 효능을 잰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앞날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서술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움직이는 야구라는 경기에서 일부만을 임의로 뽑아내 숫자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레너드 코페트, 「야구란 무엇인가」 중 p366, 황금가지, 2009.

[6] "예측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p395)라는 저자 네이트 실버의 지적, 그리고 추천사를 쓴 송길영의 "데이터는 결과를 통보해주는 사신(messenager)이 아니라 원인을 알려주는 도구"(p7)라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하는 문구입니다.

[7] "정보기술 분야에서 최초의 혁명은 인쇄술과 함께 일어났다. 1440년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자 대중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 인쇄술은 전혀 예상 밖의 것부터 낳았다. 바로 수백 년에 걸친 종교전쟁이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여러 갈림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한 시대가 전개되었다."(p46) ……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흔히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토록 비극적인 이유는 바로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과 운명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자기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그 무렵에도 중요한 목표였다.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룰 역량까지는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운명을 시험한 사람들은 보통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곤 했다."(p50)

[8] "고슴도치는 거창한 생각, 곧 세상에 대한 지배적 원칙, 물리학 법칙이자 사회의 모든 상호 작용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처럼 작동하는 거대한 원칙을 믿으며, …… 언제나 큰 녀석 하나를 노리는 사냥꾼"(p127)

[9] "여우는 … 수없이 사소한 생각들을 믿으며 또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관심이 사방팔방으로 뻗치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유형이다. …… 무언가를 부지런히 줍고 다니는 채집자"(p127)

[10] 엄밀하게 말하면, 고슴도치와 여우는 양 극단의 표상이고 현실에서는 이 양 극단 사이의 스펙트럼으로 구분됩니다.

[11] "같은 예측이라도 크고 대담한 예측을 하는 고슴도치에게 텔레비전 출연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간다."(p129)

[12] "수치 자체는 스스로를 변호할 길이 없다. 수치를 대신해 우리가 한다. 우리는 수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다."(p56) 

[13] "실재(實在)하는 인과관계를 반영하는 패턴과 그렇지 않은 패턴을 구분하는 능력 … 과학은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일 따름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 눈에 띄지만 어떤 원인도 없고 단지 우연인 패턴은 보통 미신의 기반을 이룬다. 미신이란 실재로는 없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예컨대 도박판에서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입맞춤을 하면 6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믿음 … 은 미신이다." …… "일단 형성된 미신은 저절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 사람들은 자신이 품은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사건에만 주목하고 반례는 무시하곤 한다. 이런 경향을 일컬어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예컨대 내가 검은 고양이를 본 다음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는 사실을 검은 고양이를 보면 불길하다는 증거로 간주하면서, 검은 고양이를 보고도 넘어지지 않은 경우들은 무시하는 것이 확증 편향이다." --- 데이비드 핸드,「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중 pp30~34, 더퀘스트, 2016.

[14]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선택했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부분을 무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이야기가 있는 정보, 즉 극적으로 들리는 정보다." - 한스 로슬링 외, 「팩트풀니스」 중 p148, 김영사, 2019.

[15] "인간은 자연현상의 과정과 경로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p219)

[16] "자연법칙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는다. …… 인간 지식의 총량이 확대되는 한 우리는 자연의 여러 신호를 점점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연의 비밀을 전부 알 수는 영원히 없겠지만 말이다. …… 하지만 세상살이가 점점 더 '예측' 가능할 거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쩌면 그 반대가 맞을지도 모른다. 과학은 자연법칙의 비밀을 밝혔지만 동시에 사회의 조직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p721)

[17] "주가를 추측할 때 투자자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지를 예상하는 것이다. 회사가 근본이 탄탄하다고 해서 그 회사의 주가가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그 회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애덤 쿠하르스키, 위의 책 pp184~185.

[18] "정규분포는 개별 사건들이 독립적이고 분포에 미치는 영향력이 각각 동일할 경우에 성립된다. 학생들의 신장(키)이 정규분포를 띠는 이유는 키에 대해 학생들이 상호 작용을 하지 않고 학생 한 명이 표본에 추가될 때 분포에 미치는 영향력이 각자 동일하지 때문이다. 하지만 … 개별 사건들이 네트워크로 얽혀 있고 특정 사건의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높다면 정규 분포는 현실을 올바로 표현하지 못한다." - 유정식, 「빌게이츠는 왜 과학책을 읽을까」 중 p19, 부키, 2019.

[19] "(전염병 예측에 대한) 행위자 기반 모델은 … '질병 예측의 자기부정적 특성' 때문에 (제대로 상황을 예측해놓고도) 비판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모델이 특정한 조치가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제안했다고 치자. 그래서 조치가 내려졌다! 또 이 조치가 효과를 거두어 실제 현실에서 문제의 전염병 확산이 주춤해졌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조치가 너무 과했던 게 아니었을까 의심한다."(p393)

[20] 니얼 퍼거슨은 그의 저서 「둠 : 재앙의 정치학」에서 일반적으로 재난에의 대응으로는 '호들갑'이 차라리 더 낫다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 "재난이란 본질적으로 예측불능이며,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다. …… (이처럼) 재난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상사태가 터질 경우를 대비해 맞춤형 매뉴얼을 준비한다는 등의 관료적인 행태보다는 차라리 모든 사태에 대해 호들갑에 가까이 대응하는 편이 낫다." -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중 p16, 21세기북스, 2021.

[21] "이용가능한 자료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 그 범위 이상의 값을 구할 수 없을 때 관측된 값을 이용하여 한계점 이상의 값을 추정하는 것" - 네이버 백과사전

[22] "그 많은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때문에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인과관계를 상상하곤 한다. 미국에서 슈퍼볼 우승팀이 경제성장의 '선행지표'로 유명세를 떨치던 때가 있었다. …… 이 지표는 1997년까지 31년 가운에 28년이나 주식시장의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 물론 그건 '우연의 일치'였다. …… 사실 당첨 확률이 1억 9,500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파워볼 복권이라 해도 매주 누군가는 이 복권에 당첨된다. …… 마찬가지로 수백만개의 통계적 지표 가운에 몇몇은 우연하게도 주식가격이나 GDP 성장률 또는 실업률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슈퍼볼 승자가 아니었더라면 우간다의 닭고기 생산량이 그 지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계는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pp328~330)

[23] "과적합(overfitting)은 어떤 모형이 학습 데이터 안의 무작위적인 노이즈 신호만 기억하고 기본 패턴을 학습하지 못할 때 생긴다. 과적합 모형은 과거를 매우 정확하게 기술할지 모르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서툴다." - 닉 폴슨 · 제임스 스콧, 「수학의 쓸모」 중 p98, 더퀘스트, 2020.

