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이름으로 - 헌법의 역사, 현실, 논리를 찾아서
양건 지음 / 사계절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떠한 수단을 사용했든 간에 권력을 차지한 집단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들을 위해서만 그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집단은 자신들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세상을 바꾼 법정」중 pp306~307, 궁리, 2006.


이 책의 저자 양건은 "대통령 박근혜의 비극은 '권력의 사유화'를 사유화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에 연유"(p20)한다라 적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박근혜가 대통령의 직에서 탄핵당해야 했던 공식적인 이유는 아니었겠죠.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된 공식적 사유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법'에 근거한 결정이었었던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해악이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 즉,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는 때를 말한다. (p379)1  


"질서의 유지 또는 평화의 확립 … 정의 구현"2이라는 존재 이유를 갖고 있는 '법'에 근거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인해 '박근혜​'라는 이름 앞에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명칭 대신 '수형번호 503호'라는 단어가 붙게 되었다라는 것만으로는, '정의(justice)의 실현'이 담보된 것3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 사회가 더욱 평화스러워졌다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외려 '촛불'4과 '태극기'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기존의 '세대 간' 혹은 '보수와 진보'라는 구도와는 또 다른 새로운) 대립이 생겨나기도 했었죠. 잔혹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라는 등에도 의견이 나누어지겠거늘,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란 표현이 이끌어 낸 (결국 '파면이란) 결론에 대한 '촛불'과 '태극기'라는 상극의 반응은, 위와 같은 법령 문구가 지니고 있는 기준의 모호함/주관성이 자아낸 (민주주의 체제가 지니고 있는)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그러한 모호함의 결과란 게 --- '파면했을 때의 이익'과 '파면하지 않았을 때의 이익'과 비교하여 더 큰 이익을 채택하겠다라는 기준 하에서의 2017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시키는 것의 이익이 더 크다라는 판단/선택이었었으나, 그 이익을 비교함에 있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집단을 향한 설득/설명의 근거로 사용될 객관성의 확보라는 의미에서의) 어떠한 계량적 분석이 있었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런 게 있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죠. 그렇다고 하여, 


한국에선 군중의 감정이 어느 한계점을 넘어서면 야수로 돌변해 의사결정과 기존 법률을 제쳐버릴 정도로 사나워진다. 이걸 민심이라고 내세운다. 그러면 한국 권력기관들의 의사결정은 가두시위, 온라인 댓글, 신문 기사 등에 표현된 군중의 주문에 응대해 따라간다. … 한국에선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다. 대신 국민을 신으로 받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단의 길로 잘못 들어서 국민이 아닌 최ㅇㅇ을 섬기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게 국민이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의 1계명을 어겼다며 대통령에게 벌을 내리고 있는 형국이다.(pp 386~387)5

 

헌법재판소가 (시니컬하기 그지 없는 Foreign Policy의 위 기사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여론을 따르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것이고, 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헌법재판을 하는 권력도 국가권력의 일종이며, 무릇 모든 권력행사는 국민의사에 쫓아야 하는 것"(p353)이란 단순하기 그지 없는6 논리에 따라 탄핵이라는 결정을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법의 해석·적용은 다소간 불확정성 문제를 안고 있지만, 헌법의 경우엔 그 정도가 훨씬 크다.(p28) …… 헌법은 강한 이념성, 추상성, 정치성을 갖는다. 법률, 명령 등 다른 어떤 법형식보다 원리 성격의 규정들로 가득하다. 때문에 헌법의 해석·적용의 불확정성은 크게 증폭된다. 헌법재판에서 재판관들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p503)


위와 같은 헌법의 특성으로 인해 결과되는 다음의 두 문장이, 이 두꺼운 책의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즉, ---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란 헌법 정신에 대한 판단이란 게 계량적인 것이 아닌, 

 

헌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 싫든 좋든, 헌법의 정치적 색깔은 숙명이다. 헌법재판이란, 헌법의 이름으로 내리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p33) 

 

·

·

·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사실(fact)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세계에서 해석은 늘 강자들의 몫이었다. 진실의 상대성은 법률과 국가의 이름으로 오용되어왔다."


- 손아람, 「소수의견」중 p439, 들녘, 2010.

 

'제한속도 시속 100Km'라는 법령에 대한 위반 여부는 개인적 가치관이 개입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회사에 지각해서 빨리 달렸다라는 등의) 개인적 억울함은 있을 수 있으나, "법규범은 그 규범의 준수가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규범"7이란 특성에 따라 가해지는 제재에 대한 집단적/체계적 저항은 있을 수 없게 되지요. 그러나! 


헌법재판에 관한 논쟁들은 헌법재판의 정치성에 기인한다. 헌법재판의 정치성은 세 가지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헌법재판의 대상인 법률이나 처분 등이 정치적 성격을 지니며, 헌법재판의 기준이 헌법 또한 정치성을 갖는 데서 오는 정치성이다. … 둘째,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이 재판에 투영되는 데에서 오는 정치성이다. 이 점을 재판관 스스로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인다. … 셋째, 헌법재판소가 기관 차원에서 재판에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가설에 기초한 정치성이다.(p355) 


"서구의 근대화는 …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란 미셸 푸코의 설명을, 앞뒤 다 잘라낸 뒤, "서구의 근대화도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다"라는 오역으로 치환시켜, 박정희로 상징되는 근대화 주역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근대화의 폭력성'에의 기억을 아직은 완전히 떨쳐낼 수 없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작금의 사법통치 확대8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정치적 성향'에 대한 우려/공격에 유난히도 취약할 수 밖엔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나 법원은 국민의 선거로 구성된 기관이 아니다. 대통령과 의회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기관이다. 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사법기관이 선거에 의해 직접 선출된 의회나 행정부의 결정을 뒤엎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배치되지 않는가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법통치 현상은 이런 비판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p345)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판결 역시, 위와 같은 비판을 겪었어야 했지요. 저자 양건은 당시 헌법재판소가 "현명한 전략(재판관 만장일치 결정)"(p347)으로 그같은 비판을 극복해내었다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의 정치성에 대한 비판을, 또한 그 정치성을 발휘하여 극복해냈다라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 위와 같은 정치적 대응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제가 이해하는 바, 이 책의 주장입니다만 글쎄요... '이것이 내게 주어진 한계야!'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단지 '찜찜함'이란 단어만으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큰 모자람이 있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백 번을 양보하여, 


………………………………………………………………………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라는 게 공존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흔히 결과만을 두고 모든 것을 판단하므로 오류가 발생하기 쉬우며 그러한 집단 오류가 또 다른 이차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


- 도선우, 「저스티스맨」중 p13, 나무옆의자, 2017.


"재판은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 직접 사건을 목격한 증인이 아니라 사건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법관이 하는 것"9이란 사법부의 억울함에 대하여 인간적 동의를 한다 하여도, 그러한 인간적 동의를 헌법재판의 결과에까지도 가감없이 적용시키기엔, --- (양보의 숫자가 백 번보다 더 많이 더해진다 하여도 감당되어질 수 없을만큼) '헌법'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역사적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라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헌법이 정치의 소산이고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헌법의 해석·적용 역시 정치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지만, 헌법의 해석·적용이 정치적이라 함은 그런 의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해석하고 적용하는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투영된다는 말이다. 여러 원리적 규정들을 담고 있는 헌법의 추상성과 이로 인한 그 해석의 불확정성 때문에 헌법의 해석·적용은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치적 색깔로 물든다. 헌법재판에서 재판관의 의견은 객관적인 듯한 법리의 외관을 띠지만 그 밑에 잠재하는 것은 재판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다. 이 점에서도 헌법재판은 정치재판이다. 재판관이 정치적 성향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 이것은 회피하기 힘든 현실이다. 다만 입증이 쉽지 않을 뿐이다. 비단 헌법만이 아니다. … 모든 법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p30)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수없이 반복하여 주장하고 있는, 저의 견해로는 아마도 가장 강조하고픈 내용이 아닐까 싶은 위와 같은 법에 대한 해석/변명이 그리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정치성을 최대한 배제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언급보다, 애초부터 헌법의 성격이 그러한 걸 어쩌겠어!라는 의미로만 들리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 이 책 「헌법의 이름으로」가 지니고 있는 전반적 톤과는 사뭇 다른, 김두식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저에겐 훨씬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헌법을 이해하는 열쇳말은 '인정한다, 그러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제 생각합니다. … 권력자들은 누구나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인정한다. 그러나'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마음대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이미 헌법이 아닌 것이지요"


- 김두식, 「헌법의 풍경」중 p243, 교양인, 2013. 


