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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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p83) …… 북한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자유입니다만, 북한을 연구하는 학문적 태도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1 받아들여야 합니다. (p10)


우리의 소원이 왜? 통일이어야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이 아빠에게 어제 저녁, 종원군이 묻더군요. '통일이 정말 될까요?' --- 통일이 되면 뭐가 좋아질 것 같냐라는, 대답을 갈음하는 아빠의 질문에 녀석은 '통일이 되면 국토가 넓어져서, 일단 땅값이 좀 내려가지 않을까요?'란 순진한 답변을2 내놓더군요. 


전쟁이 없는, 전쟁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신뢰'가 있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p10)


저의 입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도, 제 머릿 속 김일성의 모습은 도무지 좋은 점을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는 지상 최악의 악마로만 그려지게 만들어놓았던 지난 날의 교육이란 게, 실제 북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라는 저자의 아래 설명에 제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이 --- 단지 요즈음의 분위기가 이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군부독재라는 '내부'의 괴물은 그렇게 북한이라는 '외부'의 괴물을 이용해 국민들을 길들이고 윽박질렀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북한은 자신들의 악행을 가리기 위한 손쉬운 알리바이였습니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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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란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 속엔 북한의 (기존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설명해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역시 그 편견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말할 수 없는 저에게 저자가 꼽은 12가지의 질문들 모두가 다 흥미로웠었습니다만,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아무래도 ---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란 chapter가 가장 눈에 뜨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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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이 북한에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북한은 우리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p222)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 조정관을 지냈던 윌리엄 페리의 이 한 마디 속에, 북한이 그간 보여온 행동들의 원인에 대한 단초가 들어있다라,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왜 개발했을까요? 바로 안전보장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하게 된 발단은 미국의 핵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북핵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가 낳은 어두운 유산인 셈입니다. (p222)

학교 짱이 들고 있는 칼이 무서워, 나도 몰래 칼을 하나 만들어 혹시 모를 짱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었었거늘, 너 안찌를테니 가지고 있는 칼 먼저 버려!라고 학교 짱이 계속 (또 다른 버젼의) 협박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저자가 제시하는 북핵 문제의 해법은 간단합니다. 미국이 먼저 위협을 멈추라는 것이죠. 


북핵 문제 해법을 위한 기본 전제가 분명해 집니다. 바로 미국의 핵 위협 제거, 즉 북한의 안전보장입니다. (p222) …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라는 조건 설정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p225) … 북한이 보기에 카다피는 미국에 안전을 보장받고 무장을 해제했다가 뒷통수를 맞아서 몰락한 경우3입니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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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에서 저자 함규진 교수는 국가간의 조약(treaty)에 대해 ①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약속이라는 점, ② 그 약속은 1:1 간의 약속뿐 아니라 다자간 약속일 수도 있다라는 점, 그리고 ③ 그 약속은 상충하는 이기심들이 낳은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점 등을 강조해주었었습니다. 


"A commitment by a sovereign state is credible only when that state’s self-interest dictates honoring it."4


이처럼, 국가간의 약속이란 것 역시 각자의 이익에 부합될 때에라야 유지되는 것이라면,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에게 과연 손실일지 아니면 이득일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아야하겠죠. 일단 이론적으로 보아5, 북한은 핵의 보유로 인해 가장 확실한 안전보장을 확보하게 됩니다. ---  "a country's best safeguard against nuclear war was to protect its weapons, not its people"6 


일본은 어떨까요? 북한의 핵이 역설적으로, 일본의 군사 현대화와 자위대의 활동영역 확대, 더 나아가 평화헌법의 개정 등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러시아와 중국7 역시, 대미 방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북한의 핵이 오로지 밉기만 할까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이해 관계자(?)인 미국은 과연? 


북핵 문제야말로 미국 군수산업의 마중물을 뜻합니다. 더구나 남북 간의 긴장은 한국을 미국의 최대 무기 수입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군산복합체는 북한의 '악마' 이미지가 필수인 셈이며, 북한은 한국과 일본에 무기를 팔아먹기 딱 좋은 알리바이에 불과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북한이야말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p 238~239) … 동구권이 붕괴되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군수산업체 쪽에서는 실제 북한이 붕괴되면 어쩌나 우려하는8 기류도 있었습니다." (p18) 


위와 같은 논리의 주장에, 가타부타를 언급할 만한 정치적 지식과 판단력을 저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만, 뒤이어 나오는, 북핵 문제를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입장에 대한 저자의 주장엔 그럴듯한 개연성이 매우 높아보인다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악마화함으로써 얻을 이익과 북한과 거래를 함으로써 얻을 이익을 끊임없이 저울질을 할 것입니다. (p220) … 이전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비핵화보다는 북한을 상업화시키는 데 더 흥미가 있다고 봅니다. (p221)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아마 흥정9 할 것입니다. 원산이나 흥남 항구 개방이라든가, 원유 탐사와 지하자원 개발 같은 이야기부터 할 것입니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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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란 것이 여전히 '당위'의 개념인가에 대해, 저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이란 답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당위의 개념에, 손익의 개념을 들이대는) 남북한 통일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들이 천박한 발상이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 '통일은 대박'이란 (박근혜의 입을 빌린 최순실의) 생각은 '자본주의 체제로의 흡수'를 기정사실화/내심 강요하고 있다란 점에서 천박하기도 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것이었었죠. 반면, 


이 책의 저자 박한식 교수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대북제재에 대한 경제적 관점은 매우 유용합니다. 현재 북한에서 생산된 광물자원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는 북한으로서는 달리 팔 곳이 없기 때문"(p272)이라고, "대북 제재는 북한을 중국 품에 안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p34)할 뿐이라는 것이죠.10 ---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해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이 배제된 채 만들어 낸 '한반도의 평화'라는 것이, 왜 위험한 것인가, 왜 결국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는가... 에 대한 힌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네요.  