[24] "종속변수의 총변동은 설명변수에 의해 설명되는 변동분과 설명되지 않는 변동분의 합으로 분해된다. 총변동에서 차지하는 설명되는 변동분의 비율을 R 이라고 한다. R값은 회귀직선의 설명력이 최대일 때 1이 되고, 최소일 때 0이 된다. …… 설명변수가 추가될 때마다 R값이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 설명변수의 수가 다른 여러 모형 가운데 하나의 모형을 선정할 때 R값을 여러 모형에 걸쳐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류근관, 「통계학」 중 p178, 법문사, 2013.

[25]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무관한 신호들 중에서 의미 있는 신호를 찾아내는 일은 훨씬 쉽다. 물론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신호 하나가 마치 수정처럼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그 신호가 어떤 재앙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르다. 신호는 모호하며 다른 가능성을 가리키는 온갖 의미로 가득하다. 그 신호는 '소음'으로 가득한 공기 속에, 다시 말해 특정 재난을 예측하는 데 쓸모도 없고 관계도 없는 모든 종류의 정보 속에 담긴 채 관찰자에게 온다."(p679)

[26] "1814년에 라플라스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상상의 존재를 후대 사람들은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라 부른다. - '우리는 현재의 우주 상태를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런데 특정한 순간에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위치를 알고 있는 지적 존재가 있다면, 그리고 이 지적 존재의 지성이 모든 자료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면, 이 존재는 우주에서 가장 큰 물체부터 가장 작은 물질인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운동을 단 하나의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적인 존재에게 불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이 지적 존재를 미래를 과거처럼 자기 눈으로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pp223~224)

[27] "말소리를 주변 잡음과 구분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여러분의 뇌는 이 문제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대처한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잡담 소리가 가득한데도 여러분은 친구의 말을 대체로 알아들을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여러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데, 바로 그런 까닭에 보청기를 끼는 사람들이 여태껏 계속해서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 닉 폴슨 · 제임스 스콧, 「수학의 쓸모」 중 p184, 더퀘스트, 2020.

[28] "알려진 앎(known knowns)이 있다. 우리가 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알려진 미지(known unknowns)가 있다. 현재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가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p683)

[29] "체스와 같은 게임에서 정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에게는 모든 것이 보인다. 말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상대가 어떻게 말을 움직였는지도 안다. 플레이어들이 사건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게임에 운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애덤 쿠하르스키,「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중 p247, 북라이프, 2016.

[30] 저자는 이를 "조금씩 조금씩 덜 틀리는 법"(p400)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31] "'사전믿음 + 사실(데이터) = 수정된 믿음'"(p126) …… "베이즈 규칙은 새로운 정보가 입수됐을 때 기존의 믿음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려준다."(p133) …… "베이즈 정리는 정보가 증가함에 따라 확률이 변해가는 과정을 조건부 확률을 이용하여 묘사해 준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정보는 확률을 계산할 때 새로운 조건을 가져다 준다. 새로운 조건하에서 원하는 사건의 확률을 업데이트할 때 베이즈 정리를 사용한다."(p206) - 닉 폴슨 · 제임스 스콧, 「수학의 쓸모」 중, 더퀘스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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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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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혈?

'자신의 피는 돈을 받고 판다'라는 의미의 '매혈'에 관한 소설입니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동일한 소재이지요.1 위화의 작품을 읽었을 땐, 당시 처음 접했던 문화대혁명의 실상이 놀라워, '매혈'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못했었습니다만, 오직 '매혈'만을 다룬 옌렌커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대체 '당시'의 '중국 사람들'은 '' 피까지 팔아야 했던 걸까란 의문이 생기더군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작가의 고향인 허난성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보아 1970년 중후반 즈음2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의도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외국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에 관해 읽을 때면, '당시 우리나라는 어떤 시대였지?'란 의문을 종종 가져보게 됩니다. '1970년대 중후반'의 시기라면 중국과 한국의 현실 간에 엄청난 큰 차이가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기에, 혹시? 하는 생각에 검색을 해봤더만,



'매혈인파'(1975년 서울대 병원 앞, 전민기 作) - 노컷뉴스, 
2015.02.05, "매혈세대와 꽃노년" 중.

 

'매혈'이라는 단어와 행위에 대해, 1969년생인 제가 놀랐다라는 자체가 차라리 놀랄 일이라 여겨질만큼, 그 즈음의 우리나라에서도 엄연히 존재했었던 현실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975년 속 사진의 저 분들은 아마도 지금쯤이면 대략 7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이 되셨겠죠. 우리가 실제로 만나뵐 수 있는 분들의 역사인겁니다. 다시 한 번, 곰브리치의 경탄3을 그저 경탄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한 번의 경험을 해봅니다. 



위 전민기 작가의 사진에 대해, 어느 기사는 '학비와 생계비 마련'이 당시 매혈의 주된 이유였었다라 적고 있습니다. 이 작품 「딩씨마을의 꿈」속 딩씨 마을 주민들에게도 매혈의 연유는 역시 돈일 수 밖엔, '매혈'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이미 보이듯 돈 이외의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었죠. 


가난뱅이로 살 건지 부자로 살 건지는 여러분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 여러분의 딩씨 마을은 현 전체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입니다. 정말 형편없이 가난하지요. 부자가 될 건지 계속 가난뱅이로 남을 건지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해보세요. 다른 현들은 일찌감치 미친 듯이 피를 팔아서 마을에 한 채 한 채 건물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딩씨 마을은 해방4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공산당이 지도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사회주의가 실행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을 여기저기에는 초가집이 이어져 있을 뿐이지요.(pp61~62)



#2. 상징과 주체의 조작

위 인용구는, 매혈에 미적지근한 딩씨마을 사람들을 앞에 놓고 상급기관인 현 교육당국의 관리가 매혈의 독려를 위해 한 연설입니다. --- 당시 중국 정부가 주창했던 '혈장경제(Plasma economy)'란 "국가와 성() 보건당국이 주민들의 피(혈장)을 헐값에 사들여 혈액제제 제약회사에 비싸게 팔아 넘기는 매혈 경제"5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뭐, 집에 있던 솥까지 거둬 철강을 만들어내려 했던 중국 정부이니 뭔들 못했겠습니까. 암튼! 위의 인용구에서 나타난 ①상징의 조작과 ②주체의 조작은, 이 소설에 담겨진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상징의 조작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이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중 p109, 위즈덤하우스, 2012.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 중 재인용)