·

·

·


"정의(justice)는 또한 정의롭게 추구되어야 합니다. 목적으로서의 정의는 수단으로서의 정의를 요구합니다."


- 김석, 위의 책 p165.


"헌법은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지속적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를 지니면서 새롭게 형성되고 재형성되어 간다"(p554)란 저자의 일갈 속에도 예의, 위와 같은 '수단으로서의 정의(justice)'가 담겨져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일국의 '헌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및 재판관들의 '정치적 결정'이 이러한 '수단으로서의 정의'마저 담보해낼 수 없다면, "사회의 총체적 변화"10를 쟁취해낸다라는 의미로서의 '혁명'11이 또다시 필요해지겠죠. 


세계  각국의 헌법사를 다룬 <1부>는 차치해버린다 하더라도, 저의 청춘이 시작되었던 시점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와 당시 헌법의 역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2부>와, 건국절에 대한 논란이라든가 남북분단에 대한 헌법적 해석 등을 설명해주고 있는 <3부>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고 유익했습니다. '개헌'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중이 현 시점에서, 당신 삶의 목표가 밥만 먹으면 된다가 아니라면, 또한 --- 읽는다라는 노동으로부터의 재미를 뛰어넘을 독서가 되어주리라, 더 나아가 2018년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일원으로서 '헌법'이라는 존재가 지닌 의미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드리는 책들

- 김두식 : 「헌법의 풍경

- 김석 : 「법철학 소프트

- 김영란 :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 세상을 바꾼 법정

- 유시민 : 「후불제 민주주의

- 손아람 : 소수의견


  1. 헌법재판소 결정요지 '라'의 일부.
  2. 김석, 「법철학 소프트」중 p30, 박영사, 2015.
  3. "우리의 분노는 나쁜 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 놈이 충분히 처벌받는 것을 보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허태균, 「어쩌다 한국인」중 p183, 중앙Books, 2015.
  4. ​촛불항쟁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 "촛불항쟁은 … 그 중심이 집회시위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적 의사 관철 방식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방식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이어야 한다. 자칫 관습화된다면 폐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집회시위는 국민의사의 확인 방법으로서는 부적절하다. 이를테면 그 '확성 효과' 때문이다. 잘 조직된 집단의 집회시위는 국민의사를 왜곡하고 실제보다 크게 들리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 촛불항쟁은 '성공 사례'였다. 다행히도 가두정치가 이성적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정치가 항상 이성적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에서 보듯, 한쪽의 거리정치는 다른 쪽의 거리정치를 부른다. 그뿐만 아니다. 거리정치 성공의 기억은 의회정치와 법 집행 등, 모든 국가기관의 권력행사에서 '눈치보기' 습성을 내면화할 수 있다. 이것은 때로 독이 될 수 있다. 거리정치의 지향점이 항상 정의도 아니고 항상 현명하지도 않다. 촛불항쟁식 주권행사 방식은 어디까지나 예외에 그쳐야 한다" (pp387~388)
  5. Foreign Policy의 기사라 소개되어 있는데, 표시되어 있는 미주 번호를 따라가보니 정작 해당 미주에 대한 내용은 없네요. 편집에서의 결정적 실수... --;;
  6. '단순하기 그지 없는'이란 형용구를 제 임의대로 붙였습니다만, 이같은 논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단순하기 그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게, 참 이처럼 복잡하고 애매한 것인지요. --- "국민과 헌법재판소는 서로 의존한다. 헌재의 결정은 국민의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 국민의 의사가 일시적으로 표출된 국민의사는 아니다. 국민 속에 잠재된, 미래에 표출될 수도 있는 이상적 국민의사이어야 한다. 헌재는 진정한 국민의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표현하며, 종국적으로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헌재의 결정 속에서 자신의 고양된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p354)
  7. 김석, 위의 책 p13.
  8. "정치적 쟁점이나 기타 공공적 쟁점이 행정부나 의회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같은 사법기관을 통해 해결되는 일이 증가하는 현상"(p326)
  9. 김석, 위의 책 p130.
  10. 자오팅양·레지 드르베, 「상실의 시대」중 p31, 메디치, 2016.
  11. 저자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성공한 '혁명'은 1987년의 '6월 항쟁'이 최초였다라 적고 있습니다. --- "한국 근현대사에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한 적이 있었는가. 숱한 국민적 항쟁이 있었지만 훗날의 변화를 위한 밑거름이었을 뿐, 당시로서는 모두 실패한 좌절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3·1운동이 그랬고 4·19가 그랬으며 80년 서울의 봄에 이은 5·18광주항쟁이 또한 그러했다. 87년 '6월 혁명'은 첫 번째 성공의 경험이었다"(p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래의 기술 - 트럼프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The Art of the Deal 한국어판
도널드 트럼프 지음, 이재호 옮김 / 살림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거래로서의 외교 】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p17)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한 쪽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1 대통령의 이 책, 「거래의 기술」을 읽고 싶어졌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생각, 여기에 더해진, 이 책의 제목처럼 뭔가 '거래에서의 기술'이랄까 등을 배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란 부수적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바람()에 맞게, 트럼프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그간 부동산 사업가로서 쌓아온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거래의 기술'들을 (슬쩍슬쩍) 보여주고 있지요. 저의 시선이 그러해서였을까요? (아주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그러한 '거래의 기술'들은 예의 --- 김정은과의 만남을 앞두고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의 단초를 제시해주고 있다 느껴졌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란 가끔 거칠게 나갈 필요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p22)


위 문장은, 지난 5월 24일 "나는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고대했으나 슬프게도 북한의 최근 성명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근거할 때 지금 시점에 오랫동안 준비했던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2라는 발표의 배경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무리없이 짐작하게 해줍니다. (데니스 로드먼이 이 책을 김정은에게 선물했었다 하니, 김정은 또한 이런 짐작을 했었었겠지요.) 하지만 이제 더 중요한 건 --- 여전히 무언가 눈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이, 그저 '약속'의 나열로만 그친3 6·12 회담의 결과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사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에게 그가 현재 갖고 있는 물건이 가치로 볼 때 별로 대단치 않음을 확신시켜주는 것이 대단히 유리하다.(p138)


위와 같은 확신을 김정은에게 준다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아마도 "거래는 쌍방이 이익을 볼 때 잘 이루어진다"(p404)라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문제는!!! --- 이 때의 '쌍방'에 대한민국이 거의/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점이지요.  게다가, 


"북한에 체제 안정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현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 북한 민중들의 삶에 미국은 전혀 관심이 없다라는, 즉 이제까지 북한을 공격할 때의 주요 무기(?)였었던 '인권' 문제를 자신(미국)의 안전 확보를 위해 미련 없이, 상대의 이익으로 주어버렸다라는, 다시 말해 "거래는 쌍방이 이익을 볼 때 잘 이루어진다"(p404)란 말을 이런 식으로 현실화시켰다라는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트럼프가 밝히고 있는 다음과 같이 단순명료한 판단 기준은, 이러한 저의 생각을 충분히 뒷받침해준다라 생각합니다.


이쪽저쪽을 따질 게 아니라 이긴 쪽에 붙어 그 쪽에 충실한 사람이 되라. (p20)



 

【 솔직함 그리고 일관성 】


나는 이번 달에만 벌써 두 차례의 만찬을 주재했다. … 사람들은 왜 나에게 자선 만찬을 주재해달라거나, 자선 모임에 나와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할까?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그것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만찬회에 나가면 부자 친구들이 몰려와 테이블을 사고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게임을 이해한다. (pp34~35)



적어도 어쨌든, 트럼프는 솔직합니다. 이런 그의 솔직함이 때로는 경박함 / 신중하지 못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말들을 교양 있어 보이게 자서전에 써놓은 누군가보다는4 훨씬 낫다고 전 생각합니다. 이같은 그의 솔직함에, 


좋은 평판은 나쁜 평판보다 낫다. 그러나 나쁜 평판은 때때로 평판이 전혀 없는 것보다 낫다. 간략히 말해서 논란은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p217)


이러한 가치관을 더해 본다면, 대통령 후보 시절, 트럼프가 야기(?)했었던 온갖 구설수들이 일견 (적어도 사후적으로는) 이해되기도 합니다... 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오랫동안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잠깐 동안은 흥분시킬 수도 있고, 그럴듯한 선전을 할 수도 있고, 온갖 언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 좀 떠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사람들은 끝내 허실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p85)


또 달리 생각해보면, 그러한 구설수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나는 고용을 증대하는 것이 어떠한 복지 정책보다 더욱 유효한 실업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해왔다"(p415)란 가치관은 놀라우리만치 변하지 않고5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겁니다. 그러하기에, "혹여 막말에 가려 그의 진짜 모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p8)란 역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지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신 스스로 실천해나가는 사람이랄까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방침을 정하고 그것을 고수해나가는 사람이다. (p442)


………………………………………………………………………………………


"'불가능은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인가 꼭 해야 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내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 김성호, 「일본전산 이야기」중 p72, 쌤앤파커스, 2009.