(종전도 결국 미국과 미국인의 덕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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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우리와 대화를 해보면 내가 남쪽이나 태평양상으로 핵을 쏘거나 미국을 겨냥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12 …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終戰)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


김정은이 금번 정상회담 중에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결국 "휴전 상황을 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북미 수교와 불가침조약 체결"(p223) 등을 원한다라는 뜻이겠죠. 근데 말이죠, 그의 발언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분명 무리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뭔가, --- 돈 없어서 빌리러 온, 근데 가오가 있어 '돈 좀 빌려달라'란 표현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는, 대신 '내 맘은 원래 그런 뜻이 아니었었어, 내가 미쳤냐 그런 생각을 하게...' 와 같이, 빙빙 돌려 (약간은 구질구질도 하게) 말하는, 그런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입니다. … 북한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김일성 주석과 조선노동당, 그리고 미국 등 외세에 맞서 자주성을 지키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p21)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진심으로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겠으나 만에 하나라도 정말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 대한민국과 미국이 앞장서서, 자신의 의지를 실행해 옮기려는 김정은을 (참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심히 오바스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작금의 흐름을 정통성이 무너지는 것으로 판단하는 일부 노장 세력, 또는 자신들의 기득권 포기를 우려하는 북한의 군부에서 김정은의 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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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선 동질성의 회복이 아닌 "이질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p279)이 더 중요하다라 말해줍니다. 예를 들어, 


북한 입장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란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민한 문제라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씁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월남한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p247)  


(물론 월남한 가족이 있다라는 사실이 앞으로는 '정치적으로 좋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닌 게 되게 하는 북한 당국의 실질적 조치는 당연히 있어야 하겠죠만) 위와 같은 속내를 알지 못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에 북한의 태도가 미온적이라 비난하는 건 서로간에 오해만 더 커지게 만들게 되겠죠. 이 책을 읽으며 --- 책 속 저자의 주장이 다 최선의 것들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14, 어쨌든 제가 북한에 대해 참으로 모르는 것이 많았었다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으면서도, 남과 북의 통일이라는 것이 어쨌든 우리 민족의 일이라 생각해왔었었다라는 게, 참으로 창피하네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전략과 전술은 한국의 국익과 민족적 이익에 중심을 두고 우리 머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정치 전략적 판단을 미국에 맡겨서는 말 따로 행동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p187)


...금연 377일째


※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들 :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 「싸드」,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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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한에 대한 억측과 과장, 왜곡 등의 오해가 많은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북한이 워낙 폐쇄적이라 정보 자체가 적은 것도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의도적인 '악마화' 혹은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 (p10)
  2. "남북 접경지 땅값 ‘들썩’… 평당 15만→25만~30만원" - 국민일보, 2018.04.30.
  3. "카다피는 2003년 12월 미국의 경제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 약속을 받고 핵 개발을 포기했지만 내전으로 쫓기는 몸이 되었고, 결국 2011년 10월 ...반군에게 처형당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프랑스 등과 함께 군대를 파견해 반군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회유에 못 이겨 이미 있던 전쟁 억제력마저 포기했다가 종당에는 침략의 희생물이 되고 만 중동 지역 나라들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섣불리 핵 억제력을 포기했다가는 카다피처럼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p216)
  4. "Crimea through a game-theory lens", New York Times, March 15, 2014.
  5.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Robert Aumann 교수와 Thomas Shelling 교수의 업적이 바로 '핵무기 사용의 효과적 저지 방안'에 관한 것이었었죠.
  6. "A big pay-off for two game theorists", The Economist, 2005.10.13.
  7. "​북한이 끊임없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이유 중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 중국이라고 그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선 북한을 미국에 빼앗기는 것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악몽일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런 면에서 보면 이러저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못합니다. … 중국은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의지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pp143~144)
  8. 2018년 4월 30일자, 신문의 기사에 나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을 보면 북한의 핵포기를 미국이 정녕 원하고 있는 것이지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등을 양보하기 전에 북한이 먼저 핵무기와 핵연료, 미사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 비핵화라고 생각한다. … 압박을 완화하는 것은 협상을 더 쉽게 만들지 않을 것이고,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9. "겉으로 봐서는 미국에게 북한의 핵 개발은 치킨게임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오. 거래란 말이오." - 김진명, 「싸드」중 p285, 새움, 2014.
  10. 북한 스스로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그렇기에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가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고, 그러한 경제 제재로 인해 북한의 수출길은 오로지 중국으로만 국한될 수 밖에 없다라는 점, 즉 --- 싼 가격에 북한산 광물자원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에 그리 손해만은 아니라는 논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죠.
  11. 현재 대한민국은 종전 협정에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거 맞죠? 설마 그래서?
  12. 김정은의 이 발언은 다음의 내용을 그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겠죠. --- "미국의 대북정책은 일본과 중국이라는 더 큰 그림속에 위치 한다는 것 … 다시 말해서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보다 일본과 중국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는 미국에 대중 관계와 대일 관계의 종속변수인 셈입니다." (p195) …… "미국이 북한을 봉쇄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무엇일까요. 북한 자체로는 이득이 별로 없을지 모르나 중국 견제용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p208)
  13. 김정은의 암살이 곧 북한 체제의 붕괴라 보는 시각에 대해, 저자는 강한 반대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 "북한은 '절대' 붕괴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그들 시스템이 이니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특정한 지도자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북한은 개인을 우상화하는 체제이지만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나라가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나라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그냥 빈말이 아닙니다.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나라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한 사람이 없어진다고 체제가 붕괴하지는 않습니다. …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암살된다고 해도 북한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p20) …… "​설령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북한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 중심부의 일부분이 교체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p22)
  14. "통일은 곧 손해라는 생각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11장에 담겨 있는 개성 개발 계획은 제게는 심히 허황된 공론으로만 받아들여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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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학의 귀환 - 주류경제학자와 비주류경제학자 불평등을 이야기하다
류동민.주상영 지음 / 한길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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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나름의 일관성 있는 논리로 설명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사회과학이라면1, 경제학도 예외일 수 없다. … 경제학은 가치와 분배, 성장이라는 문제를 논리정합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학문이다.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기존의 사회경제 질서를 옹호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 … 결국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는하는 경제학자 개인의 정치적 견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2 (p37)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에 대한 각기 다른 해답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다름아닌 '경제학자 개인의 정치적 견해'로부터 기인된다는 것이죠. 뭐 그런 판단의 주체일 수 있는 권리가 오직 경제학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들 각자의 정치적 견해, 더 나아가 (개인들의 총합이 만들어 낸) 시대적 상황 등도 또한, 해당 사회의 다수들이 성장을 선택하게할 수도, 혹은 분배를 선택하게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류경제학자와 비주류경제학자, 불평등을 이야기하다>란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은 바로 --- 경제학이 지니고 있는, 위와 같은 '정치적' 면모의 (사회적) 변화, 즉 "경제학이 분배와 성장에 관해 과거 200여 년 넘게 지녀온 '의식의 흐름'을 살펴보는 일"(p9)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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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학파 경제학은 분배 문제를 가격결정 문제로 바꿔 생각한다. 더구나 그 가격은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계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생산에 참가한 사람들끼리 분배몫을 둘러싸고 대립하거나 갈등할 이유가 없다. (p54) 