현의 관리는 '초가집'이라는 단어를 '가난함'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고 2층 양옥이 들어서있는 다른 마을과 비교하자면 딩씨 마을의 비포장도로와 초가집이 '가난함'의 상징으로 차용된 것을 억지라고는 볼 수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 물신(idol)의 한 폐해로 류동민 교수가 지적했던 악습인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것, 죽은 남편에 대한 성실의무를 다하기 위해 본능을 억압하고 수절하는 것"6이 내포하고 있는 '수단과 목적의 전이'7를 상기해본다면 우리는, '초가집'이라는 단어가 의식의 전환을 위한 일 도구로 의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천년만년 노천에서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보던 재래식 화장실도 좌변기가 설치된 실내 화장실로 바꿨지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좌변기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똥이 나오지 않자 다시 건물 밖에 있는 노천에 쭈그리고 앉아 변을 볼 수 있는 구덩이를 팠다. 건물의 화장실에는 세탁기도 한 대 있었지만 어머니는 대야를 마당에 내놓고 손으로 빨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좌변기는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세탁기 역시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냉장고도 있었지만 냉장고 역시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식당과 식탁도 모두 장식물이 되어버렸다.(pp42~43) 


예의, 인간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할 수도 있겠죠. 허나, 재래식 화장실에서 좌변기로의 변화가, 대야에서 세탁기로의 변화가, 그 모든 변화들을 설령 '진보'라는 단어로 감당케 한다하여도, 그 '진보'가 당사자들의 자연스런 필요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니라면 그 변화는 결코 진보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 변화들은 엄연히,


우리 현에 속한 각 국과 위원회에서 농민들에게 매혈 운동을 조직하라는 지시를 내렸소. 교육국에서는 나에게 쉰 개 마을을 배당했지 뭐요. 그래서 이번에 딩씨 마을에 내려와 매혈 운동을 조직하려 했는데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구려.(pp56~57)


'초가집'이라는 현실은 '가난함'의 상징으로 조작해야만 본인에게 주어진 명령을 이행해낼 수 있는 관리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뒤에 적게 될, '무지한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부패' 역시, 이같은 오도된 진보로부터 시작되기도 하지요. 


반면, 이러한 '상징의 조작'에 상응하는, 다시 말해 실제 당사자들의 자연스런 필요로부터 기인된 조작의 예를 이 작품 속에서는 뭔가 가슴 아릿한 version으로 발견하게도 됩니다. 


밍왕 마을은 도처에 관이 넘쳐나게 되었다. 마을이 온통 관 마을이 되었다. 그렇게 싼값에 관을 구입하게 된 사람들은 정부가 관을 지원해줬다는 생각에 자신이 열병에 걸린 것도 잊고, 집 안에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 누워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미소를 띤 얼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가볍고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얼굴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p329) …… 구허 마을에서는 열병에 걸린 사람이건 걸리지 않은 사람이건 관을 얻기만 하면 죽어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두 해 동안 거의 흔적을 감췄던 웃음이 다시금 마을로 돌아왔다.(p332)


임박한 죽음을 의미하는 '관'이, 이제는 하나의 물신(idol)이 되어 그 자체로, 죽음의 임박함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제 더 이상 '죽음'이라는 것 자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된 겁니다.8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놓았느냐에만 초점이 모아진 것이죠. 이렇게, 


"물신(物神)은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거꾸로 자신을 빚어 만든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66.


'매혈'이라는 것은 그 자체9 뿐만이 아니라, 매혈의 당사자들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관료들이 알고있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관료들은 민중들에게 죽음마저 잊게 만들 수 있는 물신을, 이러한 상징의 조작을 통해 안겨준 겁니다. 이는 온전히 자신들 통치의 편의/유지를 위해서였겠죠. 



(2) 주체의 조작


"가난뱅이로 살 건지 부자로 살 건지는 여러분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 부자가 될 건지 계속 가난뱅이로 남을 건지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해보세요." …… 국장은 말을 마치고 가버렸다. 우리 할아버지도 가버렸다. 딩씨 마을 사람들도 모두 흘어져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갔다. 가난하게 할 것인지 부자로 살 것인지는 그들이 결정할 문제였다.(pp61~62)


'상징의 조작'에 이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매혈을 할 것인가의 결정은 딩씨 마을 주민들이 한 것이며, 그러하기에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주민들에게 귀속된다라는 것이죠. 뭐,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기에 이에 관해선 별달리 쓸 말도 없습니다. 허나 ---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는 다음의 내용에 대해선 우리 스스로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특혜가 작은 특혜의 먹이 사슬로 이어지고, 독재자와 결탁해 얻은 이익이 또 새끼 이익을 가져와 자유인의 신분을 기꺼이 선호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독재 권력의 배를 불려주는 사람 수도 늘어나게 된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중 p111, 생각정원, 2015.


이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딩후이는 사설 채혈소를 시작으로 돈맛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피를 파는 것보다 남의 피를 (눈속임을 동원해10뽑아 되파는 것이 훨씬 돈이 된다는 것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챘던 것이죠. 이후 매혈의 후유증인 AIDS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자 그는 불법적인 관 매매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 중 결혼을 못한 남녀가 많음을 안 딩후이는 일종의 영혼결혼식인 음혼 중개를 통해 또 돈을 벌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본으로 마지막엔 묘지 사업까지를 계획합니다. (이 과정은 대한민국 재벌들이 자신의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던 역사와 너무도 흡사하죠.) 


이 과정의 초기, 즉 매혈의 부작용으로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마을 주민들은 매혈의 주동자였던 딩후이를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자신들의 필요 즉, 관이 필요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식들의 음혼이 필요했다라는 점은, 이 모두를 해결(?)해 준 딩후이에게 외려 고마움과 경외의 감정까지를 갖게 되죠. 


일은 이렇게 해결되었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11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 딩씨 집안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의심을 품지 않게 되었다.(p249)


이같은 의식의 변화12는, 딩후이가 과거 자신의 죄를 교묘하게 씻어내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기까지 된 현상,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마치 "모든 동물은 알몸으로 다녀야 한다. … 복서가 이 말을 듣고는 여름날 귀에 엉겨붙는 파리떼를 막느라 그가 사용하던 조그만 짚모자를 갖고 와 쓰레기불에 처넣었다"13로 상징되는, 세뇌에 의한 사상의 주입이 일 개인과 일 국가, 그 이상의 사회를 어떻게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와 타인들의 과거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듯, 이같은 상징과 주체의 조작을 한 주인공(인 권력층)은 민중들이 자신에게 허여한 권력을 이용해 그러한 조작의 책임으로부터도 또한 피해나가죠. 