트럼프의 이 책 속 '거래의 기술'이란 게, 어쩌면 위의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 별 거 없다라는 것이죠. 이 '별 거 없다'라는 말은 다음의 두 가지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첫째, 성공의 비결이란 게 뭐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무척 단순한 곳에 있다라는 점입니다. 


"성공이란 거창하고 멀기만 한 미래의 그림이 아니며 바로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해나갈 때 비로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임을 우리는 일본전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다."


- 김성호, 위의 책 p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담에서 사회적인, 역사적인 운()은 대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그들의 인간 승리만이 비춰진다. … (그러하기에) 사업이든 뭐든 간에 성공한 남의 이야기에서 배울 건 그다지 많지 않다."


- 이건범, 「파산」중 p13, 피어나, 2014.


"이러한 성공은 내가 육감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p300)란 트럼프의 자평을 읽자라면, (미국 뉴욕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부동산 업자의 사업 이야기가 안겨주는 낯설음 뿐만 아니라) 예의 '병 나음 받은 자의 간증'과도 같은, 만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행운을 보편화시키는 오류라는 의미로서의 '별 거 없다'란 쪽에, 손을 들게 됩니다. 트럼프의 육감을 지니지 못한 이들, 그래서/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결국 --- 트럼프가 제시하는 '거래의 기술'이란 것이 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란, 일종의 허탈감이랄까요? 뭐 그래도... 


·

·

·


"겁낼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당신의 자리에서 당당히 일을 하면 된다"(p118)


제 카톡의 프로필 사진에 달려 있는 문구인 "Vara Modig! (Be Brave!)"과 동일한 의미의 위 두 문장이, 병 나음을 받는지의 여부와 상관 없이 병이 나아지도록 환자 스스로도 용기를 잃지말고 노력해야 한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라는, --- 딱히 '거래의 기술'과는 관계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한 잔향을, 제게 남겨 주었네요. 참... 책 읽을 시간 내는 것조차 힘든, 바쁜 2018년이네요.   



 「대통령의 시간」 : 대통령을 해본 자의 자만

    「파산」 : 성공해본 자의 실패


 



  1. 제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건 WWE에서였었습니다. --;;
  2.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6·12 북미 정상회담(2018)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2018년 6월 12일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미국과 북한의 관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포괄적이고,심도 있고, 진심이 담긴 의견을 교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 안정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확실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새로운 미·북 관계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것을 확신하며, 이러한 양측의 자신감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다음 내용에 합의한다.
    1. 미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조 관계를 수립할 것을 약속한다.
    2. 미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이다.
    3.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4. 미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이미 확인된 전쟁 포로 유골의 즉각적인 송환을 포함해 전쟁포로와 실종자의 유해 복구를 약속한다.
    역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수십년간 지속된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역사적인 행사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공동 협약의 조항을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하기로 약속한다. 이후 미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진행하는 고위급 실무 회담을 최대한 빨리 추진해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실행에 옮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로운 미-조 관계 형성과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번영·안보를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J. 트럼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2018년 6월 12일
    센토사섬, 싱가포르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6·12 북미 정상회담(2018)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4.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국민을 섬겨야 한다. 현안에 빠져 정신없더라도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 깨끗한 정치를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의 시간」중 p6, 알에이치코리아, 2015.
  5. 이 책은 1987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익의 90%는 가격 결정이 좌우한다
니시다 준세이 지음, 황선종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격 결정(pricing)'은 기업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 결정이다. 그런데 … 가격 결정 방법론은 여전히 ①'생산 비용 더하기 이익 기준 가격 결정(mark-up pricing)'과 ②'경쟁사 가격을 고려한 가격 결정(competitive pricing)', ③'고객이 인지한 가치에 기준을 두는 가격 결정(customer perceived value based pricing)'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푼돈 보다 더 큰 수익 올리는 스마트 프라이싱' , DBR 67호, 2010.10.


①번과 ②번의 과정을 통해 제품 가격을 설정한 후, 이후 시장의 반응에 따른 조정을 거치는 ③번의 과정을 밟고 있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란 위 인용글 속 범주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단계/수준의 기업에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역시 기본적으로, "가격 결정이 외부, 즉 고객이 아니라 내부"1의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렇기에/그리하여, --- "가격 결정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p38)이라 저자 스스로가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대체 우리 회사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어렴풋하나마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나름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 


…………………………………………………………………………… 


표면가격 … '제품 1개당 얼마'라는 단순한 가격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경영자 대부분은 이 표면가격만 보고 원가 계산이나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표면가격을 정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잠재해 있는 각종 원칙을 미리 결정할 필요가 있다.  … 나는 표면가격 뒤에 있어 보이지 않지만 제품가에 영향을 미치는 가격을 이면가격이라 부른다. (p66) 


뭐, wording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니, 저자가 제시한 표면가격 / 이면가격의 구분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 "① 스펙, ②서비스, ③수량, ④시간, ⑤가격 인하⑥현물"(p67) 등이 이면가격을 구성하고 있는 6가지 항목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① "제품이나 서비스의 내용이 바뀌면 당연히 원가가 달라진다. 원가가 오르거나 내려가면 이익의 구조도 바뀌게 되니 거기에 맞춰 판매가격도 바꿔야 한다. 즉, 스펙이 바뀌면 원가가 바뀌니 당연히 판매가격도 바뀌어야 한다."(p75)

② "작업과정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최종 제품가격과 분리해서 '이 이상의 작업이 발생하면 별도요금을 받는다'라는 방침을 정한 다음,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방법을 내부에서 신중하게 검토한다.'(p101) 


이처럼, 책 속에는 위 6가지의 이면가격 구성 요소들에 대한 설명들이, 그러니까 뭐 대단히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이라면 일단 다 '알고는' 있는 이야기들이니까요. 


이익 방정식 : 이익 = (①판매가격 - ②원가) × ③판매수량 --- 이 식은 다음 3가지에 의해 이익이 향상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① 판매가격을 높게 설정한다, ②원가를 되도록 낮춘다, ③판매수량을 높인다.2 … 당신의 회사에서는 이익 방정식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이해와 실천은 다른 문제다. 회사 대부분이 이익 방정식은 알고 있어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pp 53~54) 


네! '알고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에 옮겨내지 못하는, 그리하여 결국 '알고만'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란 저자의 지적엔 고개 숙여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가격 결정(pricing)'에 관한 책인가란 물음에 전,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겠습니다. 이 책은 단지 --- 그간 가격 결정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했던 원가 구성 요소들에 대한 제대로 된 반영을 다시금 환기시켜주고 있는, 딱 그 정도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엔 담겨 있지 않는) 진정한 '가격 결정(pricing)'의 메커니즘은 어떠해야 할까요? 


……………………………………………………………………………


"가격을 결정할 때는 제품 원가와 목표 이익만 고려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자사 제품의 가치와 경쟁 제품의 가치 및 가격 수준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

'소비자가 지각하는 제품의 총 경제가치 = 준거가치(reference value) + 차별가치(differentiation value)


여기서 준거가치는 제품의 최적 대체재의 가격으로 측정한다. 차별가치는 대체재와 비교한 그 제품의 차별점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뜻한다. … 이 두 가치의 합이 바로 소비자가 느끼는 해당 제품에 대한 총 경제가치가 되며, 이는 동시에 합리적인 소비자가 최대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이기도 하다."


- '가격 기준은 절대 가치 아닌 상대 가치', DBR 44호, 2009.11.


