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혼돈의 시대, 당신을 위한 정치 인문학
육덕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혼돈의 시대, 당신을 위한 정치 인문학"


지금은 그 인기가 많이 시들해진 듯 하지만, 3~5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었습니다만, 솔직히 전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이 땅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었는지 지금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그저 (주로 '역사'를 중심으로 한) '넓은 범위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그 수준에서 이처럼 막 사용해도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암튼! 


이 책 역시, '정치'라는 단어 뒤에 일종의 접미어마냥 '인문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균형 - 경제 - 역사 - 권력'의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에서 '인문학'이 붙어야하는 이유를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기자가 쓴, 학문적 접근이 아닌 일반적 시각에서 2021년 현재의 한국 정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라 소개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정책의 배신」 그리고「불평등의 세대」처럼 한국 사회, 그 중에서도 주로 정치와 경제 부분에 대한 저자 나름의 분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위 세 권의 책, 그리고 「20 VS 80의 사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내용들이 한데 정리되어 있다 보시면 될 것 같네요. 물론,


위 책들에 들어있지 않은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 있었고, 제가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던 부분까지도 단번에 정리가 되기도 했지요. 



#2.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네이버에서 찾아본 '탈진실 시대'는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서민 교수도 "객관적 사실보다 편향된 신념이 뉴스를 지배하고 여론 형성을 주도"1하는 현상을 '탈진실 시대'라 표현했었죠. 이 책의 저자 역시 "무엇이 맞고 틀린 것보다는 진영 논리로 세상을 본다"(p111)라며, 적어도 2021년의 대한민국이 탈진실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각자의 신념/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것 역시 문제이겠으나, 저자는 이러한 점이 정치권, 특히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측2에 의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요.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한국 정치에서의 탈진실 전략을 병합 혹은 병치 작업으로 사건의 초점을 바꾸는 데 쓰인다.3 이러한 전략은 논점을 일탈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논점을 일탈시키면서 지지층에게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사안을 개입시킨다.(p203)


이러한 탈진실 전략은 부동산 문제에도 여지 없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온전히 경제 문제이어야 할 부동산 대책을 현 정권은 일종의 정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물론, 주거 문제라는 것에 정치의 작용이 전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정치적 관점이 부동산 대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면 이로 인한 부작용은 불가피한 것이되죠. 



#3. 부동산 대책


정치가 경제를 본격적으로 포획했다. 경제가 정치에 포획되면 많은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치화된 경제는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물러설 수 없는 정치적 목표를 향한 강제성을 지닌 방향이 된다. … 부동산 민주화라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정치적 작명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제 이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동산 민주화라는 이름의 정치로 재탄생되고 있다. 부동한 민주화는 부동산 대책일 때와 달리 확연한 선과 악의 개념이 생기게 된다. 피아 구분, 적과 적이 아닌 세력으로 세상을 이분화하게 된다. 부동산 정책을 주장하는 이는 선의 집단이 된다.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악이 된다.  … 한 언론에 부동산 민주화를 이야기한 추격 집단에 속한 익명의 정치인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칼을 뺀 이상 끝을 봐야 하는 것', 이것이 부동산 정치다. 부동산이라고 쓰고 정치라고 읽어야 한다.(pp92~93)


현 정권에서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책은 어쨌든 결과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뒤따르는 것이 맞겠죠. (뭐, 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 같은 건 부차적 문제라 합시다.) 허나, 현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정책 실패가 정책 자체의 문제가 아닌, 그러한 정책에 반항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 주장합니다. 

부동산 정책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사, 2017년 6월 (p113) 
아파트 투기 세력을 근절하는 데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0년 7월 (p114) 
부동산이 급등하는 것은 투기 세력 때문입니다. 투기 세력이 돈 많은 일부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주부에 이어 젊은 층마저 투기 대열게 뛰어들고 투기 심리가 전염병처럼 사회적으로 번졌습니다. - 법무부 장관, 2020년 8월. (p115)

현 집권층은 투기 세력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킨 주범이라 단정하고 있으나, 저자는 현 정부의 정책이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하였으며4, 그로 인해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게 되었다 진단하고 있습니다.5 뭐 여기까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현실 인식에 대한 각자의 관점 차이라 볼 수 있겠으나, 진짜 문제는 바로,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에 모종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정치적 음모론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이 세력은 강력한 적으로 상정되어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늘 정부와 여당을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다. 그 어떤 시기보다 강력한 정부이고 강력한 여당이지만 늘 모종의 세력에게 방해당하고 저지된다. 개혁은 이들 탓에 늦춰진다. 그래서 한국의 평화와 공존, 번영을 위해서 적을 누르거나 없애야 한다는 메시지가 한국 정치에 넘친다. 사실은 다르다. 정부와 여당 정치인은 다주택자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와 여당만큼 강력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배후 세력은 단지 자신들의 정책적 실패가 만들어낸 그림자 복서일 뿐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부동산으로 시민을 몰리게 하는 것뿐이다.(p124)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사실 판단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부동산 투기 세력'에 대한 정부의 항전 의지입니다. 범위를 좁혀, 아파트 가격 상승의 문제만 보겠습니다. 이는 분명 (지금 당장의 수요 뿐만 아니라 미래의 수요까지 포함된) '수요와 공급'의 문제입니다. 수요과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공급을 증대시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정책 방향입니다. 허나, 아파트라는 재화는 순식간에 공급이 될 수 없지요. 그렇다면, 그 수요가 상승한 원인을 찾아 그 부분의 해소에 노력을 하는 것이 plan B가 되겠죠. 