잊지 마세요. 아버지. 앞으로 누가 매혈에 관해 물어보더라도 전부 제 동생 딩량이 한 일이라고 해야 돼요.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딩량의 무덤을 열어 물어보라고 하세요.(p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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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가져가는 것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돼지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 우리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 돼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의 복지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 조지 오웰, 「동물농장」중 pp35~36, 민음사, 2006.


이같은 세뇌가 국가의 본질인 것인지, 혹은 특정 사상의 본질인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저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건강'을 유지해야 하겠다라는 논리는 <화장실에 문이 달려 있으니 사람들이 꾸물대고 잘 나오지 않더라. →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화장실 문을 발로 차는 바람에 파손된 문이 너무 많아졌다. → 그래서 모든 화장실에 문을 없애버렸다.>14라는 식의 전개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건강이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논리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얻으려면, '우리의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언제가 여러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라는 역(reverse) 또한 항상 성립되어야 하거늘 --- 돼지들의 건강이 유지되었음에도 농장에 속해 있는 모든 동물들의 복지가 나아지지 않았던 것 (즉, 무지하도록 세뇌된 민중들의 희생 위에서 시작된 부패!)과 마찬가지로, 딩후이의 사업이 잘된다 하여 딩씨 마을 사람들의 형편이 좋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었죠. 그렇다면 과연, 딩후이 스스로는 관리들로부터 허여받은 권한을 사용해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요?


"독재자에게 접근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 스스로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행위가 아니던가. 다시 말하자면 제 양손으로 기꺼이 노예의 자리를 끌어안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p115) ……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헌상한 대가로 의식주에는 궁핍함이 없지만 자유가 전혀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p116) …… 그들은 재화를 차지하고자 애쓰지만 바로 자신들이 독재자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을 줬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p118)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중.


에티엔 드 라 보에시는 딩후이 스스로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 주장했었죠. --- 일견, 자신의 집에 있는 현금의 총액이 얼마인지조차 모른다 말하는 딩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주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자유가 전혀 없는 삶'이 의미하는 바는 예의 딩후이도 이겨낼 수 없는, 어찌보면 권력의 속성 같은 것인, 속박이었습니다. 열네 살에 독살당한 자신의 아들의 음혼 상대로, 아들보다 너댓 살 많은 나이에 죽었던, 현장의 딸을 고를 수 밖에 없었었죠. 그 상대는 절름발이에 간질까지 있었던, (요즘 세상의 PC로 따지자면 큰일 날 표현이겠지만) 만약 살아있었다면 '정상적인' 혼인을 할 수 없는 여성이었었거늘, 딩후이는 기꺼이 그 결혼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사돈이 될 사람이 현장이라는 점이 딩후이의 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 결혼을 반대할 권한이 딩후이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기도 했던 것이죠. 여기서!


마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아직도 그렇게 많은 열병 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상부가 마을 사람들에게 뭔가 말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상부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며, 와서 살펴보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을 수 있단 말인가.(p211)


지극히 당연한 민중의 요구와, 지극히 당연한 국가의 의무는 모두 무시되었다라는 점 --- 바로 이 부분이 어쩌면, 작가 옌렌커가 이 작품을 통해 쓰고자 한 주제들15 중 "탐욕의 강대함"(p7)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단일국의 지도원리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은 '행복'했지만 어리석게도 '자유'를 요구했다가 황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이제 단일국은 인간의 자유를 제거함으로써 행복을 되찾아준 것이다."

- 조지 오웰, 위의 책 p127.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작가에 의해 쓰여진 소설들 속에, '인간 사회'라는 큰 틀에 대한 지적들이 이토록 정확하게 일맥상통하고 있다라는 사실은 <각주 3>에 나타나있는 곰브리치의 경탄을, 다음의 인용문과 결부시켜 또 달리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겠나라는 여지를 제게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면서 꿈에서 본 광경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할아버지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pp596~597)


………………………………


쟈껀주가 말했다. … "아저씨, 저는 딩후이가 죽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최근에도 줄곧 딩후이를 죽게 할 방법만 생각했지요. 꿈을 꿔도 딩후이가 제 눈앞에서 죽는 꿈을 꾸지요."(pp533~534) … 가서 딩후이에게 한 마디만 해주세요. 제발 딩씨 마을로 돌아오지 말라고요. 돌아오기만 하면 저와 딩씨 마을 사람들이 그를 때려 죽일거라고요.(p537)

……

쟈껀주의 집 대문을 밀어젖히자 뜰 안에 검을 관리 하나 놓여 있었다. 이를 본 할아버지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쟈껀주의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개두16하면서 말했다. "조카, 내가 자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자네 형 딩후이가 나한테 맞아 죽었다네.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어. 내가 그 녀석 뒤통수를 몽둥이로 내리쳐서 죽게 했네."(p607)


민중 간의 다툼과 그로부터 기인된 비극적 결말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발 딩씨 마을로 돌아오지 말라"라는 쟈껀주의 호소는 중국 공산당을 향한 중국 민중의 바람()을, 자신의 큰 아들을 직접 죽인 후 "나한테 맞아 죽었다네"라 말하는 할아버지의 절규는 <각주 15>에 있는 작가의 주제 중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을 그야말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저에게는 이해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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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경들께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셨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가난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경들이시여, 저는 절망한 변호사이며, 패소한 사건을 변호합니다. 이 소송을 신께서 다시 승소로 바꾸실 것입니다. … 신께서 저를 배고픈 사람들과 뒤섞어 놓으신 것은, 배부른 사람들 가운데에서 제가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 억압하는 사람과 억압당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들이 처한 장소가 다르다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경들의 발이 사람들의 머리를 밟지만, 그것은 경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사회라는 바벨탑의 잘못입니다. 모든 것이 위에서 짓누르도록 되어 있으니, 실패한 건축물입니다. 한 층이 다른 층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짓누릅니다. …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신다면, 경들 중 어느 누구도 행복해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 경들이시여, 여러분께서 결정하신 세금을 누가 감당하는지 아십니까? 죽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 경들께서는 부자들의 부를 키워 주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을 키워 주고 계십니다. 경들이 해야 할 일은 그 반대입니다. … 낮은 곳이 죽으면 높은 곳이 죽기 마련입니다."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중 pp966~976, 더스토리, 2020.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핵심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가 실패한 건축물'이라는 점이었다고, 제 얕은 지식으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스스로도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17라 정의(define)했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2022년의 우리가 (이에 만족하는지의 여부를 차치하고)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향유하고 있다는 건 분명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공산주의의 결과/덕분이라 봐야한다라는 지점에까지 이르르게도 되죠. 