경제학을 공부한 이에겐 단숨에 이해되지는 않는, 그러나 경영학 또는 현실의 기업을 운영/관리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가격 결정(pricing)'의 메커니즘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위 인용문과 같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가격 결정을 하지 못하는 회사라면 아무리 원가를 절감하고 판매수량을 늘려도 이익을 낼 수 없다"(p60)라는 이 책 속 저자의 주장(의 핵심)은 여전히, --- 가격의 결정이 내부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관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

·


"가격은 근본적으로 제품·서비스 가치의 반영이다. … 기업은 고객의 지불 의사가 높다면 과감히 가격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3


- '효과적 가격 경쟁을 위한 4가지 열쇠', DBR 44호, 2009.11.


기업이,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선 결국 고객의 지불 의사를 높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제품의 외면적·내면적 가치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결국 "시장 가격은 도요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즉 고객이 결정하는 것이다. … 기업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원가 절감을 한다"4라는 관점, 즉 <판매가격 ≡ 원가 + 이익>의 정의(definition)이 아닌, <이익 ≡ 판매가격 - 원가>라는 정의를 채택하여야 한다라는 것이죠.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고객의 가치를 반영한 판매가격의 결정이 아닌) '원가'의 절감에 있다라는, 그리하여 --- 엄밀하게 보아, 이 책을 가리켜 '가격 결정(pricing)'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는 없다라 저는 판단하게 됩니다. 


……………………………………………………………………………


기업의 지속적 성장, 그리고 이론적 가정인 '영속 기업'이란 것이 이토록 쉽지 않은 것인지, 그건 최저 임금이 올라서라든가, 정부의 반기업적 시책들 때문이라든가, 물론 그같은 현실적 문제들이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겠으나,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 아직도 <이익 ≡ 판매가격 - 원가>라는 정의를 정확하게 실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원가를 절감한다라는 것도 분명 그 한계가 있을 터, 따라서 기업은 결국 고객이 자사의 제품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의 증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겠거늘, 제가 몸담고 있는 기업이 / 제가 보게되는 수많은 관련 기업들이 추구하는 주안점이 과연 어느 곳에 포커스를 두고 있느냐를 고민해 보면 정말, 


기업을 운영/관리한다라는 것에 "인간을 이해하는 일 자체가 중요해진 것"5란 문장이 보여주듯, 얼마나 광범위한 통찰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며, 그러하기에 --- 전, 이 책 「이익의 90%는 가격 결정이 좌우한다」가 보여주고 있는 관점에 동의할 수가 없네요. 다시 말하지만, 기업이 창출해 내는 이익의 몸통은 결코 원가의 절감에 있는 것이 아닌, 고객이 판단하는 제품의 가치로부터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성공한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고객들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뭔가 계속 잘 안 되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아주 심플합니다. 바로 그만큼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 강민호,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중 p45, 와이비, 2017.

 

 함께 읽어보길 권해드리는 책들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도요타의 원가 




  1. '인지 가치 접근법 : 저항 없이 가격 올린다' 중, DBR 120호, 2013.1.
  2. "수익성 향상을 위해 경영자가 활용할 수 있는 네 가지 수단은 매출, 고정비, 변동비, 가격이다. 이 중 가정 높은 수익성을 올리는 수단은 단연 가격책정(pricing)이다." - '스마트 프라이싱이 수익 만든다', DBR 59호, 2010.6.
  3. "가격 인상은 단지 고객에게 머리를 숙이고 부탁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론으로 무장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p33) ---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가격이 고객의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라는 의미가 아닌, 고객의 가치 판단과는 상관 없는, 순전히 내부적 요인에 의한 가격 인상을 논하고 있기에, 그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4. 「도요타의 원가」중 p36~39, 호리키리 도시오, 현대차 글로벌경영연구소, 2017.
  5. 강민호,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중 p120, 와이비, 20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경제를 망가뜨리는 자
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 / 부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Glossary 】 


'만드는 자makers'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takers'는 고장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리더들, 그러니까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들어간다. (p30)


………………………………………………………………………………………… 


금융은 미국 경제의 7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전체 기업 수익 가운데 약 25퍼센트를 가져간다. 반면 전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몫은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p16) 

(왜 이 문구가 '파레토 법칙'으로 불리우는지 좀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이렇게도 통용되고 있는) '20%가 80%를 먹여 살린다'란 파레토 법칙의 실례, 그러니까 금융권에 인재들이 많이 몰려있다라는 현상의 당연한 결과로 위 구절을 인용하려는/하고픈 사람도 있겠으나,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이 책,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는 위와 같은 편중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합당하지도 않다'라는 논조의 주장을 매우 강하게 펼쳐보입니다.1 적어도 "예전에는 미국 기업의 부가 커지면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p26)었었던, 그러니까 --- 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평등이 존재하긴 했었었으나, 그 정도가 용인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었으며, 무엇보다 파이의 전체 크기가 커짐에 따라 각자에게 분배되는 개별 파이의 양도 어쨌든 증가는 했었었거늘2,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다."3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중 p67, 더숲, 2014


현재의 미국 경제는 "경제 내에서 금융 및 금융 활동의 규모와 범위가 비대해지고, 생산을 위한 대출보다 부채에 기댄 투기적 행각이 기승을 부리며, 기업 지배구조 모델로 주주가치 우선주의가 득세"4(p29)한 결과, "만드는 자들이 거저먹는 자들에게 예속되어 버린"(p30) 모습으로의 불평등에 이르러 있다라5, 이 책의 저자는 단언합니다.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주범으로는 물론 --- 'Wall Street'가 지목되고 있지요. 그렇게 이 책은, 'Wall Street'로 대변되는 금융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제조업을 위시한 산업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습니다.6  


………………………………………………………………………………………… 


【 본말의 전도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 창세기 1장 1절


누군가(하나님)에 의지의 결과이건 아니건을 떠나, 그 모든 것의 시원(inception)은 '창조'의 단계, 또는 (물리적 결합이나 화학적 변형을 거친) '생산'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 인류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으로 '기업'을 꼽는 글도 있네요.7 예의,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은 분명 '생산의 결과물'임이 틀림 없으며, 그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로 '기업'을 꼽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서비스업의 역할도, 현대 경제에서는 생산을 담당하는 1·2차 산업의 비중 못지 않게 커진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같은 서비스업은 '생산'에의 직접적 기여는 하지 못하지만, 그 '생산'의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만큼은 훌륭하게 이행해주고 있지요. 그렇다면 --- 화폐로 상징되는 금융 산업은 과연 어떠할까요?

 

"돈을 버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조(wealth creation)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돈을 버는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이다. 


- '몇초만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의결권 부여해야 하나?', 콜린 메이어 교수의 강연 중, DBR 131호, 2013.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도 사용될 수 없으며, 그것이 있다하여 비바람과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요즘에는 점점 전산상에서의 숫자로만 존재해가는8) 것이 바로 '화폐'입니다. 애초부터 화폐는 스스로 기능하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윤활유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고안된 실체였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우린 (더 이상 윤활유로서의 역할만 수행하기를 거부한9) 그 화폐라는 실체가 자아낸, '돈을 향한 욕망',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에 이처럼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요? 더 나아가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치관의 측정 단위 자체가 되어버려 있는 이 현상은10 대체 무엇 때문인걸까요?   


"화폐, 이는 곧 원하는 대상을 모조리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중 p25, 민음사, 2010.