미시경제학 교과서 속에는 이처럼 '평화로운' 세계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계'란 다름아닌 '능력주의'를 의미하고 있거늘,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인 까닭은 능력주의 원칙이 심각하게 무너질 때 힘 있는 이가 힘없는 이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움직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p73)4

「21세기 자본」을 통해 토마 피케티는 "권력이 없는 이들은 자신의 기여를 제대로 주장하기 어렵"(p67)기에, 그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계'란 것이 미시경제학 속 구절들처럼 자연스럽게 성립되지는 않는다라고, 오히려 능력주의란 것이 "현실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p74)로서 작동하게 된다라 주장합니다. --- "이러이러한 것을 능력이라 부르자며 판을 짤 수 있는 힘"(p57)이 결국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어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결국 "모든 것이 수요·공급의 논리로 굴러가게 마련"(pp29~30)이란 냉담한 주장만을 계속하고 있는 경제학은, (맬서스 시대의 인물인) 칼라일의 '우울한 과학'이란 지적을, 그렇기에 21세기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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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고전학파 경제학에서 시작하는, '성장이론'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24년 전 쯤인 그 어느 한 때, 제가 저의 전공으로 삼고도 싶어했었던) 정치(delicate)한 이론 체계를 보여주고 있는 성장론에 대한 (경제학을 전공했다하더라도 성장론을 수강하지 않았다면 쉬이 이해되지 않을/이해하기에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내용을 이 책도 역시 담고 있지요.5 어쨌든 --- '성장의 이론' 그 자체에 문제가 있어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닙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출현한 이래 20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본주의를 지지한 전통경제학의 주장이 옳았다면, 그들이 말한 경제성장으로 이미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빈곤이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0년 동안 전 기간에 걸쳐 빈부 격차가 좁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확대되어 왔다. … 경제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중세 시대 때 공동토지에서 일했던 평범한 농부 한 사람이 연간 15주 정도 일하면 1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년 동안 유래없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중세시대의 소작농보다도 더 죽어라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 데이비드 보일·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중, 사군자, 2012.


역시나 '개인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서는 이것이 결코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중세시대의 소작농이 지녔던 욕망과 현대 시대 우리가 맘 속에 품고 있는 욕망의 차이(gap)가, 경제 성장의 결과 즉 두 시점의 GDP의 차이보다 더 크다한다면6 이는 (정당성이야 어쨌든7자연스런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술혁신은 결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단지)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중 p63, 더숲, 2014.


(욕망의 지나친 급성장 때문이 아닌 오로지) 경제성장의 과실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우리들이 중세시대의 소작농들보다 더 죽어라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와같은 불평등한 분배가 왜 / 어찌하여 / 누구에 의해 발생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어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까지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가 곧 --- 그 책이 묻고 있는 질문이 바로, 이 지점을 향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저도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어지간해선 읽어볼 엄두까지는 내지 못하고 있는) 「21세기 자본」 --- 출간 당시의 열풍 덕분에(?) 직접 읽어보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관심이 있기만 하다면) 그 내용을 대충은 알 수 있게 되었죠. 앞서 읽었었던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의 저자인 저스틴 폭스는 HBR의 article <Piketty's "Capital," in a lot less than 696 pages>8에서 (article의 제목도 사치스럽다 느껴질만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①Capital (which by Piketty’s definition is pretty much the same thing as wealth) has tended over time to grow faster than the overall economy. ②Income from capital is invariably much less evenly distributed than labor income. Together these amount to a powerful force for increasing inequality." 


① ('r > g' 라는 유명한 공식9으로 표현되고 있는) 자본의 증식 속도가 전체 경제의 성장 속도보다 빠르다는 점과 ② 자본 소득의 분배의 불균등이 노동 소득의 불균등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 쉽게 말해 --- "일해서 돈을 보는 속도로는 결코 돈이 돈을 버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p10) …… "'이마에 땀 흘려' 돈을 버는 이보다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이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재산을 늘릴 수 있다."(p18) 라는, 결국 이 논리의 끝엔...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다."


- 와타나베 이타루, 위의 책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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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가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능력주의'라는 것을 떠올려 볼 때 개인의 능력이 반영되는 비중이 (자본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수 밖에 없는 노동소득에의 불평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저항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하기에 --- "시장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더 많은 구매력(돈)으로 투표함으로써 우수한 경제 주체들에게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데, 그런 경제적 불평등이 부 창출 경쟁을 유인한다"10라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주장을 비판하는 측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또한 감성적으로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의 세습으로부터 나오는 자본소득의 차이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능력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속은 저축보다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적다."


이왕휘,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부활 아닌 불평등한 자본에 고민을 요구한 것이다', DBR 167호, 2014.12.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능력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에만/있기에 그 정당성이 발휘된다라 할 때,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인, '이 불합리하게 조성된 불평등의 교정'에, 경제학이 일조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 "음울하고 무감각하며 우울하다"(p105)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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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으로 파이를 키워서 분배한다는 경제 논리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낡고 틀에 박힌 패러다임이다"(p306)란 저자들의 주장이 옳을 수도, 혹은 "파이를 키우면 공정하게 나누지 않더라도 더 많은 파이를 가질 수 있다"11라는 주장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1953년 28%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6년 12%까지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 <IBK가 만드는 중소기업 CEO report> 중 p1, April 2018, Vol.158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역사적으로 계속 줄어왔다,란 사실(史實)은 (일정 수준의 단순화를 허한다면) 결국, (우리가 '돈' 자체를 식량으로 삼을 수 없듯이, 서비스 산업이 제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을 만들어주지 못하듯) '더 이상은 파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워졌다'라는 암울한 사실(事實)을 말해주고 있다라는, 그리하여 이같은 불평등이, --- 체제의 강요가 아닌, (합리적인) 체제 속 구성원들에게 현재와 같은 상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design된 mechanism 자체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무기력한 불안의 일면을 이 책,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 신념을 실행으로 옮겨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어떻게든 생겨난다라는, 이게 어쩌면 '종교'가 권하는 믿음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는, 그와 비슷하게라도 --- "원래 경제학은 …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학문이다. 이것이 경제학의 본질"12이란 점을 우리가 잊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낼 수만 있다면,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p308)


이 책 본문의 마지막 문장인 위와 같은, 일종의 자기 최면적 잠언이, 저자들이 말하고 있는 "인류가 정체과 불평등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길은 있다"(p308)라는 바람을 실행으로 옮겨낼 수 있는 동인이 되어줄 것이라, (뭐 어쩌겠습니까, 이제 고딩인 제 아들 종원군과, 아직은 상상 속의 존재인 종원군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모습일 것이라 희망적으로) 믿어봅니다.