위의 인용문에서, 주인공 그윈플렌이 (본인의 원래 신분인 클렌찰리 경의 자격으로) 상원의 귀족들을 상대로 행한 연설문 속 "그 반대"는 좁은 의미에서의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났다라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아마도,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사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265.


그 궁극적 목표를 구현해내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사적 소유의 철폐와 그를 통한) 지배 계층의 축적만을 낳았기 때문이겠죠. --- 이 작품의 제목인 '딩씨 마을의 꿈'에서 '꿈'이 과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딩씨 마을 주민들의 바람()이 결국엔 비극으로 끝이 나버린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수도, 혹은 자신의 꿈이 모두 현실로 나타나버린 할아버지(딩수이양)의 그 '꿈'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어쩌면 


할아버지가 자신의 큰 아들 딩후이를 직접 때려 죽인 후, 다시 마을로 돌아와 꾼 그의 마지막 꿈 속처럼 "새롭게 펄쩍펄쩍 뛰는 세상"(p618)에 대한 희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볼 뿐...


···


"스스로 복종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질서는 나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나키스트는 모든 권위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권력을 거부한다. 아나키스트는 스스로 동의한 권위라면 전체의 결정이라도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따르려 한다."

- 하승우, 「아나키즘」중 p12, 책세상, 2008.


(한때, 지금까지도 아마, 그 매력에서 제가 벗어나고 있지 못한) '아나키즘'의 위 정의(definition)에 충실한 것으로 이해되는 두 사람(이자 한 커플)인 딩량과 링링이 이 작품에 등장합니다. 결국엔 아름답고 비극적인 모습으로 끝맺음되는 두 사람의 (불륜인) 사랑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서 보여진,


방은 아주 따뜻했다. 방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은 곧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따뜻해진 두 사람은 삶의 의미를 움켜쥐기 시작했다.(p147)


그 '삶의 의미'. 

뭔가 이 시점의 저에게 꼭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제가 들어서 있는 이 방도 결국엔 따뜻해질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야겠죠.



※ 읽어 본, 작가 옌렌커의 작품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매혈'을 주제로 한 다른 소설 : 「허삼관 매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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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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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즈오 이시구로 --- 1989년 맨부커상 수상자이자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입니다. 이 작가의 이름을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참치집 실장님'의 이미지 (상호는 '가즈아~ 혼마구로')를 떠올리게 됩니다만, 제가 읽어 본 이 작가의 두 작품들은, 제가 가봤던 참치집의 실장님들과는 달리 그리 친절하지 않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되자마자 구매을 했고, 구매하자마자 이 작품을 읽었다라는 건 그만큼 제가, 이 작가의 작품들에, 뭐라 콕 찝어 적어내지 못하겠으나 차마 버려내지 못하겠는, 그런 강한 매력을 느꼈었기 때문입니다. 흡사 --- 막상 그 자리에선 더 이상 느끼해서 못먹겠어,라 했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벌써 좀 더 먹을껄~하는 후회를 하게되는, 그래서 다음 번에 갔을 땐 그 시작부터 '오늘은 정말 맛있게, 많이 먹을꺼야!'라 다짐하곤하는 참치집('가즈아~ 혼마구로')에서의 저녁 시간과 같다고나 할까요?




#2.


이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제가 읽어 본 작가의 전작들인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에서 이야기되었던 주제들이 한데 어울어져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작가의 의도인지 혹은 저만의 생각 (또는 착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 작품에 대한 저의 이해와 감상문은 그리하여 --- 자연스레 전작들의 연결선상에서 쓰여져 있습니다. 일단, 


세 작품 속 화자(speaker)의 지위가 모두 동일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나날」에서의 화자는 주인에게 봉사하는 집사(butler)였으며,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인간 복제품들이 화자로 등장했었죠. 이 작품 「클라라와 태양」역시 AF(Artificial Friend)1라 불리우는 인간형 로봇2을 화자로 택하고 있습니다. 이 세 화자들의 공통점이란 게, 하인(servant)이나 로봇이라는 그들의 '신분/형태'가 아니라 --- 독립변수로서 존재하는 주체일 수 없는, 종속변수로서만 존재하여야하는, 종속변수이기에 존재 의미가 있는 정체성(identity)에 방점이 찍혀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공통된 정체성은 결국, 세 작품의 주제까지도, 약간의 변주(variation)는 있겠으나 크게 보아, 하나로 연결시켜주고 있다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자세한 스토리를 적지는 않았습니다만, 이하의 글은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이 보시기엔 적절하지 않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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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단, 이 작품의 표층적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성이면 감천'이라 적겠습니다.  


지금 무척 지쳐 있을 텐데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여름에 제가 온 적이 있고 그때 인자하게도 몇 분 시간을 내어주신 거 기억하시죠. 같은 중대한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위해 오늘 감히 찾아왔습니다. … 제가 여기에 이렇게 올 자격이 없다는 거 압니다. 해가 저한테 화가 났으리라는 것도 압니다. … 하지만 해가 그날 야적장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으니 제가 열심히 노력했고 희생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겁니다. 제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직 기쁘게 그렇게 했습니다. … 지금 조시가 하루하루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제가 오늘 여기 이렇게 온 까닭은 해가 얼마나 인자한지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해가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큰 연민을 보여주시기만 한다면요. 조시에게 너무나 간절히 필요한 특별한 자양분을 보내 주시기만 한다면요.(pp394~396) 


아직 읽지 않으신 분에게는 뭔 뚱딴지 같은 글로 읽혀질 수도 있겠으나, 소설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이 부분은 매우 슬픈 맥락 하에서 읽혀지게 됩니다. 왜 이 부분이 슬프게 읽혀졌을까,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 사뭇 환타지 소설스런 내용의 작품입니다만, 제가 그런 류의 소설에 전혀 흥미가 없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2021년 현재의)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AF가 존재한다'라는 상황 하에서, 그렇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물인 AF의 바람()이 부디 짜잔~ 하고 이루어지기를 독자들도 바라게 되는, 이건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 제가 (혹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라는 CCM의 가사처럼, 그리고 그 결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3스런 상황이 생겨나주기를 바라고 있는 마음을 작가가 만들어주었기 때문4 아닐까 싶습니다.  