화폐에 대한 욕망은 근본적으로 모든 재화/서비스를 언제 어디서건 또한 여하한 방식으로라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 보아야 하며11,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의 권력의 크기는 곧 '화폐'의 양으로 측정되기에 우리는, '화폐에 대한'이란 문구가 생략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란 구절을 보게 되는 것이다란 논리에, 저는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다만 이 책이, 이같은 근본적인 측면에 관한 논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12 그저 이미 벌어져 있는 그같은 현상이 초래한 부조리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을 뿐이죠. 그러나 --- 책 속 지적은 더할 나위 없이 통렬13하며, 무엇보다!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힌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

·


애플이 동원한 자사주 매입과 배당은 이미 업계의 상식이다. 그 방식이 주로 기업의 경영진과 대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반면, 기업 자신의 중장기적 혁신 역량과 일자리 창출 능력은 물론이고 경쟁력까지 제약하는데도 말이다.(p25) 


2013년 시행되었던 애플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예로 들며 책은 시작됩니다.14 논란이 있기는 하나15,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부양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요. 애플 역시, 그같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액 증가가 자사의 주가 관리의 일환임을 굳이 숨기지도 않습니다.16 어쨌든, 상장 기업이 자사의 주가, 즉 기업의 가치를 증대 시키기 위해 취하는 행위에 대해 오류가 있다거나 혹은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할 수는 없겠죠.17 저자 라나 포루하의 강조점 역시 --- '비난'이 아닌, '의아함'에 주어져 있지요.18   


자사주 매입은 경제 전반의 부를 키워 주지 않는다. 그저 금융 시스템 내에서만 기업 가치를 올려줄 뿐이다. 자사주 매입은 대부분의 경우 금융화 그 자체이다. (pp194~195)


"항공사들의 경우 비행기 좌석을 판매하는 것보다 유가 등락 위험을 헤지하여 번 돈이 더 많을 때도 있다."(p28) ---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위험 회피책인 헷징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때로는 자본이득을 얻는 것에 비난을 던질 이유는 없으니까요. 다만 기업의 본질, 그러니까 항공기업의 경우 승객과 화물의 안전한 운송이라는 본질적 행위로부터의 이윤 추구보다, 어느 순간부터는 헷징을 통한 자본 이득의 수취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라는19, 본질의 전도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죠.20


미국의 기업은 더 이상 기업이 아니라, 금융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 요즘 미국 기업들은 그저 돈을 이리저리 굴리는 방법만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다.21 … 그야말로 미국 전체가 은행업에 종사하는 느낌이다. (pp27~29)    


화폐의 기능(들 중 본질적인 기능)은 분명 '윤활유' 역할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 '엔진의 원활한 가동'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이 윤활유가 어느 순간부터 그 스스로, 엔진의 가동 자체를 좌지우지하게 된다면, 이 상황을 두고 우리가 '정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듯, '부의 창조'가 본질인 (제조)기업이, '부의 이전'을22 통한 돈벌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때23, 우린 또한 '정상'이라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운영을 통해 얻어진 이윤 역시, 그 구성을 살펴보면,


미국 기업들의 수익이 오른 것도 맞고, 그에 따라 주가가 오른 것도 맞다. 그러나 이는 경기가 호전되어 물건을 더 많이 팔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24 임금을 동결하며 공장 신설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25 (p219)


이같은 현실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단순할 수 밖엔 없겠죠.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떠받치는 가상의 성장이 아니라 메인가26를 위한 지속 가능한 진짜 성장이다." (p32) --- 이같은 금융이 떠받치는 가상의 성장이 초래하는 비극을, 2008년의 금융위기에서 우리는 처절하게 경험해볼 수 있었었죠.27 



【 비정상의 승리 】 


"금융 제도는 경제의 두뇌이다. … 이는 경제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자본 할당 조정 장치로, 기업이나 가계가 자본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만약 자본이 엉뚱한 곳에 쓰이거나 전혀 유동적이지 못할 경우, 경제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결국 경제 성장도 침체된다."


- 니얼 퍼거슨, 위의 책 p338. 


저자 라나 포루하의 주장은 간단해요. 현재 자본이 엉뚱한 곳에 쓰여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저성장 기조가 만들어졌다라는 겁니다. 성장을 위한 윤활유로 작용하여야 하는 임무를 띤 금융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주주가치 개념에 따르면, 기업의 최우선 임무는 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주주의 이익을 다른 집단, 이를테면 고객, 창업자, 노동자,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p119) …… 부유한 투자자들 대부분, 즉 대형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애플의 원천 기술이나 생산적 자산에 한 푼도 기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28. … 그럼에도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기업이 베푸는 보상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 (p192) …… 최상위 1퍼센트에 집중된 돈은 … 극히 폐쇄적인 금융시장 안에서만 맴돌게 된다.29 낙수 효과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런 돈은 실질적 경제 성장을 이끄는 사업, 공장,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투자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금융시장에 기대했던 역할이 아니다. 본래의 목적은 '새로운' 자산과 도전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p196)


주주 가치 극대화란 일종의 슬로건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p204)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라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의 성장거리를 찾는 문화"(p51)로 표현될 수 있는 금융의 성격은, 단기적 기업 경영 및 투자 방식의 확산을 가져왔지요.30


"맥킨지의 재무 전문가들이 기업 주가에 내재된 기대가치를 분석한 결과 기업 가치의 70~90%는 3년, 혹은 그 후에 창출될 때가 많았다. 기업 가치의 상당 부분이 지금부터 3년 후에나 창출될 가능성이 큰데도 3개월 후의 측정 가능한 결과에 매달리는 식의 자본주의는 뭔가 잘못된31 것이다. …… 기업은 분기 성과에 집착하는 '분기 자본주의(quarterly capitalism)'에서 '장기 자본주의(long-term capitalism)'으로 이동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기간을 '장기'로 볼 것인가? 수익성이 높은 신규 사업에 투자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기간을 장기의 기준으로 보면 된다. 맥킨지는 5~7년 이상을 권고한다)" 


- '자본주의, 개혁 당하기 전에 개혁하라', DBR 91호, 2011.10.


어떤 현상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기능하면 그나마 문제가 커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외도된 고의였건 외도되지 않은 우연이었건) 어떠한 오해32를 통해 다른 현상에 (악)영향을 미치고, 여기에 특정의 의도를 지닌 마술이33 더해진 결과, --- 미국 퇴직 연금 제도에서 보여지는34"이익의 사유화와 리스크의 사회화"(p71)라는, 금융이 지닌 권력에 의해 완성된 '비정상의 승리'를 우린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눈덩이를 굴리는 행동이 눈덩이의 크기를 크게 해준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성장의 확산을 위하여는 또 다른 작은 눈덩이를 뭉쳐내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거늘, 너도나도 눈덩이를 굴리는 것에만 매달리게 되면 단 1개의 비정상적으로 커져버린 눈덩이만 존재하게 될 뿐이겠죠. 뭐, 콩알만한 내 떡이 뭐 (실체로서) 존재라도 해야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란 속담도 말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정상의 승리를 되찾기 위하여 】 

 

"우리가 하는 게임 이름이 뭐지? 고객의 주머니에서 돈 빼내기지.35 고객의 주머니에서 네 주머니로.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누구도 주가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어. 모든 게 환상이야. 모든 게 가짜라고. 네가 할 일은 그 가짜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거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 말이야. 사람들의 투자 수익을 돈으로 못 바꾸게 해야 해. 계속 투자하게 하는 거지. 그들은 중독되고, 그때 네 주머니에 돈이 차기 시작하는 거야."


- '어쩌면 변하지 않을,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 <The Banker> 736호, 2015.7.



'배고파 못살겠다'란 정서가 프랑스 혁명의 근본 정서였었음에는 별 이의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의 저자 박한식 교수 역시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36라는 일반론을 설명해주고 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역시 대중의 신뢰를 받아야 그 정당성과 생존이 보장된다고37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 "시장이 다른 무엇보다 시장 자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시대"(p93)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상대적 불평등 뿐만이 아니라 절대적 불평등까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이 현실38은 사뭇 암울해 보이기만 합니다. 


"원래 경제학은 …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학문이다. 이것이 경제학의 본질"


데이비드 보일·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중, 사군자, 2012.


이것이 어찌 경제학만의 본질이겠습니까. (섣불리, 경제학의 일 분야라고는 말 못하겠는) 금융의 본질 역시, 결국 먹고 살자라는, 가급적이면 '잘' 먹고 살자라는, 더 나아가 '맛있는 것을 잘' 먹고 살자라는 목표에 종속될 수 밖에 없겠지요. 현실이 암울하다 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39란 한 문장이 지닌, 단순하면서도 궁극적인 의지, 그리고 그 의지의 실천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 라나 포루하가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일 방안 역시 복잡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① 만드는 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자. (p462)

② 은행들이 우월한 정보와 자원을 이용해 가며 원래는 도움을 주어야 할 고객들과 경쟁하는 현재 시스템은 건강한가? …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잡성이 공익의 적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복잡성은 차익거래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금융업계는 그 누구보다 이 일을 잘한다. 금융업을 실물 경제에 이바지하는 본래의 위치로 되돌려놓으려거든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단순화하고 또 단순화해야 한다. (p297) 

(합당한 예시인지는 자신 없습니다만) GDP 성장률이라든가 그 절대 평가액을 키우기 위해 생산량(q)의 증가가 수반되지 않는, 오직 가격(p)의 상승만을 지지해온 것이, makers 보다는 takers에, Main street 보다는 Wall street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 온 현재의 미국 경제 그리고 예의 한국 경제40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일맥 상통한다고나 할까요? --- 가격의 상승만으로 지속되어온 GDP의 상승은 반드시 거품으로 붕괴되기 마련입니다.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가 바뀌어질 수는 있겠으나, 주역과 조역 자체가 바뀌지는 않듯, 

 

"기업은 높은 비용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나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낮은 비용을 생산하여 이윤을 남기고자 합니다. … 기업의 목적은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입니다."