※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드리는 책

- 경제 성장 이론에 관해 알고 싶다면 : 「지식경제학 미스테리

- 주류 경제학에 관해 알고 싶다면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조금 다른 경제학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면 :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경제학의 철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면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애덤 스미스 구하기

- 자본의 힘 : 금융의 지배」,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불편한 경제학


...금연 372일째




  1. "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 만약 사회학이 어떤 한 개인의 삶도 설명할 수 없다면, 혹은 그 연구대상이 사회 속에 사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완벽하게 유리되어 있다면, 사회학은 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의 호사스러운 말잔치가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 노명우,「세상물정의 사회학」중 p6, 사계절, 2013.
  2. 이보더 좀 더 쎄게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지요 :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중 <에필로그>, 부키, 2014.
  3. "한 사회에서 어느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득분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가, 성장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 불평등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다."(p9)
  4. 이와는 정반대의 각도에서, 능력주의의 필요성을 분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 "능력주의 약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 이유는 능력주의가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주의 쇠퇴는 궁극적으로는 불평등한 분배를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이왕휘,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부활 아닌 불평등한 자본에 고민을 요구한 것이다', DBR 167호, 2014.12.
  5. 성장이론에 관한 내용은 다음 책 참조 --- 데이비드 워시, 「지식경제학 미스터리」, 2008, 김영사
  6. 욕망이 자라난 속도가, GDP의 성장 속도보다 빨랐다는 의미.
  7. 이 경우, 체제 혹은 사회적 과실보다는 개인의 과실의 훨씬 더 크다란 주장에, 딱히 효과적인 반박을 할 수 없게 되지요.
  8. April 24, 2014.
  9. "'r > g'는 피케티가 자신의 책에서 '자본주의의 중심 모순'이라 부른 부등식이다. 그에 따르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었던 예외적 기간을 빼고는 자본수익률(r)이 항상 경제성장률(g)보다 컸다." (p18)
  10. 한겨레 신문 2014년 7월 13일자 기사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후예인가' 중,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발언에서 발췌.
  11.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성장(파이를 키우는 것)이 분배(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해왔다. 피케티도 이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파이를 키우면 공정하게 나누지 않더라도 더 많은 파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왕휘, 위 DBR article,
  12. 데이비드 보일·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중, 사군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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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 시장만능주의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나?
저스틴 폭스 지음, 윤태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소주 한 병의 가격은 3천원이고, 맥주 한 병의 가격은 4천원인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치죠. 내 지갑 속엔 2만 2천원만 있고, 신용카드나 핸드폰 결제 등은 모두 사용 불가이며, 편의상 안주값은 따로 지불됩니다. 이 때 가진 돈 전부를 사용해, '많이 취할수록 행복해지는' 제 효용을 극대화시켜주는 소주와 맥주의 조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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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약조건 하의 Lagrangian을 풀면 된다,라고 대학 2년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가르쳐줍니다. 이 결과 누군가는 '4병의 맥주와 2병의 소주'라는 조합을 선택할 것이며, 또 다른 효용함수를 지닌 누군가는 '6병의 소주와 1병의 맥주'를 선택할 테죠. 이처럼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선택의 문제'를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제시되고 있는 소주와 맥주의 가격, 안주 없이 술만 마신다, 신용카드나 핸드폰 결제는 안 된다 등등 (상대적으로) 적지않은 수의 가정(assumption)들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지 뭐~라 받아들인다 해도! 내 지갑 속 2만 2천 원의 돈에 대해서까지, '소득 제약 조건'이라 경제학이 간단하게 이름짓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 --- '우리의 삶'이란 게 바로! 이 2만 2천 원의 돈을 내 지갑 속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노력들의 집합이며, 그 누군가의 '삶'이란 게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진 2만 2천 원을 가지고 술집에 들어가 소주와 맥주의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에 이르지조차 못하는, 2만 2천 원의 돈이 내 지갑에 들어오도록 노력하고 나니 술집에 갈 기력조차 남지 않아 집에 가서 뻗어버리는, 다시 말해, --- 어떠한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 목적의 달성을 추구할 것인가란 구조(frame) 자체가 아예 잊혀져 버린, 그리하여 (경제학은 여전히 '내 취기함수의 극대화'를 위한 선택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라 주장하거늘) 우리의 삶은 소주와 맥주의 조합을 선택하는 (당연히 도달하여야 할) 단계에 이르지조차 못한 채 그저, 내 지갑 속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넣을 수 있게하는 것에만 갇혀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주류) 경제학은, 이와 같은, 개인의 노동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의 '노동 재생산'은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란 게, 2만 2천 원을 내 지갑 속에 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2만 2천 원을 갖고 술집에 가서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지극히도 간단하고도 중요한 이 사실을 간과하기에, ---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일단 10억 쯤 벌고 싶어요. 그걸로 뭘 할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10억이 내 수중에 있으면 뭐든 하고 싶은 게 생기겠죠'류의 대답이 청춘들의 입에서 나오게 되는 거죠. 경제학이 말하는 '소득 제약 조건'이란 게, 더 이상 제약 조건이 아닌, 그 자체로서 극대화시켜야 할 함수가 되어버린 겁니다. 목적함수가 잊혀져버린 이런 삶에서 '행복함'이란 게,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겁니다


………………………………………………………………………………………………… 


오늘부터 롯데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준플레이오프 3연전이 열린다 해보죠. 무작위로 8명을 모아, 오늘의 승패에 대해 4명씩 나눕니다. 롯데가 이긴다쪽에 4명, NC가 이긴쪽에 4명, 이렇게 말이죠. 어쨌든 승패는 갈릴 것이기에 어느 쪽이든 4명은 살아남을 겁니다. 롯데가 1차전을 이겼다 해보죠. 남은 4명을 또 2차전의 승자와 패자로 각 2명씩 나눕니다. 2차전이 끝나면 또 어느 2명은 살아남을 것이고, 마지막 3차전 역시 각 1명씩 롯데와 NC로 나누어 놓으면 최종 한 사람은 3연전의 승패를 모두 맞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걸 확대하면 --- '2의 144승'1에 해당하는 숫자의 사람을 모아, 위와 같은 방식으로 나누면 결국 시즌이 마칠 때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2018년 롯데 자이언츠의 승패를 모두!!! 맞추는 사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이 때의 '반드시'를 들어, 이러한 로직을 '법칙 Law'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이다,라 말하는 것에 대해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Murphy's Law of Research : Enough research will tend to support whatever theory