커피잔 아주머니가 RPO 빌딩 쪽에 다다르자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해도 그 모습을 보고는 두 사람 위에 자양분을 한껏 쏟아부었다.(p39)

「남아 있는 나날」의 화자 스티븐스는 자신이 설정해 놓았던 '훌륭한 집사'의 기준5에는 완벽하게 들어맞는, 소위 말하는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6져 있는 삶을 살았었으나, 결과적으로 보아 그의 헌신이 그의 주인과 그가 원했던 결과를 낳지는 못했었지요. 물론, 스티븐스의 바람()이 그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차원에서의 정치(political)적 이해관계로 인해 좌절되었다 할 수도 있겠으나, 이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서 보여지는 클라라의 바람 역시, 그녀가 제어할 수 없는 차원임은 동일함에도 --- 특정 장면에 대한 클라라의 시선 (결국엔 오해7)이 그녀에게 그 상황을 무언가 확실한 증표처럼 인식하게 해주었고,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실은 허황된) 바람()이 꼭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클라라, 그리고 그녀의 바람이 (역시나)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 생각하게 되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조시를 위한 클라라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4.

「나를 보내지 마」의 화자인 캐시는,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해 복제된, 자신의 원본이 신체적 문제를 지녔을 때 해당 기관(organ)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 복제품이었습니다. 이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화자인 클라라는, 그 역할이 정확하게 적시되고 있지 않으나 아마도 AF라는 이름처럼,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 (혹은 심부름꾼 또는 보모)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인간형 로봇'으로 소개됩니다. 허나, 소설의 <4부>에 들어서면, 클라라에게 기대되었던 또 다른 역할이 있었음이 밝혀지지요. 이렇게 드러난, 인간 복제품인 캐시와 AF 클라라가 지니게 되는 (인간이 평가하는) 가치는 그들 자신의 기능이라든가 역할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 클라라와 캐시를 대하는 소설 속 '인간들'의 생각/목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예요. 진짜 조시가 될 거예요. 조시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요"(p304)


독립변수로서 존재하는 주체일 수 없는, 종속변수로서만 존재하여야하는, 종속변수이기에 존재 의미가 있다는 정체성(identity)은 둘 간의 공통점, 그러나 --- 단순히 장기(organ)만을 빼오는 것이 아닌,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복사본 자체로 원본을 대체'하려한다라는 점이 클라라와 캐시가 부여받게 된 결정적 차이이지요. 제가 꼽은, 이 소설의 핵심이자 글로 쓰여진 표층의 내부에 존재하는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


"무너진다는 건 어떤 것입니까."


- 구병모, 「한 스푼의 시간」중 p216, ​예담, 2016.


말 그대로 저의 감정을 한 순간에 무너지게 만들어주었던 문장이었었습니다. 당시 저의 감정과 동일하지 않은 감정을 받았던 독자들도 분명 있을진데, 대체 '너'는 왜 이 부분에서 감정의 무너짐을 느꼈었느냐라 누군가 묻는다면, 역시나 딱히 만들어 낼 답변이 없기도 합니다만, --- 작가 구병모는 이러한 저의 궁색함을 미리 알고라도 있었던 듯, "무너진다는 건 결국 그 현상을 대하는 사람의 슬픔이나 분노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8라 저를 위로해주었죠.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9은 '뇌 이식' 이전과 이후의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10 작가 구병모는 위의 작품 「한 스푼의 시간」에서 더 나아가, 인간형 로봇이 과연 실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 「클라라와 태양」에서도, AF인 클라라에게 부여된 애초의 임무(?)는 불치의 병으로 곧 죽을 것이라 예상되는 소녀 조시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벽한 대체를 위해,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만약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심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그걸 완전히 알아야 하지, 아니면 너는 절대로 조시가 될 수 없어. (pp320~321)


대체 로봇 제작자는 클라라에게 조시가 아직 살아 있는 지금, 그녀의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조시의 마음'을 배우라 클라라에게 조언(을 가장한 강요)을 하고 있죠. 인간의 이런 조언에 대해 AF 클라라는, 다시 말해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과연 어떠한 답변을 내놓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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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에서 작가는 (뇌이식 수술 집도의를 통해) 뇌이식이 '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라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그 작품을 읽었을 당시만해도, - 그렇다고 지금 그 작품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그 질문, 인간의 장기를 복제품 혹은 동물의 그것으로 치환한다면 인간이 여전히 '인간성'을 지닌 인간으로 정의되어야 하는가/될 수 있겠는가란 질문이 정말로 머지 않은 장래에 문제가 될 수 있다라 생각했었었거늘, --- 구병모가 소설 속에서 창조해 낸 로봇 은결이 물었던, 보다 근본적인 질문, "보편적인 삶은, 아니 그냥 삶은, 어떤 것입니까"11란 질문에 대해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다음과 같이 답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릭,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이 가슴 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pp441~442)


인간의 장기로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해 낼 수 있을 것인가란 의문이, 과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선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음을,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나와 당신간의 관계로 인해 나와 당신이 존재할 수 있다라는 점, 결국,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


-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중 p36, 다산책방, 2016.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나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 서로에 대한 기억이 축적되어 '나'를 만들고 '우리'를 만들어간다라는, 하여 무미 건조한 여덟 글자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렇게 풀어내준 것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게 됩니다. 


…………………………………………………………………


언젠간,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란 한정구를 지녔던 일들이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 이루어질겁니다. 종원군이, 성치 않은 자신의 장기들을 복제인간 혹은 동물의 그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 대한 의문보다는 긍정이 더 크며, 그의 자녀들인 제 손주들은 인간인 친구 이외에도 AF라는 '만들어진 제품'의 친구를 '구매'하는 세상을 살아갈 가능성 또한, 그렇지 않을 것이다보다는 더 높다에 손을 들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이게 하는 그 무엇, 인간이 만들어 낸 기술이 도저히 학습해낼 수 없는 그 무엇은 그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 믿음이 어쩌면 '그 무엇이 그 시대에도 존재한다면 좋겠다'란 저의 바람(), 그러니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란 일말의 의구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할머니의 협박과 간곡한 부탁으로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 다만 불붙인 담배를 손에 들고 그것이 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10년 내내 그랬다. 나는 입과 손의 그 거리만큼이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라 생각했다."


- 정승락 외,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중 p256, 월간토마토, 2017.


또 다른 미래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작가가 적어 준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란 게, 지금 저의 믿음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인간의 '제작/창조'로 만들어 진 피조물이 과연, 담배를 피지 않고 들고만 있는 그 '입과 손의 거리'에 대해 물리의 영역이 아닌 감정적 영역에서의 측량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저는 지극히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제대로 된 관찰자"12 작가들의 상상으로 그려진,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모습은,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 실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리들의 바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끝내 그렇게 믿게 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것은 자연과 야생동물이 아닌 타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를 끈끈해 했던 타인을 외면하고 때로는 짓밟아야 살아남는 경쟁시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 타인과 홀로 맞서야 했습니다. 때문에 감정은 인류에게 꼬리보다 불편하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빠르게 퇴화했습니다. 감정의 퇴화에 힘입어 인류의 과학은 빠르게 진화했지요."