- 「알기쉬운 경제이야기」중 pp74~75, 한국은행, 2013.


여하한 산업 내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유·무형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그 본질 자체만은 변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것과, (영화 속 '거래 중개인'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는) 본질적으로마저 일종의 '폰지 게임'이라 할 수 있을41, '금융' 섹터가 일 경제의 중심축이 되어버린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제가 이해하는 바, (너무 간단하고, 너무 당연한 인듯 싶지만)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입니다. 



 


 

이러한 저의 이해가, 제조업에서만 기능해오고 있다라는 저의 현실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건 아니란 걸 스스로 자신할 수 있거늘, 경제 내의 다른 섹터에서 기능하고 있는 당신은, 콕 집어 금융업계에서 기능하고 있는 당신에겐 과연 어떠한 이해를 안기게 될 지, 은근 궁금하기도... 



 함께 읽기를 권하여 드리는 책들 : 「불편한 경제학」, 「의장! 이의 있습니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금융의 지배」,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1. 역자 또한, 금융 섹터를 지칭하는 'takers'라는 원문의 단어를 "거저 먹는 자"(p19)로 번역하여 저자의 주장('정당하지 못한 불평등')을 한껏 강조해주고 있기도 합니다만, '거저 먹는다'란 단어의 사용에는 이의가 제기될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실물의 생산이 없다라는 의미에서 보자면 '거저 먹는' 게 맞지만, 금융 역시 그들 나름의 '노동'을 하고 있기는 하니까요.
  2. 전체 파이의 크기와 비례하여 개별 파이의 양이 증가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불평등의 심화임에 틀림없으나, 여하튼 개별 파이의 절대 크기는 커지지 않았느냐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3.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실제로 노동을 하는 이들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장에서 일을 해 버는 소득은 투자를 통해 얻는 소득보다 훨씬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p397)
  4. 저자는 이같은 현상을 '금융화 financialization'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5. "금융의 성장이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어마어마한 불평등의 확대다. … 불평등의 확대와 금융의 성장은 거의 함께 간다."(p41)
  6. "한때는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금융 부문이 어떻게 이토록 엄청난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고자한다. 특히 이 문제를 풀어가면서 그간 간과되어 온 현안, 즉 금융의 성장이 어떻게 미국 기업을 몰락으로 이끌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p32)
  7. "인류의 운명을 바꾼 것은 종교도, 정치도, 과학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기업이다. … 기업이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그저 하나의 기계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기업은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조직이자 제도이며 하나의 문화다." - '기업,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DBR 165호, 2014.11.
  8. "invisible, little more than numbers on a computer screen" - Niall Ferguson, 「The Ascent of Money」 p1, The Penguin Press NY, 2008.
  9. "사람들은 금융 산업을 자본주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윤활유로 생각하지만 … 금융은 지금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pp18~19)
  10. "제럴드 데이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포트폴리오 사회', 다시 말해 "모든 부류의 사회적 삶이 증권화되어 일종의 자본으로 전환된 사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포트폴리오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하여, 인간관계는 '사회적 자본'이, 인간 자체는 '인적 자본'이 된다. 그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기회든 '화폐화'되기 마련이다."(p444)
  11. 따라서 이 때의 '권력'이란 '정치 권력'과 같은 협의의 의미가 아닌, 삶의 방식과 같은 매우 넓은 범위에 걸친 지배 가능 정도 등을 의미하는 광의의 의미입니다.
  12.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책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 홍기빈, 「아리스토 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2001.
  13. '몹시 날카롭고 매섭다' - 네이버 국어사전
  14. 2018년 5월 초에도 애플은 1,0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인상을 발표했습니다.
  15.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자사주를 취득하면 EPS가 증가하므로 PER이 하락하게 된다. PER이 하락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이익이 비해 주가가 낮다는 의미이므로 주가가 오른다. 이런 이유에서 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즉 주가관리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중요한 함정이 하나 있다. 회사자 투자할 수 있는 투자기회에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률이 자본비용보다 낮다는 가정이다. 만약 회사가 자사주 취득을 하지 않고 그 돈을 활용해 새로운 투자를 집행해서 자본비용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을 지급하는 것보다 새로운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주가를 더 높이는 방법이다. 따라서 주주들이 배당을 지급하거나 자사주 매입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꼭 옳다고 볼 수 없다. 기업이 투자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장기간 기다리지 않는 단기 투자자들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선호할 뿐이다. 그런데 이 단기 투자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단기 투자자가 아닌 다른 주주들도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이 무조건 더 좋은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향이 많다." - '자사주 취득, 주가관리에 매력적이지만 … 과연 최선일까?', DBR 240호, 2018.01.
  16. "루카 마에스트리 애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FT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큰 시장에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잘 하고 있다"며 "10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은 애플의 미래와 주식 가치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라고 강조했다." - '애플, 예상밖 실적 호조 … 107조원대 자사주 매입' 중, 매일경제신문 인터넷판, 2018.5.2.
  17. 1970년대 중반 등장한 '주주 가치 자본주의'는 '모든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라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경영학의 보편적 관점 역시 기업을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존재로 보고 있지요. 기업이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무형의 자산인 주식에, 주주로서 투자했다라는 건, 분명 해당 기업의 미래 가치에 희망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고, 기업은 그러한 주주의 희망적인 기대에 부합하여야 한다라는 논리입니다. --- "MBA 과정은 필요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경영진의 존재 이유라고 가르친다."(p169)
  18. "나는 여기서 현존하는 금융 자본주의 모델을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 다만 현재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p67)
  19.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 "파생상품의 큰 문제점 한 가지는 실제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건전한 기업 활동과 투기 행위를 분간하기가 대개는 어렵다는 것이다"(p286)
  20.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판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차량 구입에 필요한 소비자 대출 상품을 팔아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에너지 기업은 정기적으로 투기성 원유 선물 거래를 통해 수익 증대를 꾀한다. … 그리고 항공사는 항공권 판매보다 유가 헤지로 더 큰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p236)
  21. "대부분 유명 금융사의 직원 30% 안팎이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돈을 많이 버는 데는 돈 장사가 최고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홍익희,「월가 이야기」중 p352, 한스미디어, 2014. : 위의 문장에 대한 설명으로는 --- "유대인들의 지혜서인「탈무드」에서는 '돈은 버는 게 아니라 불리는 것'이라 가르친다. 눈사람 만들 때 처음에 한 번 눈을 모아 뭉치는 것이 어렵지 뭉쳐진 것을 잘 굴리면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원리다." - '성인식 때 받는 돈, 실전 경제의 첫 발', DBR 130호, 2013.06.
  22. 자사주 취득에 대해 최종학 교수는 "회사 입장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다른 자산(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즉 자산의 교환이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자사주 취득, 주가관리에 매력적이지만 … 과연 최선일까?', DBR 240호, 2018.01.
  23. "자사주 매입에 쓰이는 돈의 증가세와 연구개발 같은 생산적 투자 지출액의 감소세를 그래프로 그려 보면, 두 선이 정확히 X자를 그리며 교차한다" (p36)
