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의 가격은 3천원이고, 맥주 한 병의 가격은 4천원인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치죠. 내 지갑 속엔 2만 2천원만 있고, 신용카드나 핸드폰 결제 등은 모두 사용 불가이며, 편의상 안주값은 따로 지불됩니다. 이 때 가진 돈 전부를 사용해, '많이 취할수록 행복해지는' 제 효용을 극대화시켜주는 소주와 맥주의 조합은

이란 제약조건 하의 Lagrangian을 풀면 된다,라고 대학 2년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가르쳐줍니다. 이 결과 누군가는 '4병의 맥주와 2병의 소주'라는 조합을 선택할 것이며, 또 다른 효용함수를 지닌 누군가는 '6병의 소주와 1병의 맥주'를 선택할 테죠. 이처럼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선택의 문제'를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제시되고 있는 소주와 맥주의 가격, 안주 없이 술만 마신다, 신용카드나 핸드폰 결제는 안 된다 등등 (상대적으로) 적지않은 수의 가정(assumption)들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지 뭐~라 받아들인다 해도! 내 지갑 속 2만 2천 원의 돈에 대해서까지, '소득 제약 조건'이라 경제학이 간단하게 이름짓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 --- '우리의 삶'이란 게 바로! 이 2만 2천 원의 돈을 내 지갑 속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노력들의 집합이며, 그 누군가의 '삶'이란 게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진 2만 2천 원을 가지고 술집에 들어가 소주와 맥주의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에 이르지조차 못하는, 2만 2천 원의 돈이 내 지갑에 들어오도록 노력하고 나니 술집에 갈 기력조차 남지 않아 집에 가서 뻗어버리는, 다시 말해, --- 어떠한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 목적의 달성을 추구할 것인가란 구조(frame) 자체가 아예 잊혀져 버린, 그리하여 (경제학은 여전히 '내 취기함수의 극대화'를 위한 선택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라 주장하거늘) 우리의 삶은 소주와 맥주의 조합을 선택하는 (당연히 도달하여야 할) 단계에 이르지조차 못한 채 그저, 내 지갑 속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넣을 수 있게하는 것에만 갇혀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주류) 경제학은, 이와 같은, 개인의 노동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의 '노동 재생산'은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란 게, 2만 2천 원을 내 지갑 속에 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2만 2천 원을 갖고 술집에 가서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지극히도 간단하고도 중요한 이 사실을 간과하기에, ---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일단 10억 쯤 벌고 싶어요. 그걸로 뭘 할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10억이 내 수중에 있으면 뭐든 하고 싶은 게 생기겠죠'류의 대답이 청춘들의 입에서 나오게 되는 거죠. 경제학이 말하는 '소득 제약 조건'이란 게, 더 이상 제약 조건이 아닌, 그 자체로서 극대화시켜야 할 함수가 되어버린 겁니다. 목적함수가 잊혀져버린 이런 삶에서 '행복함'이란 게,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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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롯데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준플레이오프 3연전이 열린다 해보죠. 무작위로 8명을 모아, 오늘의 승패에 대해 4명씩 나눕니다. 롯데가 이긴다쪽에 4명, NC가 이긴쪽에 4명, 이렇게 말이죠. 어쨌든 승패는 갈릴 것이기에 어느 쪽이든 4명은 살아남을 겁니다. 롯데가 1차전을 이겼다 해보죠. 남은 4명을 또 2차전의 승자와 패자로 각 2명씩 나눕니다. 2차전이 끝나면 또 어느 2명은 살아남을 것이고, 마지막 3차전 역시 각 1명씩 롯데와 NC로 나누어 놓으면 최종 한 사람은 3연전의 승패를 모두 맞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걸 확대하면 --- '2의 144승'에 해당하는 숫자의 사람을 모아, 위와 같은 방식으로 나누면 결국 시즌이 마칠 때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2018년 롯데 자이언츠의 승패를 모두!!! 맞추는 사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이 때의 '반드시'를 들어, 이러한 로직을 '법칙 Law'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이다,라 말하는 것에 대해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Murphy's Law of Research : Enough research will tend to support whatever theory
'2의 144승'에 해당하는 숫자의 사람을 모아 스포츠 토토를 한다 했을 때, 반드시 144경기의 승패를 모두 맞춘 사람이 나온다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전적인 로직이 제 아무리 반드시 한 사람은 존재하게 된다라 말한다 하더라도 실제의 베팅에서,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2의 144승'에 해당하는 갯수의 사과가 가지에서 분리되었을 것이고, 그 '2의 144승' 갯수의 100% 가 모두 땅으로 향해왔었을 것임은 보지않았어도 확신할 수 있으나) 그 한 명이 반드시 나올 것이란/한 명만 나올 것이란 보장은 차마 할 수 없지요. 사회과학의 분석에서 사전적(ex-ante) 예측과 사후적(ex post) 실현/관찰이란 게 항상 동일하다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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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 인간의 등장 】
"Let the market do everything"의 금융 버젼이 바로 '금융 자본주의'입니다. 이들은 "금융시장이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줄 것"(p312)이라 주장하지요. 이처럼 전지전능한 '시장(market)'은 당연히 완벽하게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 역시 합리적인 ("앨버드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IBM의 슈퍼 컴퓨터 '빅 블루'만큼 많은 기억을 저장할 수 있고, 마하트마 간디의 결단력을 갖고 있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전제되게 됩니다. 물론, ---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이 어디 있느냐란 비판은, "이론의 '가정'에서 중요한 건 현실성이 아니라 적합성"(p97)이란 주장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으며, "과학적 모형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예측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p174)란 현실적 요구는 이같은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어왔었죠.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의 미래에 대한 예측 또한 합리적/효율적이라는 내용의 '합리적 기대가설'이 금융시장에 적용된 것이 바로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입니다. 이 가설에 의하면, 특정 회사의 현재 주식가격은 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 인해 미래에 받게될 배당금들의 기대치(expected dividends)를 현재가치로 환산해 합산한 값인 '내재가치'를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것이며, 이러한 내재가치의 변화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가 생겨나더라도 "시장참여자 한 명이 접한 정보는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게 전달"(p212)되므로, 차익거래(arbitrage)를 통한 비정상적인 수익(abnormal profit)을 올리기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요. 적어도 이 경제학의 세상에선 사회학자의 다음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중 p26, 사계절, 2013.