'2의 144승'에 해당하는 숫자의 사람을 모아 스포츠 토토를 한다 했을 때, 반드시 144경기의 승패를 모두 맞춘 사람이 나온다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전적인 로직이 제 아무리 반드시 한 사람은 존재하게 된다라 말한다 하더라도 실제의 베팅에서,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2의 144승'에 해당하는 갯수의 사과가 가지에서 분리되었을 것이고, 그 '2의 144승' 갯수의 100% 가 모두 땅으로 향해왔었을 것임은 보지않았어도 확신할 수 있으나) 그 한 명이 반드시 나올 것이란/한 명만 나올 것이란 보장은 차마 할 수 없지요. 사회과학의 분석에서 사전적(ex-ante) 예측과 사후적(ex post) 실현/관찰이란 게 항상 동일하다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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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 인간의 등장 】 

"Let the market do everything"의 금융 버젼이 바로 '금융 자본주의'입니다. 이들은 "금융시장이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줄 것"(p312)이라 주장하지요. 이처럼 전지전능한 '시장(market)'은 당연히 완벽하게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 역시 합리적인2 ("앨버드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IBM의 슈퍼 컴퓨터 '빅 블루'만큼 많은 기억을 저장할 수 있고, 마하트마 간디의 결단력을 갖고 있는"3)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전제되게 됩니다. 물론, ---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이 어디 있느냐란 비판은, "이론의 '가정'에서 중요한 건 현실성이 아니라 적합성"(p97)이란 주장4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으며, "과학적 모형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예측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p174)란 현실적 요구는 이같은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어왔었죠.5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의 미래에 대한 예측 또한 합리적/효율적이라는 내용의 '합리적 기대가설'이 금융시장에 적용된 것이 바로 '효율적6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입니다. 이 가설에 의하면, 특정 회사의 현재 주식가격은 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 인해 미래에 받게될 배당금들의 기대치(expected dividends)를 현재가치로 환산해 합산한 값인 '내재가치'를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것이며, 이러한 내재가치의 변화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가 생겨나더라도 "시장참여자 한 명이 접한 정보는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게 전달"(p212)되므로, 차익거래(arbitrage)를 통한 비정상적인 수익(abnormal profit)을 올리기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요. 적어도 이 경제학의 세상에선 사회학자의 다음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중 p26, 사계절, 2013.



【 합리적 인간의 패배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요한계시록 3장 17절


그렇다면, 주식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이 현실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가설의 참 의미는 시장이 항상/언제나 효율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내 곧 효율적으로 되돌아간다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단기적인 비효율이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효율적 시장가설은 --- 기업의 fundamental에 기반한 내재가치에 따른 투자가 아닌, 직관적·감정적 분위기와 같은 sentiment에 따라 투자를 하는 비이성적 투자자(noise)를 들고 있지요.  이제, 


주식시장은 일견 비이성적 투자자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갈취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버립니다.7 단, 주가의 fundamental의 변화에 따른 위험은 비이성적 투자자들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스스로 그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하겠죠. 이러한 위험 대비책의 정수(essence) 가 바로 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이며, 이를 이용하여 천문학적 이익을 올렸던 곳이 바로 LTC(Long-Term Cpital Management)였지요. 


LTC의 설립자인 마이런 숄스와 로버트 머튼은 금융시장의 위험을 수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한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으나, 그 다음해인 1998년, 아시아 금융시장의 위기 때 LTC는 부도를 맞게 됩니다. 그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LTC의 전략은 절대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그들의 이론은 결국, 적어도 현실적으론 틀린 것으로 판명된 셈이지요. 


………………………………………………………………………………………………… 


2007년 8월. 골드만삭스의 주력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을 때 골드만삭스 CFO 데이비드 비니어는 "표준편차가 25인 상황이 며칠 연속으로 벌어졌다"라고 말했다. 표준편차 25인 상황은 10만 년에 1번 벌어질 정도로 확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이처럼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p363)

2008년의 금융위기 후, LSE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던진 "왜 아무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나요?"란 질문에, 그 쟁쟁한 LSE의 교수들이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었다 합니다. 그 뒤, <The Economist>에,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대신 대답을 했지요. 


One thing we are not going to have, now or ever, is a set of models that forecasts sudden falls in the value of financial assets, like the declines that followed the failure of Lehman Brothers in September. … If an economist had a formula that could reliably forecast crises a week in advance, say, then that formula would become part of generally available information and prices would fall a week earlier.


- Robert Lucas Jr. In defence of dismal scienceThe Economist, Aug 6, 2009.

 

감히(!) 루카스 교수의 글에 반박을 달 주제는 못됩니다만, 이 유명한 글은 아무리 여러 번 읽어봐도 뭔가 옹색함을 감추고 있다라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었거늘, 이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다음의 구절이 어쩌면, 그 '옹색함의 이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해주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모형에 대한 비판, 그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현실을 설명해낼 수 있는) 모형의 부재'를 거론했다라는 것, 심지어 --- 모형의 잘못이 아니라, 현실의 이상함을 탓하는 듯한 논조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모든 과학적 모형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과학적 모형의 존재가치는 현실성이 아니라 그것이 유용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하여 만든 모형은 현실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새로운 이론을 생산하는 데 유용했다. 그런데 너무나 유용한 나머지 모형 자체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p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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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시장가설'은 2008년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유용성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는 것과, 그 뒤를 이어 등장한 '행동금융학(behavioral finance)'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책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만, "금융시장 발전에는 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p369)란 문장으로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듯,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난 뒤에는 현재의 행동금융학을 비판하는 이같은 책이 또 출간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남겨놓고 있기도 합니다.