  24. 수치만을 중요시하는 기업의 비용·편익 분석을 통한 비용 절감이 초래할 수 있는 잘못된 사례의 대표격으로 포드사의 핀토 자동차의 케이스를 들 수 있습니다. --- "포드 자동차의 핀토는 197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소형 자동차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불행히도 뒤에 따라오던 차가 이 차를 들이받으면 연료 탱크가 쉽게 폭발했다. 그로 인한 차량 화재로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결국 화상을 입은 한 부상자가 자동차의 설계 결함을 문제 삼아 포드 자동차에 소송을 제기했고, 포드 기술자들 역시 연료 탱크의 폭발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회사 경영진들이 비용·편익 분석을 해본 결과, 연료 탱크를 보다 안전하게 바꾸어 주는 장치는 부착하는데 차 한 대당 11달러가 드는 반면, 그에 따른 이익(생명을 구하고 부상을 방지하는 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포드 자동차에서 보다 안전한 연료 탱크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조사해 본 결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180명의 사망자와 180명의 화상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사망이 20만 달러, 화상이 6만 7천 달러였다. 여기에 화재를 입을 자동차 대수만큼의 핀토 가치를 추가해, 차를 안전하게 고쳤을 때 얻을 수 있는전체 이익을 계산해 보니 총 4,950만 달러였다. 하지만 자동차 1,250만 대에 11달러짜리 장치를 부착하는 비용은 총 1억 3,750만 달러였다. 이로써 연료 탱크를 고치는 비용이 그로 인한 이익보다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 - 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중 pp75~76, 와이즈베리, 2014.
  25. "2015년 한 해 동안, 미국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투자자들에게 건네준 돈은 무려 1조 달러로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런 와중에 임금은 정체되고, 자본재, 공장, 직원 교육 같은 성장 촉진 항목에 대한 기업 투자도 침체되었다" (p121)
  26. "금융의 중핵인 월가와 대비되는 미국 일반 대중과 기업 등의 실물 경제를 지칭" (p15)
  27.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중국의 부채 위기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한 가지 중요한 유사점이 있다. 둘 다 국가가 건강한 경제 성장 모델을 세워 실물 경제를 강화하는 대신, 성장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채와 금융시장을 활용하는 사례다. 그러나 이것은 피눈물로 끝나게 마련이다" - 세일러, 「불편한 경제학」중 p460, 위즈덤하우스, 2010.
  28. "헤지펀드 수익률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컬럼비아대 로스쿨의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에게 시달린 기업은 대체로 장기 실적이 좋지 않다"(p222)
  29. "금융 시스템 내의 자금 대부분은 기존 자산군에 대한 담보대출에 쓰이는 실정이다. 간단히 말해, 금융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올려 주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지 않고 주식, 채권 등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증권화해서 돈을 굴리는 데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금융으로 흘러들어가는 돈 가운데 실물 경제 부문의 프로젝트에 공급되는 자금은 겨우 15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나머지는 그저 금융 시스템 내에 머물면서, 미국과 전 세계의 금융 자신 대부분을 쥐고 있는 금융 전문가와 기업계 거물, 극소수의 최상위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도록 할 뿐이다."(p31)
  30. "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준 주주들에게 신경을 쓰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사주 취득이나 배당의 지급 같은 부차적인 일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가를 높이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의 본질적인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고, 신기술이나 제품 개발에 투자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거나 교육 훈련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활동 등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의 효과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그러니 이런 활동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3년이나 5년쯤 기다려줄 수 있는 장기 투자자들은 이런 활동을 선호하겠지만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단기 투자자들이다. 큰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도 자신의 임기 동안에 성과를 내기를 원하므로 매우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이들이 경영진을 압박하는 강도가 최근 더 세지고, 자신의 임기 내에 주가가 상승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경영진도 점점 더 단기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 '자사주 취득, 주가 관리에 매력적이지만 … 과연 최선일까?', DBR240호, 2018.1.
  31. 이같은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것의 단점으로는 --- "단기 보상을 강화하면 CEO는 진정한 성장을 추구하기보단 단기 전망, 즉 주가를 관리하는 일에만 힘쓸 뿐이다. 퇴임 후 주식 보상을 제시하면 CEO는 결승점까지만 열심히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경영한다. 결승점을 통과한 후에 탈진해 쓰러진다 해도 퇴임한 CEO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라는 뜻이다." - '주주보다 고객 … 고객 자본주의 시대가 왔다' 중, DBR 52호, 2010.3.
  32. "시장이 정부의 계획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오직 모든 시장 참가자의 조건이 평등하고 가격 투명성이 완성되어 있을 때뿐이라는 스미스의 핵심사상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와 '인간의 이기심은 좋다'는 식으로 단순화되면서 잊힌 지 오래였다"(p82)
  33. 마술과 사기는 본질적인 행위 자체로는 다르지 않지요. --- "펀드 회사에는 좋지만 투자자에게도 좋은지는 의심스러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금융 기법들"(p358)
  34. "금융 모델이 경제와 사회 전체의 모델로 자리 잡는 격변을 거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다. 우선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 망가져 가는 퇴직연금 제도를 보라"(pp444~445)
  35. "유통시장이 오르는 것은 눈먼 돈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것뿐입니다. 그 목적이 달성될 동안만 오르고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끝입니다. … 눈먼 돈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 세일러, 「불편한 경제학」중 p162, 위즈덤하우스, 2010.
  36. 박한식·강국진, 「선을 넘어 생각한다」중 p21, 부키, 2018.
  37. '자본주의, 개혁 당하기 전에 개혁하라' - DBR 91호, 2011. 10.
  38. "현재는 미국의 최상위 1퍼센트의 몫이 혁명 전 프랑스의 1퍼센트에 조금 미치치 못하지만 점차 그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p446)
  39. 류동민·주상영,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중 p308, 한길사, 2015.
  40. 요즘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위세는 진짜... --;;
  41. "주식시장이든 아파트시장이든 제로섬 게임도 못 되는 것입니다. 계속 신주발행해서 판돈 빼가고, 신규 아파트 분양해서 판돈을 빼가기 때문에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 주식투자는 복권, 경마와 동일한 것입니다. … 주식시장도 눈먼 돈들에게 오락, 배설이라는 효용을 제공하고 기금을 조성(기업들에게 자본 조달)하는 것입니다. " - 세일러, 위의 책 p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① 요즘 중고딩들, 맨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한다고 하는데 대체 미적분도 안배우고 경제학과에 들어온다는 게 말이나 되냐? ② 신문에도 나오잖아, 요즘 애들 학력수준이 예전보다 오히려 더 떨어졌다고. 아니 우리 땐 1~2년만 바짝 하면 대학갔었었는데, 요즘 애들은 그것마저 하기 싫다구 하니 참... " --- 저와 제 친구가 실제로, 1년 전 쯤 술자리에서 나누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느덧 고딩이 되어있는 종원군의 '삶'으로부터, --- 이 아빠가 그 나이 땐 그냥 시험 전 일주일 정도만 '바짝' 공부하면 되었었던거고, 심지어 대학이란 것마저 재수 1년동안 '죽어라 바짝' 했더니 내 손에 합격증이란 게 쥐어져있었었거늘, 내 아들은 중딩시절부터 '매일' 학원엘 갔었었야 했으며, 고딩이 된 지금, 그 강도는 점점 더 쎄져가고 있다란 게, 무심한 이 아빠의 눈엔 이제서야 보여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 제가 그 나이 때보다 더 반항적인 되어있는건지, 대체 맨날 총으로 사람 쏴죽이는 핸드폰 게임이 뭐 재밌다고 저렇게 코박고 있는건지 도무지, '이해 못하겠어!'란 한 마디로 대변되는 힐난만 했었지)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인 제 아들의 일상조차 진지하게 바라볼 생각해보지 않았었다라는, 이 커다란 잘못을 대체 왜, 이제서야 깨닫게 된 걸까요? 


…………………………………………………………………………… 

김씨 왕조가 평화적으로 무너졌고, 국지전이 발발하지 않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지 않았고, 중국 군대가 북한에 주둔하거나 북한 일부가 중국에 편입되지도 않았다. (p11)

위와 같은, "북한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뎐 시나리오"1(pp10~11)대로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일이 된 이후의 상황이라는, 미래에 대한 가상 소설입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게 읽힌다'라는, 잘 팔릴수 있는 소설의 기본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개의 소설관() 중 하나인"제대로 된 관찰자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해"2로서의 작가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해주고 있는 소설이네요.  



【 통일의 목적 】

기업이 뭔가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예를 들어 신제품을 내놓는다든가 혹은 제품의 유통채널을 변경해보려 한다든가 할 때면 simulation이란 걸 수도 없이 충분히 해보며, 그 결과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contingency plan 역시 참 많이 세워놓기도 합니다. 물론! --- (최저임금제 등과 같이) 일 국가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의 시행에서도 위와 같은 과정은 더더욱이 세밀하게 행하여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겠거늘, 


일 국가의 체제가 바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준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세밀하고 치밀하여야하겠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 "일본은 … 특히 남한 정부가 핵개발에 참여한 북한 과학자를 은밀히 관리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pp43~44)와 같은 상상(?)은 (단지 소설가의 '소설적 상상력'이라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을) 그야말로 얼마든지 해볼 수 있겠는  합리적인 추측3인 겁니다. 더 나아가... 