사람들이 대체 왜 강남에 살기를 원하는가, 강남에는 있고 여타 지역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가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진다든가 등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겁니다. 헌데 이 정권은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굳이 강남에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p78)란 식의 단순 무식한 주관적 처방으로 대응했었었죠. 현 정권은 그 후, plan B를 내놓는 대신 대응 방식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부동산 투기 세력과의 전쟁이 바로 그들이 선택한 대응 방식이었죠. 


대 쓰러지지 않는 부동산 투기 세력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시장의 대응이 만들어낸 '환상의 거인'인 셈이다. 정부와 정치 집단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과 싸우는 것이다. … 부동산 투기 세력이라는 허상은 이번 정부가 가진 인식론이 초래한 함정이다. 가상의 적을 가정하고 내놓은 대책은 현실에서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내놓는다. 다주택자가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이 오르니 다주택자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다주택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자체의 품귀와 희소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전문가들이 주장이다.(pp121~122)


저야 뭐,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입장도 아니거니와 그러하기를 바라지도 않기에 이같은 상황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바라보는 재미(?)만 즐겨보려 합니다만, 부동산의 문제가 단지 부동산의 문제만으로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저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분명 걱정거리인 것은 맞습니다. 



#4. 그들의 인식


우리 사회 최고의 1% 계층도 시민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20%의 시대가 왔다. 1% 계층의 탈법과 위법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 시대다. 한국 사회는 20년간 특권적 지위를 이용한 1%의 비리과 갑질에 대한 많은 제재를 내리고 처벌을 해냈다. 1% 대신 20% 엘리트의 손을 들어준 여론의 힘이자 시민의 힘이었다. … 20%가 주도하는 시민의 시대다. 이제 사회를 정의로워져야 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과연 20% 엘리트가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구심이 쏟아지고 있다. 20%가 권력을 잡게 되자, 이들도 사회의 또 다른 특권 계층으로 지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pp238~239) …… 20%는 공정한가? 사회의 정의를 요구하려면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20% 집단은 무소불위의 전위 세력이 아니라 시민이 주는 권력을 행사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탄핵의 시간에서 누가 정국을 이끌었는가를 기억해보라. 탄핵의 시간 이후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된 20% 집단이 스스로 특권적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20% 집단의 현실 불일치 인지 부조화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p253)


이철승 교수가 지적했던대로, 현 집권세력인 386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닙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기업의 노조 또한 약자 코스프레를 하기엔 너무 힘이 세졌습니다.6 상대 집단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권을 잡았다면, 자신들은 그같은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는 것이죠.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며, '너네 때는 더 했잖아~'란 식의 대응을 하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겁니다. 


뭐, 소위 '정치공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지들끼리 알아서 티격태격하며 만들어내라 하는 걸로 넘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저같은 시민은 그저 투표권의 행사를 통해 제 뜻을 표시하는, 그리 능동적이지는 못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에 그칠 뿐이니까요. 허나, 


"고 후보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 했다'라고 한 뒤 '광진주민들 외롭지 않게 할 것이며 꼭 함께 하겠다'며 누구처럼 지역차별, 동포차별 하지 않겠다고 했다"와 같은 감성팔이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젠 제발 좀 그만해주었으면 싶다는 말은 꼭 적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같이 쓰던가, 우산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주던가하는게 정상적인 방식이지, 뭔 '함께 비를 맞는' 류의 멍청한 짓거리에 대해서는 '그건 멍청한 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의 등장이 2021년에는 맞는 거 아닙니까? 



…………………………………………………………… 


뭔가 좀 급하게 써내려간 책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각 장(chapter)의 초반은 (진짜 심하게 말해서) 약간의 겉멋 어린 서술로 이루어져있다는 느낌을 갖게도 됩니다만, 이건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굳이 썼기에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이해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한, 아래 소개할 여타 책들에 비해 비교적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책 정도로 소개할 수 있겠네요. 


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독서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류의 책들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현 집권층에게 가능할지, 언젠가 현재 그들이 잡고 있는 권력이 그들로부터 떠났을 때, 다시 되돌아 볼 현재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어떠할지 등이 사뭇 궁금합니다. 뭐, 이제까지 잘해왔듯, 대한민국은 또 잘해내겠죠. 






※ 함께 읽어보길 권하는 책들 : 「불평등의 세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정책의 배신」, 「20 VS 80의 시대 




  1. 강양구 외,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중 p15, 천년의상상, 2020.
  2. 저자는 현 여권층을 '추격 집단'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실종 공무원이 어떤 경위로 북한이 관리하는 해역에서 표류하게 됐냐는 사실과 비무장 시민이 북한 군인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됐다는 의혹은 별개의 사안이다. 연속된 사건의 흐름 속에도 가치가 전혀 다른 것들이 있는데, 정부는 탈북했다는 의혹에 방점을 두고 정부가 비난받을 여지가 큰 의혹인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의혹을 병치했다."(p206)
  4. "정부가 부동산 공급을 줄인 상황에서 가수요를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고 가니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악순환 경로로 들어간 것이다."(p117)
  5. "경제 현상에서는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실질적인 원인이 아니라 표면적 허상일 수 있다. 정부가 임기 초부터 없애기 위해 집착하는 부동산 투기 세력, 다주택자들은 부동산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 부동산이 급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p120)
  6. "대기업 노조들은 세계화와 그에 따른 한국 경제의 부상으로 가장 많이 수혜를 받은 집단을 대표한다. … 이 노조들은 대부분 임금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최상층 임금노동자 집단이 되었다. … 간단히 말해 체제 내화되어 '내부자'의 지위에 등극했으며 시민사회 단체와의 연대 활동에서 사라졌다. 연대해서 싸워 얻어내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면 되는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 대기업 및 공기업 노조들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 구조의 '생산자' 혹은 '수혜자'로 변모했다." -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중 pp59~60, 문학과지성사, 20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