'효율적 시장가설'의 기원과 성장, 그리고 몰락8까지를 그려내고 있는, 경제학을 전공한 저에겐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덕분에, 옛 교과서와 몇몇 article들을 찾아 다시 공부도 해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렵다는 걸 또 다시 깨닫게 됩니다. --- "The Myth of the Rational Market"이란 원제, 우리 말로 옮기자면 '합리적 시장이라는 허상' 쯤이 될 제목을 난데없이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이란 되도 않는 문구로 변경한 건 정말 아쉽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살아 있거늘, 아마도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너무도 의식한, 이 책의 무게감을 너무도 무시한 출판사의 쪽팔린 실책이 아닐까 싶네요.9 


※ 이 책을 읽은 후, 읽기를 권하는 책 : 금융의 지배 



  1. 22,300,745,198,530,6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2. 이 때의 '합리적'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예측하려는 변수에 관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다"중, DBR Vol 23. 2010.3.
  4. 이와 관련하여서는 --- 매우 유능한 당구 선수가 당구공을 쳤을 때, 그가 물리학 이론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지 않다하여도, 그가 친 공의 결과가 물리학 법칙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였다면 우리는 당구 선수가 물리학 법칙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여도 된다라는 밀튼 프리드먼 교수의 유명한 예시가 있습니다.
  5. 이러한 흐름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그런 비판을 가했던 학파들이 경제학계의 주류였던 적은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었지요. --- "균형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이후, 경제학계에서는 균형이 경제 현실을 표현하는 최선의 개념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들은 방정식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피했는데 … 방정식이 경제활동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과 변화를 포착할 여지를 없앤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변화하는 시장 현실을 철저한 실증적 연구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주류 경제학계는 이런 대안적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균형경제학처럼 정밀하고 명쾌하게 경제 현실을 설명하는 대안적 접근법이 없었기 때문이다."(p346)
  6. "The term 'efficient' as used here means that individuals use information in their own private interest. It has nothing to do with socially desirable pricing; people often confuse the two." - Robert Lucas Jr., In defence of the dismal science, The Economist, Aug 6, 2009.
  7. "시장 가격이 비이성적으로 오르거나 내려도, 이는 냉철한 투자자에겐 '차익거래의 기회'일 뿐이다. 그리고 냉철한 투자자의 차익거래로 시장의 비이성적 가격은 곧 사라진다. 이것이 시장의 위대한 점이다. 민주주의에서는 비이성적인 다수가 득세할 수 있어도, 자유금융시장에서는 극소수의 이성적 투자자가 시장을 균형으로 돌린다."(p224) …… "금융학자들은 바보가 비합리적 가격을 형성해도 영리한 거래자들이 바보의 돈을 따고 난 뒤에 균형가격을 형성한다고 가정했다."(pp232~233)
  8. 너무 과한 표현인가요?
  9. 이 제목은, 케인즈의 다음 구절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 분명할 듯 싶습니다. --- "자신은 학문과 거리가 멀다고 믿는 사람들도 이미 생을 마감한 '죽은 경제학자들'의 노예로 살고 있다."(Practical men, who believe themselves to be quite exempt from any intellectual influences, are usually the slaves of some defunct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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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지배 - 세계 금융사 이야기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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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해서 돈이 자취를 감추고 숫자나 컴퓨터 스크린에 불과한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p7) 이란 문장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원문을 찾아보니 --- "How did we come to live in a world where most money is invisible, little more than numbers on a computer screen?"1이더군요. 아니,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


암튼 시작부터, 이 책의 번역에 심대한 의문이 갔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승환이 형의 말은 예의 이 책에서도 성립되어, 


"부유한 시민들은 재산세를 내는 대신, 도시 국가 정부에게 자금을 빌려 주어야 할 의무를 안고 있었다"(p74) --- 뭔가 이상해요. 재산세를 내는데, 왜 그 '대신' 자금도 또 빌려주어야 한다는 것일까요?2 찾아보았더니, 


"Instead of paying a property tax, wealthier citizens were effectively obliged to lend money to their own city government"를 그렇게 번역해 놓은 것이더군요. 이 구절은, "재산세를 내지 않는 대신"혹은 "재산세 납부에 갈음하여"의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뒷 구절과의 문맥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전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AM이라 표기한) 원문의 구절을 각주로 첨부하여 놓았습니다. (한글로 읽다가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원문을 찾아 읽었는데, 이 책... 정말 쉬운 영어로 쓰여져있습니다. 이 책을 읽겠다는 분은 꼭! 원문으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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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는 본질적으로 돌연변이 제도가 출현하거나, 제도들이 자연 선택된 결과이다. … 그렇지만 주요 동력은 시장 선택(market selection)이었다. 금융 유기체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른 개체와 경쟁을 한다. 특정한 시공간에서는 특정한 종이 우세해진다. (p346)3


저자 니얼 퍼거슨도 명시하고 있듯4, 진화(evolution)가 곧 진보(progress)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진화'란 단지 '다양성의 확대'를 의미할 뿐5, 새로운 개체가 이전 것보다 반드시 '우월'해야 한다라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시 말해, 진화는 그저 진보를 위한 필요조건이며, 그러하기에, 


"자본집적도의 급격한 증가 … 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의 산업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가 대체했음을 의미했다. 또한 부의 분배가 기업가와 노동자에게서 주주와 은행 등 금융자본가에게로 쏠리고 있음을 뜻한다. 


- 홍익희,「월가 이야기」중 p89, 한스미디어, 2014.


홍익희 교수가 위의 구절에서 사용한 '대체'라는 단어를, '승리'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건 잘못된 이해라 전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 니얼 퍼거슨도 "money is the root of most progress"(AM, p2)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있긴하나, 무엇보다 --- (우열의 전개가 아닌) '다양성의 확대'라는 관점으로, (금융 제도란게 서양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제도 발전 과정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는 책에 'History of the World'란 제목을 단 것에 대한 '상투적인' 불만은 차치하고, 어쨌든"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읽어달라 당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의 복잡한 금융 제도와 금융 용어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이들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어떤 제도와 수단의 기원을 이해해야 그 현대적 역할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결국 현대 금융 제도의 핵심 요소들도 순차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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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인과 관계로 바라보는 시각(더 고도화된 금융 제도가 경제 성장을 일으켰다거나, 경제 성장이 금융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는 등)은 그다지 유용하지 못하다. 두 과정이 서로 의존하면서도 자체적으로 강화됐다고 보는 게 정확한 논리일 것이다. (p57)7


니얼 퍼거슨은 이러한 경제 성장과 금융의 발전 사이에 있었던 'interdependent and self-reinforcing'의 과정에서 '화폐 - 채권 - 주식 - 보험 - 부동산 - 국제금융'의 순으로 현재의 금융 제도가 발전해왔다라 설명해줍니다. 저자의 글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자면, 


화폐는 언제 금속에서 탈피해 종이로 바뀌었으며, 또 언제 그 모든 형태에서 벗어났는가? 장기 금리를 결정짓는 채권 시장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게 사실인가? 주식 시장에서 거품이 생기고 터질 때 중앙은행의 역할은 무엇인가? 보험이 반드시 최상의 위험 보호 수단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의 이익을 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은 국제 금융 안정의 핵심인가, 아니면 단지 돌연변이 키메라에 지나지 않은가? (p18)8 


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간단하죠? 그러니 --- 이 글이「금융의 지배」란 책을 읽고 쓰는 감상문이긴 하나, 어디 제출해야 하는 숙제도 아니고, 책 속의 세세한 내용 모두를 이해한 것도 아니며, 딱히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 책의 내용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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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말하길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라 하지만, 특정 재화/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욕망마저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신발을 100만 켤레 씩 소유하고픈 욕망을 가진 사람을 없지요. 뭐, 각기 다른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신발을 100만 켤레 씩이나 욕망하지는 않습니다. (길게 말하자면 한없이 길어지겠지만, 일단!)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라 할 때의 '욕망'이란 고로, 


모든 재화/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지배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 보아야 하며,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의 권력의 크기는 곧 '화폐'의 양으로 측정되기에 우리는 --- '화폐에 대한'이란 문구가 생략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란 구절을 보게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하는 것이죠. 