김씨 왕조가 무너지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장마당의 공식 통화는 중국 인민폐였다. … 미덥지 않기로는 남한 돈도 북한돈과 다를 바 없었다. 남한과 북한 화폐를 통합할 거라는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았다. 어떤 비율로 통합하든 북한 원과 합치게 되면 남한 원도 가치가 크게 떨어질 거라는 게 북조선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p35)


'통일'이라는 작용(action)에 상응하여 발생 가능한, 수많은 사회 시스템과 관련된 위와 같은 반작용(reaction)에 대한 고민엔 분명 지나침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어놓으면 북한 주민들이 밤에 몰래 뽑아가거나 주변세 소금을 뿌려 말려 죽이죠. … 나무가 잘 자라면 그 지역에는 산림녹화사업을 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우려하거든요. 그러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pp154~155)


북한 민중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남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란 게 기본적으로, 일종의 ATM과도 같을 수 있다라는 작가의 위 지적은,


남조선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피하고 싶은 시설들을 공화국에 짓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북조선에 돈을 주겠다는 거죠. … 화력발전소, 쓰레기매립지, 화장장, 납골당,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정신병원 … 그런 걸 공화국에 짓자는 거죠. (p220)


통일 이후의 북한을 바라보는 이같은 남한 자본주의의 시각과 결부되어, --- 과연 통일을 하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때문이었던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할 것이 아니라 되기 이전부터 미리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통일은 대박'이란 천박한 발상의 본질 역시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 보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합쳐지면 내수 시장이 커지고 북한의 싼 임금 덕분에 남한 기업들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 그건 남한 자본이 북한 사람들을 노동자로, 소비자로도 이용해먹겠다는 얘기죠. (pp333~334)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세뇌 역시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장치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통일의 명확한 목적에 대한 설명과 그 목적에의 공감 등이 전제되지 않는 통일이란 건, 남한과 북한의 권력자들이 아닌 일반 민중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겠거늘, 어느덧 '통일'이란 다분히 정치적인 개념이 --- (작가 이청준이 아래의 문장에서 지적했었던) '과정을 속이는 무소불위의 명분'4이 되어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까지를 버려내지는 못하겠네요.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중 p180, 문학과지성사, 2012.



【 통일의 과정 】

"주정수 시대에도 명분이나 동기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문제는 오히려 그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 명분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명분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이었다. 게다가 명분이란 건 언제나 힘있는 자의 차지였다. 주정수는 최고최선의 명분을 그 혼자 독차지해버리고 있었따. 그 주정수의 명분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주장할 자신의 명분을 따로 지닐 수가 없었다. 


- 이청준, 위의 책 p175.


통일이란 게 '우리의 소원'이 되어버린 이상, 그 통일이라는 명분에 반()하는 그 어떤 것들도 그야말로 반동(反動)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박정희의 반공과 경제개발이,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수 없으나, '힘있는 자'가 그 명분을 독차지하여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가혹한 탄압과 부작용 등이 예의, --- '통일'이란 것이, 그 누구도 반대해서는 안 되는 지고지선의 목적이 되어버린 순간,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한 과정 속에서 발생되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강요된 희생'이 또한 당연한 것이 되는 모순이 발생되지 않을 거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외치는 자들은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이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 이청준, 위의 책 p179.


'개인의 소원은 시대의 제약을 넘어설 수 없다'라 합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시대의 제약'이 기원하는 체제를 바꾸어버림으로 자신이 지닌 '개인의 소원'을 이루어내기도 하죠. '통일'이란 것이 특정 개인의 소원은 아니겠습니다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의 선택 중 일정 부분은 분명, 권력자 개인의 선호에 의존하게 되겠죠.  ---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란 이 작품의 제목은, 그와 같은 권력의 선호에 따른 변질된 통일을 우려하는 것으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통일과도정부는 미국과 남조선의 승인이 필요했지. 그래서 김씨 왕조의 반인권범죄를 어느 정도 들춰내고 책임자에게 벌을 줘야 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었어. 통일과도정부 고위 인사들이 김씨 왕조 때에도 다들 한자리씩 하던 인간들이었으니까! 만만한 희생양이 필요했고 … (pp488~489)


일제로부터의 독립 이후, 우리의 역사를 보면 위와 같은 서술이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전쟁이 구분지어줄 승자와 패자, 그 각각의 역할이 어중간한 화해가 초래할 혼란보다는 차라리 더 낫지 않겠냐란 작가의 생각이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란 제목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짚어봅니다.   


전쟁을 했더라면 섬멸전이 벌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북한을 완전히 불지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무력통일을 하든, 아니면 남한 입맛에 맞는 괴뢰정부를 세우든,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거에요. 통일과도정부 같은 괴상한 정부도 없고, 부패한 관료도 없고, … (p332)


……………………………………………………………………………


「선을 넘어 생각한다」는 체제적 차원에서의 통일 논의를 담고 있기는 하나, 그 속의 주민들이 겪고있는/겪어야 할 불안이나 불행 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 전 생각합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체제 보장'이라는 반대급부를 김정은에게 선사한다라는 것이, 과연 북한의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그 책에는 담겨져 있지 않죠. 약간의 과장을 더해, 극도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책 속 주장은, 그 누구도 명백하게 표현하지는 않을, '미국의 안전이 담보된다면 북한 민중들의 삶은 관심 없다'란 입장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란 겁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장사에 관한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이 국가라는 집단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일이야. … 자네가 그 군복을 차려입고서 사람들에게 한다는 얘기가 안 그래도 비참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하는 것들뿐이라면 문제는 곤란해. … 사람들이 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들에게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나?"


- 김은국, 「순교자」중 p174, 문학동네, 2010.


·

·

·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그 생명이 복되기를 바라서이지 한뉘를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 반디, 「고발」중 p40, 다산책방, 2017.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한심함을 탓하기 이전에, 내 아이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먼저임을 깨달았듯, --- 국제적 역학 관계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통일에 대한 논의도 분명 필요하겠으나, 대체 왜 통일이 필요한 것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세밀하고 올바른 이해 역시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세뇌5가 만들어 내는,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고 있고 나도 그들을 돌보고 있다고 믿게 해야"6하는 헛된 믿음의 수준은 절대 안되는 거죠. 


민족이라든가 통일이라는 개념은 어떨까. 북한 주민을 향해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유용하지 않을까. 이웃 사람이 굶거나 부당한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때 내야할 용기를 발휘하는 심리적 도구로써 말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면서 훨씬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제 옆에 있는 못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 아닌가. (p497)


(2018년의 통일 논의가 설마 그러하진 않겠으나) 이제까지 우리의 과거 속 '통일'에 대한 논의에는 분명, 민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어야 했던, 권력자들의 추한 욕망이 서려있었었기에 더더욱 --- '통일'이란 게,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반드시! 권력자가 아닌 민중들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우리에게 필요할 겁니다. 그나저나...


지금같은 분위기라면, 몇십 년 후, 김정은이 통일된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될지 모른다란 가정이 그저 가정같지만은 않게 느껴지네요. 우린 과연...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보는 책들 : 「선을 넘어 생각한다」, 「고발」, 「순교자」, 「당신들의 천국 

 


  1.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배경이 되는 설정에 대해 몇몇 북한 전문가들에게 '이 정도면 가장 이상적인 급변 사태 시나리오라고 봐도 되느냐'고 여쭤봤습니다. 어떤 분은 '그렇다'고 단언하셨고, 어떤 분은 '이상적이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지적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소설 속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해 저는 프롤로그에서 이 설정을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던 시나리오'라고 썼습니다." (p509) - <작가의 말>중
  2.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중 p265
  3. "성균관대 다니긴 하지만 국문학과라서 영어는 하나도 못합니다"(p105)에 대한 성균관대 국문학과 차원의 사실확인도 필요할 듯. ^^;;
  4. "설득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원생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들을 위한 일에 일일이 구차스런 설득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 그는 언제나 옳았다는 생각이었다." - 이청준, 위의 책 pp176~177
  5. '개인의 소원은 시대의 제약을 넘어설 수 없다'지만, 거꾸로 시대의 제약이 개인의 소원마저 shaping 해내는 것 역시 용납되어서는 안되겠지요.
  6. 김은국, 위의 책 p2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