- 정승락 외, 위의 책 pp95~96.




  1. p69.
  2. "리모컨이나 중앙컴퓨터로 원격 제어하는 로봇이 아니라, 기초 설정이 완료된 직후부터 외부의 모든 자극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며 때로는 스스로 판단하고 그 계산과 선택의 결과를 새로이 자동 프로그래밍하여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 - 구병모, 「한 스푼의 시간」중 p39, 예담, 2016.
  3.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짝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에서 스르르 내려와 와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중 p296, 문학사상사, 2000.
  4. 독자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유도해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5.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직업인으로서 그 소망을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명을 떠맡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신사를 섬기는 것이라고 보았다."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중, 민음사, 2009.
  6.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중, 책세상, 2001.
  7. "커피잔 아주머니와 레인코트 아저씨가 만난 날 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기억해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다시 만나는 걸 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그들이 잘되길 바라고 어쩌면 서로 만날 수 있게 돕기도 한다는 걸요."(p398)
  8. 구병모, 위의 책 p112.
  9. 창해, 2013.
  10. 역자 이선희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줍니다. - "뇌를 이식받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나일까? 아니면 뇌를 이식해 준 사람일까? 나의 분노는 내 것일까? 아니면 뇌를 이식해 준 그 사람의 것일까? 나의 기억은 내 것일까? 아니면 뇌를 이식해 준 그 사람의 것일까? 이것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11. 구병모, 위의 책 p114.
  12. 박주영, 위의 책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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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혼돈의 시대, 당신을 위한 정치 인문학
육덕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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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돈의 시대, 당신을 위한 정치 인문학"


지금은 그 인기가 많이 시들해진 듯 하지만, 3~5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었습니다만, 솔직히 전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이 땅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었는지 지금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그저 (주로 '역사'를 중심으로 한) '넓은 범위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그 수준에서 이처럼 막 사용해도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암튼! 


이 책 역시, '정치'라는 단어 뒤에 일종의 접미어마냥 '인문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균형 - 경제 - 역사 - 권력'의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에서 '인문학'이 붙어야하는 이유를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기자가 쓴, 학문적 접근이 아닌 일반적 시각에서 2021년 현재의 한국 정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라 소개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정책의 배신」 그리고「불평등의 세대」처럼 한국 사회, 그 중에서도 주로 정치와 경제 부분에 대한 저자 나름의 분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위 세 권의 책, 그리고 「20 VS 80의 사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내용들이 한데 정리되어 있다 보시면 될 것 같네요. 물론,


위 책들에 들어있지 않은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 있었고, 제가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던 부분까지도 단번에 정리가 되기도 했지요. 



#2.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네이버에서 찾아본 '탈진실 시대'는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서민 교수도 "객관적 사실보다 편향된 신념이 뉴스를 지배하고 여론 형성을 주도"1하는 현상을 '탈진실 시대'라 표현했었죠. 이 책의 저자 역시 "무엇이 맞고 틀린 것보다는 진영 논리로 세상을 본다"(p111)라며, 적어도 2021년의 대한민국이 탈진실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각자의 신념/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것 역시 문제이겠으나, 저자는 이러한 점이 정치권, 특히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측2에 의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요.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한국 정치에서의 탈진실 전략을 병합 혹은 병치 작업으로 사건의 초점을 바꾸는 데 쓰인다.3 이러한 전략은 논점을 일탈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논점을 일탈시키면서 지지층에게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사안을 개입시킨다.(p203)


이러한 탈진실 전략은 부동산 문제에도 여지 없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온전히 경제 문제이어야 할 부동산 대책을 현 정권은 일종의 정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물론, 주거 문제라는 것에 정치의 작용이 전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정치적 관점이 부동산 대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면 이로 인한 부작용은 불가피한 것이되죠. 



#3. 부동산 대책


정치가 경제를 본격적으로 포획했다. 경제가 정치에 포획되면 많은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치화된 경제는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물러설 수 없는 정치적 목표를 향한 강제성을 지닌 방향이 된다. … 부동산 민주화라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정치적 작명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제 이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동산 민주화라는 이름의 정치로 재탄생되고 있다. 부동한 민주화는 부동산 대책일 때와 달리 확연한 선과 악의 개념이 생기게 된다. 피아 구분, 적과 적이 아닌 세력으로 세상을 이분화하게 된다. 부동산 정책을 주장하는 이는 선의 집단이 된다.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악이 된다.  … 한 언론에 부동산 민주화를 이야기한 추격 집단에 속한 익명의 정치인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칼을 뺀 이상 끝을 봐야 하는 것', 이것이 부동산 정치다. 부동산이라고 쓰고 정치라고 읽어야 한다.(pp92~93)


현 정권에서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책은 어쨌든 결과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뒤따르는 것이 맞겠죠. (뭐, 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 같은 건 부차적 문제라 합시다.) 허나, 현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정책 실패가 정책 자체의 문제가 아닌, 그러한 정책에 반항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 주장합니다. 

부동산 정책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사, 2017년 6월 (p113) 
아파트 투기 세력을 근절하는 데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0년 7월 (p114) 
부동산이 급등하는 것은 투기 세력 때문입니다. 투기 세력이 돈 많은 일부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주부에 이어 젊은 층마저 투기 대열게 뛰어들고 투기 심리가 전염병처럼 사회적으로 번졌습니다. - 법무부 장관, 2020년 8월. (p115)

현 집권층은 투기 세력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킨 주범이라 단정하고 있으나, 저자는 현 정부의 정책이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하였으며4, 그로 인해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게 되었다 진단하고 있습니다.5 뭐 여기까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현실 인식에 대한 각자의 관점 차이라 볼 수 있겠으나, 진짜 문제는 바로,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에 모종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정치적 음모론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이 세력은 강력한 적으로 상정되어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늘 정부와 여당을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다. 그 어떤 시기보다 강력한 정부이고 강력한 여당이지만 늘 모종의 세력에게 방해당하고 저지된다. 개혁은 이들 탓에 늦춰진다. 그래서 한국의 평화와 공존, 번영을 위해서 적을 누르거나 없애야 한다는 메시지가 한국 정치에 넘친다. 사실은 다르다. 정부와 여당 정치인은 다주택자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와 여당만큼 강력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배후 세력은 단지 자신들의 정책적 실패가 만들어낸 그림자 복서일 뿐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부동산으로 시민을 몰리게 하는 것뿐이다.(p124)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사실 판단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부동산 투기 세력'에 대한 정부의 항전 의지입니다. 범위를 좁혀, 아파트 가격 상승의 문제만 보겠습니다. 이는 분명 (지금 당장의 수요 뿐만 아니라 미래의 수요까지 포함된) '수요와 공급'의 문제입니다. 수요과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공급을 증대시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정책 방향입니다. 허나, 아파트라는 재화는 순식간에 공급이 될 수 없지요. 그렇다면, 그 수요가 상승한 원인을 찾아 그 부분의 해소에 노력을 하는 것이 plan B가 되겠죠. 