화폐, 이는 곧 원하는 대상을 모조리 가져다주는 힘9이었다. (p25)

정말 넓게 말해보자면, 금화이건 지폐이건 채권이건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심지어 컴퓨터 스크린 상의 숫자일 뿐이라 해도, --- '금융의 역사'란 건 그 어떤 형태로의 진화/진보도 결국엔 '(권력의 징표로서의) 화폐에 대한 욕망'의 변천사일 뿐입니다. 권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 어떠한 형태/단위로 측정되는가는, 그것이 권력이기만 하다면 하등 상관 없습니다. cm나 ft로 표시할 때 숫자가 달라진다 하여, 우리의 키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정작 주목하여야 할 중요한 부분은 바로, 


화폐란 믿음의 문제, 나아가 신념의 문제라는 점 … 화폐는 금속이 아니다. 화폐는 신뢰를 새겨놓은 대상이다. 어디다 새겨 놓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이제 전자 시대에 들어서자 무형물도 화폐로 기능하게 되었다. (p34)10


(지겹도록 제가 언급하곤 하는) '수단과 목적의 전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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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폴리(Monopoly)로 알려진 이 게임은 1903년 엘리자베스 필립스라는 미국 여성이 처음 고안했다. 미국의 급진적인 경제학자 헨리 조지를 열렬히 신봉했던 그녀는 단일 토지세라는 유토피아를 꿈꿨다. 원래 이 게임을 만든 동기도 소수의 지주가 소작료를 징수해 이윤을 얻는 사회적 폐단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 (그러나) 현실은 고달플지라도 모노폴리에 빠져든 순간만큼은 번화가를 모두 접수하겠다는 꿈을 꿀 수 있었다. 게임은 원 개발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부동산 소유가 현명하다는 교훈을 던져 주었다. 소유 대상이 늘어날수록 돈도 더 많이 벌었다. (pp229~231)11


국내총생산(GDP)은 국가 내 모든 재화 및 서비스의 수량(q)과 단가(p)를 곱한 것의 합으로 구성됩니다. 이때 가격의 역할은, 각기 다른 형태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생산물의 수량을 단일한 측정값으로 표현해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 우리의 경제가 '성장'하였다라는 것의 원래/진짜 의미는 재화 및 서비스의 수량(q)이 증가하는 것만이어야 하는 겁니다. 허나! 


"세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2009년 성장률 8.8%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통화량을 팽창시킨 결과 부동산의 재버블화에 성공하고, 그 결과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중국 경제가 2009년에서 8.8%의 고도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에 부동산 버블이 터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반대로 부동산 버블 때문에 8.8%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 세일러,「불편한 경제학」중 pp413~415, 위즈덤하우스, 2010.


중국 경제의 '성장'이라는 게 q의 증가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닌, p의 상승으로 인해 기록된 것이라는, 어쨌든 p와 q의 곱셈으로 구성되어 있는 GDP란 것의 성장에 목메고 있는 이들에겐, 그것이 (+)를 기록했다라는 사실만이 중요하게 되어버린, 그러니까 이 상황이 뭐냐하면 --- '실질'적 경제 생활에 수단으로 도입된 '화폐'라는 녀석이, 마치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 것 마냥, 스스로 '목적'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과정인 것이고, 어쩌면 우린 이걸 '금융의 역사'라 배우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설마... 싶긴 하지만, 혹시나 정말로, 


금융 제도는 경제의 두뇌이다. … 이는 ①경제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자본 할당 조정 장치로, 기업이나 가계가 자본을 가장 ②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만약 자본이 ③엉뚱한 곳에 쓰이거나 전혀 ④유동적이지 못할 경우, 경제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결국 경제 성장도 침체된다" (p338)

화폐의 등장이 경제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당연!(①)한 것이나, 수단이 목적 달성을 위한 행위를 지시(②)하게 되었고, 심지어 수단(화폐) 자체가 자신이 '자본 활동(돈놀이)'이 아닌 '생산'이라는 엉뚱한 곳(③)에 쓰이지 못하도록 강제하며, 그리하여 '생산 설비'의 확충에 투자되는 것(④)마저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 --- 우리가 지금 두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다시금 깨닫게 된 사실 하난 바로,


거시경제학은 정말, 제 취향이 아니라는 거. --;;



※ 이 책 읽기에 도움이 될 책 : 불편한 경제학」·「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이 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하네요. 그 1편의 링크를 올려놓습니다. 