【 합리적 인간의 패배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요한계시록 3장 17절
그렇다면, 주식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이 현실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가설의 참 의미는 시장이 항상/언제나 효율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내 곧 효율적으로 되돌아간다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단기적인 비효율이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효율적 시장가설은 --- 기업의 fundamental에 기반한 내재가치에 따른 투자가 아닌, 직관적·감정적 분위기와 같은 sentiment에 따라 투자를 하는 비이성적 투자자(noise)를 들고 있지요. 이제,
주식시장은 일견 비이성적 투자자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갈취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버립니다. 단, 주가의 fundamental의 변화에 따른 위험은 비이성적 투자자들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스스로 그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하겠죠. 이러한 위험 대비책의 정수(essence) 가 바로 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이며, 이를 이용하여 천문학적 이익을 올렸던 곳이 바로 LTC(Long-Term Cpital Management)였지요.
LTC의 설립자인 마이런 숄스와 로버트 머튼은 금융시장의 위험을 수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한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으나, 그 다음해인 1998년, 아시아 금융시장의 위기 때 LTC는 부도를 맞게 됩니다. 그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LTC의 전략은 절대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그들의 이론은 결국, 적어도 현실적으론 틀린 것으로 판명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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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골드만삭스의 주력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을 때 골드만삭스 CFO 데이비드 비니어는 "표준편차가 25인 상황이 며칠 연속으로 벌어졌다"라고 말했다. 표준편차 25인 상황은 10만 년에 1번 벌어질 정도로 확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이처럼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p363)
2008년의 금융위기 후, LSE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던진 "왜 아무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나요?"란 질문에, 그 쟁쟁한 LSE의 교수들이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었다 합니다. 그 뒤, <The Economist>에,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대신 대답을 했지요.
One thing we are not going to have, now or ever, is a set of models that forecasts sudden falls in the value of financial assets, like the declines that followed the failure of Lehman Brothers in September. … If an economist had a formula that could reliably forecast crises a week in advance, say, then that formula would become part of generally available information and prices would fall a week earlier.
- Robert Lucas Jr. In defence of dismal science, The Economist, Aug 6, 2009.
감히(!) 루카스 교수의 글에 반박을 달 주제는 못됩니다만, 이 유명한 글은 아무리 여러 번 읽어봐도 뭔가 옹색함을 감추고 있다라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었거늘, 이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다음의 구절이 어쩌면, 그 '옹색함의 이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해주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모형에 대한 비판, 그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현실을 설명해낼 수 있는) 모형의 부재'를 거론했다라는 것, 심지어 --- 모형의 잘못이 아니라, 현실의 이상함을 탓하는 듯한 논조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모든 과학적 모형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과학적 모형의 존재가치는 현실성이 아니라 그것이 유용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하여 만든 모형은 현실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새로운 이론을 생산하는 데 유용했다. 그런데 너무나 유용한 나머지 모형 자체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p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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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시장가설'은 2008년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유용성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는 것과, 그 뒤를 이어 등장한 '행동금융학(behavioral finance)'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책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만, "금융시장 발전에는 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p369)란 문장으로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듯,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난 뒤에는 현재의 행동금융학을 비판하는 이같은 책이 또 출간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남겨놓고 있기도 합니다.
'효율적 시장가설'의 기원과 성장, 그리고 몰락까지를 그려내고 있는, 경제학을 전공한 저에겐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덕분에, 옛 교과서와 몇몇 article들을 찾아 다시 공부도 해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렵다는 걸 또 다시 깨닫게 됩니다. --- "The Myth of the Rational Market"이란 원제, 우리 말로 옮기자면 '합리적 시장이라는 허상' 쯤이 될 제목을 난데없이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이란 되도 않는 문구로 변경한 건 정말 아쉽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살아 있거늘, 아마도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너무도 의식한, 이 책의 무게감을 너무도 무시한 출판사의 쪽팔린 실책이 아닐까 싶네요.
※ 이 책을 읽은 후, 읽기를 권하는 책 : 「금융의 지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