사람들이 대체 왜 강남에 살기를 원하는가, 강남에는 있고 여타 지역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가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진다든가 등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겁니다. 헌데 이 정권은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굳이 강남에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p78)란 식의 단순 무식한 주관적 처방으로 대응했었었죠. 현 정권은 그 후, plan B를 내놓는 대신 대응 방식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부동산 투기 세력과의 전쟁이 바로 그들이 선택한 대응 방식이었죠. 


대 쓰러지지 않는 부동산 투기 세력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시장의 대응이 만들어낸 '환상의 거인'인 셈이다. 정부와 정치 집단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과 싸우는 것이다. … 부동산 투기 세력이라는 허상은 이번 정부가 가진 인식론이 초래한 함정이다. 가상의 적을 가정하고 내놓은 대책은 현실에서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내놓는다. 다주택자가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이 오르니 다주택자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다주택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자체의 품귀와 희소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전문가들이 주장이다.(pp121~122)


저야 뭐,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입장도 아니거니와 그러하기를 바라지도 않기에 이같은 상황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바라보는 재미(?)만 즐겨보려 합니다만, 부동산의 문제가 단지 부동산의 문제만으로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저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분명 걱정거리인 것은 맞습니다. 



#4. 그들의 인식


우리 사회 최고의 1% 계층도 시민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20%의 시대가 왔다. 1% 계층의 탈법과 위법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 시대다. 한국 사회는 20년간 특권적 지위를 이용한 1%의 비리과 갑질에 대한 많은 제재를 내리고 처벌을 해냈다. 1% 대신 20% 엘리트의 손을 들어준 여론의 힘이자 시민의 힘이었다. … 20%가 주도하는 시민의 시대다. 이제 사회를 정의로워져야 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과연 20% 엘리트가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구심이 쏟아지고 있다. 20%가 권력을 잡게 되자, 이들도 사회의 또 다른 특권 계층으로 지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pp238~239) …… 20%는 공정한가? 사회의 정의를 요구하려면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20% 집단은 무소불위의 전위 세력이 아니라 시민이 주는 권력을 행사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탄핵의 시간에서 누가 정국을 이끌었는가를 기억해보라. 탄핵의 시간 이후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된 20% 집단이 스스로 특권적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20% 집단의 현실 불일치 인지 부조화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p253)


이철승 교수가 지적했던대로, 현 집권세력인 386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닙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기업의 노조 또한 약자 코스프레를 하기엔 너무 힘이 세졌습니다.6 상대 집단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권을 잡았다면, 자신들은 그같은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는 것이죠.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며, '너네 때는 더 했잖아~'란 식의 대응을 하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겁니다. 


뭐, 소위 '정치공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지들끼리 알아서 티격태격하며 만들어내라 하는 걸로 넘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저같은 시민은 그저 투표권의 행사를 통해 제 뜻을 표시하는, 그리 능동적이지는 못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에 그칠 뿐이니까요. 허나, 


"고 후보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 했다'라고 한 뒤 '광진주민들 외롭지 않게 할 것이며 꼭 함께 하겠다'며 누구처럼 지역차별, 동포차별 하지 않겠다고 했다"와 같은 감성팔이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젠 제발 좀 그만해주었으면 싶다는 말은 꼭 적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같이 쓰던가, 우산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주던가하는게 정상적인 방식이지, 뭔 '함께 비를 맞는' 류의 멍청한 짓거리에 대해서는 '그건 멍청한 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의 등장이 2021년에는 맞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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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좀 급하게 써내려간 책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각 장(chapter)의 초반은 (진짜 심하게 말해서) 약간의 겉멋 어린 서술로 이루어져있다는 느낌을 갖게도 됩니다만, 이건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굳이 썼기에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이해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한, 아래 소개할 여타 책들에 비해 비교적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책 정도로 소개할 수 있겠네요. 


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독서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류의 책들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현 집권층에게 가능할지, 언젠가 현재 그들이 잡고 있는 권력이 그들로부터 떠났을 때, 다시 되돌아 볼 현재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어떠할지 등이 사뭇 궁금합니다. 뭐, 이제까지 잘해왔듯, 대한민국은 또 잘해내겠죠. 






※ 함께 읽어보길 권하는 책들 : 「불평등의 세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정책의 배신」, 「20 VS 80의 시대 




  1. 강양구 외,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중 p15, 천년의상상, 2020.
  2. 저자는 현 여권층을 '추격 집단'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실종 공무원이 어떤 경위로 북한이 관리하는 해역에서 표류하게 됐냐는 사실과 비무장 시민이 북한 군인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됐다는 의혹은 별개의 사안이다. 연속된 사건의 흐름 속에도 가치가 전혀 다른 것들이 있는데, 정부는 탈북했다는 의혹에 방점을 두고 정부가 비난받을 여지가 큰 의혹인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의혹을 병치했다."(p206)
  4. "정부가 부동산 공급을 줄인 상황에서 가수요를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고 가니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악순환 경로로 들어간 것이다."(p117)
  5. "경제 현상에서는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실질적인 원인이 아니라 표면적 허상일 수 있다. 정부가 임기 초부터 없애기 위해 집착하는 부동산 투기 세력, 다주택자들은 부동산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 부동산이 급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p120)
  6. "대기업 노조들은 세계화와 그에 따른 한국 경제의 부상으로 가장 많이 수혜를 받은 집단을 대표한다. … 이 노조들은 대부분 임금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최상층 임금노동자 집단이 되었다. … 간단히 말해 체제 내화되어 '내부자'의 지위에 등극했으며 시민사회 단체와의 연대 활동에서 사라졌다. 연대해서 싸워 얻어내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면 되는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 대기업 및 공기업 노조들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 구조의 '생산자' 혹은 '수혜자'로 변모했다." -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중 pp59~60,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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