...금연 327일째





  1. 「The Ascent of Money」중 p1, The Penguin Press NY, 2008.(이하 AM)
  2. 저의 국어 상식으로는 --- 예를 들어, '재산세를 내는 대신'이란 구절 뒤에는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와 같은, 이득이 되는 혜택이 주어져야 문맥의 흐름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3. "Financial history is essentially the result of institutional mutation and natural selection. … But market selection is the main driver. Financial organisms are in competition with one another for finite resources. At certain times and in certain places, certain species may become dominant." (AM, pp350~351)
  4. "… in the natural world, evolution is not progressive" (AM, p351)
  5. "진화란 종의 유전적 형질이 시간을 통해 변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변화의 누적을 통해 공통 조상으로부터 새로운 종이 발생하여 생명체의 종이 다양해지는 현상이다" - 한국문화인류학회,「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중 p51, 일조각, 2003.
  6. "The first step towards understanding the complexities of modern financial institutions and terminology is to find out where they came from. Only understand the origins of an institution or instrument and you will find its present-day role much easier to grasp. Accordingly, the key components of the modern financial system are introduced sequentially." (AM, p12)
  7. "It may in fact be futile to seek a simplistic causal relationship (more sophisticated financial institutions caused growth or growth spurred on financial development). It seems perfectly plausible that the two processes were interdependent and self-reinforcing." (AM, p53)
  8. "When did money stop being metal and mutate into paper, before vanishing altogether? Is it true that, by setting long-term interest rates, the bond market rules the world? What is the role played by central banks in stock market bubbles and busts? Why is insurance not necessarily the best way to protect yourself from risk? Do people exaggerate the benefits of investing in real estate? And is the economic inter-dependence of China and America the key to global financial stability, or a mere chimera?" (AM, p12)
  9. "portable power" (AM, p21)
  10. "Money is not metal. It is trust inscribed. And it does not seem to matter much where it is inscribed. … And now, it seems, in this electronic age nothing can serve as money too." (AM, p30)
  11. "The game we know today as Monopoly was first devised in 1903 by an American woman, Elizabeth ('Lizzie') Phillips, a devotee of the radical economist Henry George. Her Utopian dream was of a world in which the only tax would be a levy on land values. The game's intended purpose was to expose the iniquity of a social system in which a small minority of landlords profited from the rents they collected from tenants. … In real life, times may be hard, but when we play Monopoly we can dream of buying whole streets. What the game tells us, in complete contradiction to its original inventor's intention, is that it's smart to own property. The more you own, the more money you make." (AM, pp 23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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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이야기 - 현란하게 변화하는 금융기법의 비밀 홍익희 교수의 교양 화폐경제학 시리즈
홍익희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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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는 당시 열병처럼 번지던 석유탐사 흥분에 휩싸이는 대신 다른 미래를 그렸다. 그는 '진짜 돈'은 석유 채굴이 아니라 운송과 정유를 담당하는 중간상인임을 간파했다. … 솟구쳐 오르는 검은 액체도 정제하지 않으면 끈적끈적한 구정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pp50~51)

돈 버는 소질이란 건 따로 있다,라는 말이 확실히 맞긴 맞나 봅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의 골드 러쉬때 진짜 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캐러 미 서부로 몰려가 땅 파느라 개고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청바지를 팔았던 사람들이었다는 예처럼, 록펠러의 성공 스토리 역시 약간의 과장을 가미해 본다면, 중요한 것은 '본질'일 수 있겠으나, 달콤함은 결국 --- 본질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일종의) 처세술스런 교훈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요. 마찬가지로, 


자본집적도의 급격한 증가 … 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의 산업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가 대체했음을 의미했다. 또한 부의 분배가 기업가와 노동자에게서 주주와 은행 등 금융자본가에게로 쏠리고 있음을 뜻한다. (p89) 

너네 작년에 얼마나 잘했는지 함 보고 싶어라는 이유로, 일종의 계량화된 성적표의 작성을 위해 고안되었던 '경제성장률'이란 개념이 어느덧, 올해엔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절제절명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처럼1 ---  화폐란 기실 '재화/서비스의 교환을 원활하기 해주기 위한 수단'이라는 일종의 도구로서 탄생되었고, 그러하기에 당연히 '교환의 수단'이란 것이 화폐가 지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돈을 버는 금융산업의 속성"(p121)은 신자유주의가 더해진 자본주의 하에서 그 날개를 마음껏 펼쳐내었고, 결국엔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종말을 고해주었죠.2 


…………………………………………………………………………………………… 


세계 금융시장이 어떻게, 얼마나 빨리 변신해 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아보자. (p7) …… 지피지기다. 과연 자본이 어떤 면에서 악의 근원인지 또 어떤 면에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 금융산업과 금융기법의 발전 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금융 산업을 도약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해악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p285)

이 책을 읽어낸 독자로서 과연, 이 책이 위와 같은 미션을 어느 정도/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Never!'라 대답하겠습니다. 일단, --- 저자 스스로가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에 대해, 과연 웍(wok) 속 야채들을 자유자재로 뒤집고 섞고해내는 중국집 주방장처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썼을까?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지 못한 내용에 대한 책을 썼기에, --- '자세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설명해주는 것'과 '한 말 또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경지의 교수법일진데, 저자는 이 둘을 똑.같.다.라 생각하고 있음이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가져보게 되었을정도로, 저자의 서술은 방향성이라든가 통일성이라 불리울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p577에서 끝나는 이 책은, 그런 '한 말 또하는 것'만 빼도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을 듯. 


두번 째, 이 책 속 모든 수치들을 다 외워서 써내었길 바라는 걸 결코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 도대체 몇 퍼센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신문 과 잡지의 기사들로부터 가져온 내용들로 채워놓은 이 책을, 정녕 저자 홍익희의 저작이라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좀 심하게는 해보게도 됩니다. 진짜 궁금해서, 인용되어 있는 몇몇 기사들을 검색해봤더만 이건 뭐... 거의 통째로 옮겨온 것들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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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렇게 경제금융 전발을 깊이 있게 다룬 훌륭한 책이 한국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크게 놀라웠다. …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으며, 한국인의 관점에서 쓰인 책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 <추천사> 중

이 책에 대해, 이런 추천사를 용기 내어 썼다라는 사실 자체가 전 더 '크게 놀라웠'... --;; 



※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다음 책을 ---「불편한 경제학」·「의장! 이의 있습니다


 


...금연 315일째




  1. "세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2009년 성장률 8.8%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통화량을 팽창시킨 결과 부동산의 재버블과에 성공하고, 그 결과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중국에서 성장률 8%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연간 2,000만 명의 신규 일자리를 보장하는 마지노선이 성장률 8%이기 때문 …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입니다. 중국이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면서 지금까지 공산당 일당독재체재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 모든 불만을 무마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경제성장 덕분이었습니다. 경제성장이 무너지면 중국 공산당의 지배체제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체제수호 차원에서 성장률 8%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 세일러,「불편한 경제학」중 pp413~415, 위즈덤하우스, 2010.
  2.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퍼져 나갔음에도 세계적으로 물가는 그리 뛰지 않았다. 우리는 이를 '골디락스(Goldilocks)'라 불렀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알맞은 온기'의 경기가 계속되었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의 저렴한 제조업의 힘이었다. 유동성이 늘어나 물가 상승의 압력을 저렴한 공산품이 상쇄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저렴한 공산품을 풍부하게 제공하여 세계 '근원물가지수'를 크게 억제할 수 있었다. (pp154~155) --- 뭔가, 제조업이 그 마지막 사력을 다해 새로운 지배자의 연착륙을 도와주었다란 느낌이 들기도 하는 문장이었습니다. 더해, 과연 우리가 중국의 공해 등에 대해 욕만 해도 되는걸까,란 질문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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